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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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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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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43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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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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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박재우(5)

DUMMY

“회장님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



그 후로 박재우는 삼일가에 입성했다.

재벌 집안치고 그들은 생각보다 젠틀했다. 확실히 돈이 많아서 그런지 무게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부유한 자들의 싸가지’그런 것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이 회장은 밖에서는 그러고 다니면서 집안에서는 과묵함을 유지했고 사모님이나 세연에게서는 부자들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렇게 이 회장 댁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삼일가의 비서 실장으로 자리 잡았다. 애초에 체력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지라 업무에는 금방 적응했다.



그의 눈에 띄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세진.



“그럼 내가 이 회사 가질 수 있어요?”



세진이 7살 때 재우에게 했던 말이다. 어쩌면 이 아이를 이용하면 삼일가에 대한 복수는 물론이거니와 권력을 이용하여 강일우에 대한 복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진 같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은 온몸을 뾰족한 가시로 포장하고 있어 언뜻 보면 무섭고 도리어 내가 다칠 것 같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인간에 익숙하지 않다. 다시 말해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분별해 내는 감각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떨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잘 믿고 사람에게 잘 속는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보다 삐딱한 학생들이 가끔은 더 순수해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이 인생의 멘토 한 명을 잘 만나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례는 여러 번 봐왔다.


어쨌든 세진과 같은 사람들은 한마디로 쉽게 넘어간다.



하지만 세연의 경우, 사람이 똑똑하다. 물론 세진 역시 본래 아이큐가 높고 똑똑하기는 했지만 세연과 세진은 결이 달랐다. 세진이 외강내유 스타일이라면 세연은 완벽한 외유내강 스타일. 같잖은 회유나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런 여자였다.


예를 들면, 세연은 내가 삼일가에 들어갔던 첫날부터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 웃음은 순수한 웃음이었다. 세진이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 때 세연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집안 행사가 있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아저씨, 아저씨도 얼른 오세요~’하며 나를 챙겼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자랑했고 나를 칭찬했고 내가 멋진 사람인 것처럼 포장해주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그 친절함에 넘어갈 뻔했다.


사람을 어려워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호의를 베풀고 배려를 해도 그녀를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분명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강일우 그놈처럼 좀 재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내 목표는 여전했다. 삼일가의 따뜻한 대우에 가끔은 마음이 누그러진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지갑 속 내 아내와 아이 사진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세연이 가장 문제였다. 집안에서 가장 똑똑하거니와 쉽게 가까워질 수 없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100에서부터 시작된다면, 세진의 경우 90까지는 좁혀지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그 구간만 넘으면 0이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세연의 경우 10까지 좁혀지기는 쉽지만 그 마지막 10은 절대 내어주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을 완벽하게 믿지 않았다.


적을 속일 수 없다면 싸우는 것이 도리다. 물론 직접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삼일가의 녹봉을 받으며 일하는 일개 하찮은 개미이기 때문이다. 직접 부딪쳐봤자 손해를 입는 것은 박재우 자신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들 서로가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란 세진과 세연. 세연과 달리 세진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이 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진 역시 우리나라 대부분 여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삼일가 사람인 것이 알려졌든 알려지지 않았든 그녀에게는 ‘부’의 냄새가 났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래서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세진이 중학교 시절 전교 석차 9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매년 전교 10등 안에 들었던 세연과는 달리 세진이 전교 10등 안에 든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기쁜 나머지 성적표를 들고 집까지 뛰어왔는데 대문 앞에서 박재우와 부딪쳤다.



“아야!!”


“앗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그래 뭐···”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나 전교 9등 했어. 아버지께 자랑할 거야.”


“정말 잘하셨습니다. 세진아가씨. 그런데···”


“그런데 뭐? 반응이 왜 그래?”


“방금 세연아가씨가 아버지께 다녀갔습니다.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지고.”


“뭐···? 전교 1등?”


“예. 아무래도 아버지께는 안 가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만.”



풀이 죽은 세진은 ‘전교 석차 9/330’이 적힌 자신의 성적표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적 많이 올랐는데 아버지가 좋아하시지 않을까?”


“아니요 절대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왜 그래야 하는데!!!”


“회장님께서 수많은 계열사를 소유하고 계시지만 중심이 되는 계열사는 하나. 삼일 전자뿐입니다. 아가씨의 아버님께서는 항상 세연아가씨와 세진아가씨를 매의 눈으로 평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세연아가씨보다 낮은 성적으로 만족하는 모습이라니··· 그건 당치도 않아요!!!”


“그렇지만···”


“다음번에 전교 1등을 하고, 그때 회장님께 자랑스럽게 말씀드리세요. 세진아가씨가 세연아가씨를 이겼다고. 세연아가씨보다 똑똑하다고.”


“알겠어··· 그치만···”



재우는 슬픈 표정을 짓는 세진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준다. 운동을 한 몸이라 체구가 커 그 품은 나름대로 따뜻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손으로 세진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는 아가씨가 최고입니다. 언젠간 분명 세연아가씨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세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마침 이 회장이 방에서 나온다.



“세진아.”


“예 아버지.”


“니 언니가 오늘 성적표 가지고 왔던데.”


“···”


“아비에게 보여줄 것이 없느냐?”


“···없습니다. 아버지.”


“···알겠다. 들어가 쉬어라.”



하지만 그 뒤로 세진이 전교 1등의 성적표를 거머쥐는 행운은 없었다. 전교 2등과 3등을 맴돌며 남은 학창시절을 보냈을 뿐이다. 세연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만 키우며.




박재우는 그렇게 세연과 세진 자매를 멀어지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26년간 이를 악물고 이 회장이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완수해냈고 이 회장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회장의 신임은 세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마침내 나를 자신과 함께 일하게 해달라며 이 회장을 설득했다.




그렇게 세진과 함께 한 첫 프로젝트가 ‘수면시계’.



이철 박사가 죽고 김혜성 박사와 함께 새로운 임상 참가자를 모집했다. 그러던 중 기다리던 사람을 만났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강일우가 죽고 난 뒤 자취를 감추었던 그의 아들.



강현재를 드디어 찾아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역시 우리 옛말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우리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정태수 과장의 어린 시절 친구였으며, 이세진 부회장이 밀착 마크하고 있었던 그 피험자가 강일우의 아들이었다.


10년 전부터 그의 아들을 찾아내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아들을 눈앞에 마주하니 그렇게나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초라했다. 아버지가 삼일의 비서 실장이었으면 그래도 제법 떵떵거리며 살 법한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범한 회사원 말단 나부랭이로 성장해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딱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의 아들을 찾아, 그의 아들이 가장 행복한 시점에 그의 행복을 산산조각내는 것이 내가 간직해온 목표였는데 그는 세상의 불행을 혼자 짊어지고 사는 사람 같았다.



실망스러웠다.

강일우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고작 이 정도라니.



그치만 복수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죽여버리기로 했다. 어쩌면 차라리 그편이 불행한 영혼을 가진 강현재한테도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기는 했지만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 아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으니 강일우의 아들에게도 똑같이 갚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강현재가 강일우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시절, 우연치 않게 그 아들놈이 세진을 따라 회사 앞까지 찾아왔고 그렇게 한 달 넘게 이 병실에 누워있게 되었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그래도 한때나마 친구였던 강일우에게 약간의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다. 어차피 저렇게 누워있는 거 지금 죽으면 고통도 느끼지 않고 죽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배려심이 철철 넘치는가!



순조롭게 진행될 일이었다.

내 눈앞에 이놈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박재우 이 새끼!!!!!”



고함과 함께 날아오는 일우의 주먹이 아프다. 대학 시절 함께 경호 수업을 들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조금은 그립다.

그 시절이.



퍽퍽-



둘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따르릉-

그때 울려오는 해국의 전화기.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는다.



“해국입니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감히 반지를 끼고 인간의 몸에 손을 대?!”


“면목 없습니다.”


“아휴 참!!! 아무튼 지금 거기로 우리 쪽 경찰들이 가고 있어. 내가 최대한 무마시켜 볼 테니까 일단 잔말 말고 따라오라고. 사고 좀 그만 치고 제발!!!!”



삐이이익-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빨리도 왔구만. 쳇.”


“해국 팀장. 당신을 인간세계 무단 영향 죄로 체포한다!!!”


“죄명도 이상하게도 붙이셨네.”


“아, 아무튼! 체포한다. 체포해!!!”


“예!”



해국에게 수갑을 채우러 오는 경찰들.



딸깍-


삐용 삐용

코드 블루. 코드 블루.



해국이 비상벨을 힘껏 누른다.



“뭐, 뭐 하는 거야 갑자기!!!”


“곧 의사들이 올 테니 알아서 나가라고.”


“뭐···?”


“내 아들 한 번만 더 건드리면 내 손에 죽는 거여.”



경찰들이 수갑을 채우고 반지를 뺏자 해국의 모습이 박재우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황당해하는 박재우.



“거기 당신 누구야!!!”


“젠장 일이 또 꼬였구만···”


“강현재 환자분 상태 체크해! 당신이 눌렀습니까?”


“내가 누른 거 아닙니다.”


“그럼 누가 눌렀습니까?”


“저기 저 사람··· 아씨 젠장!!!”


“선생님, CCTV 확인 결과 이 병실에 출입한 사람은 이 사람뿐입니다.”


“당신이 누른 거 맞구만.”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인상 좋은 선생님.



“내가 안 눌렀다고!”


“현재 강현재씨 상태에는 이상 없으나 누가 목을 조른 것 같은 흔적이 있습니다.”


“···신고해. 이 사람 붙잡아.”


“예!”


“시발 일진이 왜 이래!!!!!”




수면시계는 매일 오후 11:30 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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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朋友有信(3) 20.12.24 15 0 12쪽
74 朋友有信(2) 20.12.23 37 0 12쪽
73 朋友有信(1) 20.12.22 35 0 12쪽
72 김기자(2) 20.12.21 15 0 12쪽
71 김기자(1) 20.12.20 38 0 12쪽
70 현실로 돌아왔다 20.12.19 20 0 13쪽
69 전야제(前夜祭) 20.12.18 15 0 12쪽
68 해국(2) 20.12.17 12 0 12쪽
67 해국(1) 20.12.16 21 0 13쪽
» 박재우(5) 20.12.15 13 0 12쪽
65 박재우(4) 20.12.14 13 0 13쪽
64 박재우(3) 20.12.13 16 1 12쪽
63 박재우(2) 20.12.12 16 0 12쪽
62 박재우(1) 20.12.11 2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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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5번 피험자 이세진(2) 20.12.07 12 0 11쪽
57 55번 피험자 이세진(1) 20.12.06 44 0 12쪽
56 54번 피험자 박혜원(6) 20.12.05 22 0 11쪽
55 54번 피험자 박혜원(5) 20.12.04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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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4번 피험자 박혜원(3) 20.12.02 13 0 11쪽
52 54번 피험자 박혜원(2) 20.12.01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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