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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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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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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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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4.24 18:10
조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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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테스트 (1)

DUMMY

미친놈.

메르하임 케일은 미친놈이다.

내가 미치지 않았기에, 이건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조금 전 완벽하게 연기해내겠다고 연기혼을 불태운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진짜로 제정신이 아니야.’


시아가 내게 준 종이 뭉치.

그곳에 적힌 메르하임 케일에 대한 것은 그야말로 장황했다. 눈으로 보고 읽었는데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단독으로 은행을 털었고, 홀로 조직 4곳을 박살냈으며, 열차를 탈취해 그곳 승객을 인질로 삼아 해당 국가로부터 돈을 뜯어냈다.

참고로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자잘한 것만 떠올린 것이니, 그 이상의 것들은 여기 종이 안에 고이 넣어두기로 했다.


“허어ㅡ.”


하지만 내가 케일을 미친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대범죄자여서가 아니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 그의 행적이, 오로지 하나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저 무력. 압도적인 무력.


‘제국의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나타났는데, 여유롭게 도망쳤다고?’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힘이 정확히 어느 수준인진 모르겠지만, 대륙에 5명밖에 없다는데? 그럼 상상 이상으로 센 놈이라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이건.


‘지 힘만 믿고, 계획 따위 알 바냐 방식인데···.’


나는 손을 들어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이걸 내가 어떻게 연기해?


그래, 케일의 성격이나 평소 말투 그리고 부하들을 어떤 방식으로 대했는지는··· 여기 자세히 적혀 있으니 할 수 있다 치자.

심지어 중요 부하들의 정보까지 시아가 친절하게 적어 주신 덕분에, 말을 잘못할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진 것도 인정.

하지만 나는 그 ‘무력’이 없다.

시험 삼아서 마차 벽을 주먹으로 세게 쳐 보았지만, 내 손만 아팠다.


“뭐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항?”

“그럴리가요.”


시아가 살벌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이내 다시 신경을 껐기에, 나는 기존의 생각에 몰입했다.

메르하임 케일이 되는 법은 사실 간단하다.


1. 뇌를 뺀다.

2. 쳐들어간다.

3. 근엄진지한 표정을 한 채 죄다 때려부순다.

4. 돈이든 뭐든 목표로 삼은 걸 가지고 유유히 나온다.


1, 2번빼고 불가능하군.

요컨데 X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흠.’


시아가 그걸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혼자 생각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닐까?

예전, 겨우겨우 알바비를 모아 내가 배움을 청했던 ‘연기 선생님’이 그랬다.


/돈은 귀해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을 써야 하니까./

/그리고 난 그 귀한 걸 받은 사람이죠./

/그러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무조건 물어보세요./

/연기는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

그래, 물어보자.

나는 손을 들었다.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데.”


시아가 눈을 흘겼고,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마차 안, 나무 벽과 대화를 하는 꼴이 됐다.


“저는 싸움을 할 줄 모릅니다. 아, 물론 액션 스쿨을 다니기는 했지만··· 메르하임 케일과 비교하면 턱없는 수준일 텐데···.”

“그래서?”

“이건 제가 연기할 수 없다는 뜻이죠.”

“······그래서?”

“하지만 시아님이 그걸 모르셨을 리는 없고, 혹시 이 부분은 대안이 있나 해서요.”


시아는 내 말에 손톱을 깨물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그래, 뭔가 대안이 있기는 있구나.

다만 그걸 나한테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 거고.


‘그렇다고 해줘. 제발.’


아무 생각 없었다고 하지 말아 줄래···?

그러나 간절한 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확실하다. 아무래도 전전전생쯤에, 나는 나라를 팔아먹었다.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으음.”


나는 침음성을 내며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나도 그 부분은 고민해 볼게.”


시아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리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니까.

어쩌면 ‘MOON’에 속해 있는 놈들도 죄다 케일이랑 똑같은 거 아닐까, 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대뇌 어딘가를 맴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인가.’


나는 눈을 감은 채, ‘조상현’의 삶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조상현이 연기하던 안시후를.


안시후는 어떻게 보면 케일과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형태의 우두머리였다.

가진 바 무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직접 나서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일을 머리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했고,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싫어했다


‘그렇다면 안시후를, 케일에 덮어 씌워야 해.’


가능···한가? 가능할지도.

최소한 나는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좋은 편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실 ‘MOON’에서는 이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부하들은 케일에게 맞고 복종을 맹세한 이들이다.

까라면 까고, 엎드리라면 넙죽 엎드리는 그런 이들.

그렇다면 굳이 그들 앞에서 ‘또’ 무력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원래 PTSD라는 건 생각보다 유효 기간이 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다같이 평화를 지키자!’라고 하는 걸 따를 리는 없지.’


이를테면 갑자기 가출했다 돌아온 보스가, 우리 이제 교화 되어 착한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련? 하는 꼴이 될 테니. 그러니까 이건 기각.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 우리 보스가 머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 프로젝트.


메르하임 케일의 파괴 행적을 보며 느낀 건 하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건 때려 부수고 가지고 싶은 건 훔쳤으며, 무엇보다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시아를 보며, 그녀가 여관 방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돈이 다 떨어졌다고 했지.’


그리고 보스가 사라진 것도, 그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거라 생각했다고.

그걸 도와주기 위해서 찾아다녔다고 했는데, 도와주기 위해서인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고.

내가 궁금한 건 왜 자금난이 도래했는가다.

분명 케일이 미친놈처럼 들쑤시고 다니며 범죄 행위로 얻은 돈이 있을 텐 데도 말이다.

궁금하니 물어보자. 내 추측도 함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또?”

“현재 ‘MOON’이 자금난인 거, 뒤처리 비용 때문입니까?”

“···!”


추측이 맞았는지, 시아가 눈썹을 꿈틀 하고 움직였다.


‘역시.’


범죄 조직의 보스를 연기해온 짬밥이, 여기서 먹히는 거다.

안시후로 생각해보니 답이 나오더라고.

여기라고 대한민국과 크게 다를까 싶었는데, 어느 정도 사회 돌아가는 꼴은 비슷한 모양이다.


결국 시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왔다.


“어떻게 알았어?”

“무턱대고 범법행위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대륙 재앙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는데··· 조직이 아직 온전하니까요.”

“······.”

“당연히 뇌물 등을 통해서 각국 수뇌부를 매수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정보상의 정보를 교란시키기 위한 자금도 필요할 것이며, 반대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 같은 위협을 보스와 만나게 하지 않기 위해 들어가는 정보료도 있겠죠. 뭐 기타 등등, 돈 들어갈 곳 투성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게 사실이라면, 반대로 내 족쇄가 될 내용이다.

케일을 연기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도망을 간다면 저곳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라질 것이고, 동시에 나를 추적하는 데에 쓰이게 될 테니까.


‘아니. 어차피 시아에게 붙잡힌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어.’


나는 종이 뭉치를 검지로 꾹 눌렀다.

압력에 두꺼운 뭉치가 아주 약간 움푹 패였다.


“여기, 케일이라는 보스 때문에.”

“너.”


시아가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당당히 눈을 마주 보았다.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그 외, 자금난을 마주하고 있을 이유라면 도박이나 그런 걸로 케일이 탕진했을 경우인데.’


그건 종이 뭉치에 없는 정보니 패스.

역시나 시아는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고 내 말에 동조했다.


“하아. 네 말이 맞아.”


그녀는 무릎을 끌어 앉고 그 위에 조그마한 얼굴을 얹었다.

긴 금발이 허벅지 옆을 쓸며 찰랑거렸다.


“보스는 늘 앞뒤 저지르지 않고 일을 벌여. 나는 보스를 정말 좋아하지만, 뇌까지 근육인 걸 좋아할 수는 없어. 왜냐고?”


다만··· 동조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이상했다.

시아의 얼굴이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울함은 이내 그라데이션 분노로 변했다.


“그 뒤처리는 내 담당이거든. 이번에도 내가 왜 보스를 찾아 다녔겠어. 또 사고 칠까 싶어서야···! 어차피 말해도 들어 주지도 않지만··· 어쨌든!! 맨날 나야! 이런 일은 내가 다 해야 해! 그것도 왜일까?! 뭐 때문인 것 같아?!”

“······.”


대답을 바라는 모양인지라, 나는 볼을 긁적이며 생각한 바를 말했다.


“다른 부하들도 케일···이라서요?”

“응! 맞아!”


정답이다.


“솔직히 말하면 죄다 정신이상자야! 도대체 보스는 어디서 이런 놈들만 데려왔는지 모르겠는데, 죄다 뇌에 구멍 하나씩 뚫려 있다고!!”


아무래도, 내가 그녀의 발작 버튼을 누른 모양이다.

···여태 한 번도 표출할 수 없었던 감정을 이렇게 쏟아내는 걸 보니, 음. 좀 안쓰럽긴 했다.


“하나일까? 아니, 여러 개일지도 몰라. 뇌를 꺼내서 확인해볼 수도 없고. 아냐 이 참에 한 번 확인해볼까?”


금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리며, 무시무시한 말을 입에 담는 걸 보니. 저번에 봤던 건달들의 끔찍한 시체가 다시 떠오른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눈 앞의 여자는 칼질 솜씨가 매우 뛰어난 암흑가의 유능한 부하였다.

나는 살기에 따끔거리는 피부를 손바닥으로 지긋이 눌렀다.


“···아, 미안.”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내게 사과를 했다.

놀라운 관계 발전이다.

처음으로 그녀의 고충을 알아준 내게, 어떠한 동질감이라도 생긴 건 아닐지.

시아는 붉은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좀 흥분했네.”


그러곤 큼큼, 헛기침을 하곤 고개를 홱 돌렸다. 팔짱을 낀 모습은 덤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적은 본인 인적사항에···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지.’


어린 나이에, 물심양면 조직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구나. 같이 한 게 15년이라고 했으니, 무려 10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문득 양재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녀석도 영화 속에서, 내 보조를 하느라 개고생하는 유능한 부하였는데.

···살아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음.”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털며 그녀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륙 3대 범죄 조직 ‘MOON’, 그곳의 현재 문제는 자금난만이 아니다.

제멋대로인 보스 덕분에 부하들도 제멋대로 움직였고, 매번 혼자 재미를 보는 보스 때문에 독립을 하겠다는 분위기까지 최근에 형성되고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산재해 있는 문제들은 산더미같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안을 제시했다.


“만약에 보스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뭐?”


부하들은 지금 좀이 쑤시다.

시아는 혼자 뒤처리를 담당하고 있다.

보스인 케일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워낙 제멋대로인 인간이니까.


“무력을 연기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그랬지. 생각 중이었는데, 그건.”

“마찬가지로 저도 생각을 한 번 해봤는데요.”


나는 후, 하고 심호흡을 했다.

이 제안을 거절당하면, 나는 꼼짝 없이 정체를 들키고 죽는다.

왜냐하면 시아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니까.


“‘MOON’을, 정상적인 형태로 굴리기 시작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일반적인 조직의 형태로요.”


보스가 계획을 짜고 그 일을 시키면.

부하들은 이를 실행한다.

지극히 당연한 상하 관계에 따른 명령 및 이행.

그 과정에서 나는, 보스 본인이 나서는 일이 없도록 만들면 된다.


“···!”


그리고 내 말 뜻을 이해한 시아가 눈을 빛냈다.

조직 내에서 유일하게 뇌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스스로 증명해냈다.

시아가 붉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너, 맘에 든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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