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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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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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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7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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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70. 다시 한 번,

DUMMY

*


게오르그 후딘으로부터 들은 정보가 많았다. 얇은 사슬에 달린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면서, 제냐가 말했다.


“로웰, 어떻게 생각해.”


로웰은 드물게 제냐가 편히 말을 하는 대상이었다. 그 특유의 수더분함이 다른 사람을 마음 놓게 만드는 건지 몰랐다. 사내는 손으로 제 입을 감쌌다. 뺨을 쓸어내리곤 답한다.


헌터즈 길드원들은 결국 대공령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까, 를 논의하다가 모임을 파했다.


같은 곳에서 로그아웃을 했고. 다시 들어왔을 때 모인 건 제냐, 호아킨, 최태현, 그리고 로웰 드버 뿐이었다.


로웰의 시점에서는 계속해서 대공령 근처의 황무지 위에 야영을 하고 있는 상황일 테다.


“대공의 계획이 정말 그렇다면, 막아야겠지.”


로웰은 붉은 눈을 빛냈다. 제냐는 고갤 끄덕인다. 말을 꺼낸 이유는, 그리턴 가에 좀 전해달라는 의미였다.

로멜리아 가문과의 퀘스트를 해결하면서 얻은 귀중한 인맥이었다. 그리턴 자작가는. 거기에 왕가의 방계이기도 하니만큼, 왕실에도 어떻게 말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당장 사르삿에 가서 그들이 간언을 올리는 것보다, 그리턴 자작을 통하는 게 더 빠른 방법일 테였다.


“하이샨 그리턴 자작께 말씀을 소상히 드려. 대공에 대해서. 산슈카를 뒤엎을 계획을 꾸미고 있고··· 급보이니 왕가王家에 꼭 좀 잘 전해달라고.”

“알겠어.”


로웰은 어린 청년의 말에 고갤 끄덕거렸다.


그들이 있는 황무지의 시간으로는 밤이었다.


저녁이 지난. 새벽이 되기 전의 시간이다. 호아킨은 업무상 휴무일이라 보고 있었다. 평일이었으나. 한국에 있는 제냐와 최태현은, 실제로는 늦은 시간이라 졸음을 이겨내며 플레이를 하고 있었고.

호아킨의 실제 시간으로는 한낮이었다. 서울과는 13시간 차이가 나다보니, 늘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라이엔의 컨디션이 돌아오면. 그녀와 함께 데슈칸으로 가도록 해.”

“음.”


제냐의 말에 로웰이 긍정했다.


라이엔과 릿샤는 로그오프한 상태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정도로 로웰의 AI는 인식하고 있었다. 누구나 아픈 날이 있는 법이었다. 몸이던 정신이던. 철인이나 초인이라고 해도 다를 바는 없다.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전달하고, 사람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라이엔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갈색 매는, 원래 빠른 속도를 지니지만 라이엔의 테이밍 스킬로 인해서 보다 업그레이드 되었다. 일반적인 갈색 매 몬스터에 비하더라도, 썬더스는 압도적인 빠르기와 강함을 지닌 개체가 되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현재 위치에서 그리턴 가와 사르삿을 모두 들를 수 있을만한 속도였다. 그러나 라이엔이 들어와야 한다. 그녀는 내일 실제 직장에서의 업무가 많다고 했고, 덕분에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 퇴근을 할 때 즈음 볼 수 있을 테다.


그리턴 가에 당부를 전하면. 아마 하이샨 그리턴 자작은 그들의 말에 따라 움직여줄 테였다. 그는 의리가 좋은 사내였다. 로멜리아 가문과의 일을 함께 치러내면서 전우戰友나 다를 바 없는 사이가 되었다. NPC와의 관계성, 호감도 수치가 그래프로 나타난다면. 아마 가장 높은 수준에 다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어려운 시간을 같이 한 정情이라는 게 그런 법이었다.


그리턴 자작을 통해 왕실에 간언이 올라가면. 그대로 왕실이 행동을 취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전에 제냐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있을 테였다. 이 일행들은, 소수 정예로 움직이며 일을 저지르는데 특화되어 있는 인간들이었으니 말이다.


“정확히 대공이 뭘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글쎄······.”


호아킨이 이야기했다. 게오르그 후딘이 털어낸 정보들은 개략적인 것들이다. 화신 사막의 민족들, 남부 벨베르 공화국, 이슈칼 왕국 등에 자극을 주어 전란의 분위기를 유도하고.

국내에서도 테러를 감행한다는 투의 말이었다. 세부 계획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 가지, 게오르그가 직접 실행하기로 되어 있던 임무에 대해서는 그의 입으로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


벨베르와 산슈카 간의 회담을 망치는 일 말이다. 게오르그가 붙잡혔으니, 아마 대공의 작은 계획 중 한 가지 정도는 저지한 셈이리라.


운트 작힘과 로멜리아 가문의 퀘스트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대공은 꿍꿍이를 숨기고 있었다.


“저번처럼 적당히 까부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단단한 껍질의 열매를 맛보기 위해서는. 외부에 충격을 가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약세이며 열세이기는 했다만. 전면전이 아니라 게릴라 전이라면 얼마든지 방도가 있다. 헌터즈 길드원, 다섯 명은 어떤 집단보다도 평균 레벨이 높은 전투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상대측의 1순위 전력들이 모조리 투입되지 않는 한 치고 빠지기 정도는 쉬울 것이다.


호아킨의 물음에 제냐는 저번의 일을 생각했다. 민머리의 거한이 말하는 바는 운트 작힘 백작의 성을 때려 부쉈을 때의 상황이다.


백작의 성과 대공大公의 성은 단순히 작위만 놓고 비교를 하더라도 격이 달랐다. 특히 산슈카에서 대공 위位를 가지고 있는 알사드 가문의 성은 그 위상을 감히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수십 여 년간 쌓아온 저력이 있을 테다. 그 이전부터 쌓인 힘은 말할 것도 없고.


왕실에 준하는 세력과 싸우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측면을 때리고 도망치는 히트 앤 런 작전을 펼친다고 해도 부담은 상당했다.

그러나 달리 수가 없다면. 제냐도 뭐 동의하는 바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안정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일부러 게임 오버가 확정적인 곳에 들어가는 취미는 없었지만. 위험해 보인다고 피할 마음이 있지도 않았다.


재미있자고 하는 게임 아니던가. 최고의 집중력으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경험하고 게임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재미를 위해 찾아온 세계에서 원하던 바를 얻은 셈이니까.


그간 사소한 싸움이 있었다. 암살자들을 죽이는 일이나, 게오르그 후딘을 납치하는 일이나. 대공가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일련의 사건들은 그대로 경험치가 되었다. 재정비를 하고, 태세를 공고히 한 뒤 한 번 대가리를 디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최태현은 반면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중에서는 그래도, 도박수나 모험수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라이엔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다른 길드원들이 앞장서 나가는데 등을 돌릴 인물은 결코 아니었지만.


제냐가 말한다.


“그것도 좋아요. ···아무튼 릿샤가 오면 다시 얘기해보죠. 그녀 없이는 얘기가 잘 되지 않으니까.”


시간과 거리가 주어졌을 때. 최고의 공격력과 파괴 범위를 갖는 건 무조건 초상술사였다. 그러기 위한 클래스였으니까 말이다. 돈을 때려 붓고, 시간을 충분히 가진다면 마스터 급의 워메이지가 발휘 가능한 파괴력은 다른 클래스가 따라가기 어려웠다.


측면 공격이던 정면 공격이던. 성城을 상대하기 위해 필요한 건 그녀의 참여다.


릿샤의 스케쥴에 따라 그들의 공성攻城 일정이 정해지게 되리라.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과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제냐에게도. 그 외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과한 플레이를 하라고, 만들어둔 게 비련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몇 가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약을 설정하고서 나머지는 전부 풀어버린 게 그런 이유다.


거대한 판을 벌리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만큼 막대한 보상치를 얻게 된다. 레벨 경험치로도, 스킬 경험치로도, 그 외 아이템 보상 등으로도 얼마든지 변환 가능한 보상값.

유니크 급 연계 퀘스트를 완벽하게 끝낸다면 아마 한 번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으리라. 퀘스트의 보상이 그런 밑거름이 되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모두는.


삐리리.


밤.


어느 커다란 바위 근처에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하던 일행들이었다.


옹기종기, 둘러 앉아서 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삐리리, 소리가 나서 제냐가 아는 체를 했다.


게임 인터페이스 상의 소리였다. 평소에 인터페이스 창을 켜면 불투명하게 뜨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옅은 투명도로 그의 앞에 창이 떠 있었다. 제냐가 창을 켠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알림을 보내려고 시스템이 먼저 띄운 것이다.


제냐가 초점을 집중하며 몇 초간 바라보자 알림창이 선명해졌다. 손을 가져다 대어 클릭Click한다. 창이 활성화되었고, 내용이 나타났다. 퀘스트 창이었다. 퀘스트 로그가 담겨있는.


[산슈카의 위기 - 유니크, 지역간, 연계 퀘스트:


당신은 산슈카의 위기를 초래하는 인물의 정체를 알아냈다.

알사드 대공에게 충성을 바치는 워메이지, 게오르그 후딘의 자백을 통해서 많은 사실을 들었다.

대공의 계략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고, 긴 평화를 이어 온 왕국을 무너뜨릴 책략이다.

산슈카의 위기는 곧 주변국의 위기가 될 것이며, 나아가 중부 대륙의 평화를 위협할 테다.

중부 대륙, 필리아Phillia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라.


대공은 이미 자신이 도모한 바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략하게 간추리면 위와 같은 내용이었다. 여전히 모호한 전언이었으나, 어디로 가야할 지는 일러주고 있었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라는 말이 그의 마음에 걸렸다. 제냐의 마음에 말이다.


제냐는 자신의 앞에 뜬 푸른 창의 문장을 읽어내리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두 명의 플레이어와 한 명의 NPC에게.


“음. 아무래도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네요.”


바뀐 건 퀘스트 로그 상의 미세한 표현도 있었지만. 퀘스트의 등급 또한 있었다.

마을간 퀘스트였던 것이 지역간 퀘스트로 바뀌었다. 산슈카의 위기는 곧 필리아 대륙 전체의 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한 씬 한 씬이 넘어갈 때마다, 책임감이 과중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늘 그렇게 여기듯. 그래봐야 게임 속의 일이기는 하지만. 이야기 상의 일이어도 단어, 주변 상황 따위가 주는 묘한 위압감이 있었다. 그들은 결정을 잘 해내야만 했다.


호아킨과 로웰, 최태현이 타닥거리는 모닥불 소리를 들으며 제냐를 처다보았다.


*

hannah-wright-OlbCWO7068Y-unsplas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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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309. 가쁜 숨을 편히 내쉬며 24.05.11 7 1 20쪽
309 308. 박제가 될 뻔한 천재를 아시오 24.05.11 9 1 23쪽
308 307. 파고 들기 24.05.10 8 1 21쪽
307 306. 제 몸 살라먹기 24.05.10 7 1 12쪽
306 305. 늑대의 뱃속에서 24.05.10 6 1 13쪽
305 304. 뇌검雷劍 24.05.09 8 1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9 1 23쪽
303 302. 앞니와 검날 24.05.05 16 1 20쪽
302 301. 눈알 24.05.05 10 1 15쪽
301 300. 나무 위의 사색 24.05.04 13 1 28쪽
300 299. 걸음(2) 24.05.04 7 1 14쪽
299 298. 걸음 24.05.04 8 1 15쪽
298 297. 어지러운 생각 24.05.03 9 1 15쪽
297 296. 제냐의 경우 24.05.02 12 1 21쪽
296 295. 세이드 소마 24.05.02 8 1 17쪽
295 294. 이슈칼의 경우(2) 24.05.02 8 1 16쪽
294 293. 이슈칼의 경우 24.05.02 9 1 19쪽
293 292. 벨케임의 고뇌(2) 24.05.01 12 1 22쪽
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9 1 19쪽
291 290. 길드원員의 회의 24.04.30 9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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