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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무네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 속 고인물이 해적질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달나무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4.04 19:09
최근연재일 :
2022.04.20 23:00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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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8
추천수 :
182
글자수 :
117,054

작성
22.04.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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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해적이 되었다 (2)

DUMMY

눈을 가리던 어둠이 녹색 불길에 의해 단번에 가셨다.

이 불길하고, 눅눅해 보이기까지 하는 불길의 주인은 돌 왕좌에 앉아 나를 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왜 입을 다물고 있지? 말하는 해골은 처음인가?]


씨발, 너같으면 두 번째겠냐?

뼛속 깊이 파고드는 오한에 손발이 덜덜 떨렸지만 침착하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방금 저 해골이 스스로를 지칭한, 아주 중요한 단어 때문이었다.


해적왕.


그랜드 디스커버리 온라인의 플레이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뭔가 중요하다 싶은 보물이 나오는 에피소드라면 반드시 언급되던 인물이었으니까.

아무도 그 실물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유명하던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 놈 때문에 세계 멸망할 뻔했잖아.’


온갖 나라의 보물은 물론 대제국 랑그라시아의 성물과 용사 선정에 반드시 필요한 검까지 훔치고 홀연히 사라진 그야말로 대대대악당!


해적왕 이놈 덕에 용사 선정은 늦어지고, 성배가 없어져서 마왕 봉인은 풀리고, 아무튼 세계가 개박살날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뒷수습은 당연히 플레이어들의 몫이었고.

그래서 나를 포함한 뭇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리 말하곤 했다.


해적왕, 그 개새끼만 없었으면 그.디.온이 이 지랄이 나진 않았을 거라고.


‘근데, 그 해적왕이 왜 여기서 나와?’


물론 예상을 못 한 건 아니다.


‘해적’과 ‘해적왕’이다.


그.디.온에서 해적 직업이 업데이트된다고 발표했을 때,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당연히 해적왕의 등장을 예상하고 있었다. 운영진이 생각이 없는 게 아닌 한, 떡밥을 그렇게 뿌려놓은 해적왕을 여기서 활용하지 않으면 말이 안됐다.


그때는 만나는 즉시 바로 죽여버린다고 으름장을 놨었는데······.


[이제 와서 벙어리인 척 할 셈이라면 소용없다. 네놈이 말하는 것을 이미 보았느니라.]


나를 바라보며 뼈다귀밖에 안 남은 검지를 조롱하듯 흔드는 놈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이미 죽었을 줄이야······.”


어느덧 내 몸의 오한과 떨림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게 갈 곳 잃은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어이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죽었을 줄이야? 호오!]


아 씨발, 깜짝이야.

갑자기 왜 얼굴, 아니 해골을 들이밀고 지랄이야.

육성으로 튀어나올 뻔한 욕을 간신히 참았다.


해골왕, 아니 해적왕은 해골만 둥둥 띄운 채 내 주변을 돌고 있었다.

눅눅한 녹색 안광이 집요하게 날 훑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네놈 이제보니······.]


뭔데, 뭐, 뭐.


[이 해적왕의 추종자로구나?]


그 말과 함께 덜그럭, 놈의 턱뼈가 크게 움직였다.

저거 혹시 웃는 건가?


‘기분 나빠······ 아니, 정신 차리자.’


어쨌든 그 해적왕이다.

분명 놈에게 내가 암초섬을 빠져나갈 수 있는 수단, 즉 히든 피스가 있을 터였다. 괜히 녀석의 신경을 건들만한 말을 했다간 진짜로 여기서 아사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이 몸의 묘소까지 찾았는지 모르겠다만, 꽤나 재능이 있는 후배로다!]


여전히 덜그럭거리는 해적왕을 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참자, 참는거다······!’


잠깐만 이 해골의 비위를 맞춰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 아주, 아주 쉬운······.


[게다가 이렇게!]


순간 쑥, 하고 해골이 품속으로 들어왔다.


[럼주―]

“으아악, 씨발!”


뻐걱―걱―걱―

해골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쳤다.


***


“······저기.”

[······.]

“저기요? 아니, 제가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고······.”

[흥.]


고개를 돌려가면서까지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해적왕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상황이 난처하게 됐다.


‘아니, 어이가 없네.’


어떻게 한번 내려쳤다고 저렇게 반쪽이 됐지?


‘······이제 진짜 아사밖에 없나?’


토라진 해골을 달래줄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면의 절반을 부숴버린 놈이다. 나라도 그런 놈이랑 대화하긴 싫을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잠깐, 내가 굳이 해적왕의 기분을 풀자고 이럴 필요가 있나?’


여기는 온갖 보물을 훔쳤던 해적왕의 소굴······아니, 무덤.

그리고 내가 빙의한 캐릭터는 해적이었다.


‘기연이 꼭 해적왕이라는 법은 없잖아.’


해적왕이 훔친 보물 중에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게르에몬의 에메랄드.

시너지에 한해서지만 SSS급 티어를 받은 보물.


메인퀘스트의 핵심 아이템이었던 그 에메랄드는 소유자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이게 ‘행운’으로 뭉뚱그려서 그렇지, 인게임에서는 확률 자체를 올려주는 형식이었다. 즉, 드롭율 뿐 아니라 확률형 효과가 있는 스킬이나 아이템을 말 그대로 사기급으로 끌어올렸다.


어쩌면 그런 사기급 보물 중에 순간이동이 가능한 보물이 하나쯤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건 내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밑져야 본전이지. 일단 묘소는 한번 뒤져보는 게 맞다.’


온갖 나라에서 보물을 약탈하던 놈의 무덤이니 뭐라도 있을 게 분명했다.


‘다행히 지금은 빛도 있으니까.’


해적왕의 몸에서 솟아나는 녹염(綠炎)이 동굴 안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일단 해적왕은 내버려 두고 일단 동굴의 외곽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등 뒤로 끈질기게 달라붙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체감상 십 분 정도 흘렀을까.


“인생 진짜······.”


없다.

이 무덤에는 아무것도 없다.

저기 저 해골이 앉아있는 돌 왕좌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말이 안 되는데?’


그 해적왕이다.

조금이라도 유명한 보물에는 죄다 엮여있는 그 해적왕의 무덤이 이렇게까지 텅텅 비어있다고?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된다.


[새보다도 심장이 작은 우리 후배께서 뭘 그리 찾으시나?]


심심했던 건지, 아까까지 가만히 날 쳐다보고만 있던 해적왕이 말을 걸어왔다.

돌려 깐다는 느낌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토라져서 무시하고 있던 것보단 나았다.


“······해적왕, 당신 보물들은 전부 어디 있습니까?”

[역시 이 몸의 재보들을 찾고 있었군.]


덜그럭, 덜그럭 몇 번 턱을 움직인 해적왕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없다.]

“······?”


뭐라고?


“잠시만, 제가 잠깐 이해가 안······ 아니, 그럼 게르에몬의 에메랄드는? 리칸의 왕관은?”

[거기까지 알고 있었나? 역시 재능있는 애송이야.]


다시금 덜그럭거리던 해적왕의 눈이 번뜩였다.


[나한테 없다!]


나는 그만 정신을······ 다잡고 고개를 들었다.


“······왜?”


얼척이 없지만 이유라도 묻고 싶었다.

그렇게 난리를 쳐대면서, 온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면서까지 모아둔 보물들이 하나도 없는 이유를.


분명 무언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해적왕이 보물을 훔쳐가서 일어난 전쟁이 몇 개고, 세계가 멸망에 처했던 적이 몇 번인데······.


내가 그리 진심어린 눈빛을 보내자, 해적왕이 덜그럭거리며 다시금 녹색 안광을 빛냈다.


[잃어버렸다!]


뚜둑, 뒤통수에서 뭐가 끊긴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정신을 잃은 거였다.


***


무슨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꼴꼴꼴, 무언가 흐르는 소리와 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소리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 다시금 눈을 감으려 했다.


꼬르르륵.

“아윽!”


배가 고프다 못해 아릴 정도의 통증에 눈을 번뜩 떴다.

눈앞에 술을 마시는 해골이 보여서 순간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크으, 역시 이 맛이야!]


맞다 씨발, 이거 꿈 아니지.


“그거, 제 럼주인데요.”

[오, 일어났느냐?]

“제 럼주인데요.”

[내리 하루를 자더구나. 피땀 흘려 여기까지 온 그 모든 수고로운 노력들이 의미가 없었다는 게 그리 큰 충격이더냐?]

“내 럼주라니까!”


팔을 뻗었지만, 거진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은 몸은 힘이 없었다.

비실거리는 내 팔을 가볍게 쳐낸 해적왕은 특유의 덜그럭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젖내나는 애송아, 이토록 해적의 마음가짐을 몰라서야.]

“해적의 마음가짐? 모아둔 보물을 전부 잃어버리는 거 말하는 겁니까?”

[······.]


해적왕은 말없이 다시 럼주를 마셨다.

아니, 근데 럼주 아깝게 뭐하는 짓이야.


[크으······. 젖내나는 애송아. 이 선배가 해적의 마음가짐을······.]

“뭘 그리 쓰다는 듯 먹습니까, 바닥에 죄 질질 흘리고 있는데. 아니, 애초에 해골이면서 럼주를 마신다고 맛이 느껴지긴 합니까? 혀도 진즉에 다 썩어 없어진 것 같은데.”

[······.]


2:0이다.

뭐, 할말 있으면 해봐.

지금의 나는 한가온이 아니라 다크가온이다 씨발아.


그렇게 씩씩거리며 해적왕을 노려보고 있으니, 놈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에 가라앉아도 입만은 둥둥 뜨겠구나.]

“예?”

[그래도 어떤 놈 앞에서든 아주 잘 지껄이겠어, 뭐, 그것도 해적이 가져야 될 소양이지.]

“······지금 멕이는 겁니까?”

[아니, 마음에는 들지 않다만 애송이 네가 꽤 싹수가 있어보인단 소리다.]


이거 멕이는 거 맞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불쑥 눈앞으로 뼈만 남은 손이 들이닥쳤다.


[손을 줘봐라.]

“······손이요?”


까딱거리는 뼈다귀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또 무슨 장난질을 치려고 이러나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자, 해적왕이 유쾌하단 듯 덜그럭거리며 말을 이었다.


[왜, 이제 와서 이 몸이 널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으냐?]

“아니, 그게······.”

[사내놈이 뭐 그리 겁이 많은지, 네놈에게 해될 것 없으니까 이리 줘 봐라!]


허락도 없이 대뜸 내 오른손을 잡아채는 해적왕.

차갑고 딱딱한 뼈에 나도 모르게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무리였다.


[흠.]

“으윽······.”


뼈다귀에 손이 주물러지는 경험은 좋게 말해도 기분이 더러웠다.

해적왕은 내 손을 이리저리 주무르다가 손바닥을 빤히 바라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뭐, 적성은 있는 듯 하군.]


손은 좀 놓고 말하면 안될까.


해적왕은 뭐라는지 모르겠는 소리를 웅얼거리더니 이윽고 내 손을 놓아줬다.


[애송아, 여기서 나가고 싶겠지?]

“······방법이 있습니까?”


저 얼굴은 놀리는 얼굴이 아니었다.

내 물음에 해적왕은 들고 있는 럼주를 능숙하게 찰랑거렸다.


[당연하지, 후배님이 이렇게 묘소까지 찾아와 조공까지 해주었는데 이 해적왕께서 정녕 아무것도 베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더냐?]


베푼다고?

순간, 녹색 불빛에 그늘진 반쪽짜리 해골이 작살나게 멋져보였다.


“정말입니까?!”


온몸에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희망이란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그런 내 기대에 부응하듯, 해적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동굴의 천장을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럼, 우리 후배에게 베풀 선물을 보여주지.]


곧바로, 해적왕의 가슴께에서 녹색 불길이 치솟았다.


마치 막혀있던 용암이 솟구치는 것처럼.


암울한 불길은 순식간에 동굴의 천장을 뒤덮으며 뻗어나가 해적왕의 등 뒤로 일제히 모여들어 어떠한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건······!”


가장 먼저 형성된 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같이 생생한 용의 머리였다.

뒤이어 녹색 불길이 허공을 휘감으면서 용의 몸통과 꼬리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휘감은 꼬리의 모양새에 잠시 시선을 집중한 순간.


화아악!


꼬리 끝에 매달린 불길이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흑목으로 이뤄진 고풍스런 선체로 변했다.


그렇게 하나둘 완성되어가는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선체 중앙에서 폭죽처럼 위로 쏘아진 불꽃이 순식간에 두 개의 돛대를 만들 때도,

역재생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불 속에서 돛이 천천히 나타날 때에도.


“······미친.”


해적왕이 녹색 불에서 만들어낸 것은 거대한 동굴이 좁아 보일 정도로 꽉 들어찬, 나무랄 곳 하나 없는 제대로 된 범선······ 아니, 해적선이었다.


[자, 이 몸이 누구라고?]

“해적왕······.”

[목소리가 작다, 뭐라고?!]

“해적왕!”

[다시 한번?]

“위대한 해적왕이십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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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마경, 아마네세르 (3) 22.04.20 81 7 12쪽
18 18. 마경, 아마네세르 (2) 22.04.20 94 5 13쪽
17 17. 마경, 아마네세르 (1) +2 22.04.19 116 6 17쪽
16 16. 어서와요 유령의 배 (3) 22.04.18 119 6 16쪽
15 15. 어서와요 유령의 배 (2) +2 22.04.17 126 6 13쪽
14 14. 어서와요 유령의 배 (1) 22.04.15 134 9 17쪽
13 13. 유령선 (4) 22.04.14 147 8 14쪽
12 12. 유령선 (3) 22.04.13 159 7 13쪽
11 11. 유령선 (2) 22.04.12 183 9 13쪽
10 10. 유령선 (1) +2 22.04.11 210 12 14쪽
9 9. 튜토리얼의 끝 (2) 22.04.10 192 10 17쪽
8 8. 튜토리얼의 끝 (1) 22.04.09 195 9 13쪽
7 7. 노예선의 비밀 (3) 22.04.08 194 9 11쪽
6 6. 노예선의 비밀 (2) 22.04.07 211 12 14쪽
5 5. 노예선의 비밀 (1) 22.04.06 227 11 12쪽
4 4. 노예가 되었다 (2) 22.04.05 240 13 13쪽
3 3. 노예가 되었다 (1) 22.04.05 276 13 11쪽
» 2. 해적이 되었다 (2) +2 22.04.04 316 15 12쪽
1 1. 해적이 되었다 (1) +1 22.04.04 408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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