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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 87_SSD_*****

이계의 노예인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화창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0
최근연재일 :
2020.08.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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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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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어둠 속에 떨어져도

DUMMY

흔들리던 유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환이 기어가던 바닥도 무너졌고, 그 아래 싱크홀 같은 게 있었는지 좀비들의 잔해들과 함께 추락했다. 기환은 추락하며 정신을 잃었고, 다른 이들이 어찌 되었는지는 살펴볼 겨를 도 없었다.


***


기환이 어둠속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좀비화된 노예들의 시체로 뒤 덮여 있었다. 다행히도 시체들이 위 아래로 쿠션이 되어서 심각하게 깔리지는 않았다. 팔다리의 감각이 멀쩡하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느끼기에는 큰 지진 같았지만 유적 전체가 무너지진 않은 듯 했다. 아무래도 마법의 힘인 만큼 리치의 주변에만 지진이 일어난 듯 싶었다.

물론 추락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타박상과 몇 군데의 골절, 뇌진탕, 거기에 데쓰 골램의 시독까지 몸은 만신창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기환은 살아 있었다. 이만하면 불행 중 다행이 였다.


‘그래 살아 있으면 다시 할 수 있는 거야’


기환은 리치에게서도 귀족들에게서도 어찌되었든 살아남았음을 기뻐했다.

기환은 시체 더미에서 빠져 나오려 애썼지만 몸에 다리 쪽이 무거워 쉽지가 않았다. 몸이 정상이 었다면 어떻게든 비집고 나갔을 거 같지만 그렇지 않은게 문제였다. 얼추 빠져 나온 상체로 주변을 살폈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빠져나온 상체만으로 바닥을 더듬어 살펴보았다. 시체들 사이로 만져지는 느낌이 거친 게 유적보다는 동굴 같았다. 아마 유적의 아래층이나 아래의 빈 공간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그때 어둠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요?

“어빙?”

“시벨 살아 있는가? 그래 날세!”

“어빙도 살아 있었군요”

“운이 좋았다네”

“그렇군요. 어디에요? 여기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요.”

“잠시만 기다려 보게나.”


어빙은 어둠속에서 부싯돌을 이용해 병사의 창대로 보이는 부러진 나무막대와 죽은 노예의 옷을 이용해 횃불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도 시체들에 뒤덮였었는지 피범벅이 된 어빙의 모습이 보였다.


“저보다는 나아 보이네요. 그럼 이거 좀 빼주실래요?”


어빙이 다가와 기환의 다리 쪽을 누르고 있는 시체들을 밀어 내자 좀 가벼워진 기환은 시체더미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좀 괜찮은가 이제?”

“네 많이요. 고마워요. 어빙”

“고맙기는 뭘”


그리고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에 비친 어빙의 표정이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났었다. 사람 좋은 노인 같았던 어빙의 얼굴에는 한줄기 날카로움이 흘렀다.


“제가 죽었나 확인하러 오셨나요?”

“알고 있었나?”

“그럼요. 어빙처럼 아는 게 많은 노예가 어딨어요”

“왜? 노예가 되기 전에 공부를 많이 했을 수도 있지”

“20년이나 노예를 한 사람치고 너무 친절하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고생은 사람을 망가뜨리지, 온화하게 만들지는 않죠. 보기에도 왜소해 보이는 노인이 20년 동안 노예로 살아남으려면 패거리를 모아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밟고 빼앗으며 살아왔을 거 에요.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죠. 그런 사람이라면 주변에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근데 어빙은 혼자이면서도 친절 했어요”

“너무 잘해준 게 실수라는 것이군. 그래 다음 기회가 있다면 참고하지”


그러면서 어빙이 얼굴을 문지르자 노예 낙인이 지워 졌다. 그 모습을 본 기환은 힘없이 웃었다.


“근데 바로 죽여도 됐을 텐데 왜 여지껏 살려 줬었나요?”

“자네가 맘에 들었거든 난 재미있는 사람이 좋아”

“거짓말 하지 말고요”

“하하 어느 정도는 진심이라네. 물론 자네가 이상한소리를 하고 다녔나 확인해야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혹시 자네의 얘기를 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처리해야 했거든”

“그 티토라는 마법사가 의뢰를 한건가요?”

“암살자에게 의뢰인은 비밀이라네.”


어빙이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지만 기환은 그것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믿든 안 믿든 내가 자네를 살려둔 건 사실이라네, 자네는 나 말고 대화를 한 사람이 없더군. 그럼 의뢰인이 언급한 정보가 세어나 간 적이 없으니 진작 죽였어도 됐지만, 자네랑 얘기하는 건 정말 즐거웠어.”

“그것 때문에 채찍으로 맞으면서 노동을 한거에요? 방금은 죽을 뻔 했다고요”

“아까는 위험하긴 했지만 내 한 몸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더구나 리치랑 데쓰골램도 보고 좋은 경험이었지, 그리고 날 때린 감독관 놈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재미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옛정을 생각해 그냥 저 유적에서 죽은 걸로 하면 안 될까요? 좋은 경험도 했으니 손자들에게 들려줄 재밋는 이야기는 생긴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프로라네”


어빙이 그 요청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막상 거절당하니 조금은 속이 상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나름 어빙에게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 나도 나중에 사람 죽일 일 있으면 어빙에게 의뢰해야 겠네요”

“특별히 무료로 모시지”


말을 마치고 어빙이 기환의 숨통을 끊기 단검을 손에 들고 다가왔다. 기환은 비틀 거리면서도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어빙”

“이제 그만하게 마음 약해지겠네.”

“중요한 얘기에요”


기환의 말에 어빙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기환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중요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죽이겠어”

“아까 어빙이 말한 거 틀렸어요”

“뭐가 말인가?”

“의뢰인이 말한 정보 세어 나갔어요”

“무슨 소리지? 니가 누구랑 특별히 얘기하는 건 못 봤는데?”

“여기 있잖아요.”


어빙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이곳에 기환과 어빙 말고는 산 사람은 없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라면...”

“뭐에요 왜 둔한 척 하는 거에요?”

“무슨 말 인가?”

“어빙한테 말했잖아요.”

“뭘?”

“티토가 말한 정보요”

“자네가 다른 곳에서 왔다고 하는 거 말인가?”

“맞아요. 사실은 다른 대륙이 아니라 다른 세상이 지만”

“자네 머리를 다쳤나?”


어빙이 인상을 찌푸렸리며 말했지만 기환은 개의치 않고 계속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어빙이 손을 쓰기 전에 계속 얘기를 해야 했다.


“티토의 일파가 저를 이쪽으로 소환했어요. 제이미나라는 공주 주도로. 그러다 제가 특별한 능력이 없는 걸 알자 노예로 보냈고, 혹시나 제가 문제가 될까봐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저를 죽이려는 거 에요. 그 자리에는 시아킨이라는 마법사와 에라드라는 기사, 르메르라는 사제도 있었어요”

“시밸... 헛수고를 하는 군”

“어빙. 잘 생각해봐요. 저는 이미 다 말했어요.그리고 당신이 이 정보를 알건 모르건 그건 상관 없어요”

“...”


기환의 말을 들은 어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티토는 당신을 죽일 거 에요. 노예한테도 암살자를 보낼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 이런 불안의 씨앗을 남길 리가 없어요”

“나는 암살자야 보안이 생명이지”

“그랬으면 바로 죽였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 시간을 너무 끌었고요. 티토는 노예하나를 죽이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면 분명 의심을 할 거 에요”

“말이 퍼졌나를 확인하느라 늦은 거라고 하면 돼”

“어빙 이건 얼마나 근거가 있고 논리가 있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티토가 마음에 걸리나 안 걸리나가 문제에요.”


기환의 말을 들은 어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기환의 말을 인정하다는 뜻이었다.


“젠장, 여기서 나가면 도망부터 쳐야겠군...”

“돈은 미리 챙겨놨어요?”

“은신처가 있어, 고맙군 챙겨줘서”

“뭘요. 고마우면 어빙도 보답해요”

“고통 없이 죽여 주지”

“그 애기 이제 너무 지겹네. 무슨 유행어도 아니고 차라리 돈을 줘요”

“미안하군, 지갑이 없어서”


어빙은 다시 단검을 바로 잡고 기환에게 다가왔다. 뒷걸음질 치던 기환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면서도 기환은 계속 뒤로 물러났다.


“잠깐 마지막으로 몇 개만 물어봐도 돼요?”

“유언인가? 원하면 전해주지. 내 마지막 선물 일세”

“어빙이란 이름 본명 인가요?”

“물론 아니라네”

“진짜는 안 알려줄 거죠?


어빙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군 나도 꺼림 찍 해서 알려줄 수 없네.”

“알겠어요. 다음 질문”

“한 번 더 미안하지만 이제 여기서 나가야 겠네. 시체 냄새 때문에 더 이상 있기가 힘들군”


그때 기환이 격하게 기침을 하며 입에서 피를 쏟았다. 어빙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독인가?”

“네 위에 그 데쓰 뭐 시기 때문에... 어차피 죽을 텐데 그냥 놔 두시죠”

“내가 더 고통을 느끼지 않게 도와주지”


어빙을 기환의 코앞 까지 다가왔고 기환이 절박하게 외쳤다.


“잠깐만요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대답해 줘요. 나한테 말한 거 진짜죠? 마석이랑 마나 얘기”


어빙은 진짜 마지막이라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건 진짜라네. 내가 뭐 하러 곧 죽을 사람에게 거짓말 하겠나. 게다가 그건 그냥 기초적인 원리라네. 어디 기초 입문서라도 사서 보면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겠군. 혹시 저승에 가면 시도해보...“


순간 기환은 어빙에게 모래와 시체의 잔해를 뿌렸다. 기환은 어빙에게 계속 말을 걸면서 뒤로 물러나는 척 하면서 잔해 근처로 이동했었다. 거기에다 기환의 입장에선 운이 좋게 시체의 피가 어빙의 눈으로 튀었고, 시간을 벌수 있었다.

어빙은 기환에게 어느 정도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긴장을 풀고 있었고 그 댓가를 치르고 있었다. 기환은 어빙이 눈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동안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 횃불을 던져버리고 도망 쳤다.

하지만 다친 몸이었기에 얼마 가지 못했다. 거기에다 어빙이 본능 적으로 휘두른 단검에 상처도 입었다. 기환은 어쩔 수 없이 근처에 몸을 숨겼다. 기환은 어둠을 만들어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생각했지만 숙련된 암살자에게 어둠은 더 유리한 공간이었다. 어빙은 소리로 기환을 추적했다. 기환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다고 생각했지만 숨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어빙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헉...!”


어빙이 날린 비수가 기환의 옆구리에 꽃혔고, 기환은 짧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 다행이 깊게 박히지 않아서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시밸 우리의 마지막이 이보다는 아름다울 수 있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럼 살려달라고 이 새끼야...”

“나는 자네의 그 점이 제일 맘에 든다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거, 그런 놈을 죽여야 재미가 있지”

“변태 새끼...”

“칭찬 고맙네”


기환은 다 시 한번 흙을 뿌려 봤지만 어빙은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시독의 독성이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어둠속이라 어디로 가는 지도 몰랐지만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이제껏 기환이 살아온 삶 그 자체였다. 자그마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나아가는 애처로운 몸짓으로 기환은 조금씩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기환은 아래가 푹 꺼지는 느낌과 함께 추락했다. 지하가 꽤 넓은 곳이었는지 절벽이 있었고 어둠 속에서 도망치다가 떨어진 것 이었다.

어빙은 다 시 한번 불을 지펴 기환이 떨어진 곳을 살펴보았다. 절벽이라기 보단 어떤 구덩이 같은 곳 이었다. 어빙은 확인하듯 불붙은 천의 일부를 떨어뜨려 보았다. 불은 한참을 내려가다 사라졌다. 여기서 떨어졌다면 살기 힘들 것이다.


“잘 가게 시벨. 다음 생에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나.”


구덩이를 향해 조의를 표한 어빙은 걸음을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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