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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에서 마법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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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4.07.08 06:32
최근연재일 :
2024.08.25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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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34

작성
24.07.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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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1. 적혈파

DUMMY

***




“우리 적혈파에는 견습 제도라는 게 있다.”


짐짓 진지한 투로 말을 하는 사내가 있었다. 낮. 햇볕을 피한 장원의 어느 천장 아래.


적혈파 본채 장원 안쪽에 햇볕 가리개를 설치한 공터가 있었고. 벽은 없이 천장만 덜렁 있는 작은 연무장이었다. 적혈파에 있는 어린 놈들이 훈련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간이다.


지곤 역시 거기에 있었다. 어쨌거나 이 사파 무림 단체는 관영 시에서는 손꼽힐만한 단체였다. 제 나름의 체제나 규율이 있었고. 그 체제의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지곤이 곧바로 경험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적혈파에 들어올 수 있었던 지곤은, 적욱과 마식의 인도 아래 장원 안에서 편하게 잠을 자기까지 했다. 그리 대단찮은 식사까지 대접받고서, 그 다음 날의 아침이었다. 지곤이 내원에 있는 연무장에 선 것은.


아침으로 먹은 두툼한 주먹밥과 청어 말린 것이 입안에 남아 있는 듯했다. 적혈파는 무림 방파에 들고 싶어하는 어린 놈들, 혹은 준비가 안된 놈들이 찾아 오면 나름대로 교육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약관弱冠을 넘어야 방파의 정식 단원으로 인정을 해주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 같았다. 어린 놈들을 마구잡이로 사지에 내몰아서야 꿈자리가 사납다는 이유에서인 듯했다. 언제부터 그런 체제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지곤의 아비 역시 겪은 절차였고. 적혈파가 그래도 관영 시에서 으뜸가는 무림 단체라고 할만한 이유이기도 했다.


“어이, 나와 봐라.”


햇빛 가리개 아래. 나무 지붕으로 하늘이 막힌 연무장 안쪽에 선 것은 조금 비쩍 마른 체형의 단원이었다. 체형이 얇상하나 그 눈빛이 매서웠고. 나름대로 근육이 붙어 있어 만만찮을 것 같은 분위기를 흘린다.

체형에 따라 다른 종류의 무술을 구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상대의 동작을 그로부터 유추해야만 실전에서의 승률 역시 오르는 법이었다. 지곤은 숨쉬듯 만나는 문파원들의 경지를 가늠했다.


경지를 가늠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달리 말해, 마주치는 대개의 인물들은 지곤보다 하수라는 말도 되었다.


"예, 예."


지곤은 자신을 부르는 말에 어깨를 말아 굽히머 밖으로 나섰다.

약 삽십 여 명은 되어보이는 숫자의 수련생들이 있는 가운데서였다.


출가를 결심했으니 먹고 자고 입을 것까지 나름대로 챙겨는 왔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지곤은.


검은색의 무복을 입은 견습 하나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바른대로 말하자면 사실 나서기 이전부터 흘긋거리며 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도 나름의 규칙성이 있기는 할 테였다. 자신들이 잘 형성한 무리에 갑자기 웬 낯선 놈이 들어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지곤의 좌우명은 '어찌되었든 눈에 띄지 말자'였다.

그건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지곤에게 이런저런 기술들을 가르쳐 줄 때부터 있던 마음가짐이었다. 아비가 명확하게 앉혀놓고 주입한 건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그런 태도를 배운 것이다.


남들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었다. 특히 남다른 점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면 더욱이 말이다.

모난 정은 늘 돌을 맞기 십상이다. 지곤은 태연한 얼굴. 어딘지 유약한 표정을 지으며 앞에 선다.


"......."


좌중 앞에 서자 표정들이 다양했다.


저 새끼는 뭔가, 하는 얼굴에서부터 단순한 호기심까지.


앞에 모인 이들의 나잇대는 대개가 10대 중반 정도였다. 듣기로도 그러했고. 실제 보기에도 장성했다 싶은 이는 많지 않았다.

지곤은 나이에 비해 성숙하게 생긴 편이라 조금 어른스러워 보인다.


대부분 사내 아이들. 아주 적게 섞인 여자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자니 얼굴이 민망했다. 옆에 선 자를 슬쩍 바라보자 그가 대신 할 말을 해준다.


"견습은 보통 약관 이하의 지원자들을 받아서 운영한다. 여러가지 시험이 있고... 그 때까지 살아남지 못한다면 적혈파의 정식 단원은 될 수 없다. 다들 알고 있겠지?"

"예!"


이들에게는 아주 뻔한 소리일테지만. 지곤을 위해서 좌중을 지휘하는 사내가 한 번 더 설명을 해준다. 뻔한 소리에도 아이들은 군기가 제법 잡힌 대답을 뱉는다. 조직의 규율은 센 모양이었다.

사파이기에 더욱, 겉으로 보이는 군기가 세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정파에 비해 깊이 있는 규범이나 전통이 부족하기에. 급조한 것일 지라도 잘 익혀놔야 조직의 기강이 설테지.


"오늘은 그런 견습에 한 놈이 더 들어왔다. 이봐."

"예!"


지곤은 조금 빠릿하게 대답을 했다. 약간의 머뭇거림과 함께. 조금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녹아드는데 쉬운 법이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이름."

"아, 지곤이라고 합니다. 벽. 지곤."

"나이는!"

"십 오세입니다!"

"......."


아이들의 눈이 조금 게슴츠레해졌다. 자신들보다 몇 살은 더 위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몇 놈들은 말이다.


"행정관님 말씀에 따르면 나름대로 무술을 익혔다고 한다. 앞으로 내원에 머무르며 같이 생활할 테니, 얼굴을 잘 익혀놔라!"

"예!"


지곤과 아이들이 함께 대답을 했다.


"기일 오전 일정을 실시한다. 반장!"

"예! 금일 오전 연무장에서 체력 훈련과 검술 훈련. 대련이 있고, ...오후 점심 이후 주악산에서 사냥 훈련이 있습니다!"

"...그래. 좋아. 다들 아침은 잘 먹었나!"

"예!"

"한 놈도 빠짐없이 잘 먹고, 잘 살아남아라. 관영 시에서 제일 가는 문파가 바로 적혈파고. 네놈들은 거기에 당파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아!"

"예!"

"대형으로!"


비쩍마른 사내의 말에 반장이라는 듯한 범생이 하나가 나와서 일정을 줄줄 읊었다.

이후 교관의 말에 아이들이 따박따박 대답을 할 때마다 지곤도 대충 박자를 맞춰 소리를 쳤다.


마지막 말에 아이들은 늘 있는 일인 마냥 연무장 곳곳으로 퍼졌는데, 지곤은 대충 교관의 눈치를 살피다가, 별 말이 없자 뒤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남는 자리에 적당히 서서 아이들이 하는 양을 따라할 요량이었다.


"......"


사내는 아이들의 대형을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다가 소리쳤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제 놈 성격같다, 고 지곤은 생각했다.


"일번 자세부터 천 번씩! 팔 번 모두 통과하는 놈은 먼저 쉬어도 좋다!"


억.


지곤은 날쌘 걸음으로 가운데 줄의 가장 뒤로 가서 섰는데. 하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더럽게 빡센 편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동작인지는 몰라도 천 번씩 여덞 개라면 오전 내내 해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소년 소녀들이 모두 대단한 고수들이라면 금방 해내겠지만. 그런 경지라면 이미 여기서 이러고 훈련을 받을 이유가 없다.


다 해내지 못할 훈련량이었고. 교관이 뻗을 때까지 시키다가 적당히 끊는 모양이었다. 지곤은 딱히 알려주지도 않는 걸, 옆에 투실하게 생긴 사내 놈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대충 따라 했다.


첫 번째 동작은 마보 자세를 취하고, 양 손으로 정권 지르기를 한 번씩 하고 직립하는 것이었다.


"하나!"


아이들 중 몇은 소리를 우렁차게 내면서 움직였다. 지곤도 어쩔까, 하다가 적당한 크기로 소리를 뱉으며 속도를 조절해갔다.


일류 고수쯤 되면 기의 수발에 상당한 깊이가 생기고. 외공이나 내공이나 어느 정도 도를 알아 다양한 신체 현상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고로,

적당히 땀을 삐질 흘려대며 힘든 척을 하기에도 용이하다는 말이다.


지곤은 아이들이 헉헉대는 숨에 맞춰 느리게 움직이며 땀을 내기도 했다.


*


"얌마. 너, 우릴 보고 인사도 없냐?"


대뜸 그렇게 묻는 소리가 있길래 지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가다가 옆을 처다보았다.


다같이 땀을 뻘뻘 흘린 꼴이라 엉망인 얼굴이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에 단정하게 차려입었던 무복들은 여기저기 삐져나오고, 흙투성이에 머리도 비죽거린다. 개중에서 퉁퉁한 놈 하나. 비실한 놈 또 하나. 마지막으로 머리를 빡빡 밀고 두건을 쓴, 몸집이 작은 놈 하나가 지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혈파의 장원은 제법 넓었다. 수십 여 명의 견습생원들이 훈련과 다양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여기에 문파의 본원들이 쓰는 건물도 몇 채가 더 있으니 상당한 규모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파벌에 속한 고수의 숫자나, 내실에 비해 떵떵거리는 느낌이기는 하다. 관영 시에 그만큼 대단한 문파나 집단이 달리 더 없다는 말이기도 했고.


아무튼 훈련장에서 다시금 생활채로 들어가는 길목, 그늘에 아이들이 있길래 지곤은 빤히 바라만 봤다.


"......."


지곤은 별로 말이 많지는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해주고 싶은데, 귀찮았다.


꼭 해야할 말이 아니면 섞기 싫다. 나름의 뜻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기는 하다만. 아이들을 하나하나 상대해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자식이. 어제 몰래 들어와놓고 우리한테 인사도 없었지. 오늘이라도 봤으면 고개를 숙여얄 것 아냐."

"......."


시간은 정오를 조금 넘긴 때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훈련은 생원들의 체력을 전부 빼놓기에 충분했고. 다들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이끌고 쉬러가는 와중이다.

그와중에 치기를 부리는 놈들이니. 생각해보면 나름 뛰어난 놈들일지 모른다. 체력이 남아 돌아야 시비도 걸 것 아닌가.


흠.


지곤은 빤히 놈들을 처다보며 턱매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지나야 할 일이라면 한 번은 상대해주는 게 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리 여기며 입을 연다.


"그래. 미안하다. 어제 들어와서. 너네는 이름이 뭐니."

"감울이다." "휘수." "두식."

"그래, 반갑다. 나이들은 어떻고."

"...열 다섯."

"그래, 그래."


지곤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이들이 걸터앉은 틈으로 지나가려고 다가갔다. 연무장에서 내원으로 향하는 샛길, 건물과 건물 사이 지붕이 쳐져 그늘이 있는 지름길이었다. 두셋 정도가 나란히 걸으면 조금 답답한 느낌이다.


"어, 이 놈. 뭐야... 한 번 해보자고?"

"해보긴 무얼. 동갑이니 반갑다. 다들 힘들진 않고?"

"어어?"


지곤은 찌든 꼴을 하고 그냥 그대로 턱턱, 걸어가서 아이들에게 몸을 부대끼며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가운데 있던 투실이. 감울이라고 한 대장같은 놈이 일어서며 지곤의 팔을 잡아 끌려고 한다.


금나수의 수법이라는 건, 아무것도 들지 않은 적수의 상태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 넘기거나 잡아채는 식이었다. 달인의 경지라면 맨 손으로 상대의 창검까지 잡아내거나, 혹은 상대편의 칼손잡이를 뺏어 무기를 없애기까지도 한다.


지곤은 다가오는 투실이의 손을 가볍게 움직여 피하고, 쳐냈다. 감울은 지곤의 팔이 연체동물처럼 움직인다고 느꼈다. 문어니 뭐니 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기 쉬운 건 아니었지만 관영 시는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고. 멀리 있는 곳에서 다양한 생물이나 상품들이 들어온다.


툭, 하고 쳐낸다. 놈의 왼편에 있던 비실이, 휘수 역시 멍청한 소리를 내며 지곤의 옷자락을 잡으려고 했으나, 지곤은 왼손으로 비실이의 손을 부드럽게 꺾어 방향을 돌려주었다.


아이들의 수준은 삼류에 못 미치거나, 혹은 삼류였다. 굳이 무림인의 기준으로 나눈다면 말이다. 지곤과 나이는 같았지만, 보낸 세월과 재능의 깊이가 달랐다. 안타깝게도.


지곤은 아무도 붙잡지 않은 것처럼 신묘한 수작을 몸으로 보이며 유유히 빠져나갔다. 오른편에 있던 작은 놈, 두식이 그나마 반응을 했다.


고작 한 호흡 하고 반, 정도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미 지곤은 놈들이 앉은 구석을 지나 다음 걸음을 걷고 있었고. 가장 말이 없던 두식이란 놈이 제 몸을 용수철처럼 움직여서 지곤을 잡으려고 했다.


뭐 하는 놈인가, 싶었다. 지곤은.

나름대로 호승심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다음 순간에는. 한창 배우고 자라나는 아이들이니. 비슷한 나잇대의 놈이 자신을 제치면 기를 쓰고 덤벼들 수도 있겠다 싶다.


툭.


지곤은 팔을 뻗어오는 놈을 보며 몸을 빙글 돌렸고. 마주 바라봐주며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어깨를 지그시 눌러 몸을 옆으로 밀었다. 가벼운 동작이었고, 힘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듯 아주 신속했다. 그러나 그 동작에 담긴 무게감이 가볍지 않았다.


두식은 자신의 어깨에 누가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대로 밀려나 균형을 잃더니, 풀썩 옆으로 혼자 넘어져버렸다.


"억."


두식이건 감울이건, 휘수건 놀라는 소리를 뱉는 건 같이였다. 반응이 어지간히도 굼뜬 놈들이었다. 그나마 두식이 가장 나았지만.


쯔쯔.


지곤은 아주 희미하게 혀를 찼고. 귀가 좋은 놈은 들었을 지도 모른다. 대놓고 차지는 않았고.


"고생했다. 밥들 맛있게 먹어라."


모두에게 모든 실력을 알려선 안된다.


그건 무림의 철칙이었고,


인간사의 지혜이기도 했다.


그러나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실력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건 때로 효율적일지 모른다.


지곤은 일류의 수법으로 아이들을 눌러주며 터벅터벅 걸었다.


어깨는 축 처지고, 허리도 말려 추레한 자세였는데, 순식간에 거리가 멀어졌다. 순간적으로 기를 다루고, 근육을 써서. 소리를 많이도 내지 않고 빠르게 걷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뭐 이......."


라며 한탄처럼 소리만 뱉으며 지곤의 뒤를 눈으로 쫓았다.


놈들끼리도 느끼는 바는 있고, 아주 멍청하지는 않은지 따라가서 우악스럽게 굴지는 않았다. 아예 무술을 모르고, 보는 것도 없는 놈들이었으면 그런 수에 당해도 고수의 손길인 줄을 모르고 더 치댔을 것이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무림계의 끄트머리에는 설법한 수준이었다. 적혈파의 수준과 미래를 가늠하기에도 좋은 마주침이긴 했다.


*


"지곤이라는 놈이 뭐라고?"

"아, 예. 그러니까......."


적혈파의 부장, 이라고 할만한 자는 몇 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유력한 인물은 작비라는 자였다.


공교롭게 적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적미와 적염을 가진 자였다. 머리는 깔끔한 민둥산이었고.


형형한 눈빛을 짐짓 빛내는 부장의 옆에 선 것이 이야기를 금방 꺼낸, 적욱이었다. 곰같은 인물이었다. 덩치가 크고, 눈치는 빠르지만 동작이 묵직한 감이 있고 방정맞지 않다.

실력도 좋았고, 장문인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작비로서도 신임하는 사내였다. 사파라 하더라도 모름지기, 입이 무겁고 신의라는 게 흔적이라도 있는 인물이 크게 쓰이는 법이었다.


조직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자신의 집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은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듣는다. 제법 화려한 족자같은 것이 걸려있기도 하고. 나름의 재력을 드러내는 방이었다.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적혈파의 사정이나, 부장의 위세 따위를 알 수는 있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 역시 있었는데.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은은한 숲의 향이었다.


"갑자기 저희 문파에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온 어린 놈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크게 문제 없으면 어린 놈들이 들어오는 건 막지 말라고 하신 바가 있어 일단 들였습니다. 관영 시 출신이고... 무술을 이미 조금 익힌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 견습생원들과 함께 하루종일 훈련을 시켜보았는데. 아마 아이들 정도의 실력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것 같습니다."

"......."


작비는 적욱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이들은 어차피 적혈파의 좋은 노동력, 일꾼이 될 수 있다. 다 큰 놈들이야 받을 때 조심할게 있지만. 어린 놈들은 이래저래 굴리고 다루다 보면 어쨌든 쓸만하게 된다. 심보든, 체력이든 말이다.


굳이 적혈파에 어린 것을 자객으로 보내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려 할만큼, 심계가 깊은 적은 이 관영 시에 달리 없었다. 적어도 작지바 현재 아는 한은 말이다.


관영 시내에서는 확실히 그러고. 또한 다른 도시에서 굳이 이 적혈파를 견제할만큼 대단한 세력은 아니었다. 이 문파는.


그리고 어리고 재능이 대단한 놈이 굳이 이 문파에 들어오는 일도 그리 흔하진 않다.

재능이 있고, 그것이 닦여 있다면 어쨌거나 사사를 받은 스승이 존재할 확률이 높다. 아예 무술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들어와 제 재능을 여기서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실력이 뛰어나다라.


고작 아이들 수준에서 얼마만한 실력을 얘기하는 것인가. 작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얼마나."


작비는 말이 짧다. 아랫사람에게 대할 때는 더욱 그랬다. 적욱 역시 말이 많은 자는 아니었고. 적은 말로도 대화가 통하는 인물이라 작비가 좋아했다.


"...적어도 이류 급에서 중간 이상은 되어 보입니다."

"허."


이류, 라고 하는 건 쉬운 수준은 아니었다.

삼류 무림인, 이라고 하는 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무림인들의 경지였다. 칼을 들고 어딘가의 방파원이라고 하지만, '기'를 다루어 대단한 일은 못하는 작자들.


거기에 이류, 라는 건 나름의 재능이 있어 경지를 갈고 닦고 빛을 조금이라도 본 이들을 뜻한다. 이 문파의 가장 주력이 되는 인물들이 그 정도 경지였고. 어느 정도 실전적 경험과 수련한 내공이 조화를 발휘하는 수준이다.


이류 무림인들이 많고, 탄탄하게 방파를 받쳐준다면 어지간한 군대가 와도 무섭지 않다. 물론 일류, 절정의 고수들이 많으면 좋기야 하겠다만. 그건 규격 외의 이야기였다.


적혈파에서 준수한 실력을 가진, 노련한 단원들과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나이가?"

"열 다섯입니다."

"호."


확실히 빠른 성취다. 불혹, 지천명을 넘어도 일류에 닿지 못하는 이들은 널렸다. 어떤 이들은 평생 삼류나 이류에서 무림인으로서의 경주를 끝내곤 한다.


소년기에 그 정도라고 한다면, 나아가서 일류, 혹 절정을 바라볼 수 있는 재목일지도 모른다.

말인즉슨 어지간한 방파의 장문인이 될 수 있는 재능이라는 뜻이다.


"이름이 뭐라고?"

"지곤이라고 합니다. 벽지곤."

"흠...."


작비는 고개를 혼자 까딱거렸다. 험상궂게 생겼으나 혼자 사색하기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적혈파의 부장은 말이다. 그가 곧 명을 내렸다.


"놈의 내력을 좀 조사해봐. 쓸만한 놈이면 적혈파에 뼈를 묻게끔 하는 게 낫겠지."

"...알겠습니다."


적욱은 예상한 답변을 들었다는 듯 별 기미도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애초에 반쯤은 그럴 생각으로 왔으리라. 상관의 명령을 확인하고 또 보고를 하기 위해 전달한 것이다, 그냥.


곰같은 사내는 무감한 표정으로 몇 마디 말을 더 듣고는, 부장의 방에서 나섰다.

어지간하면 별 일로 치지 않는 그였고. 적혈파의 일상은 별다른 일이 없는 날들이 길게 이어져왔다. 개중에 일어난 별 일이었다. 그의 생각에 지곤이라는 놈이 들어온 건 말이다.


"흠."


사내가 실내 복도를 걸으며 작게 고민하는 소리를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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