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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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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565
추천수 :
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4.30 19:01
조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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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감정 (1)

DUMMY

저 새끼가?

순간적으로 욕을 뱉을 뻔한 것을 참으며, 나는 가만히 시선만 그에게로 돌렸다.


“푸흐, 아. 크흑···.”


상체를 앞으로 당겨 어둠 속에서 나온 그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는 그를 미친놈 보듯 보고 있었다.

물론 몸 주인인 케일을 포함해 죄다 미친놈들 뿐이지만, 미친놈들에게서 미친놈 취급을 받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니겠나.


“이봐, 영감.”


그 난이도 높은 취급을 받으며, 사무엘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오른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케일 다음으로 나이가 많으며, 흑마법사들의 정점에 있는 대마법사.


“···나 말인가?”


클루에 마틴이 있는 곳이었다.

마틴은 허연 눈썹을 찌푸리며 사무엘에게 되물었다.


“왜 부르는 겐가.”

“몰라서 묻는 거야?”


서열 3위와 4위, 분명 그런 구도로 보이는데.

어째서, 클루에 마틴과 사무엘을 제외한··· 다른 셋의 감정이 널뛰는 거지?

그들은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던 ‘반감’을 희미하게 드러낸 이들이었으며, 존재 위압에 의해 기척을 감춘 이들이었다.

나는 사무엘과 마틴을 보는 척하면서, 다른 셋을 곁눈질로 흘긋 확인했다.


‘긴장? 아니, 아니야.’


지금껏 감정을 민감하게 수도 없이 다뤄온 내게, 직업병이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저건, 두려움이라고.


‘제리 슈게리안, 몰리, 바쿠렌.’


그리고 클루에 마틴까지.

백발의 노인은 침착한 척 굴고 있지만, 그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내 의중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지?’


단순히 존재 위압 스킬에 의해서 벌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먼저 이곳에 와 있던 지부장들 간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분명 나, 케일에 관한 것일 터.


‘···보스가 오면 몰래 기습해서 죽인 뒤에, 갈아치우자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겠지?’


제발 그런 과격한 범죄 행위는 아니기를 바라고 싶다.

존재 위압을 제외하면, 나는 속 빈 강정이니까.


“내가 얘기했잖아. 괴물이라고.”

“허허허허.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왜? 잘난 사령술이라도 써서, 입막음이라도 해보시지? 이미 다 들통난 것 같지만.”


그니까, 그런 거 쏘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죽는다고. 사무엘 개자식아.

그러나 물리적으로 사무엘의 입을 닥치게 만들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취했다.


“그만.”


아직까지는 간신히 붙잡고 있는 권위와 주도권을, 적극 사용하는 것이다.

뭐가 됐든 여기서, 내가 있을 때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은 사양이니까.

내가 없을 때야 속일 인원도 줄어드니 적극 환영이지만, 지금의 흐름은 내게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내가 사무엘을 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자, 그는 얼굴의 웃음기를 지우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왜?”


곧 그의 손이 품 안에 들고 있던 대검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보스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모른다고 하면 저 대검이 내 목을 잘라낼 것 같았기에,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다.”

“···그런데 왜?”


유치원생입니까 사무엘씨? 불편하니까 뒤에 물음표 좀 치워 주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케일처럼 대답하기’ 목록 중, 지금 적절한 건··· 이건가.


“귀찮다.”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던 걸까? 대검을 만지작거리던 사무엘의 손가락 끝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내가 오기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감정으로만 느낄 뿐이었고, 그게 최소한 ‘불경한 생각’ 정도라는 것 정도만 파악한 상태.

안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모르는 게 팩트.

그러니까, 평소의 케일답게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지난 세월 다져온 연기력은 거들 뿐.


“클루에 마틴.”

“허허, 부르셨습니까 보스.”

“사무엘.”

“······왜.”


그 둘의 이름을 차례차례 부른 나는.


ㅡ 케일은 웃지 않는다.

ㅡ 케일이 웃을 때는 상상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는 미친 짓을 떠올렸을 때 뿐이다. 만약 그 미친 발상이 발동이 걸린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한쪽 입 꼬리 끝을, 천천히 끌어 올렸다.

그리고 표정근을 최대한 활용해 웃는 것도, 웃지 않는 것도 아닌 그 미묘한 경계 위를 외줄타기 하듯 밟았다.


“전부, 나가라고 했을 텐데.”


공기가 변한다. 급격하게.

케일이 웃기 직전이니까.


“어, 시발. 잠깐만.”


제리 슈게리안이 다급하게 짐을 챙겼다.


“같이 가요오오···. 아리 졸려어.”


거짓 하품을 하며 아리가 그 뒤를 따랐다.


“볼일이 생각났다.

“어머, 타이뮨도? 나도 그랬는데~. 같이 가자!”


거인 타이뮨과 밤의 여왕 아룬 디엔이, 달력에 적어 놓지 않은 일정을 떠올리며 사라진다.

그렇게 하나 둘 씩, 회의실 밖으로 도망쳤다.


“커흠. 오래 앉아 있었더니, 무릎이 쑤시는군.”


결국 마틴도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났다.

통통, 주먹으로 본인의 허벅지를 두들기면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의 상황에 안도하는 기색이 느껴지는 걸음걸이였다.

어쩌면 속으로 ‘케일님 귀찮음 만세!’ 따위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하여간, 저 능글맞은 노인네.”


쯧, 하고 혀를 찬 사무엘은 본인의 대검을 챙겼다.

그 또한 내 등 뒤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다만, 나와 문 사이 어딘가에 서서 몇 마디를 남겼다.


“보스가 앉자마자 존재 위압을 쓰지 않았으면, 저 노인에. 보스 기습했을지도 몰라.”


예?


“뭐 보스야 여유롭게 피하고 반격도 했겠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게 제일 중요한데요?


“보스야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도전을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야.”


시아와 같은 금발에, 벽안. 흔한 한국말로 ‘존잘’이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호리호리한 키의 서양 남자.

그런 사무엘이 서글픈 얼굴로 내게 직언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귀찮다는 식으로 매번 넘어가니까, 저 자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스를 갈아 치우자는 소리나 하잖아.”


하하, 진짜였네.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본 건데··· 아무래도 여기는 최악의 상황만 발생한다고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기강, 확실하게 잡아. 오늘도 찬성한 넷, ‘흑옥’에 가두어 두기라도 했어야 해.”


···진작 말하지. 다 끝나고 말하면 어떻게 하냐.

그나저나 너,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었구나.

나는 ‘아군 목록’에 파르만과 시아에 더불어 사무엘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나랑 한 약속, 지켜야 할 거 아니야. 아무튼 간다.”


휘휘, 사람 키 만한 대검을 가볍게 휘두른 그는 그렇게 방을 나갔다.


"······."


그 뒤로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잠깐만.’


나는 사무엘이 남긴 말 중 하나를 떠올리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직접 체감했다.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냉수로 뛰어든 것처럼 머리털이 삐죽 솟아오른 것이다.


끼기긱ㅡ.


나는 고장 난 사람처럼 기괴한 형태로 고개를 돌렸다. 내 턱이 향한 곳은 붉은 눈깔 고양이가 있는 곳이었다.


‘언제든지 도전해도 된다고 했다고? 님이 준 정보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는데요? 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십니까? 예?’


당장 멱살이라도 잡아 올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내 팔이 720도 정도 돌아갈 것 같았기에 참았다.

다만 눈빛으로 온 분노를 담았다.

다행히 분노가 전해진 걸까?


끼기기긱ㅡ.


시아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삐그덕 거리는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렸다.


“아. 날. 씨. 가. 참. 좋. 아. 보. 스.”




***




사실상 메인 안건이었던 ‘파르만의 위대한 사업 계획’은 다행히 내 한 마디로 정리됐다.


“안 된다.”

“예, 보스.”


그리고 파르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긍했다.

역시, 아르뮨의 바닥을 번쩍번쩍 빛낼 때부터 알아봤다. 네 머리처럼 빛이 나는구나.

전형적으로 암흑 조직의 보스가 딱 좋아할 상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명령을 따르는 수하 말이다.

···물론 돈을 축내는 게 문제다만.


‘그러고 보니까, 직원 교육에 대한 부분은 이야기를 못했네.’


급작스럽게 지부장 전원이 모인 탓이다.

세계 최악의 범죄자들을 모아 놓으니,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나로서는 첫 만남이었으니 정신이 나가 있을 만도 했다.


“보스.”


그렇게 ‘MOON’회사 직원 모두가 나가고 난 뒤에, 시아가 말을 걸어왔다.

해탈한 듯 의자에 늘어진 나를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시아는 싱긋, 웃고 있었다.


“잘했네.”


···잘했나. 잘 모르겠다.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은 익숙했고, 눈치를 살피는 건 어릴 적부터 이골이 난 일이었으니까.


“고맙군.”


뭐, 그래도 칭찬은 칭찬이니까 받아주었다.

조금이나마 가라앉았던 기운이 회복되는 것 같다.


“일단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그런가.”

“응. 하지만 조심은 해야 해.”


시아는 검지를, 연분홍색 입술 위로 가져다 댔다.


“지금은 내가 마법 차단을 걸어서 상관없지만, 혼자 있을 때는 못할 테니까. 입 조심하라는 뜻이야.”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듣는 귀가 있을 수도 있으니 혼잣말도 조심하라는 뜻이겠지.


그건 그런데···.


‘···마법 차단을 걸어 두었다고?’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시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시아는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했다.

마법차단을 걸어 두었으니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가 문제없다고.

단순히 검술만 뛰어났던 게 아니었던 걸까?


하기야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긴 했다.

클루에 마틴은 네크로맨서들의 정점으로 대마법사라는 칭호까지 얻은 인물.


‘그런데 마틴은 서열 3위야.’


케일 바로 다음인 서열 2위는 분명 알렌 시아였다.

단순히 다른 녀석들보다 머리가 뛰어나서 얻은 자리는 아닐 터.

···처음 만났을 때, 탐색 스킬을 썼지.

거기까지 생각한 내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정체가 뭐야?’


‘대마법사’, ‘네크로맨서의 정점’, ‘참을성 바닥난 노인네’, ‘뮬타시안의 학살자’ 등등··· 수많은 이명을 거느리고 있는 마틴과 다르게.

시아에게 붙어 있는 이명은 ‘살인귀’라는 게 끝이다.


고작해야 스물 다섯.

인간 조상현보다도 한참 어린 이 소녀는, 검과 마법 모두 정점에 있는 건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저 여리여리 할 뿐이었는데.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의문.

그녀가 (뉴)케일의 영광스러운 제1검으로 발탁되었다는 것과 별개로, 이것은 꼭 알아 두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시아는, 액션 연기 담당이었으니까.


‘대마법사보다 위면··· 얼마나 위험한 괴물이라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강한 궁금증’을 품었고.


“···!!”


그 순간 몸 안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으며.


[ 등급 : RED ]


시아의 머리 위에는, 등급과 같은 색인 새빨간 글씨로 ‘RED’라는 단어가 떡하니 떠올라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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