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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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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550
추천수 :
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4.22 21:35
조회
272
추천
10
글자
11쪽

눈 떠보니 암흑가의 주인 (1)

DUMMY

나는 배우다.

흔히 말하는 라이징 스타, 로 불리는.

지난했던 극단 생활부터 시작해 작은 단역들을 전전하고, 수많은 배역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장장 15년에 걸친 배우의 삶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조상현. ]


대본의 주연 자리에 떡하니 박힌 내 이름을 천천히 손으로 쓸며, 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영화 촬영.


‘어쩌면···.’


관객을 많이 끌어모을 수 있다면, 연말에 있을 시상식에서 인생 첫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될 지도 모른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버텨왔던 삶은 드디어 꿈에 다다르기 직전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나도 그 보상을 받는구나.’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미래를 상상하며, 나는 마킹이 된 부분에 가서 섰다.


“자, 다들 카메라에 안 걸리게 빠지고! 조 배우, 준비 됐나?

“네.”


현장 지휘를 하고 있는 조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천천히 내가 맡은 배역 ‘안시후’에게 몰입했다.

대한민국의 뒷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거대 암흑가 조직의 수장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악(惡) 그 자체.

세력을 넓히고 다른 조직을 무력으로 병합해 무릎을 꿇려오고 이제는 대한민국마저 집어삼키고자 하는.


‘나는, 최고 범죄 조직의 보스. 암흑가의 최고 거물이다.’


그리고 적대하던 조직의 수장을, 오늘 직접 목을 칠 예정이다.


“후우.”


짧은 심호흡을 뱉으며, 나는.


“액션!!”


극중 배역에 한껏 몰입했다.



**



“회장님.”

“준비는, 끝났나?”


중저음의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절제된 표정에 부하의 이름이 굳었다.

거울을 보며 수도 없이 연기했던 포식자의 모습,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리라.


“예, 준비는 다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나는 짧게 대답하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던 짙은 눈썹이 그 순간 꿈틀, 움직였다.


“드디어, 무릎을 꿇리는 구나.”


장 회장.

내 그룹을 적대하던 조직들 중 가장 큰 곳, 그곳의 우두머리를 드디어 붙잡은 것이다.

산하의 조직들을 회유하거나 혹은 박살내면서, 원교근공의 방식으로 완전히 무력화한 작전이 그대로 먹힌 덕분이다.


“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놈이 잡혀 있다는 창고로 향했다.

근교에서부터 대략 4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버려진 폐공장이 있는 장소.

그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창고에서는, 매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퍽, 퍽, 퍽. 하고.


“여깁니다, 회장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곤, 창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에는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인원이 꽁꽁 묶인 채 무릎이 꿇려 있었고, 개중 가운데에는 중년의 남자가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장 회장님.”


그리고 나는 그를 부르며, 부하가 마련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와 나 사이에 거리는 고작해야 30cm 정도.


“읍···!!”


나를 보며 발작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으나, 재갈이 물려 있으면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찌이익ㅡ!


나는 입을 봉해 두었던 청테이프를 친히 뜯어주었다.

장 회장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소리를 질렀다.


“네 놈!!! 먹여주고 길러줬더니!!”


그러고보니 그랬구나.

내가 조직 생활을 처음 시작한 게 이 양반 밑이었었지.

새삼스러운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제 주인 무는 짐승을 길렀으면, 죗값을 받아야지.”

“너···너! 네 놈도 똑같이 당할 거다!!”

“이 와중에 내 걱정을 다해주시고, 여전히 마음씨가 따뜻하시네.”


나는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웃고는 있지만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미소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드는, 특유의 무감정한 미소.

노려보던 장 회장의 기색이 수그러들며 입술을 파르르 떨기 시작한다.


“이왕 따뜻한 마음, 한번 더 써주면 어떨까?”

“네 놈이 기어코···!!”


장 회장이 가지고 있는 마약 거래처와 밀반입 루트, 그것만 내 손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대한민국을 뒤에서 주무르는 것도 꿈은 아니다.


“이미 밑작업은 끝났어. 검찰부터 정치인까지 내 돈을 먹지 않은 인간들이 없거든.”

“이익···!!”

“당신만, 곱게 입 열고 가면 돼.”


나는 손가락을 한 개 펴 보이며 눈을 반달처럼 휘었다.


“대신, 보답으로 아프지 않게 죽여줄게.”

“······.”


그러나 장 회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소금물 가져와.”


그렇게 말을 하며, 나는 작은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곤 청 테이프를 다시 장 회장의 입에 붙여주었다.


“말 하고 싶어 지면, 고개 끄덕이세요. 잘 안보일 수도 있으니까, 크게. 알았죠?”

“읍···!!”


푹, 살갗이 찢기는 생경한 소리와 함께 칼날은 장 회장의 허벅지를 따라 긴 자상을 만들었다.

울컥 솟아오른 피가 칼날에 머금어졌다가, 다시 허벅지 밑으로 떨어졌다.


“으으으읍!!!”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 회장의 몸을, 옆에 서 있던 부하 둘이 꽉 붙잡았다.


“옳지.”


나는 손에 소금물을 퍼 냈다. 물 약간과, 녹지 않은 소금들이 손바닥 안에 담겼다.


철퍽ㅡ.


일자로 그어진 자상 부분, 소금물이 닿자 장 회장이 눈을 뒤집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비정상’적으로 흔들거리며 빛을 비추었다.


철퍽, 하고 다시 한 번 내 손이 상처 위에 소금물을 덮었다.


“으으으으읍!!!”


고통을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온 비명소리 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즐겁다.


“원래 썩어빠진 나라는 그 뿌리부터 썩는 법이거든.”


잘만 살던 내 가족을 죽인 장 회장이, 이렇게 내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상황도.

장 회장에게 뇌물을 받아 처먹고 집단 자살로 조사를 끝낸 검찰도.

유일한 생존자이자 피해자인 나를, 10년 넘게 속여 몸을 담게 만든 조직도.


“그러니까 가지가 부서지고,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모두 뿌리 잘못이지. 그렇죠?”


광기와 환희의 젖은 눈동자를 들이밀며, 나는 다시 단검을 꺼내 장 회장의 허벅지를 그었다.


“아하하. 개구리같네.”


몸부림치는 장 회장을 보며, 나는 다시 소금물을 새로운 상처 위에 얹었다.


“읍읍읍읍!!”


결국, 장 회장은 계속되는 고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나는 청 테이프를 뜯어 주었다.


“마, 말할게! 말할 테니까 제발!!”

“3분이면 오래 버티셨네.”


나는 손목시계를 톡톡 두들기며 싱긋 웃었다.



**



“오케이, 컷!!”


감독의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감독뿐만이 아니다.

촬영 감독부터 조명, 그 외의 다른 스텝들까지.

모두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것이 보였다.


“어우.”


그리고, 부하 역을 맡은 신인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혀엉. 숨막혀요.”


신인 배우, 안재형은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꼬리를 만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막, 그 주변에 오오라 좀 내뿜지 마요. 숨막혀요, 진짜.”

“내가 그랬나?”


오오라라니.

진짜로 그게 보인 건 아닐 테고, 아마 ‘안시후’에게 몰입하며 보여지는 분위기가 그랬을 거다.


“뒤에서 보는데 막 숨이 막히더라니까요. 진짜 암흑가 보스인 줄? 아니면 고문 전문가?”

“이 참에 진짜 몸 담가봐?”

“큭큭. 진짜 잘하실 거 같아요.”

“잘할 거 같기는.”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거진 형제처럼 친해진 사이였기에, 이런 농담은 거리낌이 없었다.


“아까 소금물 덮는데 순간 움찔하게 되더라. 아마 진짜 그쪽 사람들 만나면 한 마디도 못할 걸.”


안시후에게 완전 몰입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 굳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연기니까, 가능한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이내 무언가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고문하던 장면에서 흔들거리던 조명, 그것이 내 발 밑에서 심상치 않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내가 몸을 뒤로 돌리려는 순간.


“어···!”

“어어?!”


우지끈,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오고 주변에서는 경악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


설마 했던 생각이 현실이 되어 내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조금 전 내가 지나온 자리. 그러니까 안재형이 멀뚱멀뚱 서 있는 곳 천장이 내려앉고 있다.


“···형?”


뒤늦게 이를 확인한 안재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젠장.”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조상현!!”


감독의 다급한 외침은, 내 움직임보다는 느렸다.


퍼억ㅡ!


그렇게 나는 안재형을 밀쳐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형!!!!”


물론, 내 위로 쏟아지는 것들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흐읍!!”


나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충격에, 그대로 바닥에 뻗었다.

장회장을 보며 개구리 같다 하던 대사의 주체가 내가 될 줄은 몰랐는데.


울컥ㅡ.


눈 앞이 캄캄하게 변하고, 의식의 끈은 금세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아.’


죽을 때가 되면 지난 생이 스쳐 지나간다더니, 그게 진짜였나.

38년간의 생, 이제야 빛을 보나 싶었던 그 삶이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부모님을 일찍이 여읜 뒤 생활했던 보육원.

매일같이 욕을 먹고 구타를 버티던 극단에서의 날들.

처음으로 단역 배우를 맡게 되고, 기쁨에 거리를 뛰어다니던 기억.

그리고 하루 온종일 눈물을 흘리게 만든 첫 주연 소식.

어쩌면, 오늘 살아남는다면 남우주연상까지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꿈이었는데.’


최고의 시상식에서 최고의 상을 수상하고, 가장 멋들어진 수상 소감을 뱉는 거.

그거, 진짜 하고 싶었는데.

눈꺼풀은 또 왜 이렇게 무거운 건지.

이래서 수마보다 무서운 건 없다 하는 건가.


‘하하···.’


어색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나는 거의 꿈에 근접은 했었으니까··· 이룬 셈 치지 뭐.

아직 한참 어린, 앞날이 창창한 안재형이 죽지 않았으면 됐다.

녀석은 꿈을 이룰 때까지 아직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테니까.


‘···죽을 때가 되니까, 이렇게 합리화하는 건가.’


뭐 됐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선택한 거니까.


‘졸리네.’


나는 서서히 멀어지는 의식을 내버려두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생이 있다면 제발, 재벌3세로 태어났으면.

소박하지 않은 꿈을 마지막으로 나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


내가 맡았던 배역처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정말 암흑가 거대 조직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작가의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신작으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처절한, 주인공의 생존기를 함께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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