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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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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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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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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02. 테러 2

DUMMY




01.

"그만. 비명 그만 질러라. 귀가 다 아플 지경이군."


"으아아아악!"


"지금 당장 입을 다물지 않으면 부러진 손목 뼈를 네 입에 처박아주마. 약속이다."


사자에게 손목이 부러져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사내가 입을 곧장 다물었다. 그렇다고 통증이 가시는 건 아니라서 입술을 부들거렸다. 눈에는 찰랑거리는 우물처럼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제 도시의 경비병들이 오면 네놈을 넘길 것이다. 차라리 그게 좋을 거야. 넌 내 손에 계속 잡혀 있다가는 틀림없이 죽는다. 나는 오늘따라 영 참을성이 없으니까."


단순히 겁을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조급하고 성이 났다.


"그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대답하기 전에 잘 생각해라. 너희가 도시에서 획책하고 있는 일이 무어냐? 그리고 누구에게 지시받은 것이냐?"


사자의 머릿속에 놈의 송곳니가 번쩍였다.


"...... 큭, 얘기할 수 없다. 너는 그들의 무서움을 모른다."


"누구 말이냐? 그들이 누구를 말하는 거야?"


"...... 말할 수 없다."


"...... 너야말로 나의 무서움을 모르는구나."


그때 도시의 가드들이 나타났다. 사자가 한쪽 손을 들어 왕실의 옷소매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알란 왕자님의 손님이오. 지금 폭발의 용의자들을 찾아......"


그때 가드들이 눈이 부시도록 번쩍거리는 물건을 꺼내들었다.


"...... 도시의 병사들 중에도 이미 적에게 넘어간 이들이 있는 거로군. 아니, 원래부터 그쪽이었나."


가드들이 검을 빼들고 사자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02.

지하 세계의 임시 주인이자 하나뿐인 혈육에게 끊임없이 위협받는 지저인들의 왕자는 왕궁 집무실의 창가에 서서 두 번째 폭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전 알라딘이 그를 찾아왔을 때부터 대비했던 일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알란은 빠르고 늦는 것만 있을 뿐 결국 일이 벌어지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도시가 화마에 휩싸이고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고 죽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죽게 될 것임을. 그리고 나면 도시는 물론 바깥세상의 모래땅까지 정화하는 대작업이 시작될 것임을 말이다.


알란은 이 정화 작업을 도울, 아니 돕는다기보다 정화의 시작이 될 촉매가 공화국이라는 남쪽 나라에서 온 검사라는 것을 위대한 천정의 계시자에게 들었다.


계시자에게는 별다른 이름이 없었으나 (아니 있긴 했지만 그 진실한 이름은 불린 지 너무나 오래돼서 지금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래된 신화와 아이들의 동화에서는 이 남자를 (아마도 남자가 맞겠지) 이렇게 불렀다.


<달빛을 먹고 사는 자>라고.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주일 전의 일이었다.



03.

"언제나 신출귀몰하게 다가오시는군요, 계시자여."


위대한 천정이 오늘의 태양빛을 모두 지하로 전해준 뒤 잠시 그 눈을 쉬고 있을 때였다. 알란은 왕궁의 집무실에 있다가 홀연히 나타난 남자를 맞았다. 남자는 마치 노인처럼 가쁜 숨을 내쉬더니 웃으며 알란에게 다가왔다. 남자의 눈에서 황금색 빛이 일렁였다.


"계시자라니. 그렇게 부르면 우리 사이가 너무 멀게 느껴지잖나." 노인이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농담입니다. 저를 놀라게 하셨으니 이 정도 투정은 부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왕자가 활짝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피아>. 이게 얼마 만입니까?"


왕자와 노인이 서로를 향해 꾸밈없이 웃으며 다가갔다. 노인이 왕자를 안은 손으로 등을 두드렸다. 마치 오랜만에 손주를 만난 할아버지처럼 스스럼없는 몸짓이었다. 왕자 역시 노인의 품을 와락 끌어안았다.


불쑥 몸에 오한이 돌았다.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그를 안을 때마다 느껴지는 한기에는 익숙해질 수 없었다.


"갑자기 오셨으니 드릴 주전부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침 석차(石茶)가 있으니 한잔 따라드리죠."


"고맙네."


반가운 해후를 마친 후 노인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집무실 책상 옆에 높인 돌의자를 끌어왔다. 그의 긴 팔이 의자를 잡아끌자 무거운 돌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조차 없이 스르륵 노인의 앞으로 당겨졌다.


"후아. 이 돌의자는 정말 언제 앉아봐도 편하군. 도시의 석공 몇 명을 내가 좀 데려가서 일을 부려야겠어."


노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차를 따르고 있던 왕자가 빙그레 웃었다.


"안됩니다. 혹시 도시 안에 누군가 사라지기라도 하면 아피아께서 하신 일로 알고 쫓을 겁니다."


왕자가 차를 따른 잔을 들어 노인에게 주었다. 말에 섞인 농과 달리 매우 조심스럽고 정중한 몸짓이었다.


"잘 마시겠네. 석차라니, 이곳의 문화는 언제 내려와도 신기하단 말이지. 돌을 우려 차로 마신다는 것을 땅 위 사람들은 생각이나 해봤을까? 겨우 풀잎이나 콩가루나 우려서 마실 뿐이니 말일세."


"하지만 마할란트라 사람들도 이제 커피나 홍차를 더욱 즐겨 마십니다. 저야 워낙 취향이 구식이라 여전히 석차를 마시지만요."


왕자도 자신의 빈 잔에 차를 따르고 집무실 의자에 앉아 노인을 마주 보았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마지막으로 들러주신 것이 1년 전인데요."


"그렇지. 자네 동생이 선을 좀 지나치게 넘고 얼마 안 돼서였지."


"...... 네."


알란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이제는 간신히 윤곽만을 알아볼 수 있는 상처가 불에 덴 듯 가물거렸다.


"아피아께서 때맞춰 오지 않으셨으면 저는 그때 죽었을 겁니다. 퇴비를 만지는 쇠스랑이 그렇게 독한 균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무녀의 마나도 물론 훌륭하지만 '파상풍'에는 마나보다 약이 더 잘 듣는 법이지. 때마침 내가 약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노인이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저 위대한 천정의 가호가 아니겠나."


"아피아께서 이미 지켜보고 계셨던 것은 아닙니까?"


왕자의 거의 들리지 않는 혼잣말에 노인의 눈이 잠시 희번덕거렸다. 그리고 곧 씩 웃었다.


"아무튼 이제 곧 1년이네. 자네의 미치광이 동생이 또 엉덩이에 불붙은 개처럼 달려들겠지. 뭐 대책은 있나?"


"저번처럼 왕궁의 사람들이 희생된다면...... 차라리 그냥 목을 내주는 것이 어떤가 싶습니다."


"실망이군."


노인이 혀를 찼다. 왕자가 처연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자네의 목숨은 이 몸이 직접 살려주었다는 것을 명심하게. 그건 자네의 부친에 대한 의리 때문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 대한 내 애정 때문임을 알게나."


"......"


"오늘 내가 온 것은 네 동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야. 더 이상 단순한 형제 싸움이 아니란 말일지. '놈들'이 끼어들었거든."


"'그자'들이 알라딘에게요? 이미 마할란트라와는 연을 끊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릇된 놈들이 달 아래로 고개를 내민 후 나는 꽤 골치를 썩어왔네. 내가 직접 단죄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알잖나?"


"...... 서쪽의 용은 요즘 잠잠하지 않습니까?"


"흥!" 노인이 몹시 언짢은 듯 혀를 찼다. 한 번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의 입이 찢어지며 으르렁댔다.


"불이나 내뿜는 멍청한 도마뱀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걸세. 언제나 호시탐탐 눈을 번뜩이고 있지."


노인이 서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절대 보일 리 없는 서쪽 하늘을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정말 나이 지긋한 뒷방 노인 같아 보였다.


"아무튼 문제는 '그놈'들이 자네의 동생에게 힘을 빌려줄 거라는 거지. 왜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문제가 만만치 않게 되었어. 이번엔 아주 다를걸세. 작년의 일 따위는 작은 소란처럼 느껴질걸세."


"......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이겠군요. 차라리 제가 먼저 치는 것은 어떨까요?"


"이미 놈들은 만반의 준비를 끝냈을 걸세. 그러니 자네도 힘을 얻어야 하네."


"힘이요?"


"그래, 힘. 외부에서 건너온 아주 강대한 힘이 있네. 여태껏 사막에서 만나본 적이 없는 유형의 힘이지. 게다가 입심도 아주 그럴 듯 하단 말이야."


노인이 마치 첫사랑의 상대를 떠올리듯 흐뭇하게 웃었다. 왕자가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아주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대체 누구입니까? 바깥 세계의 사람이 제게 힘을 빌려줄 거란 말씀이십니까?"


"이제 곧 이곳으로 올 걸세. 내가 그렇게 만들 거고. 그자는 자네에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내게도 꼭 필요한 사람이네. 아니 이 사막에 꼭 필요한 사내지. 그러니......"


노인의 눈이 황금색으로 다시 한번 번쩍였다. 왕자는 그 눈에서 무한한 신뢰와 새삼스러운 두려움을 함께 느꼈다.


"공화국의 검사를 꼭 자네의 사람으로 만들게."


노인이 말했다.



04.

알란은 창 너머 폭연을 바라보며 그날의 대화를 끝까지 다시 복기했다.


'공화국의 검사를 꼭 자네의 사람으로 만들게.'


그게 아피아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알란은 그의 말대로 언더그라운드 길 너머까지 나아가 사자와 마드 일행을 맞이했다.


'분명 기대 이상의 사내가 바깥에서 왔지.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이제 내 미련한 동생이 발광을 시작했구나.'


"병사들을 소집하라!"


알란이 크게 외쳤다.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일이 진행될 모양이었다.



05.

사자에게 도시의 가드들이 다가왔다.


사자는 아직 왕실 가드와 도시 가드를 정확히 구별할 수 없었다. 단지 그의 기민한 관찰력에 의하면 왕실 가드들은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까만 암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게 가드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가드들을 보니 명확해졌다. 이들은 목걸이가 없었다.


'왕가의 가드들이 아니라는 거지. 다행히 왕실에까지 적의 손길이 닿지는 않은 모양인데...... 물론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목걸이가 없이 휑한 목을 드러낸 도시의 가드들이 검신이 까만 날붙이를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모두 네 명이었다. 아까 이미 드러났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가급적이면 대화로 해결할 것.' 알지?


"이봐. 나는 알란 왕자님의 손님이다. 이 옷이 그 증거다. 보이지 않나?"


사자가 말했다. 하지만 가드들은 바깥세상의 언어를 알아들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왔다.


"으으으윽."


그때까지도 손목이 부러진 불쌍한 사내는 여전히 사자에게 붙들려 있었다. 사자가 깜빡했다는 듯 사내의 손목을 쥔 손을 살짝 흔들었다. 사내가 다시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너, 이 새끼...... 이제 끝장이다. 어디서 구, 굴러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똥오줌은 가렸어야지."


사자가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사내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지지 않고 부릅떴다. 아무래도 같은 편이 나타나자 용기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자가 한쪽 눈을 찌푸리자 사내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엄포를 놨다.


"이제 네놈의 포를 떠......"


딱 거기까지였다. 사자가 사내의 손목을 슬쩍 놓더니 아주 자연스럽고 재빠르게 오른쪽 다리로 그의 얼굴을 걷어차버렸다. 사자의 주름진 부츠가 사내의 고개를 정반대로 돌려버렸다. 그의 정신이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가드들이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주춤거렸다. 그렇지만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들이 무기를 사자를 향해 치켜들었다. 사자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피차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제 시작하는 게 어떻겠나?"


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드들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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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5. 암살의 역사 1 +8 20.09.08 620 3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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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3. 검은 탑의 왕자 2 +6 20.09.05 623 30 12쪽
92 92. 검은 탑의 왕자 1 +4 20.09.04 654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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