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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545
추천수 :
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4.22 21:35
조회
237
추천
7
글자
12쪽

눈 떠보니 암흑가의 주인 (2)

DUMMY

불행은 공평하지 않다. 다만, 균형은 잡혀 있다.

무슨 뜻이냐고?

남들의 행복을, 내 불행으로 치환했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을 버렸을 때도.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다 보육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도.

극단에서 이유 모를 구타를 당하며 버텼을 때도.

이제야 좀 성공하나 싶을 때, 생전 처음 보는 세계에 떨어진 지금도.

내게 불행은, 불치병이나 다름없었다.




***




리오네 대륙, 알케시아 공국.


“하씨,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알렌 시아는 로브를 깊숙이 눌러쓰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벌써 ‘그’가 사라진 지 2주 째였다.

늘 그랬듯 아무 말도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에잇, 진짜.”


무슨 일을 벌일 건지는 알려줘야 돕든 말든 하지!!

시아는 속으로 할 수 있는 욕을 모조리 쏟아내며 걷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분명, 이곳 근처에서 봤다고 했어.’


며칠 전 정보 길드를 단독으로 털어 얻어낸 귀한 정보였다.

닮은 사람이 알케시아 공국으로 들어왔다는 정보 말이다.


‘그 성격이면 아직 여기 머물고 있을 텐데···.’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야 한다.

그들 조직 ‘문(MOON)’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가 필요했다.


“쯧.”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꺾어 들어간 시아는, 이내 골목 벽에 붙어있는 수배지를 보며 혀를 찼다.


[ 대륙 재앙 ]


이라는 거창한 수배지 밑, 보스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전혀 닮지 않았지만.


[ 메르하임 케일 (문의 수장) - 200,000,000 GOLD ]


“언제 또 천 골드가 올랐대?”


시아는 부욱, 수배지를 뜯어내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흩뿌렸다.


“2억 골드면 나라 몇 개는 살 수 있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녀는 옆에 있던 자신의 것도 마찬가지로 뜯어냈다.


[ 알렌 시아 (살인귀) – 30,000,000 GOLD ]


소녀한테 살인귀라니, 너무 고약한 별명이지 않은가.

시아는 툴툴대며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빌어먹게 무책임한 보스는 도대체 어디에 짱박혀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 골목을 따라 나아가던 때.

시아의 눈에 어느 거렁뱅이가 보였다.

골목에 쭈그려 앉은 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


“아···.”


시아는 먼 거리에서 걸음을 멈춘 채, 씨익 입 꼬리를 올렸다.


“찾았다.”




***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지난 2주간, 수도 없이 스스로 되묻고 답했던 질문이었다.


‘돌겠네.’


재수 없게 조명에 맞아 죽었고, 눈을 떠보니 생전 처음 보는 세상에 던져졌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한 세계다.

이종족도 있고, 마법도 있고 뭐 그런 세계.


‘···이세계로 빙의 뭐 그런 건가.’


하지만 그러면 보통 말이다.

아기부터 시작하거나, 아니면 능력이 엄청 대단하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왜 다 죽어가는 몸에 들어온 것인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몸 주인이 누구였는지 단서도 없고.’


모르는 사람 붙잡고 혹시 내가 누구인지 아냐고 물어봤다가 복날 개 맞듯이 맞았었지.

게다가 수중에 있던 돈도 그날 모조리 뺏겼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아무 정보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 가지밖에 없지.’


구걸 말이다.

길 위에는 정보가 있었고, 또한 살아남을 돈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쨍그랑-.


나는 통 안에 떨어지는 동색 동전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오늘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덜컹덜컹, 통 안에 든 동전들을 흔들어보니 그 양이 적지는 않다.


‘나··· 생각보다 구걸에 재능이 있었을지도.’


물론 2주간 구걸만 하며 논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지금 통 안에 담긴 돈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는 파악하고 있었다.


‘18쿠퍼면, 빵 2개 정도는 살 수 있겠네.’


하나가 7쿠퍼 정도 하니, 남은 4쿠퍼는 내일을 위해 아껴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아···.”


그나저나 도대체 나는 어쩌다 이 세계에 오게 된 걸까.

이렇게 구걸하다 죽을 운명이라면, 전생한 게 의미가 있나 싶은데.


‘···조상현일 때도 불행하더니, 여기서도 불행한 인생이네.’


아! 이거 혹시 그건가.

불교에서 나오는 윤회전생 같은 거.

나는 분명 전전전생쯤에 나라를 팔아먹었던 거고, 그래서 이렇게 거지 같은 인생을 반복해서 사는 거다.

그렇게 살다가, 행복해질 때쯤 뒤지는 삶 말이다.


‘재형이는···.’


···아, 됐다.

더 생각하지 말자. 우울해지니까.


‘그래. 한 번 아득바득 살아봤는데, 여기서도 못할 게 뭐야.’


쨍그랑-.


“감사합니다.”


누군가 또 동전을 넣고 갔고, 나는 습관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아주 불쌍한 목소리와 표정을 연기하면서 말이다.


“......?”


하지만 그것이 호의로 던진 동전이 아니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통 안에 떨어진 쇳소리는 동전이 아니라, 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미안. 손이 미끄러졌네?”


탁한 음성에 고개를 들자, 웬 남자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같이 건달 같은 낌새를 풍기는 게······ X됐구나 싶었다.


“이 X끼, 눈깔 살벌한 것 보소.”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거구를 숙여 나를 노려보았다.


“너 누가 내 구역에서 장사하라고 했냐?”

“······죄송합니다.”


골목길. 다니는 사람 없음.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루한 몸으로 싸우는 게 아닌 사죄다.


“허우대도 멀쩡한 놈이, 일자리를 구해 국가에 이바지할 생각을 해야지.”


짜악ㅡ!!!


건달 두목이 냅다 내지른 손길에, 내 얼굴이 홱 돌아갔다.

뺨이 얼얼했다.

화끈거리는 감촉에, 나는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꽤 익숙하다. 악역 전문 배우는, 안 아프게 맞는 법을 배우니까.


“죄송합니다. 돈은 다 드릴 테니까···.”


나는 곧바로 바닥에 놓인 동전 통을 놈에게 가져다 바쳤다.

선택지가 없잖아.

오늘 쫄쫄 굶는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지만, 맞으면 아프긴 하다고.

이 세계에 온 첫날, 나 아세요? 라고 물었다가 맞았던 걸 생각하니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린다.


‘···뭐, 전적으로 X신 같은 질문이기는 했는데.’


그것도 솔직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생전 처음 보는 미형의 남자가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고, 주변은 온통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게다가 내가 들어온 몸은, 직전까지도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듯했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누워있던 침대 주변에 온통 각혈한 흔적밖에 없었거든.


‘···아무튼 그날 그렇게 맞은 덕분에, 꿈이 아닌 건 알게 됐지.’


그 고통은, 분명 꿈이었으면 깼을 거다.


“······.”

“······.”


그런데, 건달 두목은 뭘 하고 있는 거지.

꽤 오랜 시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런 반응도 없다.

보통 선택지는 두 개 아닌가?


1. 동전통을 들고 사라진다.

2. 때리고 나서 동전통을 들고 사라진다.


참고로 지금은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건가?

아니,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고요한데.’


인기척이 없다고 보는 편이 나을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나는 엎드렸던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입을 벌렸다.


“죽었···.”


내 싸대기를 날린 건달 두목은 목이 잘린 채 두 동강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건달들도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죽어가고 있었다.

한 번의 칼질로 성대를 찢어 놓은 건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였다.


“우욱···!!”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머리도 어질어질한 게,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왜. 무엇이. 어쩌다가.’


답이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우르르 떠올랐다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누군가, 내 옆에 서 있던 탓이었다.


“하아.”


여자 목소리.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금발, 붉은색 눈동자, 160정도 되어 보이는 키, 손에 들려 있는 피 묻은··· 작은 칼.

이 상황은 이 여자가 만든 게 분명하다.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짜증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내게 물어왔다.


“보스.”


보스···?

지금 보스라고 한 게 나보고 한 말인가?

아니면··· 혹시 마법 같은 걸로 내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 또 있나?

나는 고개를 휙휙 돌리다, 이내 시체와 눈이 마주쳐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미치겠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살인귀와 마주치게 된 걸까.

차라리 하루 굶더라도 건달에게 맞고 끝내면 되었을 텐데.

머리가 핑핑 돈다.

제발, 선량한 시민 괴롭히지 말고 그냥 가라.


“···보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그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해왔다.


“으으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리 뜨고 이야기하자. 범죄 보안 사령부가 오면 귀찮아지니까.”


우악스럽게 나를 잡아 일으키는 그녀를 따라서, 나는 멍하니 걸음을 옮겼다.

앞서 걷는 그녀가 종알종알 이야기를 걸어왔지만 뭔 내용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마틴도 결국 못 참고 화를 냈어. 또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보다 지금 조직이 위기 상황이라구.”

“’젤룬 상업 단지' 관련해서 파르만이 계약 체결하고 싶다고 했는데 일단 그것도 미뤄뒀어. 물론 보스도 알겠지만, 이번에도 망할 게 뻔해서 나는 반대야."

“아! 그리고 이번에 돈 다 떨어진 건 알지? ···뭐 이번에도 그거 해결하려고 나온 거겠지만, 우리도 좀 껴달라고. 매번 혼자서 해결 하려고 하지 말고. 그럴 거면 뭐 하러 데려왔는지 몰라.”


진짜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렇다.


‘···나를 ‘보스’라는 사람이랑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찌나 쉬지도 않고 떠드는지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착각이라고, 나는 그 보스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그 꼴을 보고, 어떻게 입을 여냐···.’


건달들을 소리도 없이 처리한 실력을 보면, 보통 실력자는 아닌 것 같은데.


‘기회 봐서 도망치던가 하자.’


요리보고 저리봐도 그게 최선이었다.

액션 스쿨에서 다져온 실력은, 이곳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으니까.


‘배우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결국, 그렇게 어영부영 여관 방을 잡고 같은 방에 들어오게 될 때까지.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녀와 마주 보게 되었다.


“후우. 여기면 됐겠지.”


그녀는 어깨를 으쓱 올리곤, 칼집을 풀어 탁자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의자에 털썩 앉아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보스. 이제 계획이 뭐야? 또 때려 부수는 거야?”

“······.”

“언제까지 그렇게 입 다물고 있을 건데! 뭘 알아야 돕든 말든 하지!”


뭘 알아야 대답을 하지!

미치겠네.

사실대로 밝히는 편이 좋을까? 그러다 건달들처럼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1분, 2분··· 5분.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소리만 방 안에 울렸다.

동시에 입 안도 바싹 말라갔다.

그리고 조금씩, 금발 여자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뭐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빙글 움직였다.


『 탐색[A]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


“뚫린다고?”


순식간에 검집의 칼을 뽑아낸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누구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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