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사상 최강의 중학생 (6)
나는 여전히 쫄아서 의자에 앉아있는 놈에게 걸어갔다. 그리 넓은 방이 아니었기에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래도 천직이 딜러였다면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덤벼들었을 텐데.
‘투쟁심 감점. 반사 능력 감점. 응, 그래서 넌 탱커야.’
나는 오른팔을 뻗어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정수리를 손가락 ‘하나’로 지그시 눌렀다.
“일어나봐.”
“뭐?”
“니 코딱지만 한 마력이든 뭐든 써서 일어나보라고.”
나는 말하는 순간부터 이미 마력을 사용했다. 지금 내가 취한 자세를 고정하는 목적으로.
‘부동심.’
몸의 강도를 일시적으로 올려 괴물의 공격을 받아내는, 탱커라면 필수로 익혀야 하는 마력제어이기도 했다.
“무슨?!”
덜컹덜컹!
“이거. 어? 이익!”
덜.컹.덜.컹!!
박현철이 힘을 줄 때마다 박현철이 앉은 의자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고, 앉은 자세에서 어떻게든 일어나려 해도 내 몸은 단 일 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부동심을 쓴 탱커의 몸은 마력이 남아있는 한 강철보다 단단해져 소총 등의 개인화기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력이 없는 사람은 마력을 쓴 헌터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거다.
“이이익-! 윽!”
나는 녀석이 한참을 시뻘건 얼굴로 낑낑대다 포기하자 그제야 손가락을 정수리에서 떼었다.
만약 내가 손가락을 더 아래로 누르기라도 했다면 녀석의 두개골은 두부처럼 푹 들어가며 죽었을 거다.
병아리 목을 비트는 것보다 쉽게···.
“2급반이 이러면 1급반은 정말···괴물이겠구나. 하아,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네.”
박현철은 현타가 온 것처럼 보였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나 정도면 전 학년 포함해서 다 바르니까.”
“웃기시네.”
“진짠데?”
3급반 주제에 안 믿다니, 또 열받네?
내가 다시 손을 들어 박현철의 머리를 누르려 하자 녀석이 움찔하며 의자와 함께 뒤로 도망쳤다.
“근데 왜 반은 2급인데?”
“아···. 몰라.”
이 녀석 탱커 주제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재주도 있다.
뭔가 헌터 평가 때 뻘짓을 한 것 같은데 정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래되기도 했고, 과거의 일보다는 앞으로가 더 중요했으니까.
“너도 지는 건 엄청 싫어하는구나. 그럼 네가 우리 학년 수석도 이기겠다?”
“장난하냐? 내가 갖고 놀지.”
뭘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어딜 완성된 헌터인 나와 ‘그것’을 비교하고 앉았을까?
이 나이 먹고 어린놈 말에 일일이 감정 상할 생각은 아닌데 그것과 엮이니 기분이 좋지 않다. 나도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
“됐고, 넌 탱커나 해. 괜히 이길 저길 기웃거리다가 시간 낭비하지 말고. 꼬우면 날 이겨보든가.”
“하···. 탱커라. 탱커는 눈에 안 띄잖아. 월반하려면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교사들 눈에 띄면 월반이 쉽기는 할 거다. 그래도 월반 욕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 정도 승부욕 없이 헌터 일을 했을 리 없다.
“학교에서는 니가 ‘부동심’ 하나만 제대로 익혀도 1급반으로 올려 보내준다.”
“나는 그런 기술 못쓰는데···. 나는 물건에 마력을 줄 수 있더라. 봐봐.”
박현철은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들고 똥 싸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잠시 후 교과서에서 약간이지만 푸른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
아직 방법을 몰라 마력 회로를 그려 고정하지는 못했지만, 박현철이 손을 통해 마력을 교과서로 전이시키긴 했다.
“봤지? 그래서 나는 내가 딜러가 천직인 줄 알고···. 솔직히 맞잖아?”
응, 아니야. 딜러의 재능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어떤 ‘유의미한’ 효과를 발현했을 거다. 내 경우는 ‘절삭’이었던 것처럼.
저 정도로는 명함을 내밀면 안 되었다.
그래도 탱커도 무기나 방어구를 사용한다. 구제할 가망이 없는 멍청이나 한가지 기술만 쓰지, 나머지는 못해도 두 개에서 다섯 개의 기술은 익히는 편이니 앞으로 훈련 여하에 따라서는 꽤 메리트가 있겠다.
‘특히 방패에 마력을 담을 수 있다면 말이지?’
하나만 제대로 익혀도 인정해주는 게 탱커인데, 거기에 약간이지만 장비에 힘도 실을 수 있다? 그것도 방어와 관련된 것으로?
머릿속으로 정말 딴딴한 탱커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그건 꽤나 그림이 되었다.
2급 수준의 어정쩡한 탱커가 아니었다. 어쩌면 박현철도 ‘누군가’의 지도 여부에 따라 1급 탱커로 이름을 날릴 수 있을지도···.
“그건 네 필살기로 남겨두고, 우선은 탱커 먼저. 교사가 물어보면 네 장래희망은 탱커라고 해라. 부동심은 내가 가르쳐주지.”
“네가 마력 제어를 가르쳐준다고-?”
박현철이 더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는 박현철의 반응을 이해하기에 작게 고개를 다시 끄덕일 뿐이었다.
극소수의 금수저가 아니라면 학교에서 받는 수업 외에는 헌터 기술을 배울 방법은 없다. 헌터란 그렇게 한가한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딱 한 번. 앵기면 뒤진다.”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다시 들어 박현철의 정수리에 대었다. 그리고 정수리부터 가슴팍까지 마력을 흘렸다. 부동심이 작용하는 마력 회로였다.
“오오오?”
“느껴지냐?”
“오오!”
“···필요에 따라 가슴이나 팔, 얼굴에 집중해서 쓰는 거다. 마력이 남아나는 게 아니니까. 이 마력회로를 나중에는 너 혼자서···.”
“오오오!”
안 듣는다. 그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가능성에 취한 모양이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박현철은 끝까지 괴물과 싸우다가 죽었다.
죽기 전에 후회했을까? 나처럼···.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녀석이 전보다 빠르게 강해진다고 해서 세상에 해가 될 건 없으니.
이걸로 이전에 나를 소소하게 도와준 값은 충분히 치를 수 있을 듯싶다. 이자까지 듬뿍 쳐서 말이다.
아주 약간의 시간 투자. 내 마음이 편해지는 비용으로는 나쁘지 않다.
***
부동심까지 보여주는 실력행사 후 박현철은 이제 나름 고분고분해져서 이후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쩌면 오늘 하루 우리가 나눈 대화가 과거에 평생 했던 대화보다 많을만큼.
“하핫.”
하고 크게 웃기도 했고,
“꺼져.”
같은 막말도 점차 자연스레 나왔다.
우리 둘 다 중학생이 아니었다면 새우깡에 소주라도 했을 텐데 못해서 그게 아쉽긴 했다.
얘기해보니 생각보다 더 괜찮은 놈이었다. 모난 곳도 없었고···.
죽기 전까지 몇 년을 춥고 외로운 도피 생활을 했기에 나도 사람과 대화가 그리웠나 보다. 마치 동창회에서 우연히 오랫동안 떨어져 잊고 지내던 친구를 다시 마주한 것 같은 기분도 썩 기꺼웠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멸망한 세상에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었고, 이 어린 몸은 점심 따윈 모두 소화해버렸다.
지금 내 입과 혀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야, 저녁 식사까진 시간이 조금 있잖아.”
“응? 한 시간 정도 있지.”
박현철이 시간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앞으로 한 시간만 참으면 밥을 먹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굳이 이런 공복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있을까?’
나는 참고 살지 않기로 했다.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스트레스 안 받는 삶을 살다 깔끔하게 죽기로 했으니까.
“못 기다려.”
“어?”
그러니 나는 지금 먹어야겠다. 이 학교의 매점에도 관심이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주 고객인 매점에는 어떤 것을 팔까?
‘이전에는 매점을 애용하지 않았어.’
탄수화물과 지방에 치우친 해로운 식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점심식사의 품질을 보면 오히려 그런 식사 후에도 손이 갈 만한 무언가를 팔고 있지 않을까? 그래야 장사가 되니까!
“일단, 뭐 좀 먹을까?”
“너 사실 답정너지?”
“내가? 아니. 오해다.”
감히 나를 답정너라고 하다니! 내가 지금 배가 고픈 건 이 어린놈의 자식에게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며 칼로리를 소모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다니. 조만간 다시 손봐줘야 할 것 같다.
“지갑 챙겨서 나와.”
“나도?”
“나 길 몰라.”
자, 이제 똥 씹은 표정의 박현철을 뒤로하고 기지개를 켠다. 오늘 매점은 내가 접수한다.
“답정너···.”
“응? 뭐어라고? 마력도 못 쓰는 찐따라 안 들리는데? 크게 좀 말해봐~.”
“노잼틀딱···.”
퍽-!!
박현철의 짧은 비명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세상에는 꼭 사서 매를 버는 놈이 있다.
이 녀석, 역시 탱커를 해야 할 상이다.
“이거 진짜 아파. 미친놈아!”
“뭐래, 빨리 나와.”
“미친놈아, 미친놈아! 미친놈아!”
···도발 또한 참 끝내주지 않는가?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은 1급 헌터인 내가 슬슬 머리에 열이 받으려 한다.
이런 놈은 내가 탱커로 꼭 만들어준다.
두들겨 패서라도.
물론 교육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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