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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무네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 속 고인물이 해적질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달나무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4.04 19:09
최근연재일 :
2022.04.20 23: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3,622
추천수 :
182
글자수 :
117,054

작성
22.04.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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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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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1. 해적이 되었다 (1)

DUMMY

머리가 징징 울렸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아냐, 좀 다른데.’


숙취? 아니, 그것보다 더 이질적인 고통이다.

길 가다 전봇대에 갑자기 머릴 처박은 충격이라고 할지, 아무튼 그 비슷한 아픔이 뒤통수부터 아련히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손을 더듬거리며 뒤통수를 짚어보니 뭔가 축축한 게 느껴졌다.


‘피?’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온몸이 집단 구타라도 당한 것처럼 욱신거리고 아프다는 것도 알았다.


‘몸살이라도 났나······?’


그런 의문에 눈을 뜬 순간.

나는 턱없는 광경에 그만 말을 잃었다.


쏴아아―


고막을 시원하게 때리는 파도 소리.

두 눈 가득 들어오는 거대하고 광활한 풍경.

하늘 끝에 맞닿아 있는 수평선과 바닷바람 속에서 느껴지는 짠내음.


푸른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눈을 몇 번 더 깜빡였다.


쏴아아―

끼룩―끼루욱―


허나 파도 소리에 갈매기 울음이 추가될 뿐 변하는 건 없었다.


여전히 정신을 못차린 채 멍하니 고개를 들자,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보였다.

맑은 하늘 속 두 개의 태양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태양이 두 개였다.


“······허?”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아래로 시선을 돌리자 따개비가 잔뜩 붙은 바위가 보였다.

바위 사이에 고여있는 물 위로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진하고 덥수룩한 갈색 머리를 가진 미남이었다.


‘흠, 해적이니까 평소 하던 검은 머리보단 갈색 머리로 하자.’


그 모습을 보자마자 퍼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눈동자는 파랗게 하고, 해적답게 지저분한 수염도 넣고.’


바다의 수면처럼 가라앉은 두 눈, 관리가 안 된 게 티나는 지저분한 턱시도 수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영화배우처럼 멋들어진 청년의 얼굴.


“―아.”


탄식마저 은근히 간드러지는 멋진 중저음까지.


“조졌다.”


내 이름, 한가온.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아로 태어나 살기를 29년.


아무래도 난 어제 만든 게임 캐릭터에 빙의해 버린 모양이다.


-


그랜드 디스커버리 온라인.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제한 없는 자유도. 세계 곳곳에 숨겨진 다양한 보물과 수많은 유적들.

‘판타지 세상 속에서 ‘위대한 발견’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오픈 초기에는 꽤나 이름을 날렸던 대규모 오픈월드 RPG.


‘하지만 실상은 자유도가 넘치는 나머지 플레이어가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게 하는 똥겜이었지.’


거기다 그 플레이어의 선택이란 게 기가 막혔다.

어느 플레이어가 보물을 발견한다? 사실 그 보물은 저주받은 보물이라 그 일대에서 기근과 전투가 일어난다.

한 플레이어가 멋모르고 NPC를 죽인다? 사실 그 NPC는 황제의 숨겨진 아들이어서, 갑자기 전쟁이 시작되어버린다.

이게 그.디.온이 말하는 플레이어의 선택이었다.


’덕분에 보물이나 유적 발견은 뒷전이 되고, 필드는 온종일 전쟁에 전쟁이라 살아남기 급급한 지옥이 됐지.‘


그렇게 플레이어들의 선택 아닌 선택들이 쌓이다 보니 게임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버렸고, 드높아진 악명에 그랜드 디스커버리 온라인은 찍먹 유저조차 없어져 버린 비운의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 시발······.’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신규 업데이트의 베타테스트를 신청했다가 당첨돼서?

남들이 다 접을 때 고집부리며 남아있어서?

결국 구르고 구르다가 결국 필드를 완전히 정복한 고인물이 돼서?

아니면 아무리 똥겜, 똥겜거려도 대체제를 못 찾겠다며 손절을 못해서?


턱.

“아악!”


잡다한 생각에 미처 발밑을 못 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급하게 땅을 짚어서 참사는 막았지만, 암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따개비에 손바닥이 찢어졌다.


“아, 스읍.”


손바닥에 이슬처럼 맺히는 핏방울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이런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왜 하필, 왜 하필 빙의를······.”


그래, 솔직해지자.

나는 이런 똥겜에 빙의한 게 아쉬운 게 아니다.

솔직히 게임 좀 파본 사람이면 한번쯤 자기가 키운 캐릭터에 빙의하는 상상, 해보지 않나?


압도적인 스펙, 강력한 무력!

은행에 쌓아놓은 막대한 재산과 물 쓰듯 돈 쓰는 돈지랄!

그 모든 걸 씹고 뜯고 맛볼 수 있는 게임 속 빙의! 솔직히 반갑다!


문제는,


“왜 하필 빙의를 테스트 캐릭터에 하냐고!”


그 모든 건 내가 완벽하게 육성해 놓은 본캐에만 해당된다는 점.


“운영진 이 개새끼들아―!”

끼룩―끼루욱―!


분노어린 외침을 몇 번이고 질러댔지만, 내 외침에 답해주는 건 갈매기 떼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치도록 지랄 발광을 하길 체감상 한 시간.

수면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쯤 나는 깨달았다.


꼬르르륵.

“배고파······.”


지랄해봤자 배만 더 고플 뿐이며 주어진 현실은 빠르게 수용하는 게 심신에 이롭다는 걸.


그렇게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나는 내 몸부터 먼저 수색했다.

난 이 똥겜의 전 직업을 플레이해봤다.

어떤 직업이냐에 따라 프롤로그의 난이도는 천차만별이지만, 돌파구가 아예 없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걸 알아차리라고 만들어 놓은 건가 싶을 망정, 힌트가 꼭 하나쯤은 있었다.


“분명 뭐라도 있을 거야.”


나는 이 잡듯 품을 뒤져서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삭은 밧줄, 망가진 나침반, 뭔 액체가 가득 든 병, 축축한 육포······그리고 돌돌 말린 양피지 하나.


“양피지?”


일단 축축한 육포를 입에 쑤셔 넣으면서 양피지를 펼쳐봤다.


뭔가 글자가 써져있었다.


‘역시 한글은 아니네.’


하지만 빙의의 영향일까, 물에 번져있어서 조금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 빼면 양피지 속 문자는 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읽혔다.


【하하하, 네 ‘스타더스트’ 호는 이제 내 거다! 저승길 선물로 럼주 정도는 남겨주마. 부디 이 넓은 아량에 감사하며 물도 없는 암초섬에서 쓸쓸하게 죽어주길!

- 당신의 친애하는 부선장 칼리파 남김.】


부욱,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열이 올라서 양피지를 찢어버렸다.


‘기억났다.’


내가 캐릭터를 만들기 전에 읽었던 캐릭터의 배경이.


‘분명, 해적 놀이에 심취한 철없는 어느 귀족가 도련님이었지.’


이 캐릭터는 어릴 때부터 해적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해적들이 쓴다던 칼이나 총을 수집하고 다녔다는 설정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해적 수염을 기르고 다니다가, 결국 그걸로도 만족 못 하고 직접 배까지 질러 스스로 ‘해적’이라고 칭하고 다닌 괴짜.

이 돈만 많던 철부지는 결국 ‘진짜 해적’을 알아보지 못하고 선원으로 고용해버리고 만다.


“······칼리파.”


바로 그 결과를 지금 내가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고.


“넌 만나면 뒤졌다.”


내게 한 배신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날 이 꼴로 만들었으니 이 신세는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나보다 열 배는 더 고통스럽게!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을 태우며 이빨을 갈던 나는 곧 번뜩이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래, 배경 설명에서 읽었던 다음 내용은······.’


배에서 두들겨 맞고 쫓겨나 도착한 암초섬에서, 굶어 죽기 직전 기연을 만났다고 했나?


벌떡, 주저앉아 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섰다.


‘찾자.’


기연을 찾지 않으면 여기서 나갈 수 없다.

기연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정말 굶어 죽기 직전까지 기다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섬이 작아서 금방 둘러볼 수 있다는 거야.’


그러나 난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이런 작은 섬에서 내 캐릭터가 굶어 죽기 직전에야 기연을 찾았다고 한 이유를.


그건······.


“꺼으윽.”


평범하게, 찾을 수 있는 구석이 없어서였다.

따개비가 다닥다닥 들러붙은 바위까지 들춰보며 두어 시간을 섬 구석구석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독하네, 아주 독해.”


럼주를 한 손에 든 채, 수면 아래로 저물어가는 두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미친놈처럼 낄낄 웃었다.


취기가 오르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인생의 쓴맛?”


꼴꼴꼴, 럼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다시금 수면을 향해 트림했다.


꺼어윽.

“하씨, 배고파······.”


오늘 내내 먹은 거라곤 바닷물에 절여진 육포 두 개가 끝.

빈속에 럼주를 들이부어도 허기가 진 건 해결할 도리가 없었다.


‘진짜 이대로 굶어 죽기 직전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나?’


아니, 게임에 빙의를 하면 뭐 하나.

내가 아무리 고인물이라도 모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데.


‘뭐, 굶어 죽기 전에 배라도 옆에 지나가나?’


알딸딸한 눈으로 멍하니 수면을 바라보는 그때.


“어?”


방금, 무언가 수면에서 반짝였다.

잘못 봤나 싶어서 고개를 털며 다시금 수면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아, 물고기였네.’


난 또 뭐라고.

멍하니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자니, 스멀스멀 술기운이 올라왔다.


물고기는 생으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왜, 회도 날생선이잖아.

아, 회 먹고 싶다. 회에다가 초고추장 찍고 소주 한잔 말면 그게 인생의 진린데.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나는 어느새 일어나 바다로 걸어가고 있었다.

바다로 걸어가는 걸음이 흔들리는 게, 꼭 지면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빙빙 돌았다.

저기 ‘나를 잡아가시오’라고 뻐끔이는 물고기처럼 나도 흐느적거리며 물 아래로, 아래로······.


잠깐만, 아래?


“······위에 없다면 아래에!”


술이 확 깼다.

‘위에 없다면 아래에 있다.’는 그.디.온에서는 아주 유명한 격언이었다.

이 게임은 ‘위대한 발견’이라는 이름답게, 보물이나 유적을 찾기 위해서는 오지나 마경을 헤매야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주 간혹 예상하지 못한 곳에도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었다.

한 가정집의 지하에 숨겨진 유적이 있다든가, 뒷산 아래에 금광이 묻혀있는 식으로.


즉, ‘위에 없다면 아래에’란 말은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을 그.디.온식으로 풀어낸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대로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풍덩!


천천히, 바다속에서 눈을 뜬 나는 곧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섬 바로 아래,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입을 벌린 동굴을.


***


“푸하!”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폐 깊숙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부족한 숨이 차자, 곧바로 축축하고 기묘한 동굴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역시 잘 안 보이네.’


섬 바로 아래에 있는 동굴이라 광원이 없었다.

나는 잠시 물에 떠오른 채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내가 이렇게 수영을 잘할 줄이야.’


난 수영을 배워보긴커녕, 수영장도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손과 발이 움직였다.

이것도 빙의의 영향일까.


‘철부지 도련님이었어도 나름 진지한 꿈이었다, 이거지.’


철부지 도련님이 수영을 배워놨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긴, 애초에 그러니까 발견할 수 있었을 테지만.’


슬슬 눈이 익숙해진 것 같아 뭍으로 올라오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당첨인 것 같은데.’


누군가 섬 안쪽을 통째로 둥글게 도려낸 것처럼 생긴 동굴.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곤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굴 가운데에는 솟아난 돌들로 만들어진 왕좌가 있었다.


‘기연이 대체 뭔가 했더니, 히든 피스를 발견했던 거구만.’


화면 너머로만 봤었지만, 내려앉은 공기나 특유의 분위기가 필드에 숨겨진 히든 피스를 발견할 때와 굉장히 닮아있었다.


이제야 그.디.온 속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하,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다행이네.”


솔직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기연이 뭔가 숨은 기인한테 스킬을 전수 받는다는 형식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도 안 왔으니까.


반면 히든 피스는 그냥 얻기만 하면 그만인······.


[뭐가, 다행이라고?]


내딛던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화르륵.


동굴 중앙, 돌로 이루어진 왕좌 위로 녹색 불길이 치솟았다.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침입자여.]


주먹을 턱에 괸 채, 왕좌에 기대앉은 해골이 녹색 안광을 번뜩였다.


[이 해적왕을 앞에 두고 무어라 하였지?]


작가의말

배에 오르신 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출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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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마경, 아마네세르 (2) 22.04.20 94 5 13쪽
17 17. 마경, 아마네세르 (1) +2 22.04.19 115 6 17쪽
16 16. 어서와요 유령의 배 (3) 22.04.18 119 6 16쪽
15 15. 어서와요 유령의 배 (2) +2 22.04.17 125 6 13쪽
14 14. 어서와요 유령의 배 (1) 22.04.15 134 9 17쪽
13 13. 유령선 (4) 22.04.14 147 8 14쪽
12 12. 유령선 (3) 22.04.13 159 7 13쪽
11 11. 유령선 (2) 22.04.12 183 9 13쪽
10 10. 유령선 (1) +2 22.04.11 210 12 14쪽
9 9. 튜토리얼의 끝 (2) 22.04.10 192 10 17쪽
8 8. 튜토리얼의 끝 (1) 22.04.09 194 9 13쪽
7 7. 노예선의 비밀 (3) 22.04.08 194 9 11쪽
6 6. 노예선의 비밀 (2) 22.04.07 211 12 14쪽
5 5. 노예선의 비밀 (1) 22.04.06 227 11 12쪽
4 4. 노예가 되었다 (2) 22.04.05 240 13 13쪽
3 3. 노예가 되었다 (1) 22.04.05 275 13 11쪽
2 2. 해적이 되었다 (2) +2 22.04.04 315 15 12쪽
» 1. 해적이 되었다 (1) +1 22.04.04 407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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