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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무네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 속 고인물이 해적질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달나무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4.04 19:09
최근연재일 :
2022.04.20 23: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3,626
추천수 :
182
글자수 :
117,054

작성
22.04.1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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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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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7. 마경, 아마네세르 (1)

DUMMY

“와, 사기 존나 잘 쳐....”


라피스는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나를 보곤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휘, 휘이~”


이미 다 들었거든?

어설프게 휘파람 부는 꼴을 짜게 식은 눈으로 보다가 얕게 한숨을 흘렸다.


‘어쨌든, 황금 해적단은 물리쳤으니 됐지 뭐.’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눈앞에 시스템 메세지가 나타났다.


-[<궁지: 역전의 해적>를 클리어했습니다!]


단출하게 한 줄로만 이루어진 퀘스트 클리어 문구.

문구를 눌러봤지만 역시 퀘스트에 명시됐던 대로 클리어 보상은 딱히 없었다.


‘뭐, 충분히 얻을 만큼 얻었으니까.’


5등분으로 쪼개지긴 했지만 일단은 보물 ‘게르에몬의 에메랄드’를 얻었고, SS급 티어 축복을 보유한 선원(후보)도 확보했으니 이 이상 뭘 더 바라면 욕을 먹어도 쌌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나는 턱을 긁적였다.


‘역시 곧바로 연계 퀘스트를 시작하진 않네.’


나는 난간 너머,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상선으로 시선을 향했다.

내가 굳이 황금 해적단을 쫓아내기 전에 라피스에게 밑밥을 깔아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퀘스트의 내용은 황금 해적단을 쫓아내고 상선을 구하라는 거였으니까.’


상선을 구하기는 했지만, 상선 쪽에서는 내가 그들을 구했다는 걸 모르고 있을 터.

내가 직접 상선과 접촉해야만 이 다음, 연계 퀘스트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설프게 휘파람을 불고 있는 라피스에게 다가갔다.


“휘이...뭐, 뭐예요?”

“뭐긴 뭐야, 구경 잘 했으면 관람료를 내야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자, 라피스가 곤란한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끄응...당신 정체를 적당히 둘러달라고 한 약속 말이죠...?”

“제대로 알아들었네.”

“근데 제가 당신을...대체 어떻게 둘러대야 하는데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할 일이지.”


애초에 그런 변명을 쥐어 짜내고 싶지 않아서 내건 조건이다.

라피스는 내 반응을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알았어요, 근데 돛 정도는 숨겨줘요. 해적이라고 떠벌리고 다니고 싶은 건 아니잖아요?”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 돛.

거기에는 반쯤 부서진 해골 모양 그림, 졸리 로저가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제 작전이 끝났으니 정리할 시간이었다.


“뭐, 그 정도야. 아이텐 카르니스?”

<부르셨습니까, 선장님.>

“작전은 끝났다, 선원들이랑 승객들한테 전달해.”

<알겠습니다, 선장님.>


옆에서 내 말을 듣던 라피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응? 잠깐만요, 승객이요? 당신 혼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아, 그쪽은 아직 모르지? 좀만 기다려봐, 곧 다들 나올테니까.”

<캡틴 오더 ‘어서와요 유령의 배’가 끝났음을 알립니다. 선원과 승객들은 다시 자유롭게 활동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잠시 뒤, 라피스는 갑판에 나온 수인들을 보며 턱을 벌렸다.


“아, 아니...수인들이 여기엔 왜, 왜...?”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라피스가 다급하게 나를 바라봤다. ‘설마, 아니죠?’ 라고 말하는 듯한 눈동자를 보며 나는 라피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잘 부탁해?”

“아니, 아니이이이...!”

“아, 그리고 상선 쪽으로 운전도 좀 부탁해. 아직 정리할 게 좀 남았거든.”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라피스를 뒤로하고 도망쳤다.


***


“어, 어, 어디...이거 어디로 치우면 됩니까?”

“아! 그, 후미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붕대 감을테니까 아파도 조금만 참아요.”

“으, 아이고옥!”


이곳은 황금 해적단이 약탈을 행했던 상선, 헤이즐 호.

지스트와 임시 선원들은 갑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상선의 사람들은 그런 수인들을 신기하게 보면서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선원 사람들은 황금 해적단과 유령선이 대치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황금 해적단 녀석들이 우리와 대치하기 전에 이들을 선박 2층에 가둔 덕이었다.


아, 그래서 나는 뭐 하고 있냐고?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 예....”

“마법사님 덕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연인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예, 눈물은 그치시고요.”


상선 사람들의 감사 인사를 받고 있었다.

나는 떫은 얼굴로 곁에 선 라피스를 바라봤다.


-잘 하고 있어요.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한 라피스는 방긋 웃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방금 보면 알겠지만, 지금 나는 또 마법사로 위장 당한 상태였다. 알아서 하라고 라피스에게 맡겨놓기는 했지만...꼭 마법사야 했을까?

아니, 지나가던 상선도 있고 뭐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정말, 이토록 훌륭하신 마법사님은 처음 뵙니다. 제가 많진 않지만 이거라도....”


내 앞에서 감사 인사를 늘어놓던 청년이 내 손에 빨간 사과를 쥐어 주었다.


나는 사과를 받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돌아다니며 선행을 베푸는 마법사라니.’


내가 알고 있는 마법사란 족속은 죄다 이기적인 미친놈밖에 없는데.


여하튼, 또 마법사로 오해받는 건 짜증 나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잘 먹히고 있는 모양이라 그냥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오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해적은 참 고달픈 직업이다.


“잠시 실례하오.”


차례대로 감사 인사를 받고 있는데,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성이 사람들을 제치고 나타났다. 내 곁에 서 있던 라피스가 그를 보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시몬 선장님.”

“...자네가 마법사 공께 부탁해서 해적을 쫓아냈다고?”

“네, 운이 좋았습니다.”


선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라피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생했네, 자네는 이만 가서 쉬게나.”

“아, 아니요. 저는―”


...?

야, 너 지금 뭐 하냐?


나는 대놓고 라피스를 무시하며 내 앞에 오는 선장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마법사 공, 만나서 반갑소. 헤이즐 호의 선장을 맡고 있는 시몬이라 하오.”


악수를 권하며 은근슬쩍 제 몸으로 라피스를 가리는 걸 보니 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새끼가 SS급 갑판원을 뭘로 보고.


“하아....”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지금은 일단 장단에 맞춰줘야 했다.

연계 퀘스트는 받아야지.


“가온이라 합니다.”

“특이한 이름이로군. 가온 공,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소속을 묻고 싶소만.”

“무소속입니다.”

“무소속?”


시몬의 목소리가 놀란 듯 올라갔다.

이내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선장이, 내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그렇군, 무소속임에도 그 많은 해적들을 쫓아내다니 필히 실력이 뛰어나신 모양이오. 어디, 은인을 계속 갑판에 서 계시게 할 순 없고...선장실에서 차분히 얘기를 나눠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음.”


슬쩍 라피스를 바라보자, 라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고맙소이다, 선장실은 이쪽이오.”


헤이즐 호의 선장실은 좋은 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바닥에는 깨진 술병들이 돌아다니고, 벽에는 물건들이 파손되어있는 등 해적들이 다녀간 것이 고스란히 보이는 흔적들이 이곳저곳에 늘어져 있었으니까.


그래도 탁자는 멀쩡한 상태였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의자 중에는 부서지지 않은 게 딱 두 개 있었다. 시몬은 그것들을 본래 자리에 놓으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부끄러운 꼴을 보여 죄송하오.”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해적에게 노략질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예의는 이 정도 차리면 충분하겠지.

얼른 퀘스트나 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원형 의자에 앉았다. 시몬도 반대편에 앉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이해해주어 고맙소, 지금까지 해적을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나...해군이 보호하는 해로를 이용해왔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처음이었소.”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여긴 해군이 보호하는 해로가 아닙니까?”

“아, 마법사 공은 잘 모르겠구려. 이 길은 공식적인 해로가 아니라오.”


잠시 뜸을 들인 시몬 선장이 이어 말했다.


“원래는 항상 이용해왔던 보네 해로를 이용해 로아 항을 경유해서 디오리칸 왕국으로 가려 했소. 하지만 우리 배의 항해사가 반대하더군,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이야.”


효율적이지 않기는 했다.

로아 섬을 통해서 디오리칸 왕국으로 가게 되면 빙빙 돌아가게 되니까.


선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그래도 정규 해로를 이용하는 편이 안전하지 않냐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항해사의 고집이 워낙 완강한 나머지 말대로 따르기로 했네. 항해사가 그 유망한 메이트 가문의 일원이기도 하고, 또 해군에서도 해적 소탕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으니까.”

“음, 그렇군요.”

“다만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오. 해적이 마치 기다린 것처럼 우리를 습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온 공의 도움 덕에―”


툭, 투둑.

갑자기 무언가 떨어진 소리에 놀란 시몬 선장이 나를 바라봤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탁자 아래로 몸을 숙인 뒤, 한 손으로 사과를 들어 올렸다.


“그만 사과가 떨어져서요.”

“흠, 그렇군. 이거, 가온 공께서도 휴식이 필요하실 텐데 내가 괜한 잡설을 한 게 아닌가 싶소.”

“아닙니다. 그나저나, 이후로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디오리칸 왕국으로 그대로 가시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만.”

“그렇소, 배의 상태도 상태일뿐더러 물자들도 한 번 더 검수하고 식수와 식량도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데...솔직히 말해서 선원들의 불안이 극심한 상태요. 혹시라도 보네 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해적과 마주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게지.”


시몬 선장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가온 공, 혹시 괜찮다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겠소?”


-[<연계 퀘스트> 발생!]

-[<궁지: 상선 헤이즐 호 호위>가 시작됩니다!]


나는 허공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곤란에 빠진 이가 있으면 도와드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고맙소이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내가 말꼬리를 길게 흐리자 시몬 선장이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다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식량과 식수를 조금 나눠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홀몸이 아닌지라.”

“아아, 그거라면 마음껏 가져가시오! 내 은인에게 그 정도도 못 내드리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시몬 선장과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짧게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선장실 밖에서 라피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라피스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나를 붙들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끌고가며 속삭였다.


“선장이 뭐래요?”

“별 건 없던데, 그냥 네가 해적이랑 손잡은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미친 새끼가?”


희번득한 눈으로 선장실을 째려보던 라피스가 앗차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 아니...크흠, 혹시 믿는 건 아니죠?”

“그쪽이 해적들한테 무슨 꼴을 당하는지 봤는데 내가 그걸 믿을 리가.”

“후우....”

“그리고 보네 항까지 가는 길을 호위해주기로 했어.”

“네? 왜요?”

“이쪽도 거지거든. 수인들이 얼마나 잘 먹는지 알아?”

“...해적한테 보물까지 털어먹은 거 아니에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잠깐 움찔했다.


“보물이 당장 식량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잖아. 지금 우리 배는 보네 항까지 갈 식량과 식수도 없는 상황이야.”

“아 그건 어쩔 수 없겠네...아무튼, 조심해요. 선장 놈 말만 그럴싸하게 하고 하는 짓은 능구렁이가 따로 없으니까.”

“능구렁이는 무슨, 너무 빤히 보여서 속아주기도 힘들더라.”

“그래도 혹시 몰라요.”

“나는 그렇다 치고, 그쪽은 어쩔 건데?”


내 질문에 라피스가 군청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보아하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이 배의 항해사로는 못 있을 것 같고, 이참에 내 배에 오는 건 어때?”


일부러 [선원 영입]은 발동시키지 않은 채 물었다.

만일 여기서 거부당하면 패널티를 받을 테니, 그 전에 확실히 라피스의 의사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음....”


잠시 고민하던 라피스가 난처하게 웃었다.


“미안해요, 재미는 있었지만...해적은 좀 힘들 것 같아요.”

“그렇군. 혹시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 유령선은 항상 인재난이거든.”

“힉, 쉬, 쉬잇! 누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것 참, 선원도 아닌 사람이 걱정은 또 많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아무튼...탄로 안 나게 항상 조심해요. 여기는 말 한마디 잘못 꺼내면 바로 물어뜯기는 곳이니까.”

“어차피 호위하는 중에는 유령...알았어, 배에만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라피스는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보며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뭐, 그쪽보단 제가 더 걱정이긴 하네요.”

“여기 있게?”

“그럼 제가 어디 있어요?”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고생하고.”

“그쪽도요. 보네 항에 내리면 메이트 가문으로 와요. 이래뵈도 제가 그쪽에서는 이름 좀 났거든요.”


라피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서 떠나갔다.

어딘가를 향해 뛰어가는 라피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그럴 수 있다면 말이지.”


이 세상이 얼마나 좆같은 지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라피스와 금방 다시 만날 거라고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


밤이 내린 바다는 조용했다.

헤이즐 호의 선장, 시몬은 잠시 선장실의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촤아아....


헤이즐 호의 바로 곁에 따라붙은 흑단의 배가 보였다. 갑판에는 작은 등불 하나를 든 개 수인 하나가 수면을 쳐다보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그 외에는 딱히 다른 불빛도 보이지 않는 걸 보아, 대부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행을 베푸는 마법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시몬 선장의 뒤로 조금 나이 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란 족속이 어떤 족속인지 알고 있으면 농담으로도 그런 말은 못 할 텐데!”


뒤를 이어, 호응하듯 다른 남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애초에 수인들을 그렇게 데리고 다녀선 말입니다...보아하니 다들 며칠은 굶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백수왕이 알면 어쩌려고 저렇게 담대한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몬 선장은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탁자에 앉은 두 사람이 보였다. 헤이즐 호의 갑판장 주드와 선임 갑판원 마르틴이었다. 의자가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선임 갑판원 마르틴은 근처에 서 있었다.


“우리가 힘이 없는데 어찌하겠소, 해적이든 뭐든 지금은 일단 항구에 돌아갈 때까진 몸을 보존해야만 할 때오.”


시몬은 그리 말하며 탁자에 앉았다.

주드가 인상을 와락 구기면서 씹어뱉듯 말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상단에서 정규 해로로 가지 않은 우리를 규탄할 거요.”

“라피스한테 덮어씌울 순 없나? 어차피 이 배의 항해사는 라피스지 않나.”

“다른 항구면 모를까, 보네 항에서는 힘드네. 라피스는 메이트 가문의 딸이니.”

“젠장, 그년은...대체 어떻게 저런 놈을 물어온 거야?!”


쾅, 탁자에 주먹을 내리친 주드가 어금니를 갈며 말했다.


“메리 골드, 그년이 꽁무니 빼고 도망가지만 않았어도...!”


메리 골드의 이름이 나오자, 시몬 선장은 한숨을 깊게 쉬었다.

본래 계획은 이대로 황금 해적단에 털린 뒤, 황금 해적단에게 노예로 팔린 척 다른 왕국으로 망명해 떵떵거리며 살 예정이었다.

그걸 위해 시몬은 일부러 딸까지 배에 탑승토록 했으나....


“일이 꼬여도 너무 꼬였소.”


메리 골드가 설마하니 지나가던 해적한테 당할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한 바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마르틴이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물자가 대부분 그대로란 점입니다. 어떻게든 입만 잘 맞추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분명 상단 쪽에서는 우리에게 이 일에 대한 손해를 청구할 걸세. 자네들도 잘 알지 않은가, 루토 상단이 얼마나 독한지.”


시몬 선장의 말에 다들 침묵을 지켰다.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은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재산밖에 남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잠시 뒤, 시몬 선장이 침묵을 깼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해보았네만.”

“...?”

“아예 게시나 상단으로 넘어가는 건 어떤가?”

“예?!”


마르틴이 눈을 크게 떴다.


“저 해적과 라피스를 처리하고, 게시나 상단에 몸을 의탁하는 걸세.”


딱, 따닥....

천장 위, 쥐 하나 들어갈 작은 틈 사이에서 그런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녹색 안광이 있었다.


작가의말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그냥 감사하다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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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마경, 아마네세르 (2) 22.04.20 94 5 13쪽
» 17. 마경, 아마네세르 (1) +2 22.04.19 116 6 17쪽
16 16. 어서와요 유령의 배 (3) 22.04.18 119 6 16쪽
15 15. 어서와요 유령의 배 (2) +2 22.04.17 126 6 13쪽
14 14. 어서와요 유령의 배 (1) 22.04.15 134 9 17쪽
13 13. 유령선 (4) 22.04.14 147 8 14쪽
12 12. 유령선 (3) 22.04.13 159 7 13쪽
11 11. 유령선 (2) 22.04.12 183 9 13쪽
10 10. 유령선 (1) +2 22.04.11 210 12 14쪽
9 9. 튜토리얼의 끝 (2) 22.04.10 192 10 17쪽
8 8. 튜토리얼의 끝 (1) 22.04.09 194 9 13쪽
7 7. 노예선의 비밀 (3) 22.04.08 194 9 11쪽
6 6. 노예선의 비밀 (2) 22.04.07 211 12 14쪽
5 5. 노예선의 비밀 (1) 22.04.06 227 11 12쪽
4 4. 노예가 되었다 (2) 22.04.05 240 13 13쪽
3 3. 노예가 되었다 (1) 22.04.05 276 13 11쪽
2 2. 해적이 되었다 (2) +2 22.04.04 315 15 12쪽
1 1. 해적이 되었다 (1) +1 22.04.04 408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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