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귀화
#70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마음이 복잡해진 요시토시가 같이 조선을 방문한 승려에게 질문했다.
"조선왕이 직접 함경도로 가라 하였으니 가보고 결정하시지요."
"만약에, 그 이빨을 보고도 거절한다면? 무사히 대마도로 갈 수 있겠나?"
"그것은 알 수 없지요."
요시토시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말인가?
다음날, 단출한 인원이 궁을 나섰다.
콘크리트로 정비된 긴 도로가 퍽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도 보지 못한 큼지막한 도로 사이로 지나가는 화려한 마차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자신이 알던 조선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화려한 마차 안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조선인들.
순간, 일본보다 앞선 조선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고개를 강하게 저으면서, 통역사에게 말을 건넸다.
"조선에 이런 도로가 언제부터 있었나?"
"올해 신선도령이 전하께 건의하여 만든 것입니다."
"신선도령?"
"신선의 제자라는 풍문이 있는 분입니다. 홀연히 어디선가 나타나서 지금 보시는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허어, 이런 멋진 도로를 만들었다니 참으로 뛰어난 도공인가 보군."
"도공이라니요? 소과와 대과를 연달아 장원급제한 천재 중 천재입니다."
"뭐, 문관이 이런 도로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라 지금 북벌에 사용하는 소총도 만들었습니다."
"소총? 혹, 조총을 잘 못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
"조총이라니요? 하늘의 신묘한 힘을 빌린 총의 이름은 소총이 정확합니다. 그걸 어찌 잊는단 말입니까?"
"허, 그렇단 말이지."
"네, 혹여나 그분과 만난다면 예를 다하십시오. 전하께서 아끼는 사람이니 친해져서 나쁠 것 없을 것입니다."
"알았네, 내 그 사람을 만난다면 성심성의껏 대하겠네."
"길이 멉니다. 가는 길에 드시라고 전하께서 도마도를 하사셨습니다."
"도마도?"
"아, 도마도도 신선도령이 선계에서 가져온 음식입니다."
"뭐, 선계에서 가져와?"
"네, 한번 드셔보시지요."
방울토마토를 입 안에 넣은 요시토시.
'뭐야, 뭐가 이렇게 맛있어.'
계속 방울토마토를 입에 욱여넣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통역관이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총사령관님, 인근의 여진족 부락이 조선에 귀화를 요청하였습니다."
"음, 이번에 몇 번째지?"
"지난 대승 이후로 17번째 귀하 요청이옵니다."
비록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었지만, 여진족 육천을 갈아버렸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는 격전.
아무리 입을 조심하여도 주변에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 이번, 조선의 장군이 하늘을 부린다는군.
- 조선 장군이 손을 흔들자 하늘에서 하얀 천사들이 날아와 기마병을 쓸어버렸다는데?
- 그뿐만이 아니네, 쇠몽둥이가 불을 뿜을 때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 땅의 신이 노하여, 말과 사람을 하늘로 날려버린 건 또 어떻고?
- 나도 들었네, 그때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사람이 다 찢어져서 죽었다네
- 어흑, 무서워. 이러다가 조선군이 들이닥치면 어찌한단 말인가?
- 자네, 못 들었나? 조선에 귀화하면 식량과 음식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네.
- 그뿐만 아니라, 새롭게 수복하는 땅을 나누어주고 그 땅에서 난 소실도 가질 수 있다는구만.
- 남쪽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지만, 이런 땅에선 무슨 작물을 키운단 말인가?
- 조선에서 땅에서 키우는 둥근 마 같은 작물이 있는데 맛도 있고, 어디서나 잘 자란다는군.
- 나도 그 소리는 들었네? 그 이름이···?
- 태극감저!
- 아 맞어, 태극 감저라고 했지.
- 이대로 있다가 전쟁에 끌려갈 바에는 조선에 귀의하여 이참에 땅을 일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 그럼, 이참에 우리도 조선으로 갈까?
- 뭐? 그건 좀 그렇지 않은가?
- 예전에도 번호로 지냈는데, 뭐가 어떤가?
- 그건 그렇지.
***
"사람들이 귀화하는 것은 좋지만, 정서가 우리와 같지 않고 언어도 다른 것이 걱정됩니다."
"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차차 보완해 나가야겠지."
미국을 보자.
다양한 민족이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아직도 차별과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갑자기 모든 만백성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땅이 커지면 그에 따라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느냐가 문제.
"조정에 알려서, 병사를 더 보내달라고 하고, 소총과 병기의 생산도 계속 재촉해주게."
복잡한 마음에 연병장을 나왔다.
최근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하는 것이 유행되어있었다.
그리고, 무강이는 열심히 태권도를 전파하고 있었다.
'무강의 360도 회전차기를 본 사람들은 못 참지.'
멋있음과 사내다움은 어느 시대나 통했다.
특히, 여진족 어린이들이 평소에 본 적 없는 화려한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어린이 태권도 도장이 생기는 거 아니야?'
이후 집에 돌아간 아이들이 태권도를 외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으며, 태권도를 모르면 따를 당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 것은 조금 더 지난 후였다.
"귀화한 곳의 부족장을 모아라."
땅을 넓히는 것 보다, 그 땅을 안정시키고 자국의 문화로 흡수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지.
내가 아니면 또 누가 한단 말인가?
어휴, 이놈의 조선···.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것은 알 까나?
얼마 후 부족장이 말을 타고 빠르게 초소로 모여들었다. 초소 안으로 들어가자 부족장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당분간은 계속 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자마자 전쟁을 이야기하자, 막사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혹시나 군인들을 강제로 징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듯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역시, 사람은 어디나 똑같구나.
사람을 이끌려면 심리를 이용해야 했다.
하나를 줘야, 다른 하나를 받아 올 수 있는 게 세상의 이치.
"전쟁에 참여하시면 그에 따라 전쟁 배상금과 넓어진 토지를 다시금 분할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부족 안에서 권한도 기존과 동일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웅성웅성.
강제로 병력을 당연히 차출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병력을 지원해 주면 돈을 배상하겠다니.
게다가 기존의 통치권을 인정해준다고?
파격적인 제안에 부족장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단, 한번 조선에 귀화하시면 다시 나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여진 무리로 가신다면 그 책임으로 목숨을 받겠습니다."
권한을 주었으니, 책임도 지라는 말.
"지금이라도 이 제안이 싫으시면 돌아가십시오. 단, 이 자리에서 나가면 그때부터는 전쟁입니다."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이미 조선으로 귀화하기로 마음먹은 부족장들에겐 큰 거부감은 없었다. 서로 눈치만 볼 뿐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좋습니다. 아마 당분간 전쟁으로 인해 양을 키우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척박한 땅에 키울 만한 농작물과 집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부족하면 기존처럼 양을 키우면서 이동해도 됩니다."
"총사령관님, 혹시 그 농작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부족장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이미, 몇몇 분들은 가져가셨을 텐데요. 태극감저와 옥수수, 그리고 추운 곳에서도 자랄 수 있는 벼입니다."
"뭐···. 뭐라고요? 벼라고 하셨습니까?"
"네, 아래 지방보다 수확량은 적지만, 가뭄에 강한 벼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환경에 자랄 수 있는 작물이 있었다면?
부족장이 기쁜 얼굴로 추가로 질문을 해왔다.
"그러면, 논과 밭은 어찌 일군단 말입니까?"
"농기구는 드리고, 말을 이용하시면 어느 정도 농작물을 키우실 수 있을 겁니다. 부족한 것은 염소와 양을 키우시면 되고요. 그리고 전쟁이 안정되면 무역도 늘어나겠지요."
말을 마치자 부족장들이 머리가 복잡하게 셈을 하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조건, 그동안 두만강 아래 지방을 차지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안정적인 삶과 식량 확보를 위한 것. 그것을 지금 조선의 총사령관이 해준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총사령관님."
"총사령관님,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위대하신 분입니다."
"하늘의 기운을 받으셨다고 하더니, 그 말이 진실이었군요."
"부디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후로도 부족장들과 여러 가지 사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요시토시가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총사령관님, 대마도에서 온 요시토시입니다."
전령이 요시토시를 소개했다.
[뭐 막상 보니 별로 대단한 것은 없군. 이자가 총사령관인가 보군?] [일본어]
요시토시가 아무 생각이 일본어로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일본어를 못 알아들을 거라는 착각으로 인한 행동이었을 듯한데···.
일본의 사료를 공부하기 위해서 내가 일본어를 안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별로 대단한 것 없는 곳의 총사령관이다.]
일본말에 깜짝 놀란 요시토시가 나를 보았다.
[어···. 어떻게 일본말을···.]
[왜? 내가 일본말을 하는 게 이상해?]
[...]
할 말을 잊어버린 요시토시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전하께 이미 연락은 받았다. 조선의 위대함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마침, 시연이 있으니 따라와.]
퉁명스럽게 말하곤,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부족장과 요시토시 일행이 향한 곳.
항상 그렇지만 말보다는 한 번의 경험이 더 설득력이 좋았다.
처맞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니깐.
그렇게 조선 소총의 위력을 다시금 보여주어야 했다.
준비된 소총병들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아직 소총을 잘 모르는 부족장과는 다르게 요시토시는 소총에 흥미를 보였다.
[조선의 소총을 보고 싶은가?]
끄덕.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요시토시.
나는 요시토시에게 소총을 건네주었다.
소총을 여기저기 살피던, 요시토시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총이 맞긴 한 거요? 용두(화승총에서 화약에 불을 붙이는 부분)가 없는데?]
[하하하. 용두나 쓰는 저급한 화승총을 아직도 일본은 쓰나?]
내 말에 얼굴이 불타오르듯 붉어진 요시토시.
[용두가 없어도 되는 총이라···. 하면, 개머리판은 왜 이렇게 큰 것이요? 이리하면 휴대하기 불편하고, 배에서 사용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뭐라고, 변명이라고 하고 싶어 하는 눈치.
그런다고 내가 휘둘릴까.
[정말로 아둔한 자로군. 휴대만 편하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총이 좋은가? 아니면 휴대가 다소 불편해도 정확도가 높은 총이 더 좋은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요시토시였다.
이후 몇 가지 궁금한 것이 더 있었지만, 물어볼수록 무식하다고 실컷 놀려주었다.
그러게 왜 오자마자 주둥아리를 털어.
사람들과 연병장 한쪽에 자리를 틀고 앉자, 시연 행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은 활로 과녁을 맞히는 시연.
하지만 활로 과녁을 단 한발도 맞추는 사람은 없었다.
"총사령관님, 저렇게 먼 거리에서 화살을 맞추기 어렵고, 혹여 맞춘다고 해도 살상력이 떨어집니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부족장이 나를 가르치듯 나서서 이야기했다.
"어디 부족장이라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부족장에게 이야기했다.
"어. 그건···."
금세 꼬리를 마는 부족장에게, 이순신 장군이 다가가 말했다.
"부족장님, 적당히 하시지요. 설마 총사령관님이 그것도 모르고 활을 쏘았겠습니까? 조총 시연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십시오.
그리곤, 같은 위치에서 소총병들이 가늠쇠로 표적을 조준하였다.
[일본의 조총으로는 이 정도 거리에서 사격할 수 있습니까?]
[불···. 불가능합니다.]
[저런, 이렇게 가까운데도 못 맞추다니. 조총이라더니 정말 새나 잡는 총이군요.]
내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요시토시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게 왜 까불고 난리야?
나는 그런 요시토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요.]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탕!탕!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른 뒤, 병졸 한 명이 과녁판을 가지고 왔다.
10점. 9점. 9점. 8점. 10점. 9점. 8점. 6점.
"야, 6점 누구야?"
내가 격하게 소리치자 이순신 장군이 소총병을 노려봤다.
그 순간 소총병들의 눈이 한 명을 가리켰다.
"열외"
이순신 장군의 앙칼진 목소리에 고개를 푹 숙인 병졸.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붉은 모자의 교관.
그렇게 멀어져 가는 소총병.
그러게, 연습을 많이 했어야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앞에 있는데 이따위 실력이라니.
내일부터 다시금 특훈이다. 이것들아!
"하하하, 이거 못난 모습 보여서 죄송합니다."
이순신과 소총병들이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입은 모두 쫙 벌려져 있었다.
- 화···. 활로도 맞추기 어려운 거리였는데?
- 조총으로 이렇게 정확한 사격이 가능한가?
- 이게 뭐야?
- 정말로 저 정도 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하단 말인가?
- 정말로 육천명을 갈아버렸다는 게 사실이었나?
- 귀화하길 잘했군.
- 그러게, 귀화하길 잘했어!
- 자네는 일본에서 왔나?
- 자네도 귀화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뻐끔뻐끔.
말을 못 하고 있는 요시토시의 머리 위로 새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무언가가 편대를 이루어 날아들었다.
[조선, 날 가져요.]
요시토시는 무릎을 꿇으면서 귀화를 결심하고야 말았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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