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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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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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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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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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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평범한 하루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몇 개월 만에 류지호가 LA로 돌아왔다.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이 들만도 했다.

군복무 시기 제외하고 15년 가까이 LA에서 살았다.

과거로 돌아온 후로 한국에서 산 것보다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

오죽하면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할까.

교포 어르신 중에서 향수병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LA가 제2의 고향처럼 여겨져서인지 향수병 비슷한 것도 류지호는 느낀 적이 없다.

가끔 부모님이 그리울 때가 있긴 했다.

이전 삶에서 못났던 자신을 성찰할 때다.

류지호 부부가 벨에어 컨트리클럽과 인접한 언덕에서 살기 시작했다.

유럽풍 저택들이 모여 있는 벨에어 부촌 중에서도 부촌이다.

골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프랑스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럭셔리 주택.

5,000평 대지면적에 세워진 메가맨션이 류지호 부부의 신혼집이다.

전에 살던 주택에 비해 전망은 조금 부족했다.

모교인 UCLA 캠퍼스가 코앞이다.

파커 대저택에는 못 미치지만 본채와 게스트하우스, 부속건물까지 모두 18개의 침실이 준비되어 있다.

욕실 딸린 화장실과 간이 화장실 포함 무려 24개가 마련되어 있다.

식당만 4개다.

거실 및 응접실도 7곳이나 된다.

야외 풀장, 테니스 코트, 농구 반코트, 골프 퍼팅 연습실, 16대의 차량을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등.

홈시어터에는 Eye-MAX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실제 극장 크기는 80석 규모지만, 고급 좌석으로 21석이 마련되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사도우미의 책임자였던 샤니스가 떠났다는 점이다.

그 후임으로 선미 미셀 오라는 한국계 미국인이 새롭게 들어왔다.

사도우미 숫자만 7명이다.

그 외에 보안경비, 수영장, 잔디, 조경, 주택관리는 JHO Security Service VVIP 홈케어가 맡는다.

외출 준비를 마친 레오나가 류지호에게 물었다.


“일본에서 온 손님들은 세컨 하우스에서 지내는 거야?”

“응.”

“파티도 그곳에서 할 거지?”

“그러기로 했어.”

“내가 확인해 봐도 돼?”

“제니퍼에게 이야기해 둘 게.”

“알겠어. 갔다 올게.”


레오나가 오 여사와 함께 외출했다.

LA로 넘어온 후로 레오나는 쇼핑몰과 한인타운을 돌아다니며 생활용품 쇼핑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미 생활용품까지 모두 갖춰져 있었지만, 여전히 집안 곳곳에서 꾸밀 데는 많았다.


“어서와.”


<군계> 주연배우들과 관계자들이 류지호가 전에 살던 벨에어 집으로 찾아왔다.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차 방문했는데, 미국 체류기간 동안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수영장이 있는 럭셔리 하우스를 둘러본 츠마부키 료타가 일본 특유의 과한 예를 표했다.


“집을 내주셔서 영광입니다, 아니키.”

“호텔에서 지내는 게 편할 텐데, 괜찮겠어?”

“일반인들과 마주칠 수 없어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받잖습니까.”

“불편한 점 있으면 상주하는 코디네이터에게 즉각 이야기 하도록 해.”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일본 배우가 아카데미 사전행사에서 참석하는 것이 수십 년 만이다.

일본 매스컴에서 관심이 대단했다.

<군계>에 대해 무차별적인 비판과 비난을 퍼부었던 우익계 언론조차 연일 아카데미 레드카펫 무대에 서는 자국 배우들에게 대해 대서특필했다.

사람은 대체로 잘못을 저질렀어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비판을 받는 사람은 자기방어를 하게 되고 필사적으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게 된다.

비판을 통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게 되고 비판 받은 사람의 적의와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지만, 침묵은 잘못된 것에 대한 동조와 같다.

비판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결과로 납득시킬 수밖에 없다.

낚시를 할 때 사람이 좋아하는 치킨을 미끼로 걸지 않는다.

물고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미끼로 삼는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면 그들이 어떻게 하면 그걸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류지호는 <군계>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카데미에 오고 싶으면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역사와 현실과 마주하는 영화를 찍으라고.


“과거에 당신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반성하는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낸다면 아카데미 회원들이 당신들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기꺼이 안겨줄 것이다.”


류지호가 일본배우들을 아카데미 레드카펫까지는 데려가 주었지만, 트로피까지 안겨주진 못했다.

제 79회 아카데미상에서 이변은 없었다.

<디파티드>가 감독상과 작품상, 편집상, 각색상 등 4관왕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1월 23일 개봉해 전국 74만 관객을 모은 바 있다.

각색상이 <디파티드>에 돌아감으로써 류지호의 <군계>는 수상에 실패했다.

류지호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다만 <무간도>팬 일부가 <디파티드>를 졸작이라고 폄하하는 것이 꼴사나웠던 차에 오스카 트로피를 4개나 들어 올림으로써 그들에게 점잖은 충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서 기분이 좋았다.


“<디파티드>를 까지 말고 차라리 스콜체제 감독의 연출이 싫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어떨까?”


<디파티드>를 물어뜯은 할리우드 일각과 비평 쪽에 류지호가 날린 일침이었다.

<무간도>를 미국에 소개한 것도 ParaMax였고, 리메이크한 것도 ParaMax다.

간접적으로 류지호도 관여가 되어있다.

논란 아닌 논란 때문에 여러 차례 언론으로부터 질문에 시달렸었다.

아카데미 성과로 어느 정도 논란을 잠재울 수가 있게 됐다.


“마르틴 영화의 재미는 <무간도>와 결이 다르다. 여러분이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같은 스콜체제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디파티드> 역시 만족할 것이다.”


같은 소재, 같은 인물을 다뤄도 감독마다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디파티드>에는 분명 마르틴 스콜체제만의 사회를 보는 시각과 느와르 정서가 녹아 있다.

거장이라고 해서 매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순 없다.


‘아직까지 폼이 떨어지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노장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지.’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은 독일영화 <타인의 삶>에게 돌아갔다.

류지호로서는 깨끗하게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군계>는 강렬한 서사와 성찰이 담겨 있는 영화이지만,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타인의 삶>이 이야기 하는 서사와 주제의식이 더 공감이 될 수밖에 없다.

비밀경찰과 작가.

전혀 다른 성격으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이 상대방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그의 삶을 지켜주려고 정부의 명령까지 거역하는 모습들.

거대한 권력에 대한 작은 저항은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삶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결국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는 것은 어찌 보면 할리우드적이기도 했다.

한편 불운의 아이콘 레오날드 그레이프는 이번에도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에 만족해야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해도 류지호에게 더는 설렘과 흥분이 없다.

그럼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리우드의 몇몇 대감독들을 보며 다시금 긴장감을 끌어올릴 수가 있게 됐다.

어리바리와 익숙함의 끝없는 반복.

류지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 내부의 깊숙이 정착했다.

타성에 젖을 만도 하다.

이루어놓은 것들이 많아 무료함마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허무와 공허함을 실감할 수도 있고.

성취감 혹은 만족감에 익숙해질 때, 불쑥 찾아오는 것도 있다.

바로 생존본능이다.

정착했지만 안주하지 않는 것.

익숙해졌지만 어리바리할 때의 불안함을 잊지 않는 것.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

류지호는 언제나 길 위에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한 번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보통의 결심과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짧은 삶속에서 류지호의 안주는 있을 수 없었다.


✻ ✻ ✻


아카데미 시즌이 끝이 나고 신혼집으로 거물들이 친히 왕림했다.


“아직 생각이 바뀌지 않았어?”


바로 에드워드 버펫과 헨리 게이츠다.

작년에 두 사람은 세간의 주목을 끈 중대발표를 한 바 있다.

전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던 것.

기부금 상당액을 게이츠 부부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자선재단에 출연하기로 했다.

당시 에드워드 버펫이 재단에 출연키로 한 주식 시가는 무려 310억 달러.

게이츠 재단의 자산총액보다 많은 액수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도 아니고, 남의 재단에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공표해서 큰 화제를 낳았다.

세계 최대 자선재단 게이츠 파운데이션은 2000년에 탄생했다.

게이츠 부부는 말라리아, 이질, 로타 바이러스 또한 에이즈 등 각종 질병으로 저개발국 아동들이 수백 만 명씩 매년 죽어나가고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막대한 돈을 출연해서 재단을 설립하고 기존의 재단과 합병했다.

설립 후 7년이 지난 현재 자산규모가 277억 달러로 세계 최고다.

헨리 게이츠의 전 재산이 410억 달러 조금 상회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을 재단에 출연한 셈이다.

에드워드 버펫의 기부가 완료되면 재단의 자산규모는 무려 600억 달러를 넘게 된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 1인당 8달러50센트씩 나눠 줄 수 있는 돈이다.


“네가 나서야지. 비공식 재산 1위잖아.”

“두 분만큼은 아니지만, 매년 5,000만 달러 이상 자선활동에 쓰고 있어요.”

“겨우?”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JHO Foundation을 비롯해 류지호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몇 개의 자선재단을 통해서 수억 달러가 자선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헨리가 얼마나 쓰고 있는 줄 알아?”


류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버펫은 꽤 고집이 센 편이다.

말꼬리 잡기 대화방식도 매우 싫어하고.


“6년 동안 120억 달러 이상을 썼어. 올해와 내년에는 30억 달러 가까이 쓸 예정이지. 안 그런가. 헨리?”


헨리 게이츠는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레오나의 매서운 스매싱 공격에 쩔쩔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 게이츠와 에드워드 버펫은 꽤 자주 만나 탁구를 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마침 신혼집 저택에 탁구대가 있었다.


“말 시키지 말아요. 레오나가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레오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육상을 했다.

그 외에 승마, 골프, 탁구, 볼링 등에서 수준급 실력이다.

취미로 치는 헨리 게이츠의 상대가 아니다.


“내가 왜 헨리의 재단을 선택했는지 알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되어서.....?”

“이사장 부부가 재단의 재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선활동을 늘리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을 높이 평가해서야.”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에 의료지원을 많이 하는 재단이긴 하죠.”


지금까지 게이츠 파운데이션은 2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의료 지원에 썼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간 예산 규모와 맞먹는 규모다.

몽골, 토고, 짐바브웨 등 저개발국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 주로 사용됐다.

그들 나라의 GDP를 능가하는 규모다.


“막대한 자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니 효과가 꽤 좋을 수밖에. 잠비아 같은 나라에선 말라리아 발병률이 몇 년 새 80%가량 떨어졌다고 하지. 홍역으로 인한 세계 사망자 수도 50% 이상 줄었다고 하고.”


흑열병(인도의 풍토병) 치료제와 저가 경구용 콜레라 백신도 만들었다.

에이즈를 포함한 성병 방지를 위한 젤 타입의 미생물 살균제도 개발하고 있고.

워낙 의료지원도 많이 하고,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협력도 많이 해서 이전 삶에서는 코로나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내가 돈을 기부하면서 건 조건이 뭔 줄 알아?”

“....?”

“내가 기부한 돈의 105% 이상을 매년 자선활동에 사용할 것.”

“이번 세기 안에 모든 자산을 다 쓰고 해산시킬 생각이세요?”

“맞아.”

세계 1,2위 부자가 출연한 게이츠 파운데이션은 다른 자선재단과는 몇 가지에서 뚜렷하게 구별된다.

우선은 부부가 사망한 이후 50년 내에 해산하는 것이 목표다.

재단 자산을 그 안에 다 소모하겠다는 의지표현이다.


“제 재산을 자선재단에 모두 기탁하는 것은 이르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시간에도 재산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서?”

“모든 재산을 잃을지도 모르잖아요.”

“지구멸망이 가까워졌을 때겠지.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거나. 그것도 아닌가? 세계 대전이 벌어지면 네 녀석은 더 많은 돈을 벌지도 모르겠구나.”

“군산복합체나 석유산업에는 많이 투자하지 않았어요.”

“내가 네 녀석 투자 패턴이나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는데.”

“에드워드의 투자를 보고 따라는 하는 겁니다만?”


에드워드 버펫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올해 들은 농담 중에 가장 최악이야.”

“저라고 재산을 싸들고 관속으로 들어갈 건 아니고.... 후손들에게도 넉넉하게 남겨주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다 주진 않을 거예요.”


에드워드 버펫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만 두 분과 달리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어요.”

“무슨 사정?”

“일단 제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기업을 소유하고 있잖아요. 안타깝지만 무턱대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없어요. 제 조국은 미국과 달리 기부와 관련해 이것저것 꽤나 허술해서...”

“일단 발표만 해. 복잡한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


류지호보다 더한 숨겨진 부자도 많다.

당장 파커가문만 해도 숨겨진 재산을 모두 포함하면 류지호보다 더 부자다.


“하필 제게만 이러시는데요?”

“우리 다음으로 네가 가장 상징적이니까. 세계적으로.”

“최소한 언제 어떻게 기부하겠다는 플랜이라도 정한 후에.....”

“아직 그것도 마련해 두지 않았나?”


류지호는 이제 삼십 대 중반이다.

은퇴 후 계획을 세우기에는 지나치게 일렀다.


“자, 저기 헨리를 봐. 그는 누가 뭐래도 PS의 간판이야. 몇 년 안에 PS에서 물러나 자선재단에 올인하겠다고 내게 말했지. 자선활동을 하더라도 그가 하는 일은 PS와 연결돼. 그가 재단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할수록 PS의 이미지는 좋아지겠지. PS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거야.”


솔직히 류지호는 그 부분이 조금 못마땅했다.

그래서 헨리 게이츠와 에드워드 버펫의 재산 기부에 의구심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주요 재산이 주식평가액이다.

그들의 기부와 선행이 알려질수록 그들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이미지가 좋아진다.

당연히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또한 자선재단을 통해 기업의 영향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가 있고.

미국에서는 기업보다는 기업인이 출연한 재단이 주류를 이룬다.

자산규모 2위인 헨리 모터스 컴퍼니의 창업자 2세가 세운 자선재단, Johnson & Seabury의 창업자 후손이 설립한 재단, INTEG의 창업자 부부도 자선재단을 만들어 미국 내 자산규모 10위의 대형재단으로 키웠다.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을 일정 부분 재단에 출연함으로써 재단을 통한 회사 내 의결권도 행사할 수가 있다.

속내야 어떻든, 창업주 2세들의 공익적인 활동이 기업의 이미지에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과거에 저질렀던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지배적 횡포에 물타기가 이루어진다. 이전 삶에서는 이들 기업이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은 창업주와 후손들이 쌓아놓은 좋은 이미지가 도움이 됐다는 평가까지 있을 정도다.


“한 가지 고민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긴 해요.”

“얼마든지 이야기 해봐. 네 말이라면 뭐든 들을 준비가 있으니까.”

“아마 두 분이 출연하게 될 자선재단은 미국만 놓고 보면 2세대 쯤 되실 거예요.”

“1세대는 락커펠러나 파커, 그레이엄, 카네기, 멜란 그런 이들이겠지.”

“헨리포드 파운데이션도 포함될 수 있어요.”

“계속 해봐.”


어느새 탁구 게임을 멈춘 헨리 게이츠와 레오가가 두 사람 곁에 자리를 잡았다.


“저를 포함해서 실리콘밸리에서 급부상한 억만장자들은 3세대 쯤 되겠죠. 영 앤 리치들도 기부운동에 참여시키려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해요. 헨리가 PS 지분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산을 형성하는데 수년이 걸렸듯이.”


끄덕.


오늘자 나스닥 기준 재산현황은 의미가 없다.

10년 후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이 없으니까.


“단순히 언론에다 발표해 봐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언론플레이 정도로 비춰지겠죠.”

“너도 알고 있듯이 슈퍼리치들은 허언을 하지 않는단다.”

“알아요. 그래도 언론발표나 선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형식이 갖춰지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바로 서약 같은 형식이죠.”


이전 삶에서 행해졌던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캠페인이다.

바로 헨리 게이츠와 에드워드 버펫이 주도했던.

헨리 게이츠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윤리적인 양심을 걸고 하는 서약을 젊은 부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슈퍼리치들의 경쟁심과 자부심을 건드려야죠.”

“.....?”

“저희 세 사람이 먼저 서약한 사실을 인증하면 다른 슈퍼리치들도 관심을 보일 걸요.”

“내가 아는 그 녀석들은 욕심만 많지.... 서약서에 사인할 리가 없어.”

“제가 알기로 예전 미국의 슈퍼리치들은 요트, 전용기, 해변의 호화 맨션 같은 것들로 부의 상징으로 삼았다죠. 그런데 점차 바뀌고 있잖아요. 에드워드는 엄청난 부에도 비교적 검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게다가 과거에 비해 억만 장자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개나 소나까지는 아니지만, 1세기 전보다 슈퍼리치 숫자는 확실히 많아졌다.


“자신이 슈퍼리치라는 걸 상징하는 것이 뭐가 될까요? 뉴욕과 LA의 럭셔리 맨션이요? 프라이빗 제트기요? 포브스 부자 랭킹이요? 어쩌면 The giving pledge에 서명한 부자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슈퍼리치의 인증이 될 수도 있겠죠.”

“기부 서약이란 것을 통해 슈퍼 부자들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거창하게 도전장씩이나....”


에드워드 버펫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목표금액도 한 6,000억 달러(70조) 쯤 잡는 거죠.”


미국 전체 기부 금액의 두 배다.


“부자들이 겁에 질려 꼬리를 말지 않을까?”

“회피하는 부자가 있다면 그는 슈퍼리치가 아닌 거죠. 명예도 자긍심도 없는..... 그냥 천박한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에드워드 버펫이 웃음을 터트렸다.


헛! 하하하핫!


헨리 게이츠가 묘한 시선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토끼처럼 조심스럽다가도 날랠 때 날래고, 물어뜯어야 할 땐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는 녀석....‘


이전 삶에서 100명이 넘는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서약에 참여했었다.

페이스노트의 마커스 주커벅이 기부서약에 참여한 최연소 억만장자로 기록됐었다.

그 외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미국의 억만장자들 모두가 캠페인에 참여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렇게까지 억만장자들이 환영할 만한 캠페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2008년에 레만사태가 터졌단 사실이다.

이후로 미국 부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면서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크게 높아졌다.

미국의 부자들은 그 같은 나쁜 인식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등장한 The giving pledge 캠페인에 솔깃할 수밖에.

즉 모두가 선의로 기부 서약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게이츠 파운데이션이 감당할 수 있을까?”

“기부방식, 기부할 재단은 각자 알아서 하는 거죠. 그것까지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네는?”

“JHO도 있고, 아내와 함께 새로운 재단을 만들기도 했고. 가족 재단도 따로 있고. 한국에는 기업이 출연한 재단도 있어요.”


그 외에도 미추홀재단 같은 역사문화사업을 하는 재단이 따로 있다.


“JHO가 하는 저소득층 교육지원 사업은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야. 건강한 시민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니까.”

“미국의 문맹률이 그렇게 최악인지 몰랐어요.”


한국인이 자국의 문맹률에서 자부심을 보이곤 하는데, 실질문맹률을 알고 나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드높은 교육열로 인해 문맹률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자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반면에 문서해석능력 즉 문해력은 OECD 꼴찌다.

문서해석능력이란 것은 단순한 문자해독율이 아니다.

영수증, 구직원서, 봉급명세서, 처방전, 제품의 설명서와 같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문서 내용을 파악해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인 대다수는 글자를 읽고 쓸 줄 알지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조금만 어려운 단어를 쓰고 문장이 길어지거나 복잡해지면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도표나 그래프, 수식이 나오는 실용문서 문해력은 심각할 정도로 뒤떨어진다.

현재도 심각한데 2010년대로 넘어가면 더 심해진다.

신문이나 뉴스방송에서 도표나 그래프, 수식으로 통계를 장난쳐도 제대로 읽어내는 독자가 드물다.

그럼에도 입시교육과 조기교육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성인도 네가 만든 청소년 센터에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어?”

“기본적으로 미취학 아동 중심이지만, 중고생이나 성인도 원하면 강습을 받을 순 있어요.”


LA 빈민가에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에드워드 버펫이 중얼거렸다.


“이날까지 살면서 품위가 결국 승리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

“품위를 지키기 위해선 용기도 필요한 법이죠. 좀 더 많은 빈민가 친구들이 글을 배우기 위해 청소년 센터를 방문했으면 좋겠네요.”

“백인 블루칼라들도 마찬가지고.”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문맹률과 관련해서 류지호가 크게 충격 받은 일이 있었다.

뉴멕시코의 J&L Bell Ranch에서 일하고 있는 카우보이 중에서 글을 쓰기는커녕 읽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노래방 기기를 들여와 카우보이들에게 선물했었다.

모니터에 뜨는 영어 가사를 읽지 못했다.

사실 영어를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그 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튼, 저는 기부서약 캠페인이 시작되면 그때 나서도록 할게요.”


에드워드 버펫과 헨리 케이츠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좀 더 확실한 명분과 효과가 있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더 보채다가는 역효과만 불러올 뿐.


씨익.


레오나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만만치 않은 괴물 둘의 협공에서 남편이 상황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저 두 사람에게 뻗댈 수가 있을까.


‘큰오빠니까 가능한 것이겠지.....’


거물 두 사람을 집까지 찾아오게 만든 것부터가 이미 류지호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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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12.08 10:04
    No. 1

    잘 봤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9 모란
    작성일
    23.12.08 13:32
    No. 2

    캬 큰 거 온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12.08 21:46
    No. 3

    빌 케이츠가 가장 잘하는것이 인터넷을 통한
    무료교육을 하는 겁니다.
    저작권 을 사서 전자 도서관에 기부해 누구나
    무료로 책을 보고 인강을 보고 공부할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하고 싶었던 부분이라 존경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12.08 21:49
    No. 4

    미국 문맹률 만 신경 쓰지 말고 한국 문맹률도
    신경써야 합니다.
    한국 고등학생 30프로는 자기 이름만
    쓸수 있을 정도의 사실상 문맹 이라고 하더군요.

    찬성: 1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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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937 9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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