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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소녀는 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어린꿈
작품등록일 :
2020.05.15 23:11
최근연재일 :
2020.06.20 18:06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103
추천수 :
48
글자수 :
171,176

작성
20.06.1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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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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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22 # 도주

하루하루는 힘없이 흘러가지만.




DUMMY

희생의 현실을 마주하라는 말이었다. 영훈이가 말을 잇는다.


"아무리 선의의 의도로 했다고 해도, 누군가를 위해 몸을 던진다고 해도 너가 다쳐서 돌아오거나 죽어서 곁에 못 있는다면 그것은 아픔이 될 뿐이야. 너를 잊지 않으면서 너의 몫까지 살아가야하는 여동생의 마음을 깨달아야지. 영훈아. 사람은 언제나 죄를 지어. 항상 죄책감을 짊어지지."


"그래서 결론이 뭐야. 자수하라고?'


"사실을 말해. 경찰에게."


오늘 점심을 먹기 전, 뉴스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저승사자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뉴스 내용을 비교하여 아마도 날 사건의 용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도 예상했던 대로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파온다.


게다가 나는 증거를 조작했다. 모든 증거는 내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지금가서 자수하면 내가 범인으로 확정되고 잡혀들어가지 않을까. 윤혜는 그런 나를 어떻게 볼까? 슬픈 표정? 죄책감에 시달리는 괴로운 표정?


"권유하는 거야. 죄는 죄를 지은 사람한테 가야하는 거야."


영훈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푹 숙인 나는 그 시선을 마주보지 못 하고 고민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리고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발소리는 점점 더 크게, 가까이. 그리고 내 등뒤에 있는 문 너머에서 멈춘다.


쿵쿵쿵. 3번의 노크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퍼진다. 나지막히 울리는 한 마디.


[ 경찰입니다만, 아무도 안 계세요? ]








* * * * * * * * * * * * * * * *







전 형사와 박 형사, 그리고 한 형사는 '영훈' 이라는 애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지금쯩이면 집에 돌아왔겠지,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문을 두들겼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어 잠시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영훈' 이라는 애가 집으로 들어갈 때 안 보이는 곳에서. 몇 분 기다리니 여자애 한 명과 남자애 두 명이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따라가면 눈치챌 게 뻔하니 약간 시간을 두어 나섰다.


계단을 오르려다가 현관문 앞에서 뭔짓을 하고 있는 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뭐지? 무언가를 집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너의 담배꽁초를 집었는데?"


"아."


"형사가 용의자에게 경계살 만한 증거를 버리시면 어떡하냐고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들을 바라봤지만 집으로 들어간 것인지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전 형사가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자 한 형사와 박 형사가 뒤따라 올라간다. 전 형사는 현관문 앞에 손을 올렸다.


[ 권유하는 거야. 죄는 죄를 지은 사람한테 가야하는 거야 ]


문득 그런 소리가 현관문 너머로 들려왔다. 뒤에서 박 형사와 한 형사가 뒤따라오는 소리가 딱딱하게 들려온다. 그나저나 저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단 영훈이라는 애부터 만나자, 라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두들겼다.


"경찰입니다만, 아무도 안 계세요?"


문 너머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기 전 숫자와 똑같았다. 여자애 한 명. 남자애 두 명. 그리고 그 남자애 두 명 중 하나가 이승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애는... 영훈이라는 애의 여동생인가?


"혹시 영훈이라는 애가 누구니?"


"저이긴 한데... 무슨 일이세요?"


전 형사는 가슴주머니에서 경찰수첩을 꺼낸다.


"아, 우린 형사인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리고 전 형사는 시선을 영훈이가 아닌 다른 남자애에게 둔 채로 말했다.


"이승권이라는 애가... 혹시 저 애니?"


"그렇긴 한데요... 왜요?"


불길함을 표현하는 영훈이를 보며 전 형사는 몸을 승권이라는 애에게로 돌린다. 이름 모를 여자애가 반응을 하자, 승권이는 그녀를 제지한다. 경계심을 표출하는 승권이를 보며 전 형사는 입을 열었다.


"두 번째로 보는구나."


승권이가 눈썹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 때, 그 형사이신가 보네요."


"전 형사, 이 애인가?"


전 형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봐, 이승권. 널 빌라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하겠다. 가만히 있어."




박형사는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들어 승권이에게 다가간다. 승권이는 두 손을 내민다. 의외로 순순히 투항하는 걸.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머릿속에서 한 마디가 스쳐지나간다.


- 걔 싸움을 잘하거든요. 학교에서 건드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애들만 상대해요.


"컥!!"


승권이는 내민 두 손을 순식간에 박 형사의 손을 잡아 그대로 집어던진다. 무슨 괴력이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박 형사를 보며 전 형사는 또다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너무 얕봤다. 한 형사가 뒤늦게 승권이를 제압하려고 나선다.


"고등학생, 순순히 체포당하는 게 나을거야."


"...그럴 수는 없는데요."


한 형사가 다리를 들어 돌려차기를 날린다. 빠르고 절도있는 발차기가 승권이의 다리 쪽으로 날라간다. 하지만 그는 무릎을 살짝 들어 바깥으로 쳐내고 한 형사의 발목부분을 밀어올리듯이 차올려 넘어뜨린다.


"이... 승권! 공무집행 방해로 잡혀가 싶어?!"


"이미 살인죄까지 지은 시점에서 뭘 바라시나요?"


의외로 태연하군. 전 형사가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또다시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이승권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올 뿐이었다. 마치 현장에 들어갈 때 도망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곧이어 착지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아픈 어깨를 부여잡으며 박 형사가 황급히 뒤따라나간다.


"야, 승권아!"


황급히 영훈이가 창문으로 따라갔지만 이미 도망쳤는지 허탈하게 창 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아으, 아퍼라... 쟤 진짜로 고등학생이 맞아요? 이런 움직임이 고등학생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그래... 일단 이승권을 뒤쫓아야돼."


"체포하는 게 우선 아니었어요?"


전 형사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체포가 아니야."


"그러면요?"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체포는 하지 말아줘. 단단히 오해를 산 것 같아."







* * * * * * * * * * * * * * * * *







눈 앞에 낯익던 형사의 얼굴이 보인다. 마주한 건 10초도 안 되었을 거지만, 이상하게도 머리 깊숙히 박혀 있었다.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경계해버렸다.


제일 낯익은 형사가 가슴주머니에서 경찰수첩을 꺼내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이름은 전영준이었다. 아마도 나를 쫓아왔을거라고 생각한다. 내 예상이 맞은 것인지 전영준 형사가 영훈이에게 나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체포할 준비를 한다. 각오했던 것이지만, 지금 잡히면 내가 준비했던 것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체포에 순순히 응하는 듯이 두 손을 내민다. 그리고 다른 형사가 내 손을 잡으러 올 때, 나는 순간적으로 힘을 내 그를 반대편으로 던져버렸다. 공무원 집행 방해죄까지 추가다.


다른 여 형사가 날 제압하기 위해 발을 휘두른다. 나는 무릎을 올려 여 형사의 돌려차기를 막아낸 다음 그녀의 발목을 걷어차올려 넘어뜨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밖을 방황한다. 그 때와 똑같이, 창문으로 도망쳐 최대한 형사들로부터 멀리 도망친다. 내 옆에서 같이 도망치는 저승사자 소녀와 함께. 언제나 미안하게 만들어버린다.


"정말 그런 선택을 하시다니..."


저승사자 소녀가 옆에서 그렇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무모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형사들이 내가 범인인 것을 확신하게 만들려면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 쓴웃음으로 받아주고 대교로 몸을 움직인다.


난간에 팔을 걸쳐 아래를 바라본다. 물살이 빠르게 흐른다. 저기에 휩쓸리면 살아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내 목적은 자살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살아 도망치는 것 뿐. 일단은 다리를 건널까... 그 생각을 할 때.


"앗."


"어라..."


검게 물들었던 하늘에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에 의미가 담겨 달이 넘어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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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 # 예고 20.06.19 19 0 8쪽
33 33 # 환기 +1 20.06.19 15 1 8쪽
32 32 # 빈자리 20.06.19 26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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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 휴식 20.06.15 1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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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 방황 20.06.14 34 0 7쪽
» 22 # 도주 20.06.13 16 0 8쪽
21 21 # 현실 20.06.13 33 0 8쪽
20 20 # 연심 20.06.12 32 0 8쪽
19 19 # 뒤쫓는 추적 20.06.12 61 0 8쪽
18 18 # 반사되는 분위기 20.06.12 30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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