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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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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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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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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e 79. 양동 작전 4

DUMMY




01.

안큐페이는 단언컨대 그 자신의 가치보다 거창한 이름을 가진 사내였다.


생긴 것은 극히 평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가문은 물론이고 (가문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를 것도 없었다) 그가 나고 자라면서 획득한 소소한 성취까지 그 거창한 이름에 걸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쉽게 말해서 그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변변찮은 사내였단 이야기다.


어릴 적 안큐페이는 자신의 이름이 왜 이렇게 지어진 것인지 몇 번인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종종 참을 수 없는 두근거림이나 설렘으로 별난 일을 저지르곤 하는, 말하자면 텐션이 높은 여자였다. 그녀가 첫째 아들의 이름으로 '안큐페이'를 생각한 것도 그런 별난 장난질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안큐페이의 여동생 이름은 알리, 막냇동생의 이름은 존이었으니 이름으로 기분 내기는 딱 첫 아들까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안큐페이는 세상 유별난 이름과 특별할 것 없는 실물의 간극 사이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이름에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가지고 훑어보던 사람들이 뭐야, 별거 없잖아 하는 표정으로 관심을 거두는 일이 안큐페이의 일상이었다.


그런 안큐페이가 군인이 된 것 역시 어쩌면 어머니의 영향이었으리라. 얌전히 잘 있다가 한 번씩 간질 발작처럼 유별난 발상을 하는 성향이 그에게도 물려져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 낮술을 기분 좋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갈림길에서 바로 반대쪽으로 발을 디딘 후 곧장 지방 병무청에 입대 지원서를 내버렸다.


아아, 세상 평범한 안큐페이는 군인이 되었고 계엄군의 소대원으로 차출되었다. 그리고 한 번의 유별난 발상과 우연이 겹쳐 그의 이름은 그의 인생의 가장 이상한 순간에 가장 특별한 사람에게 불리게 되었다.


"거기, 자네. 음...... 안큐페이. 이리 와서 열쇠를 주게. 자네 허리춤에 있는 그 묵직한 열쇠 꾸러미 말이야. 그중에 어느 것이 딱 맞는 열쇠인지 잘 알고 있겠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찾아내야 할 게야."


눈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노인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은 커녕 태어나 처음 본 노인이었다. 하지만 노인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 안큐페이는 더할 나위 없는 황홀경에 휩싸였다.


그는 노인에게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열쇠 꾸러미 중 한 개의 열쇠를 (고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정신을 놓은 와중에도 자못 필사적인 손놀림으로) 골라 노인에게 주었다.


"고맙네. 안큐페이. 이름 한번 참 특이하구만. 자, 이제 할 일을 마쳤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한 번 더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한 안큐페이는 눈동자조차 부들대며 환희로 떨었다. 그리고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가 얌전히 입을 벌리고 다시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안큐페이는 분명 행복했으리라.



02.

유마는 입을 헤 벌린 채로 백치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던 병사가 노인에게 열쇠를 건네고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가지 지켜 보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병사는 원래 그가 맡은 일이라는 듯 입을 벌리고 침을 줄줄 흘렸다. 병사는 어딘지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렇게 계속 침을 흘렸다간 혀가 바싹 말라서 평생 뽀뽀도 못하겠는데.' 유마가 생각했다.


마드는 유치장 창살에 꼭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창살 안 어둠에서 막 모습을 드러낸 수색 대장에게 모든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드는 모습을 드러낸 비골라가 진짜인가 싶어 창살 안으로 손을 애타게 뻗었다. 하지만 비골라는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죠? 이 분이 왜 이런 거예요? 네? 어떻게 해야 하죠?"


마드가 다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에 대해 뼛속 깊이 느꼈던 두려움을 새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갈색 눈이 조금씩 젖었다.


"진정하게, 아가씨. 아니 민병대의 대장님에게 아가씨라는 말은 실례일 수도 있겠군."


"마드! 마드라고 불러주세요." 마드가 말했다.


"그래, 마드. 저 남자가 자네가 도시로 다시 돌아온 이유, 맞겠지?"


"네. 맞습니다, 노인장. 맞아요. 이 분의 이름은 비골라 아이작...... 저희 민병대에 아주 소중한 분입니다."


마드는 노인이 누구인지, 그가 그들을 정말 도울 생각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에게 매달리듯 간절하게 말했다. 유마는 그녀를 진정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노인 앞에서 섣불리 마드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이 자는 이곳에서 꽤 다양한 고초를 겪었네. 제국군의 사령관이 쓸데없이 잔혹한 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사람도 아니거든. 그건 천 명이 넘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지." 노인이 말했다.


"아무튼 이 남자도 꽤 의연하게 버티기는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네. 그걸 생각해보면 자네들은 너무 늦지 않게 온 셈이야. 하루라도 더 지체했다면 이런 감동적인 해후는 할 수 없었을 걸세."


"아저씨는...... 괜찮으신 건가요?"


"이 자는 뭐랄까, 정신줄을 놓기 직전이었네. 그래서 그가 줄을 놓기 전에 내가 먼저 끊어버렸지. 놓아버린 줄을 다시 잡는 것보다 끊은 것을 이어붙이는 것이 더 쉽거든. 인간은 원래 연약한 동물이니까. 크크."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다시 한번 불길한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자 그럼 마무리를 하세. 와서 열쇠를 받아 가게. 자네의 소중한 아저씨를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나? 사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네, 이제."


노인이 재촉하듯 손을 들어 보였다. 길고 하얀 팔이 그녀를 향해 뻗어 나왔다. 노인의 손바닥 위에 병사가 (안큐페이가) 건넨 열쇠가 놓여 있었다. 마드가 열쇠를 한번 보고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열쇠를 보았다. 그녀가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가 열쇠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들 사이에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유마는 말리고 싶었다.



03.

사자는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달밤의 조깅 후에 가벼운 쌈박질도 한 참이어서 (일방적이면 폭행이라고 하지만) 그로서도 숨을 좀 돌릴 필요가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방금 지하 무덤에서 겨우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천하의 '공화국의 검'이라고 해도 숨 돌릴 여유 정도는 가져야 했다. 그도 벌써 나이가......


그 와중에 사자를 쫓아왔던 병사 여섯은 문득 밤 하늘의 달에 기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처럼 사이좋게 길 위에 누워있었다. 누구는 엎드렸고 누구는 배를 보인 채 발라당 드러누웠는데 자세는 제각기여도 그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얼굴 중 한 군데가 심하게 찌그러졌거나 부러졌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조용한 숨을 가늘게나마 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되기까지 목격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폭력을 퍼부은 남자만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사자의 눈에 금발의 머리를 한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짧게 자른 금발의 머리 뒤로 피와 머리칼이 엉킨 병사는 다른 다섯 명에게서 혼자만 떨어져 있었다. 그는 폭력의 현장에서 가장 나중에 쓰러진 병사였다.


전투가 시작되고 다섯 번째 병사마저 사자의 깔끔한 일격에 턱이 돌아갔을 때 금발의 병사는 그대로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자는 동료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적 앞에서 보란 듯이 등을 돌려 도망가는 어린 병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코로 킁 하고 숨을 내쉬더니 바닥에 떨어진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사자는 돌을 몇 번 위로 던졌다가 받더니 그대로 병사를 향해 내던졌다. 허리와 어깨가 함께 돌아가고 무게 중심이 디딤 발로 완벽하게 이동하는 아주 깔끔한 피칭.


돌이 밤하늘을 조용히 가르며 날아가 병사의 뒤통수에 정확히 명중했다. 병사는 끽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의 두개골과 돌멩이가 만나는 소리만이 둔탁하게 울렸을 뿐이다.


사자는 발치에 쓰러진 다섯 명의 병사들이 숨을 내쉬는 걸 한 번씩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어린 병사에게 다가갔다. 병사는 경련하듯 가볍게 몸을 떨었지만 숨을 고르게 내쉬고 있었다.


'요크였다면 벌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을게다. 공화국의 검사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사자가 미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마쳤다. 그가 고개를 들어 사령소 쪽을 바라보았다. 사령소에선 아무런 소란도 일지 않고 고요했다. 사자는 그 평화로운 고요가 왠지 꺼림직했다. 사자가 다시 사령소 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04.

마드가 노인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노인의 손에 얌전히 놓인 열쇠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마치 홀린 듯이 그 열쇠가 노인이 주는 은총이라도 되는 양 일견 황홀해 보이는 표정으로 손을 가져갔다.


유마는 일족의 눈으로 아주 또렷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열쇠에 새겨진 변변찮은 무늬마저 눈에 각인하듯 또렷이 보았다. 숨 막힐 듯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마드의 손이 노인의 손 위에 겹쳐졌을 때 노인이 마드의 손을 덥석 잡았다.


"헉!" 마드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노인의 입이 길게 찢어지기 시작했다. 마드는 오금이 저린 듯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신 숨을 내쉴 수도 없었다. 유마는 머릿속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달려들어? 달려들어서 새로 생긴 동료를 구해야 할까? 아무렴,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겠지. 하지만......


그때 노인이 말했다. 뱀처럼 긴 혓바닥이 입에서 밀려나올 줄 알았지만 나온 것은 여전히 압도적인 위압감을 가진 목소리였다.


"마드 세라자드. 사막의 민병 대장이여. 부디 서두르게."


노인이 동쪽과 서쪽 방향을 한 번씩, 천천히 고개를 돌려가며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무대 뒤로 퇴장했던 배우들이 다시 모여드는 것 같거든. 무대가 복작거리는 것을 보는 것도 재밌겠지만 오늘 내 역할은 여기까지란 말이지. 게다가 그 사내를 다시 만나는 것이 이곳이어선 안돼. 아무렴. 안되지, 안돼. 나는 좀 더 크고 우리에게 맞는 무대에서 그와 재회하고 싶단 말일세."


노인이 마드의 손을 풀어주었다. 어느새 열쇠는 그녀에게로 옮겨가 있었다.


"그러니 젊고 아리따운 대장이여. 어서 자네의 아저씨를 구해 돌아가게. 재촉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굼뜬 것을 몹시 싫어하거든."


홀린듯한 눈의 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몸을 돌려 비골라가 갇힌 유치장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시 몸을 돌렸다.


"정말 고맙습니......"


노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마드가 방금까지 노인이 있던 자리에 다시 채워진 어둠을 바라보다가 유마를 바라보았다. 유마도 그저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마주볼 뿐이었다.



05.

후문 성벽에 올랐던 마스칼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마드의 목을 거의 딸 뻔했던 중앙 시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너머의 민병대 사령소가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흐린 달 아래 잠겼던 사령소가 다시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창백함을 회복한 달 아래 훤히 드러난 사령소를 바라보던 마스칼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머릿속으로 불안과 기분 나쁜 기시감이 스며들었다. 그가 서둘러 성벽을 내려왔다. 그리고 계엄군 사령관이 있는 세이마르 공동묘지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불안과 기시감 위로 확실한 예감이 뒤덮였다. 마드 세라자드와 이방인이 어딨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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