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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무네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 속 고인물이 해적질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달나무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4.04 19:09
최근연재일 :
2022.04.20 23: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3,623
추천수 :
182
글자수 :
117,054

작성
22.04.05 11:20
조회
275
추천
13
글자
11쪽

3. 노예가 되었다 (1)

DUMMY

[다 죽어가던 애송이가 드디어 좀 남자다운 얼굴을 하는구나.]

“······정말로 이 배를 주시는 겁니까?”

[주고 말고, 내게 남은 건 이제 이 녀석 밖에 없으니 말이다.]


해적왕, 넌 남자구나.


[자, 그럼 양도 계약을 해야겠지?]


악수라도 하잔 듯이 뻗어오는 해골 손을 곧바로 붙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손이야말로 내게 있어선 구원의 동아줄.

이제 이 해적선을 기반으로 꿈에 그렸던 게임 빙의 라이프를 즐겨······?


“응?”


몸이 앞으로 쑥 기울여졌다.

해적왕이 갑자기 잡고 있던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응?”


너무 앞뒤 맥락 없는 상황이라 저항도 못하고 끌려가는 내게 해적왕이 속삭였다.


[그럼 특강 시간이다.]


네?


[해적의 마음가짐 그 첫째.]


눈앞에서 해적왕의 갈비뼈가 양쪽으로 벌어졌다.

해적왕이 해골이 아닌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기절할 만큼 고어한 상황이었겠지만, 다행히 원래부터 해골(?)이었던 해적왕이라 그저 기괴하다 싶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있는 환하게 일렁거리는 녹색의 구(球)였다.

녹색 구슬 안에는 해적선과 똑같은 형태의 배가 들어있었다.


[애송아, 해적이라면 말이다.]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내 손을 구슬을 향해 밀어 넣는 해적왕.

경악과 소름,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에 미처 저항하지 못한 손이 그 녹색의 구에 닿는 순간,

해적왕이 웃었다.


[배는 항상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거, 물리적인 의미였나요?


키이잉―


손이 닿자마자 공명하듯이 소리를 내며 환하게 빛을 내뿜는 구슬.

그뿐 아니라 구슬로부터 무언가가 내 몸속 안으로 흘러 들어와 심장 언저리에 안착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으, 으악, 으아아악! 이게 뭐야!”


이물(異物)이 몸에 들어오는 감각은, 영화에서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소름끼쳤다.


[자, 애송아. 유령선―아이텐 카르니스호의 두 번째 선장이 된 걸 축하한다!]

“뭐―유령선?! 아, 아니야! 멈춰!”


유령선이라니, 난 그런 거 들은 적 없어!

항의하는 얼굴로 해적왕을 바라봤지만, 놈은 해골 주제에 더없이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곧바로 우리 후배를 위한 서비스다.]

“대체 무슨 소립니까!”


경악스러움에 소리를 내질렀지만, 해적왕은 신나게 덜그럭거리며 말했다.


[마침 이 근처에 괜찮은 배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야.]

“괘, 괜찮은 배요?”

[그래! 너 같은 애송이가 연습 삼아 약탈하기로는 참 바람직한 배지!]


세상에는 연습 삼아 약탈하기 좋은 배라는 것도 있구나.

아, 제가 그걸 몰랐네요.


[그럼 해적왕의 마지막 항해다.]

“어, 잠깐....”

[멀미가 올라올 테니까 대비해라 선원!]

“말 좀 들―”


말을 끝마칠 새도 없이, 시야가 암전됐다.


***


[멀미가 올라올 테니 대비해라, 선원!]


해적왕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시야가 깜깜해지고, 내가 서 있는 땅이, 아니 주변 전체가 꿀렁이는 감각이 몰아쳤다.


대비?

이걸 어떻게 대비하라고?


속에서 뭔가 울렁거리다 못해 울컥거렸다. 입을 틀어막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시야가 돌아왔다.


“뭐, 뭐야!”

“사람?!”

“어떻게!”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나를 둘러싼 4, 5명의 남자들.

상당히 놀랐는지 다들 똑같이 당황한 얼굴로 품에서 무기를 꺼내 내게 들이밀었다.


“뭐, 뭐야? 어떻게 나타난 거야?”

“저기 아무것도 없었는데?”

“뭔가 사술을 부린 놈이겠지, 넌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날이 선 검이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는 걸 보며 한 손을 들고 내저었다.


오지 마!


맘 같아선 두 손 다 들고 싶었지만, 다른 손은 입을 틀어막아야 해서 좀 바빴다.


안색이 파리한 사람이 한 손을 절레절레 젓고 있으면 오지 말라는 의미라는 건 국룰, 아니 세계를 관통하는 제스처 아닌가?

하지만 저들은 내 의도를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뭔가, 뭔가 한다!”

“일, 일단 잡아! 어떻게 탔는지는 알아야 돼!”

“으아아아!”


내 앞으로 한 남성이 달려들었다.

다행히 무기는 없어 보였지만, 그를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 치는 순간.


‘아.’


깨달았다.


“우-”

“우?”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걸.


“우웨에에엑-”


푸드득, 철퍽.


생생한 소리와 참혹한 광경.


그러니까 시발, 오지 말랬잖아.


***


철그럭.


“하하, 이거 재밌네.”

[······.]


나는 내 목에 채워진 구속구의 사슬을 흔들다가 오른손 손등을 보며 정색했다.


“씨발, 이게 괜찮은 배에요?”


손등에 새겨진, 얼굴 반쪽이 바스라진 해골 그림.

그 그림이 내 시선을 피하듯 움직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해적왕의 마지막 항해.

그 도착지는 노예선이었다.


“하아.”


진짜 가지가지한다. 아니, 좀 한 번이라도 편하게 가면 안 돼?

이 빌어먹을 해적왕이 통 크게 배를 준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등 아파 죽겠네.’


아까 철창에 집어넣으면서 날 팬 놈.

그놈은 내가 한 대 먹이고 만다. 사람이 토 좀 할 수 있지, 그까잇거 맞았다고 사람을 후드려 패? 먹은 것도 없어서 위액만 토했는데!

물론 얼굴에 그리 정통으로 맞았으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만.


“그래서, 어떻게 방법이 없어요?”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오른손 손등을 향해 말을 걸었다.

남들이 보면 미친놈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내 손등 위에 그려진 이 해골 문신이 바로 해적왕 그 자체니까.


[이 몸도 도와주고는 싶다만, 힘들겠구나.]

“아까 그, 순간이동 같은 거 다시 쓰면 안 돼요?”

[방금 그걸 다시 쓰려면 적어도 세 달은 걸린다.]


눈을 질끈 감고 멀어지려는 이성을 붙잡았다.

이 인간은 쓸모가 없어.

아니, 인간이 아니라 해골인가.


‘그래, 아무렴 그 ’그.디.온‘인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해적왕이 이리 나올 거라는 건 나름 예상한 범위 내였다.

기연을 만나서 스타팅 지점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프롤로그.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튜토리얼‘이란 의미겠지.’


그걸 증명이라도 해주듯, 아까부터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글자들을 바라봤다.


- [G.D.O에서 베타테스터 한가온님의 히든 전직을 축하드립니다!]

- [이제부터 ‘스킬 창’이 해금됩니다.]

- [G.D.O에서 베타테스터 한가온님에게 위대한 발견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래, 모니터 속 세계에서 현실로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게임이다.

20대의 삶을 통틀어 바칠 만큼 내가 제일 많이 했었고, 제일 잘했던 게임.


“폐인을 얕보지 말라고.”


운영진이 보내온 글자들을 손을 휘저어 지워버리고, 곧바로 내가 가진 스킬을 확인했다.


+

[보유 스킬 목록]

1. 유령선 소환 / Lv.M

2. 해골 소환 / Lv.1

3. 선원 영입 / Lv.1

+


눈앞에 나타난 스킬창은 모니터 너머로 봤을 때와 다름없이 익숙한 형태였다.

조금 반가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초반 스킬이 세 개.’


그.디.온에서는 스킬 개수에 따라 직업의 수준이 나뉜다.

5개부터는 사기, 3~4개는 좋음, 1~2개는 그저그런 수준, 0개는 꽝.

지금의 나는 사기급은 아니여도 좋은 수준에 속했다. 솔직히, 최악인 꽝에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꽝을 뽑았다면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 테니까.


“······응? 잠깐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킬을 보다가 잠시 멈췄다.


스킬 목록의 첫 번째 스킬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령선 소환? 그것도 레벨이 마스터?”


처음부터 마스터 스킬을 준다고?

이 새끼, 이거 완전 씹사기 먼치킨 캐릭터 아냐!


‘감사합니다!’


아유, 우리 운영진 분들, 제가 이런 거 좋아하는 걸 또 어떻게 아시고.

역시 게임 빙의인데 치트 하나 안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업 밸런스? 빙의된 상황에 알게 뭐냐.


이거라면 당장 탈출할 수도 있을 거란 기대감에 벅차올라, 그대로 스킬을 사용했다.


“유령선 소환!”

- [유령선 소환(M)]이 취소됩니다.

- 소환에 필요한 재물(在物)이 없습니다.

- [유령선 소환(M)]에는 침몰된 선박이 최소 한 척 이상 필요합니다.


아니, 근데 이게 뭔 씹······.


[유령선이 그리 쉽게 네 부름에 응할 줄 알았더냐?]

“아니, 무슨, 유령선······ 유령선이라 침몰한 배가 필요한 겁니까?”


그냥 배도 아니고, 침몰한 배다.

내가 그런 걸 무슨 수로 준비하라고?


[애송아.]


침착하게 나를 부르는 해적왕의 모습(그래봤자 타투지만)에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뭔가 조언을 해주는 거지?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그렇지?


[이 몸은 이제 졸립구나.]

“······예?”

[영면까지는 아니지만, 잠시 긴 잠에 들어야겠다.]


어림도 없지.

누군가 그렇게 귓가에 속삭인 기분이었다.


“잠,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립니까, 긴 잠이라니 얼마나 긴데요?”

[만나서······ 즐거웠느니라. 다음에 볼 때는······ 더, 성장한 남자가 돼있길······.]

“잠시만요, 해적왕님. 해적왕님?”


그게 끝이었다.

그 후 십여 분을 더 말을 걸어보고, 욕도 하고, 심지어 꼬집기도 해봤지만 해적왕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건 이제 그냥 반쪽짜리 해골 타투였다.


“그래, 씨발······ 인생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거지······.”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개 같은 새끼였다.

좁디좁은 철창 안이 생각보다 넓게 느껴지는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


그리고 노예선에 잡힌 첫날 아침이 되었다.


“어이, 일어나!”


촤악-!


“엇푸! 쿠, 쿨럭! 씨발, 뭐야!”


물이 끼얹어진 기상은 최악이었다.

영문 모른 채 당한 일에 코로 넘어간 물을 뱉어내면서 욕을 내뱉자, 몸 위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이 놈이냐?”


푸우- 입에서 독한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나를 내려다보는 거구의 남자.

갈색의 안대가 보였고, 얼굴의 반을 뒤덮은 화상 흉터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이 남자가 노예선의 선장임이 틀림없었다.


‘와, 덩치 봐라······.’


무슨 밥 먹고 운동만 조졌나? 팔뚝이 내 허벅지만 한데.


“예. 어젯밤 갑판에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옆에서 보고하는 선원도 나름 한 덩치 해 보이는데, 이 헬창 선장 앞에선 비교도 안 될 것 같았다.


‘덤비면 그대로 작살나겠지?’


일단 선장을 친다는 건 보류해야겠다.


“와드는? 와드에도 반응이 없었고?”

“예. 와드에 일절 반응 없이 나타났습니다. 혹시 몰라 프록이 점검을 해봤지만 와드에는 이상 없었습니다.”


둘의 대화에 난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와드라니, 내가 진짜 그.디.온의 세계에 온 게 맞긴 하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게 내게 있어선 조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근데 이런 노예선에 와드라고?’


뭔가 이상했다.

와드란 일종의 감지 오브젝트, 즉 마도구인데 이게 굉장히 비쌌다. 겨우 노예선에서 쓰기에는 수지가 안 맞을 정도.


‘뭔가 있구나.’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가운데, 선장의 목소리가 내 집중을 깼다.


“이거 복이 그냥 굴러 들어오는군.”

“예?”

“이 녀석, 아마도 마법사다.”


예?

제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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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마경, 아마네세르 (2) 22.04.20 94 5 13쪽
17 17. 마경, 아마네세르 (1) +2 22.04.19 115 6 17쪽
16 16. 어서와요 유령의 배 (3) 22.04.18 119 6 16쪽
15 15. 어서와요 유령의 배 (2) +2 22.04.17 125 6 13쪽
14 14. 어서와요 유령의 배 (1) 22.04.15 134 9 17쪽
13 13. 유령선 (4) 22.04.14 147 8 14쪽
12 12. 유령선 (3) 22.04.13 159 7 13쪽
11 11. 유령선 (2) 22.04.12 183 9 13쪽
10 10. 유령선 (1) +2 22.04.11 210 12 14쪽
9 9. 튜토리얼의 끝 (2) 22.04.10 192 10 17쪽
8 8. 튜토리얼의 끝 (1) 22.04.09 194 9 13쪽
7 7. 노예선의 비밀 (3) 22.04.08 194 9 11쪽
6 6. 노예선의 비밀 (2) 22.04.07 211 12 14쪽
5 5. 노예선의 비밀 (1) 22.04.06 227 11 12쪽
4 4. 노예가 되었다 (2) 22.04.05 240 13 13쪽
» 3. 노예가 되었다 (1) 22.04.05 276 13 11쪽
2 2. 해적이 되었다 (2) +2 22.04.04 315 15 12쪽
1 1. 해적이 되었다 (1) +1 22.04.04 407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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