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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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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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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4.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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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아르뮨 (2)

DUMMY





덜컹덜컹ㅡ.


이정도면 엉덩이에 물집이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주일이 넘게 이어지는 마차 길.

시아는 조직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그리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고, 나도 시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말을 걸 건덕지가 별로 없다.

그러니까, 대부분은 조용한 시간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


마차의 창으로 들어오는 봄바람, 그 건너편에 펼쳐진 들판과 색색의 꽃들.

뜻밖에 배우로 캐스팅된 알렌 시아 분은 그것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음.’


감독도, 제작 스태프도, CG팀도, 후원하는 기업도 없는 작품.

졸지에 주연이 된 나는, 조연을 흘긋 보고는 가만히 턱을 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상황을 정리해두는 것이 나을 듯했다.


‘우선은 리오네 대륙이라는 곳부터.’


나는 눈을 감은 채, 시아가 건네 주었던 방대한 자료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현재 내가 빙의하게 된 곳은 ‘리오네’ 여신이 다스린다는 리오네 대륙.

그리고 그 첫 시작은 ‘일리네오 공국’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나라였지만 상업으로 발달한 나라였고, 두 번째로 들렀던 파른이라는 도시까지 세력 하에 두고 있는 곳.


‘소국이라고 했지.’


그런 일리네오 공국을 제외하고 나면 총 4개의 대국이 존재했다.

그 중 첫번째는 ‘오르페우스’.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제국이자, 끝없이 주변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였다. 목표가 ‘대륙 통일’이라고 하던데, 그랜드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 둘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이···.’


그 제국과 치열하게 국경에서 부딪히고 있는 ‘바바라’라는 나라다.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세운 나라였고, 제국에서 합법으로 지정한 ‘노예 제도’를 극혐하고 철폐를 외치는 곳이라고 한다.

수인족인 ‘제리 슈게리안’이 이곳 출신이었다.


그 외로 일리네오 공국과 비슷한 정도의 세력을 가진 나라가 두 곳.

‘베스타드’와 ‘카시움’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이곳에 대해서는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기에 패스.


이 다섯 개의 나라들 중에서, 무려 3대 범죄 조직 중 하나인 ‘MOON’의 본거지가 있는 곳은 어디냐고 묻는다면···.


‘제국 오르페우스의 수도 ‘오르페’.’


제국의 수도 어딘가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제정신인가 싶은 위치 선정이다.

위대한 축구선수 인X기 선생님이라도 모셔와서 강의라도 들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굳이··· 정말 굳이 좋게 포장하자면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지도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고.’


뭐 실제로 아직까지도 ‘MOON’의 본거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니, 후자의 가능성을 조금 더 높게 쳐주고 싶다.

제국의 수도에 자리를 잡고, 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던 케일이 새삼 더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이 더.


‘진짜, 내 인생···.’


불행하기 그지 없구나. 그냥 불행을 아주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는 수준이다.

세계 최악의 범죄자 중 하나의 몸에 들어왔는데, 그 능력은 하나도 계승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그냥 인간 조상현이 아닙니까?

차라리 평범한 시민의 몸에 들어오는 게 훨씬 나았을 텐데, 빌어먹을.

그 와중에 이 미친 놈을 연기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니. 하드코어 난이도의 게임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제국의 수도를 잘게 다진 편육으로 만들고 싶은 심정이군.”


세상에, 그 와중에 살아남기 위한 나의 본능은 위대하다.

이제는 욕도 케일처럼 하고 있지 않은가?

숭고한 욕의 장인들인 한국인의 피가 흐릿해 지고 있는 걸까? 상대에게 타격을 주려면 한국식 욕이 최고인데.

그 와중에 흠칫 놀라 이쪽을 쳐다보는 시아의 반응에, 뿌듯한 감정이 드는 것도 참.


‘···나도 연기에 미친 놈인가 싶기도 하고.’


하기야 그 오랜 시간 배우를 해왔으니, 배역에 상시 몰입을 하고 있는 지금은··· 당연한 건가.

오히려 익숙해지는 쪽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금 더 발전적인 생각이겠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불안해 하는 것도 금지.


“······.”


아무리 제국의 수도로 들어간다고 해도.

그 제국의 수도에 ‘MOON’의 본거지가 있다고 해도.

그 ‘MOON’의 주인이 이 몸이라고 해도.

그 몸 주인이 2억 골드의 현상금이 걸린 대륙 대재앙이라고 해도···.

······X발.

메르하임 케일 씨. 부모님 안부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




제국을 통과하는 것은 파른을 통과할 때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꽤나 체계적인 심사를 통해 진입하는 이들을 검사했고, 신분증 검사도 철저했으며, 이를 검사하는 경비대의 병사들은 충혈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있다.


“할리갈리 님. 음ㅡ. 들어가십시오.”


그냥, 그렇다고.


제국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뒤에는, 수도인 ‘오르페’까지 직행이었다.

성과 성, 혹은 마을과 마을, 그 사이를 잇는 마차 도로는 어찌나 폭이 넓은 지.

서울도 도로를 이정도로 넓게 만들었으면 교통 체증으로 신음하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랬다면 라디오 시장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제국은 그만큼 크고 거대했다.

그리고 ‘MOON’의 본거지 ‘아르뮨’은 그 거대한 계란의 노른자에 쏙, 하고 들어가 있다.

아주 당당하게.


‘···그나저나, 거기 가면 뭘 해야 하는 거지.’


아르뮨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의문이었다.

애초에 대부분의 지부장들은 아르뮨이 아닌 각자의 지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고,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며 생활하는 지부장들은 소수.

게다가 케일도 매번 밖에서 사고를 치느라, 아르뮨에 기거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시아를 처음 만났을 때, 젤룬 상업단지와의 계약이니 뭐니 했던 것 같긴 한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나는 시선을 돌려, 시아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


고양이 같은 눈동자가 빙글 돌았다.


“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뭔데?”

“아르뮨에 가면, 내가 해야 할 게 있나? 젤룬 상업단지 같은 것들.”

“아···!”


내 질문에, 시아는 손뼉을 짝 하고 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미안. 보스가 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잠깐 잊어 먹어서,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어.”


몇 시간만의 대화가 반가웠던 걸까. 시아는 꽤 흥이 나는 듯이 보였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수다를 좋아하는 여대생 느낌인데.


“젤룬 상업단지는 제국 수도에 있는 커다란 상단들의 집합체야. 각 나라에서 물건을 유통하고 있고,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건도 취급해.”

“음ㅡ.”

“그리고 우리들 중에서 파르만이, 그곳과 같이 일을 하고 싶어 했어.”

“···파르만이?”


파르만은 식료품 지부 27호에서 만났던 건달들의 주인이었다.

위대한 사업가가 되겠다는 일념을 기치로 삼아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문어발식 회사의 CEO이자, 사업가로서의 재능은 바닥이라 매번 말아 먹는 위인.


‘···그런데 이번에는 젤룬 상업단지와 계약을 체결해서, 또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 건가?’


파르만이라는 인물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벌써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돈 버는 놈 따로 있고, 쓰는 놈은 또 따로 있는 그런 느낌?


시아가 줬던 정보에 따르면 원래 파르만은 유명한 갱의 두목이었다.

‘LUNA’라는 예쁜 조직 이름을 달고, '그들 말에 따르면' 의적질을 했단다.

그러다 재수 없게 케일에게 걸렸고, 그날로 된통 깨져서 밑에 흡수가 되었다고.

참고로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었기에 서열 상으로는 가장 아래였으나, 케일의 미친 짓을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업가로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새로이 키웠다지.’


파르만의 나이가 고령만 아니었어도, 올바른 길과 꿈으로 인도해줄 어른이 있었을 텐데.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시아도 마찬가지인지, 심각한 얼굴로 말을 계속해왔다.


“그것 때문에 다들 의견이 분분했어. 파르만에게 그렇게 큰 기회를 주면 안된다는 쪽이 대다수였지만, 어쨌든 MOON은 보스의 의견대로 결정이 되니까.”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라는 거군.”

“응. 일단 나는 반대 한 표야.”


시아는 손을 들어올리며 본인의 의견을 어필했다.

나는 그것을 소중한 한 표로 마음속에 담아두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 건, 파르만이 아르뮨으로 찾아올 거라는 뜻인가.”

“응?”


나름대로의 추측을 통해 낸 결론이었으나, 시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

“파르만이 아니라, 지부장들 전체가 아르뮨에 있다고 연락이 왔어.”


네? 갑자기요? 그런 말은 없었는데?

하지만 최대한 당황한 티를 숨기며, 나는 한쪽 눈썹을 구부린 뒤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뮨에 전부 모이는 일은 흔치 않을 텐데?”

“아, 그게. 내가 보스를 찾았다고 하니까, 다들 모이겠다고 했어.”

“···어째서지?”

“그야, 위기 상황이니까?”


······졸지에 지부장 전원과 대면을 하게 생겼다.

위기 상황이라는 게 내 위기를 말하는 건가?


‘···이놈의 불행은.’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고막에 일직선으로 때려 박힌다.

아니, 아르뮨에 전부 다 모이는 건 분명 1년에 한두 번 정도라면서?

하필 그 한두 번에 재수 없게 걸린 건 아닐 거고··· 결국 케일이 싼 똥을, 내가 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코끼리 똥 수준의 크기를.


“마차 바퀴는 멀쩡한가?”

“···?”


마차 바퀴가 부서지고, 튕겨 나간 뒤에 정신을 잃었더니, 다시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짜잔! 같은 편의주의적인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날 리가 없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멋들어진 목소리로 대답한 뒤, 한 손으로 얼굴을 슬쩍 감쌌다.

지부장들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대답할 수 없는 대화는 어느 정도 피해도, ‘케일이니까’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크게 세 개.


1. 파르만과 젤룬 상업단지의 계약 건에 대해서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2. 자금난을 비롯한 각종 위기로부터 조직의 미래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3. 과연 이게 전부일까? 대륙 공적이 전부 모여 있을 텐데?


그리고 내 의견을 듣기 위해, 지부장 전원이 아르뮨에 집합한 상황.

그러나 이것들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할 여유마저도 내게는 없었다.


“아! 오르페다.”


시아의 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야말로 수도라 불릴만한 거대한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아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이런 건 바로 말을 해줘야지···.’


다른 지부장들을 보고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고 하더니··· 내 입장에서는 시아의 뇌에도 한 두 개는 뚫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덕분에, 결국 아르뮨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세 개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수단은 단 한 가지.

배우에게 있어 ‘재능의 영역’이자, 악역 전문 배우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준 능력.


‘애드리브.’


그리고 임기응변.

의심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는 것, 지금은 그것밖에 없다.


'판을 뒤엎어버리는 수밖에.'

“내리자, 보스.”

“그러지.”


대답과 동시에 나는 본거지인 ‘아르뮨’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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