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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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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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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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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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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11. 침입자 3

DUMMY



01.

오비에가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문을 열면서 메이드 언니들이 붙잡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얘, 무서운 사람들이 소리를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우릴 잡으러 오면 어떡하려고!'


오비에가 생각했을 때 침입자들은 소리랑 무관하게 사람을 찾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문을 여는 소리 같은 건 들리나 들리지 않으나 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보단 방에 모여 앉아 끅끅대며 울음소리를 내는 게 훨씬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한 말을 입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언니들은 오비에가 문을 열고 나가는지 알지도 못했다. 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코앞에 닥친 현실을 끊임없이 외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심해."


오직 한 명만이 방을 나서는 오비에의 뒤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비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구지?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하긴 했지만 아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후아."


복도로 나오니 서늘한 공기가 오비에의 얼굴에 와닿았다. 시커먼 복도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현관문을 열어놨구나!'


오비에가 생각했다. 살인마 듀오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이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했지만 들어온 문을 그대로 열어두었다는 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했다.


뒤에 따라 들어올 사람을 배려했거나, 누구도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었거나.


오비에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가서 현관으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왕궁 가까이에 가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왕자님도 가까이 계실지 몰랐다.


'오늘은 누구의 심부름을 가는 거니?'


'무겁겠구나, 조심하거라.'


'오늘은 조찬에 맛있는 케이크가 올라왔단다. 급사실에도 내리도록 전해놓으마.'


오비에가 왕자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왕자님은 종종 메이드 언니들과 시종들의 심부름으로 바삐 오가는 오비에를 흥미롭게 바라보곤 했다. 가끔은 불러 말을 붙이기도 했다. 오비에는 높은 사람들이 차갑고 무신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왕자님은 항상 따뜻한 분이었다. 그리고 왕자님의 눈빛은 언제나 쓸쓸했다.


'왕자님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지.'


자신이 힘을 내는 것이 왜 왕자를 위한 것인지 오비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02.

몇 발짝 가지 않아서 아이는 다른 방문 앞에 섰다. 문 너머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오비에는 궁전으로 들어온 침입자들이 사람들을 마구 해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을 저질렀는지는 몰랐다. 아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왕실 가드 두 명이 허무하게 쓰러지는 모습뿐이었으니까.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방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 메이드 언니들처럼 서로 쭈그리고 앉아 눈물이나 찍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이 방의 사람들은 함께 탈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아이다운 낙천적인 판단으로 후자 쪽에 무게를 실었다.


'세상에 가장 작은 돌멩이도 같이 들면 낫다고 했으니까.'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오비에가 문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딱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만 문을 열고 오비에는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려고 했다.


"헉!"


아이는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고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기 위해 애를 썼다.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누웠거나 엎어져 있었다. 목과 허리, 팔뚝과 발목 등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난도질당해 온몸이 피 칠갑이었다. 방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왔던 건 이제 싸늘하게 식어갈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뿜은 숨 때문이었다.


특히 오비에를 겁에 질리게 했던 것은 방안 한가운데 바로 누운 채 눈을 크게 뜨고 죽은 중년의 여인이었다. 여인은 메이드장 메릴이었다. 항상 무섭고 드세지만 날카롭고 현명했던 그녀. 왕자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측근에서 보필했던 메릴 여사.


오비에가 급사 신분을 벗어나 메이드가 되고 싶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떠올린 롤 모델이 바로 그녀였다.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오비에. 이건 비밀인데...... 지금도 네가 내 밑의 메이드들보다 훨씬 낫단다.'


메이드의 꿈을 옹골차게 드러낸 오비에의 귀에 메릴이 속삭였다. 그리고 씩 웃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메이드장의 진짜 미소를 본 것 같았다. 마치 장난꾸러기 소녀처럼, 한때는 남자아이들을 휘어잡았을 골목대장의 미소를.


"......"


아이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리고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울었다. 현실을 외면했던 건 어쩌면 아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른다. 지저인 소녀는 엎드린 채 꺽꺽거리며 울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용히 방 밖으로 새어나갔다.



03.

아이는 실컷 울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 진정됐을 때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왕자님의 집, 그리고 더부살이하는 처지지만 아이에게도 포근한 안식처였던 궁전에서 살아나갈 때까지 이제 울 일은 없을 것이다.


오비에는 제 덩치보다 좀 큰 셔츠의 소매로 슥슥 문질러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면서 바닥으로 시선이 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한 번 더 피와 죽음으로 범벅인 바닥을 봐버린다면 간신히 다짐한 결심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릴 수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야,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글쎄. 이쪽은 네가 다 한 번씩 들어갔다 오지 않았어?"


"맞는데."


"실수라도 한 거냐?"


"음...... 그럴 리가 없는데."


오비에가 눈을 커다랗게 부릅떴다. 그리고 벽에 재빨리 다가가 붙었다. 몸을 숨겨야 했다. 까놓고 말해 아이가 숨어 들어갈 곳은 (그곳엔 이미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천지였지만 오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의 가느다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오비에는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꾹 참았다.


"다시 가서 확인해볼까?"


'제발, 제발, 제발. 필요 없다고 해줘요. 무슨 일로 궁전에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볼일이 있다면 빨리 볼일이나 보러 가세요.'


"...... 이제 안 들리는데. 아무래도 잘못 들었나 보다. 그보다 어서 <방>을 찾아야지. 시간이 많이 지체됐어."


"...... 그럼......"


그 뒤에 말은 들리지 않았다. 침입자 듀오는 복도를 따라 깊숙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바로 방을 빠져나오지 않고 속으로 가만히 열을 셌다.


'돌 의자도 두드려보고 앉으라 했으니까.'


오비에가 조용히 숫자를 셌다. 들리지 않게 속으로만. 하나...... 둘...... 셋......



04.

열까지 모두 세고 오비에는 방을 빠져나왔다. 아이는 방을 나오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물론 바닥을 내려다보지는 않았다.


'모두 행복한 곳으로 가세요.'


오비에의 목표는 이제 확실해졌다. 울고 나니 머리가 개운해진 것이다. 아이가 향해야 할 곳은 현관이었다.


궁전 안은 이미 죽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더 많은 죽음이 생겨날 예정이었다. 방 안에서 울고 있는 메이드 언니들과 이미 먼 길 떠난 (왜 사람들이 죽고 나면 먼 길을 간다고 하는지 아이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을 위해 오비에는 궁전을 빠져나가야 했다.


현관을 빠져나가면 신선하고 축축한 마할란트라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리라. 그리고 있는 힘껏 달려서 가드들을 찾아가리라. 이왕이면 왕자님을 뵐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아이가 어두운 복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위대한 천정이 빛을 잃으려면 아직 한참이나 있어냐 했지만 왕궁 2층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왕궁의 2층 복도는 밖으로 난 창이 없어서 대낮에도 불을 켜두어야 했다. 하지만 다 녹아버린 등불을 이제 갈 사람이 없어서 불이 꺼진 등 아래로 어둠이 가득했다.


오비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바람에 실려오는 바깥 냄새를 맡으며 더듬더듬 중앙 계단을 찾아 움직였다.


'그 사람들 기척이 안 느껴져. 멀리 떨어진 모양이야. 어쩌면 문 하나하나 열어보느라 바쁜 걸지도.'


아이는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거의 기어가듯이 움직였지만 나중에는 뛰기 시작했다. 중앙 계단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빛이 눈에 띈 것이다. 게다가 수없이 다녔던 궁전 길이니 눈을 감아도 훤하게 알 수 있었다.


사자와 유마, 비골라가 묶었던 남자 손님방을 지났다. 내빈실을 지나고 여자 손님방으로 이어지는 작은 복도를 한달음에 지나쳤다. 이제 하사딘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벽을 지나 복도 모퉁이로 돌아나가면,


'중앙 계단이 떡하고 보일걸!'


오비에가 숨에 찬 목소리로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사딘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벽이 (오비에는 종종 그 문장을 보고 왕자에게 하듯이 깍듯이 인사하곤 했다) 이 나타났다.


'저 모퉁이만 돌면 돼!'


"어딜 그렇게 뛰어가시나, 아가씨?"


그들의 목소리가 아이의 바로 뒤에서 들렸다.



05.

숨이 턱 막혔다. 목구멍 깊이 말려들어간 숨을 다시 내쉴 수도 없었다. 왕궁에 침입한 두 남자를 마침내 대면했을 때 오비에는 아빠가 말해주었던 수많은 말들 중 어느 하나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저 깜깜한 벽, 깎아지르는 절벽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다.


"아가씨, 묻잖아. 어딜 그리 가느냐고?"


사내 하나가 싱글거리며 물었다. 그에게서 피비린내가 났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왜? 나한테서 냄새가 나니? 이봐, 오조. 나한테서 냄새나?"


"너뿐만이 아니라 나한테도 날 걸. 아니 여기 왕궁 전체에서 퀴퀴한 악취가 날 거다."


"근데 그건 다 우리 잘못이잖아?"


"맞지."


영문 모를 소리를 하고 두 사내가 마주 보고 웃었다. 오비에는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에게 진정하라고 속으로 외칠 뿐이었다. 오조라고 불린 사내가 고개를 돌려 오비에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 아이, 소리도 없이 꽤 멀리까지 내려왔군. 눈치채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러게, 내가 무슨 소리가 난다고 했잖아. 저쪽 방의 여자들 울음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소리더라고."


"이번엔 네 말이 맞았다, 므시엘."


사내가 품에 손을 집어넣으며 오비에에게 다가갔다. 그가 품에서 뭘 꺼내려는 건지 오비에는 정말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므시엘이라고 불린 사내가 동료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어쩌려고? 아직 어린애인데?"


"그렇다고 여기 둘 수도 없잖아. 도망가면 곤란해질 테고."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이네, 정말. 차라리 <방>에 같이 데려가자. 어차피 임무만 완수하면......"


"......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럼 저기 여자들이 있는 방은 내가 다녀올게. 넌 이 아이와 여기 있어라."


사내가 다시 복도 끝 어둠 속으로 달려나갔다. 오비에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오비에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남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비에의 시선을 눈치채고 아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저 친구는 오조야. 나는 무르시엘라고. 아가씨 이름은 뭐야?"


"...... 오비에입니다."


"오비에! 좋은 이름이네. 저 방만 해결하고 오면 이 왕궁에는 우리 오조와 나, 그리고 오비에만 남는 거야. 곧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테지만."


오비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아아, 정말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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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5. 암살의 역사 1 +8 20.09.08 620 33 13쪽
94 94. 검은 탑의 왕자 3 +10 20.09.06 623 33 13쪽
93 93. 검은 탑의 왕자 2 +6 20.09.05 623 30 12쪽
92 92. 검은 탑의 왕자 1 +4 20.09.04 654 30 12쪽
91 91. 마할란트라 3 +8 20.09.03 650 32 12쪽
90 90. 마할란트라 2 +14 20.09.02 655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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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 지저인 3 +8 20.08.29 654 3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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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Re 83. 그날 밤 +4 20.08.22 687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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