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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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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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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3,747

작성
20.12.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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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조우

DUMMY

2020년 12월 1일.

삼일전자 수면시계 출시 예정일.



“어? 저기 왔다!!!”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 앞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 검은 벤 한 대가 검찰청 앞에 선다.



또각

또각-



차 문이 열리고 갈색 웨이브 진 머리의 한 여자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내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여기저기서 찰칵 소리와 함께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한양일보 유진아기자입니다. 수면 시계 부작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오늘 수면시계 출시는 예정대로 진행하시는 겁니까?”


“중안일보 강민혁기자입니다. 삼일전자 쌍둥이 부회장 이세진, 이세연 두 분이 이상철 회장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숨겨왔던 이유가 뭡니까?”


“피험자들이 인지하지 못한 채 강제로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임상시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겁니까!”


“이세연 부회장이 외부 압력에 의해 아현병원에 의도적으로 잠재워지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이세진 부회장님. 한 말씀만 해주세요!!!”



각지에서 몰려온 기자들은 저마다 수십 가지 질문 리스트들을 그녀의 앞에 뿌려 댄다. 그녀는 말이 없다.



“비켜주십시오.”



세진의 경호원들이 세진을 둘러싸고 기자들을 가로막는다.



“이세진 부회장님!!!!!”



한 여기자의 또렷한 목소리가 수백의 웅성거림을 뚫고 나온다.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은 사실입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뭐야. 사람을 죽였어?”


“저 정보는 어디서 입수한 거야!!!”



“비밀리에 임상시험을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시험 중에 수십 명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제보가 있었구요. 이 모든 소문이 사실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게 진짜면 삼일전자 망하는 거 아냐?”


“대기업에서 어떻게 사람을 죽여!”


“사실입니까. 이세진 부회장님?!”


“사실 여부만 말씀 부탁드립니다!”



검찰청 앞까지 말없이 걷던 세진이 뒤를 돌아보고 선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웅성거림이 멈춘다.



“오늘 예정되어있었던 삼일전자 수면시계 출시는.”



모두가 세진에게 집중한다.



“없습니다.”



웅성웅성-



“지난 2년간 수면시계 프로젝트에 투자한 자금이 수 백억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모든 비용에 대한 이익을 포기하시는 겁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만 수면시계 출시는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영원히.”



“들어가시기 전에 한 말씀만 더 해 주시죠!!!”


“이세연 부회장은 지금 어딨습니까!”


“이상철 회장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부회장직은 물러나시는 겁니까?”


“이세진 부회장님!!!”




‘아···’



세진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이제 정말 끝났다.

후련하다.


정말로.


아무런 미련도

없다.




“이세진 부회장님!!!”



세진이 마지막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익숙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에서 내려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세진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보고 싶은데.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모습이 쪽팔렸다. 그에게 자신은 항상 자신 있고, 당당하고, 우월한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려온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소리가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진의 머릿속에는 수 천 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돌아봤을 때.

그 앞에는 너무나도 그리웠던 얼굴이 있다.



‘태수씨···’



“기다릴게요. 1년이든, 2년이든, 3년이든, 10년이든 지금 이 자리에서 기다릴게요. 그 시간 동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내가 항상 옆에 있을게요. 그리고 이세진씨가 정말 괜찮아지면!!!”


“···”


“저랑 밥 먹어요. 우리 처음 만났던 그곳에서.”


“으흑···”



눈물이라는 것은 원래 참아내려 할수록 더 흐르는 법.


솔직히 33년 인생동안 힘들었다.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을 탐내면서 내 마음은 항상 불안했고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 행동하니까.


그런데 정말 내 편이 생겼다. 이렇게 후진 나라도 기다리겠다고 한다. 내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저 좋은 사람을 내가 탐내도 되는 걸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모르겠다 이젠.


그냥.

나는 지금 행복하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태수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짓고는 검찰청으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미친놈은 뭐야.’ 하는 표정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수는 안다. 세진의 미소가 진심이라는 것을.




***



[12월 1일 오늘 오전 8시 삼일전자 이세진 부회장이 검찰에 출두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그간의 의혹들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밝혔으며, 모든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다만 중안일보 한 씨와 피험자 김 씨, 그리고 2년 전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이 박사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세연 부회장은 아현병원 VVIP 중환자실 1701호에 잠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수면제 강제 투여는 오늘 오전 중단했으나, 장기간 투여를 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완전히 깨어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세진 부회장과 수면시계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부하직원 박 씨에게는 지명수배령이 내려졌으나, 여전히 행방이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이세진 저년이 진짜 미쳤나···”



오후 7시. 삼일전자 이세진 부회장의 소식이 다시 한번 뉴스로 전해진다.


박재우는 남양주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비밀 별장에서 뉴스와 라디오를 통해 바깥세상 소식을 접하며 분노한다.



“2년 동안 개고생해가며 만든 내 수면시계 프로젝트를··· 니가 뭔데 중단해!!!!!!! 씨발!!!!!!!”



그의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 들지 않는다. 그 간 자신의 손에 한 줌의 재가 되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 더러운 피들을 직접 손에 묻혀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그가 설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박재우는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전화를 한다.



[예.]


“박재우입니다. 김혜성 박사 운 좋게도 아직 안 잡혀 들어갔나 보군요.”


[내일 출두하기로 했습니다.]


“배짱도 좋아? 모든 일이 밝혀지면 자네의 교수 생활은 이걸로 끝일 텐데요.”


[···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제 일은 앞으로 제가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통장을 확인해보십시오. 원래라면 인천 공항에서 김 박사에게 주기로 했던 30억 중 10억이 입금 되었을 겁니다.”


[···뭡니까.]


“내일 검찰에 출두하시면 모든 지시는 이세진 부회장한테 받았다고 전하십시오. 나 박재우는 모든 일과 관련이 없는 겁니다.”


[이미 녹음 파일에 박 이사님 목소리가 모두 담겨있을 텐데요.]


“녹음 파일 정도야 조작 가능해. 그건 증거로 효력도 없다고. 오늘 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에서 내 존재를 지워주십시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빚이 15억 정도라고 하셨나? 일이 잘 마무리되면 나머지 20억 입금 드리지요. 이번엔 약속 어기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들분도 잘 설득하세요. 모든 일을 이세진 부회장 책임으로 만드는 기사를 쓰라고 지시하십시오.”


[예. 그럼.]



‘역시 인간이란.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은 없지.’



김헤성과 통화를 마친 박재우는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뜨린다.


그리고 다른 한 명에게 또다시 전화를 건다.



[나천재입니다.]


“박재우네.”


[···할 말없습니다.]


“그간 쌓아왔던 노력이 아깝지 않은가? 자네 이대로 인생 끝날 수도 있어. 의사로서의 삶도 포기해야겠지.”


[제 인생이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삼일 병원에 자리 하나 만들어주지. 정신의학과 조교수로.”


[제 능력에 맞는 직책이 아닙니다만.]


“세상의 모든 성공이 능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인생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2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돈과 인맥. 이 두 가지가 있다면 능력 따윈 중요치 않아.”


[···]


“무슨 말인지 알겠나? 김헤성 박사와는 이미 이야기 끝났네. 이세진 독박으로 만들어.”


[생각해보지요.]


“시간이 얼마 없을 텐데.”


[알겠습니다. 대신 이번에 약속 안 지키시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 김 박사가 자네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어.”


[과찬이십니다.]


“일 잘 끝나면 이 인연 오래 유지하자고.”


[예. 쉬십시오.]



김혜성, 나천재. 이 둘과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이유가 있다. 한 명은 돈에 목말랐고 한 명은 지위에 목말랐다.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한 사람과 하루만 지내보면 이들이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가 답이 나온다.


사람마다 마음속 깊이 숨겨두고 있는 욕구를 끄집어내는 것이 박재우가 가진 최고의 능력이다.



“이래서 항상 사람을 잘 선택 해야 하지. 하하하하하.”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린다.

역시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박재우는 마지막으로 한 명에게 더 전화를 건다.



[···]


“잘 지냈나. 강현재군.”


[···닥쳐.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내가 자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무엇이 있겠나.”


[헛소리 집어치워. 별장에 숨어 있는 거 다 알아. 경찰들이 이미 당신 소재를 파악했고 당신은 수 시간 내 조사를 받게 될 거야. 더 이상 숨어 있을 생각 마.]


“조사를 받는다고 다 구치소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 나의 운명은 자네에게 달렸네. 강현재군.”


[죄가 있으면 들어가겠지. 한방만, 김현수, 그리고 이철박사. 당신이 죽인 거 맞잖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장기판에 장기 말일 뿐이야. 모든 인간의 목숨값이 같은 건 아니지.”


[양아치새끼.]


“행복하고 싶지 않나.”


[어디서 개수작이야.]


“일단 삼일패션나와. 전자, 후자, 팔자 중 팔자에 있을 위인이 아니야. 전자에 팀장 자리 하나 내주지.”


[뭐···?]


“최근 몇 년간 항상 그렇게 말해왔었지 않나. 자네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회사 때문이라고.”


[···언제부터 나를 관찰 한 거야.]


“자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정태수 때문이 아니었어···?]


“그건 알아서 생각하게. 아무튼. 삼일전자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라구. 차도, 집도 내가 마련해주겠네. 내일 검찰에 가서 나에게 힘을 실어줘. 모든 것은 이세진 부히장 독단적으로 행한 일이라고.”


[집을··· 주신다구요? 요즘 서울에 집값이 장난 아닌데!!!]


“하하하하. 그 정도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지.”


[집을 주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제 인생의 목표가 사실 서울에 집을 사는 거였거든요!!!]


“말이 잘 통해 다행이네.”


[분부대로 합죠.]


“믿겠네. 강현재군. 역시 자네는 일우의 아들이야.”


[평안한 밤 보내십시오.]


“그래. 자네도 이만 자 두게. 내일 꽤나 머리를 써야 할 테니.”


[예. 그럼.]




“하하하···”



박재우는 자신의 별장 안에 있는 양주 창고에서 가장 비싼 양주를 꺼내 온다.



“참으로 꿀 맛이구나.”



세상은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일우. 솔직히 자네가 어떻게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인지는 모르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지. 일우 자네는 자네의 아들로서 나에 대한 죗값을 치르려는 거야. 나에게 준 선물을 안 받기는 미안하니 일단 받아 두도록 하지. 물론 자네를 용서한 것은 아니네. 하하하하하하.”



넓고 적막한 별장에 박재우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



“진짜 미친놈인가.”


“어휴. 아직도 세상이 자기 맘대로 돌아가는 줄 아네.”


“꼰대들의 특징이지. 지금이 옛날인 줄 아나. 진짜 누구 인생 말아먹으려고.”


“그나저나 강현재. 너 연기 너무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기자와 천재. 너희 친구라고 해서 똑똑한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삼일호텔 스위트룸에 형사 한 명과 다섯 명의 남자가 모여 있다.


각자 박재우와 통화를 마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는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게임에서 승리해 만세를 외치는 어린아이들 같다.




수면시계는 매일 오후 11:30 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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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김기자(1) 20.12.20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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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전야제(前夜祭) 20.12.18 14 0 12쪽
68 해국(2) 20.12.17 12 0 12쪽
67 해국(1) 20.12.16 20 0 13쪽
66 박재우(5) 20.12.15 12 0 12쪽
65 박재우(4) 20.12.14 13 0 13쪽
64 박재우(3) 20.12.13 16 1 12쪽
63 박재우(2) 20.12.12 15 0 12쪽
62 박재우(1) 20.12.11 2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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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5번 피험자 이세진(4) 20.12.09 13 0 12쪽
59 55번 피험자 이세진(3) 20.12.08 22 0 12쪽
58 55번 피험자 이세진(2) 20.12.07 12 0 11쪽
57 55번 피험자 이세진(1) 20.12.06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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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4번 피험자 박혜원(5) 20.12.04 17 0 12쪽
54 54번 피험자 박혜원(4) 20.12.03 14 0 12쪽
53 54번 피험자 박혜원(3) 20.12.02 13 0 11쪽
52 54번 피험자 박혜원(2) 20.12.01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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