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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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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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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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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3,747

작성
20.12.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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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박재우(3)

DUMMY

“박재우씨?”



혼란스럽다.



“박재우씨. 이 차량 번호 아십니까? 10하 0151.”



도대체 왜.

왜 그랬을까.

왜 하필 강일우의 차였을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다 일주일 전까지 왔다. 그 순간 그때 일우가 했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재우야. 나는 사람이 가끔은 남들 생각 안 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해.”


“갑자기 그런 말은 왜? 너답지 않게.”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싱겁긴.”



시발.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생각했고 결론적으로 친구였던 나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나를 쳤고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다. 삼일 합격이라는. 남을 배제한 채 오직 자신만을 생각한 결정.



개 같다.

정말.




“박재우씨. 모르는 차량이시면 저희 쪽에서 조사해보겠습니다. 신원 조회 결과 차주는 강···”


“아니요.”


“예?”


“필요 없어요. 누군지 아니까.”


“그래도 뺑소니 사고인 만큼 더 조사를···”


“필요 없다고요!!! 조사 안 해도 된다고 시발!!!” 조사해서 강일우가 뺑소니범인 게 밝혀지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빌거나, 아니면 뻔뻔하게 나오거나.



그런데 두 가지 경우 모두 딱히 마음에 드는 결과가 도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1번의 경우 어쩔 수 없이 그를 용서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돈을 받고 합의를 해주든 강일우 그 자식을 유치장에 처넣든 그는 나를 해한 행동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의 죄책감은 상쇄된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2번의 경우, 생각해볼 것도 없다. 군 시절까지 6년 친구에 대한 배신. 그 사실에 확인사살 당할 뿐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사실,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이 어쩌다 운 좋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소리라는 사실. 어쩌면 그 당연한 사실들을 마주할 자신이 솔직히 없다.



다 부질없다.

그냥

존나

슬프다.




“박재우씨. 정말 조사 안 하실 겁니까? 그럼 더 이상의 보상이 어려워질 수도···”


“예. 그냥 놔두세요.”



짧은 한마디를 던지고 서를 나서는 박재우.



“서울경찰서입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시니···”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 사고 이후 박재우는 휴학을 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단순 뇌출혈로 몸에 아무 이상 없을 것이라던 의사 선생님의 소견과는 달리 다리 쪽 후유증이 꽤 심해 2년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치료에 매진하던 2년 동안 박재우의 밑으로는 2차례의 신입이 들어왔고, 바로 아랫 기수 후배들도 월 700의 삼일을 꿰찬 강일우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훈련에 매진했으며, 그 결과 그들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직장을 얻었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갔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박재우 자신만을 제외하고는.



[강일우: 재우야. 오늘도 전화 안 받아서 메시지 남긴다. 괜찮은 거냐? 메시지를 본다면 제발 아무 연락이나 좀 줘라.]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 강일우는 박재우의 휴학 이후 2년 동안 매일 같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해왔다. 물론 단 한 번도 받거나 답장을 한 적은 없다.



강일우.

그는 나의 인생을 망가뜨린 장본인이니까.



“여보.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언젠간 다 잘 될 거야.”



사고가 난 직후부터 서둘러 결혼 준비를 했고 친지들만 불러서 약소하게 식을 올렸다. 아내 수연의 집안은 생각 외로 여유 있는 집안이어서 집 외에도 결혼 초반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나름 갖출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수연도, 그녀의 부모님도 그 부분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아름다웠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여자였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에 마음이 썩어버리고 문드러진 나를 더 이상 엇나가지 않게 바로잡아준 사람이 수연이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 덕분에, 잠시나마 그 망할 자식에 대한 복수의 꿈을 접어 둘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치료가 끝날 때쯤 아이가 태어났다. 나를 닮아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수연을 닮아 얼굴이 곱상한 남자아이였다. 그때의 기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수연의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다. 다행히 빚은 모두 청산했지만 있던 집까지 팔아 작은 투룸 빌라로 이사를 가야 했다. 무엇보다 200이 채 되지 않는 재우의 월급으로는 세 가족이 먹고살기 힘들었다.


재우는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더 오랜 시간 일하며 일한 시간 대비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공사판을 뛰었다. 재활 치료가 끝나 몸에 이상이 없기도 했고 다행히 20년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남들에 비해 더 오랜 시간을 뛰어도 지치지 않았다. 그곳에서 위험수당이니 뭐니 붙어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조금만 더 일하다 모은 돈으로 자신만의 체육관을 조그맣게 차릴 생각이었다.



“어 실장님 오셨구만!!!”


“실장님이요?”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공사판 최 고참 김씨가 달려나가 머리를 90도로 숙인다.



“오셨습니까. 실장님.”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나요? 저희 쪽에서 말씀드린 기한은 맞춰 주실 수 있는 거죠?”


“예. 아무렴요. 삼일쪽에서 이렇게 지원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보고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부실 공사는 안됩니다. 기한을 늘려서라도 향후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저희가 원하는 것입니다.”


“문제 생기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저 근데 혹시 화장실이 어디일까요? 오는 길에 휴게소가 없어서···”


“아 예 실장님.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꽤 멀리 떨어져 있던 재우의 눈에는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단지 두 명의 부하직원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저 모습이 조금 멋있어 보였을 뿐이었다.



“저 사람도 참 능력자야.”



박재우와 함께 벽돌을 나르던 최씨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누군데요? 삼일건설측 직원 아닙니까?”


“아니 그것도 아니고 삼일 전자 사람이야.”


“삼일··· 전자요?”


“그래. 참 대단한 게 삼일전자 회장 경호원으로 입사했다가 능력이 좋아서 5년 만에 비서실장으로 승진했는데, 이번에 삼일전자 부지 확장하면서 그 프로젝트를 저 사람한테 맡겼다나 봐. 30대 초반에 출세했지 뭐.”


“혹시 저 사람 이름이···”


“어~ 이름이 뭐냐면~ 아이고··· 분명 들었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 강··· 강으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강일우.”


“오 그래 맞다 맞아. 강일우 실장!!! 그나저나 자네는 어떻게 아는가? 아는 이름이야?”




강일우.

그 일이 있기 전만 해도 같은 위치에서 동고동락했던 두 사람이었는데 그가 입은 검은색 수트를 보고 난 후 자신이 입은 공사판의 작업복을 바라보니 하늘과 땅. 아니 그보다 더한 하늘과 심해의 차이다. 그와 나는 이제 더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그간 연락을 피했던 사람은 박재우 자신이었지만, 잘 나가던 인생을 공사판으로 내몰아버린 강일우가 저렇게 떵떵거리며 사는 꼴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

죽이고 싶다. 저 자식.




“이봐. 박씨 하던 거 놓고 어디 가는 거야~ 나 참.”



강일우가 들어간 화장실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나가고 없다.



“씨발··· 벌써 간건가.”



그때 화장실 끝쪽에 난 작은 창문에서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밖의, 그러니까 화장실 뒤편에서 통화 소리가 들린다. 강일우의 목소리다. 귀를 기울인다.



“예 회장님. 그 건은 진행 처리 중에 있습니다.”



강일우는 이상철 회장과 통화하는 듯하다.



“스위스 계좌는 개설 완료했습니다. 오늘 내로 5,000억. 회장님 개인 계좌로 입금하겠습니다.”



‘개인 계좌···? 설마 비자금···?!’




그날 이후 3년간 박재우는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강일우를 따라다녔다. 물론 지켜내야 할 가족이 있었기에 야간에는 대리운전으로 생활비를 가까스로 충당했다.

우연을 가장해 부딪쳐 도청 장치를 강일우의 수트 시접 안쪽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붙여 놨고 도청을 통해 강일우의 동선과 그가 진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파악했다. 그리고는 관련된 장소에서 일하거나 직원인 척 관계자에게 접근하여 정보와 자료를 얻어냈다. 그렇게 3년간 화려한 말빨과 손기술(소매치기 실력)도 덤으로 늘었다.



강일우.

그는 이상철 회장의 온갖 악행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비자금 조성부터 각종 부실경영까지.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서의 어느 정도의 삥땅은 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직접 모든 사실을 낱낱이 접하니 감회가 새롭다.


언제나 소나무 마냥 고고한 척했던 강일우 역시 한패다. 회장의 똥을 치워주는 대가로 뭐든 받아 처먹었을 것이다. 하긴. 물론 그에 대한 기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친구를 배신했던 그때 이후로 이미 없어진 지 오래지만.



이제 일의 마무리 단계가 왔다.




따르릉-



“···”


“누구십니까. 회장님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신 분이 당신입니까?”



익숙한 목소리다.

한때 친구였던 강일우의 목소리.



“말씀하지 않으시면 허위 사실 유포죄로 신고하겠습니다.”



박재우는 목소리 변조기를 입에 대고 말한다.



“그 자료는 빙산의 일각일 뿐. 난 지금까지 이상철 회장이 저지른 모든 비리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유에스비를 받고 싶다면 내일 오후 2시, 중앙식당 제일 안쪽 끝방으로 오라고 전해라.”


“잠시 저랑 먼저 이야기하시죠. 어디십니까?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반드시 이상철 회장 혼자 와야 한다. 누구 하나 달고 오는 순간 미리 준비해둔 자료들이 기자들에게 바로 넘어갈 것이다. 식사는 거하게 대접하지. 그럼 이만.”



뚝-




*** 다음 날



예상외로 이상철 회장은 정말 혼자 왔다. 밖에 직원들이 숨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직원을 불러 계산을 마치고 왼쪽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되니 강일우에게 얼굴이 알려질 일은 없을 것이다.



“자네. 원하는 게 뭔가.”



3년간 수집해 온 자료들을 보고 이상철 회장은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묻는다. 돈 많은 회장님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저는 5년 전 회장님의 개인 경호원이 될 뻔했던 박재우라고 합니다.”


“5년 전이라면··· 강실장 자리를 말하는 건가?”


“예. 그날 저는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네만···”


“잘 기억해 보십시오. 그날 면접자는 두 명이었습니다.”


“뭐 생각해보니 그때 면접자 한 명이 사정이 생겨 못 왔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네.”


“예. 그게 저입니다.”


“하필 그날 일이 생기다니 운이 없었구만 자네.”


“아니요. 지금 회장님이 신뢰하고 있는 강일우 실장. 그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강실장? 무슨 소린가 그게?”



박재우는 이상철회장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했다. 한때 둘도 없는 친구였으나 배신을 당했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왔던 그런 이야기 들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이회장은 잠시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박재우에게 말했다.



“질질 끌지 말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도록 하지.”


“역시 명쾌하십니다. 하지만 제 부탁은···”


“돈이 아니면 뭐야?”


“강일우 비서실장 자리. 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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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김기자(1) 20.12.20 3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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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전야제(前夜祭) 20.12.18 15 0 12쪽
68 해국(2) 20.12.17 12 0 12쪽
67 해국(1) 20.12.16 2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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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박재우(4) 20.12.14 1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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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박재우(2) 20.12.12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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