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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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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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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4
추천수 :
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5.0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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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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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그러니까 그게 뭔데

DUMMY

상대의 등급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이로써 확실하게 되었다.

3분에서 5분 정도, 상대를 꾸준히 바라보고 있을 것. 그리고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라고 궁금증을 품는 것.

그리고 클루에 마틴 또한 시아와 같은 색의 등급이었다.


[ 등급 : RED ]


늙은 노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붉은색 글씨.


“허허허허허.”


손에 네모난 물건을 든 채 왜 웃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평화로워 보이고 태평한 듯이 보이는 표정에 속으면 안 된다.

시아와 같은 등급을 받을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며, 보스인 나를 갈아 치우려고 했던 부하였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한 인물의 방에 이렇게 홀로 와 있냐고 묻는다면.


‘위험 요소는 제거를 해 둬야지.’


그런 이유로 인해서다.

지금껏 수많은 암흑가의 주인을 연기해오면서, 배신을 당한 경우 또한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늘 그런 반란의 씨앗은, 미리 밟아 놓지 않아서 생긴다.

햇빛도, 물도, 영양분이 넘치는 토양도 필요 없이 자라는 불온한 씨앗은 잠깐 관심을 두지 않은 사이에 발아를 마치고 줄기를 뻗고 꽃까지 피워내니까.


‘즉, 사전에 밟아 놓아야 하지.’


그런 의미에서 시아가 깜빡한 정보는 곤장을 수십 대를 쳐도 모자랐으나, 그 수십 대를 때릴 힘이 없으므로 패스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런 건 확실하게 말을 해 놓아야만 한다.

존재 위압과 케일이 웃기 직전의 상태였다는 공포가, 아직 지부장들의 마음에 남아있을 때 말이다.


“클루에 마틴.”


이 방에 들어온 지 약 10분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했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차분하고 단조로운 음성 속에 아랫것을 대하는 듯한 감정이 억누르듯 담겼고, 절제한 시선 속에는 반대로 감정을 완전히 배제했다.


“허허허.”


그리고 클루에 마틴은 그런 나를 보며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비웃음의 감정은 아니었고··· 해탈한 듯한 웃음 소리로 들렸다.

역시 아니나다를까 내 예상은 맞았다.


“살만큼 산 모양이긴 합니다.”


좀, 과도하게 맞힌 경향이 있지만 말이다.


“흑마법의 끝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어찌 되었든 따라야겠지요. 보스께서 내리는 결정이야 늘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따라가기 어려웠으니 말입니다.”


허허허, 다시 한번 그렇게 웃은 마틴은 손에 들고 있던 네모난 물체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보다 조금 더 옆, 탁자에 비스듬히 기대 둔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한 손으로 꾸욱 잡아 들었다.

이를 지켜보며 나는 미간을 좁혔다.


‘뭐야. 왜 죽음을 앞둔 사람같이 말하는 건데?’


분명히 마틴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심상치 않은 게 아니라 위험한데···?


고오오오ㅡ.


마틴의 나무 지팡이 끝으로, 보랏빛의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공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이 그 끝으로 모이고 있는 듯한···.


“다만, 저도 나름대로 대마법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바. 적어도 싸우다 죽는 것이, 보다 명예롭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마틴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세대 교체라. 적어도 제가 파악한 부분까지는, 납득을 했습니다. 허허허.”


아니, 아직 이야기도 안 꺼냈는데 뭘 파악하고 또 뭘 혼자 납득을 하고 있는 거야. 삶을 포기하지 말아줘, 마틴.

여기서 싸우면 네가 아니라 내 삶이 강제로 포기 당한다고.


“으음ㅡ. 일어서시지도 않으시는군요. 하기야 시아에게도 아슬아슬하게 패배하는 수준이니··· 아쉽지만 이 마틴, 인정하겠습니다.”


멋대로 인정하지 마···.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전개로 흐르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곳이 소설 속이라면 작가 놈의 머리를 깨부수고 싶다.

고작 이름 한 번 불렀을 뿐인데, 갑자기 대마법사랑 싸우라니?

이건 나를 죽이고 싶어서 환장한 것이 분명했다.


“제 최고의 마법이 완성될 때까지 이리 기다려 주시다니, 보스의 자비심에 절로 탄복할 수밖에 없군요.”


뭐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저 빌어먹을 마법이 내게 날아오는 것은 막아야 했다.

반란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 클루에 마틴에게는,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럼 가겠습니다, 보스.”

“오지 마라.”


해서 나는 마틴의 헛짓거리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반대편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무 지팡이를 내게 휘두르려던 마틴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음?”

“그만하면 됐다.”


상황은 바뀌었다.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온 대본은 바뀌었고, 이제는 마틴의 현재 상태에 맞추어 임의로 수정을 해 나가야 할 때.


‘분명히 세대 교체라고 했지.’


중요 키워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거기서 거슬러 올라간다.

마틴의 사고 흐름이 어떻게 하다가 그곳까지 왔는지, 거꾸로 짚어 나가는 것이다.

잠깐, 아주 잠깐 벌어 놓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내 두뇌는 100%이상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임기응변[SSS].

참고로, 이 세계 스타일에 맞추어 방금 붙여 본 이름이다.


‘내가 본인을 죽이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뒤질 땐 뒤지더라도 네 팔 한쪽은 뜯어가마! 따위의 생각으로 저러고 있는 거고.’


악당으로서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어쨌든, 그렇다면 마틴은 왜 내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굉장히 오랫동안 쳐다 보고만 있었기 때문에.’


그럼 내 행동이 원인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깊이 파인 내 묫자리에 몇 센치미터 정도는 영향이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눈치챘다고 생각하니까.’

ㅡ 보스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사무엘이 내게 그런 말을 해왔을 때, 나는 알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럼 이번에 내가 마틴의 방을 찾아왔을 때, 그 죄를 묻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한 거겠지.’


아마 오랫동안 내가 침묵하고 있었기에, ‘중대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추측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퍼즐 한 조각을 맞추고 나니, 그것을 주변으로 하나씩 착착 맞아 떨어진다.

세대 교체라는 말도, 이번 주동자들을 내가 모두 죽이고 새로운 이들로 채울 거라고 여긴 것일 터.


‘아니 그런 끔찍한 생각은, 도대체 어떤 연상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거지?’


순간 울컥하고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다행히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마틴이 자기 혼자 착각한 부분이니 말이다.


‘그걸 시작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엮어간다.’


느리게 흐르던 세상의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하고, 나는 서서히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대본은 깔끔하게 수정이 되었다.

요컨데,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작가가 보내온 ‘마지막의마지막의진짜마지막제발대본콘티.txt’와 같은 것이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를 굴리는 마틴에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도착하기 전,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은 그대로 묻어두겠다.”

“······!”

“내가 허락했던 일이었으니.”


지팡이를 높게 들어올리고 있던 마틴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마치 믿지 못할 말을 들은 것처럼 보였다.


“클루에 마틴, 네가 어째서 세대 교체를 입에 담았는지도 또한 알고 있다.”

“···보스.”

“그러나 너희들은.”


케일이 주로 사용했던 단어와 표현들, 시아가 준 정보를 최대한 취합해 말을 끝맺는다.


“아직까지 쓸모 있는 패다.”

“그렇··· 습니까.”

“세대 교체는 하지 않는다.”


그 말에 마틴이 느릿하게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다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희들도 찝찝하겠지.”

“그렇지요, 허허.”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한 걸까, 마틴의 어조는 훨씬 편안하게 변해 있었다.

나무 지팡이 끝에 모이던 불길한 마력의 기운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내가 찾아온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다.”

“허면···.”

“이제부터 ‘MOON’은 바뀔 거다.”

“그 말씀은···.”

“하나씩,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고, 변화를 꾀해야만 하겠지.”


마틴의 눈이 기쁨으로 점점 커진다.

······그렇게 좋니?

네가 기뻐하니까 나도 참 좋구나. 이제부터 제일 중요한,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말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나는 큼큼, 헛기침을 하곤 목적을 밝혔다.


“그 첫 시작을 이것으로 할까 한다.”

“무엇입니까?”

“앞으로 나에 대한 무분별한 도전은 일체 금지한다.”

“!!!”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그런 것을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틴의 반응은 긍적적이었다.

다 늙은 할아버지가 양 손을 꼭 부여잡은 채, 눈물을(아마도 감격의) 흘리는 것은 뭔가 유교국가의 일원으로써 다소 용납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잘··· 전달이 된 거겠지?’


어쨌든 마틴이 이에 대한 토를 달지 않는 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무분별하지 않은 도전 또한 금지한다.”

“예, 이 마틴. 이해하였습니다.”

“이해했다니, 기쁘구나.”

“보스께서 기뻐하시니, 저 또한 기쁩니다.”

“네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그렇다.”

“보스께서 제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시니, 이 또한 기쁘기 그지없군요. 마치 방금 막 언데드 라이징으로 일으킨 시체가 춤을 출 것만 같습니다.”


음? 돌림노래인가?

이러다 기쁨 노이로제가 오기 전에, 나는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 라는 뜻. 이해했겠지?


“이해했다면 다른 지부장들에게도, 내 뜻을 전해라. 마틴.”

“···명, 받들겠습니다 보스. 제 라이프 배슬이 두근두근 뛰는 것만 같군요.”


라이프 배슬이라니, 저건 또 도대체 무슨 비유야.

네크로맨서 식 대화법인가. 뭐 됐다. 어쨌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으니까.


“그럼ㅡ.”


해서 나는 ‘이만 안녕!’이라는 기분을 표현하며 몸을 뒤로 돌렸다.


그나저나 ···뒤를 돈 지금 무방비한 상태를 노리기 위해, 맞장구를 쳐주던 건 아니었겠지?

방도 쓸데없이 어두컴컴해서는, 커튼은 또 왜 저렇게 촘촘하게 쳐 둔 건지.


꿀꺽ㅡ.


괜한 긴장감에 내 통제를 벗어난 근육들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하지만 여기서 긴장했다는 티를 내면, 의심을 살 수도 있는 노릇.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느긋하게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발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달칵ㅡ!


어느덧 문 바로 앞에 나는 도착했다. 이제 마지막 고비, 이 문고리를 잡고 밖으로 나가면 끝.

해서 적당한 스피드로 문고리를 잡아 아래로 내리는 순간.


“보스.”


마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온 신경을 등 뒤의 마틴에게 집중했다.

다행히 마력이 움직이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최소한 등 뒤에 ‘스켈레톤의 3번 척추뼈 공격!’ 따위는 날아오지 않을 거라는 뜻.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말의 무게는, 가볍지 않아야 할 텐데.”


나는 그렇게 답변하며 고개를 돌렸고, 마틴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예상하지 못한 것을 물어왔다.


“드디어, 그것을 행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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