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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소녀는 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어린꿈
작품등록일 :
2020.05.15 23:11
최근연재일 :
2020.06.20 18:06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098
추천수 :
48
글자수 :
171,176

작성
20.05.15 23:13
조회
152
추천
20
글자
8쪽

프롤로그 # 저승사자 소녀

하루하루는 힘없이 흘러가지만.




DUMMY

강한 바람이 내 몸을 관통하고 머리카락을 뒤집는다. 옥상이 만들어내는 바람은 언제나 매섭다. 난간에 팔을 얹어 저 아래에 보이는 운동장을 바라본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있었다. 그림자가 짧게 늘어서고, 매섭고 차가운 바람과 달리 햇빛은 따뜻하게 내리쬔다. 운동장에서 꽤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공차는 소리. 욕하는 소리. 뛰어노는 소리. 다양했다.


숨을 내쉬고 난간에 얹은 팔에 힘을 더 줘 올라가본다. 올라간 몸은 마치 실이 없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그 앞으로는 나아가지 못 했다. 죽으면 아플까? 어떻게? 결국은 다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는다.


불편하게 조여오는 교복 바지와 교복 와이셔츠. 청소되지 않은 옥상의 먼지가 교복 바지에 달라붙어 회색 가루가 된다. 손으로 털어내지만 코로 들어와 재채기를 유발한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야! 딱갈아!"


왔다. 또 왔다. 언제까지 반복할 셈인가.


고개를 들어 살짝 시선만 맞춘다. 혼자가 아닌 3명.


"돈 좀 빌려주라!"


나는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디다가 쓰게."


"놀러가게. 빨리 빌려줘."


손바닥을 내밀며 '빌려줘'가 아닌 '돈 내놔'의 제스처로 보인다. 마치 사채업자같다. 난 돈 빌린 것도 없는데. 내가 싫은 기색을 보이자 3명 중 한 명이 손가락 마디를 꺾는다.


- 협박.


"빨리."


재촉한다. 나는 조용히 지갑을 꺼내 만 원 짜리 3장을... 날렸다. 그들 앞으로 던지듯이 날린 만 원 3장은 펄럭거리며 바닥에 가라앉는다.


"이 개새끼가!!!"


날라오는 주먹. 고개만 살짝 돌려 주먹을 피한다. 덕분에 내 뒤에 있던 쇠철 난간에 부딪혀 깡! 소리를 낸다. 꽤 아프겠는데.


다른애가 발차기를 날리자, 나는 그의 반대편 다리를 밀어차 중심을 잃게 했다. 벽돌 바닥에 넘어져 쿵! 소리를 낸다. 아래층에서 올라오겠다.


"뭐... 뭐야, 너!"


바닥에 손을 짚어 일어섰다. 먼지가 손바닥에 달라붙어 탈탈 털어내고 한숨만 푹 내쉬었다. 너넨 질리지도 않냐.


결국은 옥상에서 사라진다. 옥상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내 만 원 3장을 주워 지갑에 다시 넣었다. 하지만 의미없는 행동임을 깨닫고 내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서 바닥에 누웠다. 살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찼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 하는 마음을 계속계속 원망한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벽에다가 주먹질을 해봐도,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는다.


하늘을 바라본다.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사이사이 껴있다. 그리고 자유롭게 나는 새. 귓가에 들리는 한 마디.


"있잖아요, 죽을 거면 저에게 수명을 넘기시지 않을래요?"


무슨 말인가 싶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내가 환청을 들었나, 싶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도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


"거기가 아니에요. 이쪽이에요, 이쪽."


이번에는 앞쪽에서 들려온다. 몸을 일으켜 앞을 본다.


옛날 한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온통 검은색이라 마치 옛날 드라마에 나올 법한 저승사자와 겹쳐보인다. 키는 나보다 작다. 확실히 작아보인다. 게다가 너울인지, 갓인지 구별이 안 되는 모자까지 쓰고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모자 때문에 머리카락은 보이지 않고 하얀 피부로 덮인 얼굴만 보인다.


여자아이?


"어머, 들켰네요."


나는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세요?'


"아아! 죄송합니다!"


예의있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고서는 말을 잇는다.


"저는 저승사자입니다!"


...네?


"저승사자라면... 죽은 자의 영혼을 지옥까지 이끌어주는 사람 아니에요?"


"그것도 있긴 한데... 제가 맡은 직업은 조금 달라서요."


"그게 뭔데요?"


저승사자는 내 앞까지 걸어와 내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거랍니다."


라고, 저승사자가 환히 웃었다.


* * * * * * * * * *


저승사자.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지옥까지 안내해주는 사람. 사신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른데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보통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나타난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숨을 쉬고, 심장이 뛰며 움직이는데.


나는 살아있는데? 라고 말하려는 순간 저승사자가 말했다.


"죽으려고 했었잖아요?"


잠시 내 행동을 돌아본다. 난간에 펄을 얹고서 뛰어넘으려고 했던 일. 결국은 죽는 게 무서워 뛰어내리지 못하고 내려왔던 일. 그게 몇 분 전 일이었던 것. 한숨을 푹 내쉬고 저승사자라고 말한 사람을 바라본다. 검은색 눈동자. 겉은 평범한 여자아이로 보인다.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저승사자에겐 중요한 일이에요."


내 손을 붙잡는다. 차갑다. 차가운 손이 온몸을 감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손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어린 아이의 손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손을 나는 떨쳐냈다.


"신경쓰지 마. 어차피 사람은 사람이고, 저승사자는 저승사자고."


"그럼... 신경쓰진 않을 테니까, 뒤에 졸졸 따라다녀도 되나요?"


옥상에서 나가려던 나에게 저승사자 소녀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마음대로 해' 라고 답한 후 옥상을 나섰다.


...저승사자와 이야기를 하다니 나도 참 이상하다.


* * * * * * * * *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이번 수업 시간은 지루한 수학의 미적분 시간. 극한이 어쩌고, 연속이 어쩌고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시지만 된통 못 알아듣는 게 수학이 아닐까. 수학 주제에 영어를 쓰고, 복잡한 그래프와 도형이 줄줄 나온다. 어지럽다.


내 위에서 송송송 저승사자가 날아다닌다. 영혼의 연기처럼. 자유롭게. 궁금한 게 산더미지만 수업시간인만큼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저승사자 소녀에게 물어봤다.


"너, 다른 애들한테는 안 보여?"


날 바라보는 저승사자 소녀는 웃으면서 답한다.


"당연하죠. 원래 저승사자는 관련 있는 사람한테만 보이거든요."


...결국은 다른 사람이 뭘 하든 넌 볼 수 있다냐. 저승사자가 사람의 사생활 침해한다!!!


"...아무리 그래도 사심으론 그런 짓은 안 해요."


"미안."


사과하고서 칠판을 바라본다. 숫자와 기호. 그리고 영어가 동시에 써져있는 칠판과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내 노트를 번갈아본다. 그래도 필기만 해도 수행평가 점수를 주는데 안 할 수는 없지. 황급히 옮겨적는다.


"인간의 수학 문제는 엄청 어렵네요."


"애들말로는 저게 기본이라는데, 난 도통 모르겠어."


누가 수학을 만들었을까. 제기랄.


"흔히 말해서 당신은 '수포자' 인 건가요?"


"...문과인데."


"그래도 기본은 해야죠."


"잔소리하냐?"


"아하하, 너무 말이 많았네요."


저승사자 소녀는 조용히 내 위에서 수업 받는 것을 구경한다. 고등학생의 수업이 뭐가 재밌다고 졸졸 따라다니겠다고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소녀는 정말 나를 구원하겠다는 게 진심일까?


모르겠다. 일단 노트에 다 옮겨적었으니 잠이나 자자. 어지러운 수학에서 벗어나고자 잠을 청했지만.


"자지 마라! 문과여도 수학은 할 수 밖에 없다!"


선생님의 불호령에 잠이 확 달아났다. 그래도 수업시간 때 자는 건 조금 그렇지.




하루하루에 의미가 담겨 달이 넘어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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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소녀는 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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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 # 구원 (完) 20.06.20 33 1 16쪽
45 45 # 마지막 기회 20.06.20 13 0 7쪽
44 44 # 당신에게는 닿나요? 20.06.20 14 0 14쪽
43 43 # 일상 20.06.20 14 0 9쪽
42 42 # 받아들인 사실 20.06.20 12 0 7쪽
41 41 # 현실 20.06.20 12 0 9쪽
40 40 # 필연 20.06.20 12 0 8쪽
39 39 # 숨기고 있는 것 - 2 20.06.20 20 0 8쪽
38 38 # 숨기고 있는 것 20.06.20 12 0 7쪽
37 37 # 언젠간 20.06.20 11 0 7쪽
36 36 # 작은 모래알갱이 20.06.20 16 0 7쪽
35 35 # 후회 20.06.20 18 0 7쪽
34 34 # 예고 20.06.19 19 0 8쪽
33 33 # 환기 +1 20.06.19 15 1 8쪽
32 32 # 빈자리 20.06.19 26 0 7쪽
31 31 # 제자리로 +1 20.06.19 23 1 9쪽
30 30 # 정보 20.06.17 50 0 9쪽
29 29 # 원하지 않던 제자리 20.06.16 20 0 9쪽
28 28 # 죄와 벌 20.06.16 16 0 8쪽
27 27 # 진실 20.06.16 19 0 9쪽
26 26 # 재회 20.06.16 16 0 7쪽
25 25 # 휴식 20.06.15 15 0 7쪽
24 24 # 진심 20.06.14 13 0 7쪽
23 23 # 방황 20.06.14 34 0 7쪽
22 22 # 도주 20.06.13 15 0 8쪽
21 21 # 현실 20.06.13 33 0 8쪽
20 20 # 연심 20.06.12 32 0 8쪽
19 19 # 뒤쫓는 추적 20.06.12 61 0 8쪽
18 18 # 반사되는 분위기 20.06.12 30 0 7쪽
17 17 # 추적 20.06.12 16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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