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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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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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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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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433,747

작성
20.12.0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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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4번 피험자 박혜원(6)

DUMMY

“으아아아아악!!!! 왜 여기 있는 거야?!”


“왜 여기 있긴. 내 꿈속인데. 이렇게 들어오는 거였구만~?”



혜원의 꿈속에 떨어지자마자 10cm 앞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에 서 있는 혜원의 모습에 당황한 현재. 그런 현재를 보며 혜원은 이제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인다.



“당신들이 내 꿈속에 언제 오나 기다렸어. 할 말이 있었거든.”


“뭐 고맙다는 그런 말이라면 우리도 자주 들어서 굳이 할 필요...”


“아니요. 그쪽 말고 이세연씨한테.”


“사람 무안하게...”


“뭔데. 나한테 할 말이 뭔데?”


“그래도 언닌데 존댓말은 써주라.”


“뭔.데.요. 박혜원씨?”


"전에 니가 그랬지. 이무영 안에는 내가 없어질 수 없어서 항상 불안하다고."


"그때 일은 굳이 또 왜 꺼내? 나 이무영 다 잊은 지 오래야. 그런 사람 이제 내 기억에 없어."


"근데 있잖아. 무영씨가 나한테 미련 남았던 게 아니라 내가 이무영한테 미련이 남았었어. 그렇게 싸우고 헤어진 게 미치도록 후회스러워서 무영씨가 싫다는 데도 내가 먼저 연락하고 찾아가고 그랬었어. 그러다 운 없게도 이세연씨에게 세 번씩이나 걸렸던 거고"


"그래서 지금 변명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필요 없다니까."


"둘이 연애를 했는데 상대를 온전히 사랑한 것은 한 명 뿐이다? 그런 기억만큼 고통스럽고 후회스러운 기억은 없어. 나는 고작 나로 인해 당신이 망가진 추억을 갖고 살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이무영은 이세연 당신을 완벽하게 사랑했어. 5년을 만났는데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어. 그래서 내가 미련 없이 포기한 거야."


"...그렇게 굳이 굳이 말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덜 억울하네. 나를 사랑하긴 했었다니."


"세연아. 넌 정말 매력적인 여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가 너를 많이 질투했었다. 늦었지만 사과할게."


"사과... 하니까 받아는 줄게. 근데 미안하지만 이무영, 언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놈도 아니었어. 이세진이랑 바람났거든."


"뭐? 이세진이라면 설마 네 동생?!"


"어. 정말 기가 막히지? 거의 뭐 아침 드라마 수준이야."


"이세진 걔 그렇게 안 봤는데. 아씨 내가 어떻게 포기했는데 그년 당장 데려와!!! 내가 아주 반 죽여놔야겠어."


"풉. 됐어 이무영도 딱 그런 사람이었던 거지. 날 버린 사람에게는 미련 없다. 내 새로운 삶의 신조야."


"역시 멋있어 이세연. 우리 악수나 할까?"



잠시 망설이는 세연. 이런 사과로 2년간 불안에 떨었던 내 마음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무렴 어때.

쉽게 생각하자.


가늘고 길게 뻗은 혜원의 손을 맞잡는 세연.

둘은 활짝 웃으며 악수한다.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은 진짜 자신들의 모습으로.



"아 참.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 수면시계나 줘 이제 언.니."


"어, 어 그래 언니라고 해. 하하핫 어색하네."


"시계."



세연은 혜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알았어 알았다구. 어떻게 주면 되는데? 주소 부르면 내가 보낼게. 아님 뭐... 직접 봐도 되고."



...영혼의 몸이 아닌 평범한 몸을 갖고 타인을 만나는 것.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저 꿈이 되어버렸다.

물론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계는 위치를 알려주면 내가 그냥 가져갈게."


"뭐? 그게 가능해? 내 책상 서랍 제일 윗 칸에 있어."


"뭐 지금은 가능해. 어이없게도."


"근데 도대체 너 무슨 일이야? 니 몸은 병원에 있고 설마 너는 영혼 뭐 그런 거야?"


"배우라 그런가 눈치가 빠르네. 맞아. 그리고 지금은 내 몸을 찾기 위해서 무지 열심히 노력 중이야."


"와 대박... 이거 영화로 만들게 되면 대박작이겠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그럴 일 없으니까."


"알겠어~ 아무튼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면 나 꼭 주인공 시켜줘야 한다!!!"


"하여튼 어쩌다 이런 사람이랑 엮여가지고."


"야 섭섭하게 그러지 마라~!"



혜원은 세연이 귀엽다는 듯 바라본다. 세연도 팅팅 거리는 말투와는 달리 언니가 생긴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어렸을 적부터 비즈니스 관계로만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진짜 친구가 없었다. 다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세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가왔고 세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세연에게 최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생겼다.


첫 번째는 강현재. 이 사람과의 만남은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세연의 서른둘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마음을 온전히 터놓은 친구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어쩌다 보니.


그리고 두 번째는 황당하게도 옛 애인의 전 여친 박혜원. 이제는 박성희라고 불러야 하나? 세상에서 가장 앙숙이었던 사이가 어쩌다 보니 서로를 돕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하며 진심으로 웃고 있다.



"어쩌면 나중에 내가 깨어나게 되면 언니랑 진짜 친구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연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부끄러운지 혜원을 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기다릴게. 꼭 돌아와 내 동생 세연아."



배우라서 그런지 혜원은 부끄러운 마음을 잘도 숨긴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눈에 보인다.



“아 참 그리고 흠... 이 남자분인가? 그때 밥해준 거 고마워요!!!”



혜원은 작별인사를 하다 말고 현재를 가리키며 말한다.



“헉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분명 엄마 목소리로 통화했었는데...!!!”


“우리 엄마 요리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근데 국이 좀 짰어. 물론 이세연 성격에 따뜻한 밥상을 차려줄 애도 아니고? 그럼 답은 하나죠.”


“짜셨다니 유감이군요... 흑.”


“그래도 그거 빼고는 반찬들 다 너무 맛있었어요. 나중에 애인한테 해주면 너무 좋아할 것 같네요. 뭐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지만? 호호호.”


“헛소리 말고 집에나 가.”


“이세연씨 우리가 가야 해... 여기 박혜원씨, 아니 박성희씨 꿈속이라고.”


“그, 그래...”



멋쩍어하는 세연과 박혜원의 미소를 끝으로 그녀와의 인연은 우선 그걸로 끝이 났다. 가면을 벗어 던진 그녀는 홀가분해졌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그녀는 아마 이전보다 행복할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흥미로운 것은 어떤 인연이 언제 어떻게 발전할지 모른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아저씨도 그런 인연이 있었나요?"


"있었죠.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던 인연들이."



그래. 아저씨도 분명 가족이 있었고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나와 이세연씨만 생각하느라 아저씨의 아픔은 잊고 있었다.


아저씨는 무엇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계시는 걸까?



"현재군도 깨어나게 된다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세요.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꼭 그럴게요. 아저씨."




시계는 혜원이 잠든 사이를 틈타 저택으로 가져왔다.


이제는 마지막 55번 피험자 단 한 사람만이 남았다.




*** 나천재와 김혜성박사의 연구실



최근 며칠간 피험자 정보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삼일전자 측에 의하면 우리가 수면 물질에 대해 업데이트를 요청하면, 그쪽의 기술로 물질을 재배합해 피험자들이 가진 시계 역시 업데이트가 된다고 했다.


우리는 3차례에 걸쳐 물질 업데이트를 요청했고 그에 따른 피험자들에 대한 임상 결과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제공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마지막 3차 업데이트 이후에는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따르릉 따르릉-



“이세진입니다.”


“이 부회장 나 김혜성이야. 최근 피험자 정보들을 왜 전송 안 하는 거야?”


“그게 사정이 좀 생겼어요. 우리도 알아보고 있으니까 좀만 기다려요.”


“이게 며칠째야? 우리한테 속도를 내라면서 요청하는 건 재깍재깍 못하고.”


“...3일 내로 경과 알려드릴게요.”



툭.



“삼일은 맨날 이런 식이야. 대기업도 별수 없군.”


“그런데 박사님. 사실 박사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얼 말인가. 나천재군?”


“우리가 아무리 완벽한 물질을 만들어 내더라도 완벽한 시계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요.”



그렇다. 이틀 전 나천재와 김혜성 박사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물질을 만들어냈다. 최초 배포 시, 그리고 아마 2년 전 이철 박사가 만들었던 물질은 ‘충동성’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실험 쥐들이 벽에 스스로 머리를 부딪쳐 치사율이 50%가 넘었다면 이번 물질은 그러한 부작용이 0%에 가깝다.


그런데 시계는 별개의 문제다.

사용자의 의존성 자각에 의한 우울감 극대화, 그리고 이 시계가 제한 없이 유통됨으로써 생겨날 각종 범죄들. 해당 부작용은 수면 시계가 존재하는 한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알고 있네.”


“그런데 왜 박사님께서는 그만두지 않으시는 겁니까. 제가 예전에 알던 박사님은 신념에 맞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는 분이셨는데...”


“그래서. 실망스럽나 천재군?”


“실망스럽다기보다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신념이 바뀌어야만 하는 계기가 온다네. 천재군도 인생을 좀 더 살다 보면 분명 그런 계기를 맞이하게 될 거야.”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부디 그런 계기가 오지 않길 바라지만. 허허.”




***



세연이 54번째 피험자 박혜원의 시계를 시계 통에 넣으며 말한다.



"다른 피험자들 시계 회수도 다 끝났고 다른 팀은 잘하고 있으려나?"


"그러게. 우리가 좀 엘리트팀이어야 말이지."


"허허. 다른 팀들도 이제 대부분 마지막 피험자를 남겨두고 있다고 합니다."


"예?! 분명 우리가 훨씬 앞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해국이 애초에 최고급 인력들로 선별했으니까요."


"속도 말고 자기 자랑은 최고네."


"그러고 보니 몸이 이렇게 된지도 꽤 오래됐네. 물론 이세연씨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현실 시간으로 한 달은 훌쩍 넘은 것 같아."


"아마 그 정도 될 거야."


"엄마랑 누나도 나 이렇게 된 거 알고 있겠지? 캐나다에 있었는데."


"전해 듣지 않았을까? 한 번 찾아가는 게 어때?"


"아니야. 보면 괜히 마음만 아플 것 같아. 나 깨어나고 진짜 몸으로 보러 갈래."


"그렇다면 뭐... 그러던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세연.



"아···아아악···!!!”


"왜 그래 이세연씨?!"



세연이 갑작스레 고통스러워한다.



"모르겠어. 갑자기 몸이 너무 아파. 아아...!!!"



미쳐버릴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강현재는 너무 아프다.



"일단 나한테 업혀. 이상하다 방금까지 멀쩡했던 것 같은데..."


"...현실 세계의 몸에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예?! 도대체 누가...!!!"


"현재군은 일단 세연이랑 같이 있어 주세요.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저 그런데 55번 피험자가..."


"지금 이 상황에서 55번 피험자는 왜요!!!"


"이세진씨군요."




세연과 현재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

이세연의 동생 이세진의 이름이 피험자 리스트 맨 아래에 적혔다.



이.세.진



너무나도 선명하게.




수면시계는 매일 오후 11:30 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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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朋友有信(3) 20.12.24 15 0 12쪽
74 朋友有信(2) 20.12.23 37 0 12쪽
73 朋友有信(1) 20.12.22 35 0 12쪽
72 김기자(2) 20.12.21 15 0 12쪽
71 김기자(1) 20.12.20 38 0 12쪽
70 현실로 돌아왔다 20.12.19 20 0 13쪽
69 전야제(前夜祭) 20.12.18 15 0 12쪽
68 해국(2) 20.12.17 12 0 12쪽
67 해국(1) 20.12.16 21 0 13쪽
66 박재우(5) 20.12.15 12 0 12쪽
65 박재우(4) 20.12.14 13 0 13쪽
64 박재우(3) 20.12.13 16 1 12쪽
63 박재우(2) 20.12.12 16 0 12쪽
62 박재우(1) 20.12.11 28 0 11쪽
61 55번 피험자 이세진(5) 20.12.10 16 0 11쪽
60 55번 피험자 이세진(4) 20.12.09 14 0 12쪽
59 55번 피험자 이세진(3) 20.12.08 22 0 12쪽
58 55번 피험자 이세진(2) 20.12.07 12 0 11쪽
57 55번 피험자 이세진(1) 20.12.06 44 0 12쪽
» 54번 피험자 박혜원(6) 20.12.05 22 0 11쪽
55 54번 피험자 박혜원(5) 20.12.04 18 0 12쪽
54 54번 피험자 박혜원(4) 20.12.03 14 0 12쪽
53 54번 피험자 박혜원(3) 20.12.02 13 0 11쪽
52 54번 피험자 박혜원(2) 20.12.01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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