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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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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544
추천수 :
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4.26 11:05
조회
101
추천
4
글자
11쪽

주연에게는 조연이 필요하다

DUMMY







15분 정도를 걸어갔을 때 쯤.

어두운 골목 어귀 한곳에 ‘손님이 왕! 식료품 가게!’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3대 범죄 조직인 ‘MOON’에 속한 지부 중 하나라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간판에 적힌 문구를 보니 다소 안심이 되는 것 같다.

장소가··· 조금 그렇긴 하다만.


‘애초에 여기까지 식료품을 사러 들어오기는 하는 건가.’


겨우 붙잡은 안도감이, 미심쩍은 의심으로 인해 난도질을 당하는 기분이군.

나는 쯧, 하고 혀를 차곤 식료품 27지부의 문 앞에 섰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시아에게 턱을 까딱거려 보였다.


“익! 보스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불평 불만을 거칠게 뱉으면서도 시아는 문고리를 잡고 거칠게 열어 젖혔다.

존재 위압을 사용하지 않을 때. 즉, 평소 케일과의 관계는 딱 이런 정도의 느낌인 모양이다.

시아 본인도, 나를 계속해서 보스로 대하고 있으려는 모양이니까.

해서 나도 케일처럼 대답했다.


“손에 먼지가 묻는다.”

“짜증나!”


음, 잠깐 살기가 느껴진 것 같긴 한데 무시하자.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식료품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몇 발자국도 채 가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다.


‘이딴게··· 식료품 가게?’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은, 3작품 전에 찍었던 영화 ‘목포의 바다는 푸르다’의 한 장면과 흡사했다.


“음.”


바가지 위에 쭈그리고 앉아 각종 야채를 손질하고 있는, 나시 하나만 달랑 걸친 11명의 장정들.

그들 손에 들린 칼이, 요리용인 것인지 살인용인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광경이다.

···무엇보다 식료품 가게 직원들의 어깨 부근에, 어째서 저런 화려한 문신이 있는 걸까.

살벌한 표정은 또 어떻고.


“뭐야, 넌.”

“죽고 싶냐?”


보통은 어서오세요, 정도가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좀 무서운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담으며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생글생글 웃으며 상황을 관조하고 있는 시아가 보였다.


‘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이 그 다음 테스트라는 것을.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기가 통하는가’?

그런 내용의 테스트라는 것은, 시아의 표정 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됐다.


‘···누구보다 케일을 잘 아는 시아의 눈을 통과했으면 그만이지 싶긴 한데.’


아마도 케일의 얼굴을 모르는 저들에게도, 통하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까?’


말은 죽이겠다고 했지만, 시아는 내 손가락도 자르지 못하게 되었다고 짜증을 냈다.

게다가 구태여 테스트를 해가며 나를 보스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그 사실 또한 이용하는 게···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아닐까?


‘시아는··· 분명히.’


사고는 빨랐고, 행동은 그 뒤에 따라 나왔다.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주머니에 넣어둔 손 중 오른쪽을 꺼냈다.


“죽고 싶냐고?”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자의 볼을, 가볍게 어루만져 주었다.

흠칫 놀라는 건달 1호의 눈동자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이지?”


최대한 낮게 깐 음성, 이런 분위기에도 꿀리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

그것으로 잠시 건달들의 행동을 멈춘 뒤, 나는 ‘확실한 카드’를 사용했다.

언제까지고 계속,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어줄 수는 없지 않나.

정확한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적어도 시아에게 나는, 케일은, 그리고 조직 ‘MOON’은 필요하다.


‘시아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그리 자랑은 아니겠지만···.

어렸을 때는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인간 간의 ‘이해관계’와 ‘상호작용’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고.

배우가 되고 난 이후에는 대본 속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상황’과 ‘장면’에 대한 이해도가 극도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 지난 삶으로부터 얻어낸 결과 값은, 더없이 명확한 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게 내버려두지도 못해.’


그래, 이건 목숨을 건 도박이다. 하지만 살아남을 확률은 99%에 달한다고 생각한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에 다이빙도 해봤는데, 그것보다 쉬운 것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저벅, 저벅ㅡ.


나는 몸을 돌려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끽, 하고 의자를 끌어와 그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 순간에는 11명의 건달들도, 시아도, 의아하단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연기를 이어 나갔다.


“마차를 내와라.”

“······.”

“······.”


한동안 가게 내부에 침묵이 흘렀다.


“계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이, ‘죄송합니다!!!’를 소리치고 후다닥 도망갔을 때도 마찬가지.

나는 고요함 속에서, 검지를 툭 테이블 위에 떨어뜨렸다.


톡, 톡, 톡, 톡.


마치 시간을 세듯, 나는 그 행동을 반복했다.

그것이 약 30초가 되었을 즈음. 건달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칼을 위협적으로 손 안에서 돌렸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그게 시발점이 되었는지, 다른 건달들도 벌떡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흥분 섞인 거친 목소리를 냈다.


“X발 잠깐 쫄았잖아 X끼야.”

“뭐냐?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야?”

“뒤지고 싶어?”


조직의 보스가 조직원들에게 협박 받는 귀한 장면이 이어진다.

나는 손가락을 멈춘 채 턱을 괴었다.


“말로 해서, 알아 먹지 못하는 놈들이군.”

“이 X끼가.”


결국 참다 못한 건달들이, 내 쪽으로 흉악한 살기를 뿜으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뒤져서도 객기 부릴 수 있나 보자!”


가장 앞에 달려오던 건달의 칼이, 내 목을 향해 쑤욱 뻗어왔다.

순간 식은땀이 바짝 나며 등골에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이름 하나를 말했다.


“알렌 시아.”


카앙ㅡ!!!


시아의 작은 단검이, 옆면으로 건달의 칼 끝을 막고 있었다.

내 목 바로 앞에서.


‘···진짜로 죽는 줄 알았네.’


순간 잘못 판단했나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확신에 확신을 더한 꼴이 됐다.

시아는, 나를 죽게 둘 수 없다. 그 이유가 뭐가 됐든지 간에.

······이. 물론 지금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긴 하지만.


“큼.”


나는 손을 들어 헛기침을 하곤, 이내 고개를 15도 정도 옆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나른하게 만들어 둔 표정 위에 아주 작은 짜증을 띄웠다.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짖는 개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


시아와 칼을 맞대고 있던 건달의 얼굴 위로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의심에 쐐기를 박았다.


“알렌 시아.”

“···왜, 보스.”

“여기 지부장이 누구지?”


알고 있지만 구태여 물었다.

입술을 살짝 깨문 시아는, 내 의도대로 대답해주었다.


“파르만.”


건달들의 주인이 파르만이라는 사실은 세간에 밝혀지지 않은 정보였다. 그에 더불어 ‘지부장’이라는 사실까지도.


“그럼 이자들은, ‘루나(LUNA)’ 출신이겠군.”


그에 더불어 깊숙한 비밀까지 들춰낸다.

살기로 가득했던 그들의 눈동자가, 수많은 감정을 내포한 채 나와 시아를 번갈아 바라본다.


“···설마.”


파르만의 이름을 ‘님’을 빼고 부르는 금발의 여자와, 그런 금발의 여자가 ‘보스’라고 부르는 남자.

머리가 나쁜 그들이라도, 지금 누구를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힉···!”

“몰라봐서 죄,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 만은···.”


그들은 일제히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흡사 절을 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명절인가? 어쨌든.

나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죽이려던 건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잔뜩 날이 선 시아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할거야, 보스?”


목덜미가 서늘해 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다.

···하긴, 시아도 유명한 대륙 재앙이었지.

구걸을 하고 있을 때 처참하게 토막이 나던 건달들의 시체가, 순간 눈앞에 아른거린다.

혹시나 그런 꼴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이러나저러나 저들도 우리 편이지 않은가?


“어째서 파르만이 손대는 사업마다 말아 먹는지 알 것 같군.”

“···?”


뜬금없는 이야기에 시아가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직원들 교육이 개판이야.”


나는 꼬았던 다리를 풀며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숨을 죽인 건달들의 호흡이, 썩은 나무 바닥에 닿았다가 두려움으로 흩어졌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단어 하나를 힘을 주어 말했다.


“마차.”

“옙···!!”


그들 중 하나가 잽싸게 일어나며 크게 소리쳤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




케일은 미치광이다.

미치광이지만 흉포한 성격은 아니다.

그냥 뇌가 없는 인간일 뿐, 무턱대고 자신의 부하를 쳐 죽이는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기야 만약 그랬다간 케일을 믿고 따르던 이들도 모조리 떠났겠지.

무려 11명이나 되는 지부장이 그의 밑에서 복종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패서 말을 듣게 만든 것 같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식료품 지부 27호의 조직원들을, 시아에게 죽이지 말라 한 것은 정답이었다.

새로운 마차로 갈아타 이동하는 지금.


“보스.”


시아는 조직원들의 처분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문제 삼으려는 듯했으니까.


“아까 것은 테스트였어.”

“···안다.”


내 대답에 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양이 같은 얼굴이, 더욱 사납게 변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붉은 눈깔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스의 연기가 통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어.”

“그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어?”


까득, 이를 깨무는 시아는 분명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굳이 추측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현재 내가 차지하고 있는 케일의 몸을, 고작 조직원의 손에 죽게 둘 뻔했으니까.


그러나 이건··· 그래. 그러니까, 연기다.

어디까지 쓰여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양의 대본, 그것을 손에 꼭 쥔 채 아슬아슬한 밧줄 위에서 펼치는 연기.

그러나 어떠한 상황이던 간에 이것이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같이 밧줄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도, 배우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너도 배우니까.”


이것은 나 혼자 하는 단독 1인 연기가 아니라, 나를 이 판에 끌어들인 시아도 조연으로 함께 해야만 한다.


“···뭐?”


내 말에 시아의 눈동자가 우뚝 멈췄다.


“너도, ‘배우’라는 뜻이다. 알렌 시아.”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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