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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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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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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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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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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87. 레드 오크 부락

DUMMY

*


사냥은 한 마리를 잡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어둠숲의 생태조사라고 해야 할까.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몬스터들을 알아보는 것도 유용한 일이었다. 자신이 싸울 전장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어차피 해야 하는 사냥에 조금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것 말이다.


어둠숲은 거대했고, 그 내부에 살아가는 서식물들의 가짓수는 방대했다. 괴물 노루 몇 마리를 더 잡고, 근처에서 노루를 먹잇감 삼아 먹은 레드 오크들의 흔적을 발견해 뒤를 쫓고 있을 참이었다.


제냐를 노리는 눈빛이 있었다.


“오.”


숲보행이나 그림자 속 발걸음 따위의 스킬들을 발동시키며 걸으면 그다지 소음이 나지도 않는다. 특별히 MP를 발현하지 않으면 아주 예민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플레이어들의 기력 감지에 걸리는 일도 잘 없었고. 기력 감지술이라고 해봐야 정해진 범위를 순차적으로 훑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므로, 큰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보통 근처에 탐지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별히 ‘감지술사’라고 불리는 이들이 거대한 범위를 단번에 디테일하게 수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제냐를 먼저 발견한 이들은 확실히 미심쩍은 인간들이었다. 제냐는 붉은 오크의 뒤를 쫓으며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숨죽인 채 앞을 보고 걷는 제냐의 눈가 옆에 어떤 인형들의 움직임이 잡혔다. 그들은 금세 다가왔고, 굳이 기척을 숨기지도 않는다.


제냐의 눈에 걸린 순간부터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멀리서부터 아는 체를 하듯 소리를 내고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들이었다. 자연스럽게 바라보자 남자 하나, 여자 둘의 파티 플레이어들인 모양이다.


어둠숲을 거닐고 있으니 레벨 자체도 그리 낮지는 않을 것이고.

여태까지 플레이어들과 얽히는 일이 많이 없었던 제냐는 자연스럽게 속으로 긴장을 했다. 얼마 전에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던 미친 여자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플레이어들 간의 P.K는 도심 지역에서는 거의 금지된 일이었지만, 아무런 목격자가 없고 저지력이 없는 전투 필드에서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솔로 플레잉은 많은 위험을 담보로 하는 스타일이었다. 개중에는 당연히 이런 사람들로부터의 위협 역시 포함된다.


가장 선두로 서 오는 남자는 평범한 체격보다 약간 크고 다부졌으며, 웃는 인상이 시원스런 동양인이었다. 산슈카 인근의 스타팅 포인트에 아시아인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피스 시 역시 산슈카 내의 도시였고, 또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스타팅 포인트였으니까.


다만 외향만으로 어떤 나라의 사람인지 구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양 옆에 있는 이들은 한 명은 동양인 여자, 한 명은 백인 여자였다. 셋 모두 청년기의 나이였고, 검은 머리의 동양인 여자는 숏컷으로 머리를 잘랐고 백인 여성은 길게 붉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릿샤 애드윈이 생각날뻔도 했지만, 조금 톤이 달랐다. 눈 앞의 여자는 릿샤의 그것보다 훨씬 짙고 어두운 색감이었다. 릿샤는 일부러 그렇게 염색을 하기라도 한듯 불꽃처럼 밝고 눈에 띄는, 인위적인 색깔이었고.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아시아인 남자, 그가 천천히 다가오며 이야기를 건넸다. 제냐는 조심스레 걷던 것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며, 나무를 등지고 서 있었다. ‘뭔 일이요.’하는 표정 즈음을 짓고서 있다.


“어, 혹시 솔로 플레이 중이십니까?”


애매한 물음이었다. 파티Party의 구성원을 찾고 있는 물음으로도 들리지만, 어둠숲의 스산한 분위기와 맞물려서 당신의 아군이 없으면 여기서 슥삭 처리해도 좋겠느냐는 말로도 들리니까.


제냐는 인상을 슬쩍 찌푸리며 답했다.


“예. 그쪽은?”

“어··· 저희는 어둠숲에서 사냥 중인 파티인데요. 레드 오크 부락을 발견해서 치려는 중에 손이 모자라서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사냥을 하실 거라면, 같이 하지 않으시겠어요?”


선두에 선 남자, 동양인이 이야기했다.


“아, 그래요.”


제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투로 대답을 던졌다. 파티 사냥과 솔로 플레잉 중에 어느 쪽이 더 단기간 내에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 있을까. 혼자서도 충분한 화력을 발휘 가능한 인간이라면 솔로 플레이로 전투를 하는 게 훨씬 효율이 좋을 것이다. 파티로 사냥을 한다면 그만큼 경험치가 나눠지니까, 상대해야 하는 대상의 수가 중요해질 것이고.


“부락이라면, 어느 정도 규모입니까?”


제냐가 물었다.


“어, 대충 육안으로 관찰했을 때 수십 마리 정도는 되어 보였습니다. 저희가 감지술을 써서 파악한 바로는 백여 마리가 넘는 것 같았고요.”

“왓 더.”


제냐가 인상을 찌푸렸다. 레드 오크가 그 정도 모여 있다면 확실히 농담이 아닌 수준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당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레드 오크다. 4, 50정도의 레벨이 아마 적정 토벌 난이도일 것이었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백 단위로 있다면 웃어넘기기 어렵다. 지금 제냐에게 말을 건 이들 셋이 모두 레벨 100에 근접한 전투력이라고 한다면 전투는 성립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탁월한 전투 클래스의 플레이어들이라는 전제 하에 말이다.


“그런 군락이 근처에 있었습니까? 오고 가면서 발견하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어둠숲 심부로 들어가야 해요. 아마 저희가 토벌하지 않으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손을 댈 수도 있고···. 오래 끌기 뭐해서 당장 추가 파티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실례지만,”


그가 말을 끊었다.


“일전에 흑사를 잡은 분 아닙니까?”

“어헝.”


제냐가 헛소리를 내뱉었다. 확실히 흑사와 전투를 하며 난리를 피우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 오는 인물을 만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페인 진이라고 밝혔다. 물론 게임 상의 닉네임이었고, 성이 ‘진’이 되는 셈이다. 한국인이라고 한다.

양 옆의 여자들도 주거니받거니, 서로의 통성명을 했다. 동양인 여성이 체인 킴, 백인 여성이 애니 미셸이라고 한다.


제냐의 반응에 페인은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최근 남부 섹터에서 흑사를 잡은 인물이 근처 용병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며 말이다. 플레이어들이 으레 그렇듯 사르삿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는 페인 역시 들은 바였고, 심지어 제냐가 흑사와 싸울 때 근처에서 목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혼자서 단체의 토벌 대상이 되는 흑사를 잡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놀랐고, 그 외견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숲에서 우연히 마주쳐 다가오게 되었다고.


제냐는 나름대로 그럴싸한 이야기에 속아주기로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고. 심지어 진위 여부와 관계 없이 어떤 의도가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충분한 사냥감이 있는 상태에서 파티 플레이는 상당한 효율을 자랑하는 전투 방식이었다.

전투가들은, 투사들은 결국 전투로 인해서 성장하게 마련이었다. 검술가는 검을 다루어야 했고 말이다. 가장 빠르게 무언가를 익히고 기술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은 실전이었다. 무수한 훈련이 뒷받침 될 때에야 실전이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제냐는 크게 구분을 두고 있지 않았다. 훈련과 실전 사이에 말이다.


“알겠습니다. 같이 하죠.”


페인, 체인, 애니.

적당한 서양식 이름을 지은 둘과 서양인 한 명, 그리고 제냐의 동행이었다. 페인은 당장 오늘, 지금 레드 오크들을 사냥하려는 모양이었다. 페인의 인도에 따라 제냐가 그에게 합류했다. 순식간에 일행이 생긴 제냐는 어둠숲의 심처로 향했다.


네 명만으로는 조금 부족할 수 있겠다고, 페인은 여겼다. 부락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플레이어가 혹시 있는가, 그는 감지술을 켜서 여기저기를 살피고 확인하면서 이동한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레드 오크 몇 마리와 마주쳤다. 제냐가 쫓던 놈들일 수도 있었다. 정확히 구분은 가지 않기는 했지만. 먼저 가볍게 제냐가 원거리에서 철시를 사용해 파워샷으로 대가리를 날렸고, 알렌과 애니가 달려들었다. 체인은 멀리서서 초상술을 사용해 공격을 했다.


다섯 마리의 레드 오크들이 바닥에 눕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냐가 한 마리를 안정적으로 더 쏴날렸고, 그러는 사리에 페인과 애니가 각자 검과 도끼로 근거리에서 상대를 해서 목을 쳤다.


체인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일단 번개의 술을 사용했고, 뇌전술사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여러가지 원소를 동시에 다루는 초상술사들도 있었고, 만들어낼 수 있는 스킬 트리의 가짓수는 무한하니 한 가지 스킬만을 보고 상대의 내력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한 가지 계통의 스킬들을 주욱 익히는 것이 시간을 아끼며 효율적인 방법이라, 보통은 술사들도 몇 가지 주력 계열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체인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을지 한 눈에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레드 오크를 어렵잖게 침묵시키는 썬더 스피어 스킬을 보건데 백 여 마리가 넘는 오크들을 잡겠다고 나설만치의 실력은 되어 보였다.


페인은 제냐의 궁술에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 간의 내력을 전부 밝히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몇 번의 사냥을 이어나가며 급조된 파티원들은 각자의 실력들을 가늠했다.


*


“오.”


라고 입을 열어 소리를 낸 건 페인이었다. 두 명의 여성 파티원들은 그다지 교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모르는 이에게 다가갈 때 가장 먼저 나서는 건 아무래도 페인의 일인 모양이다. 그리고, 제냐는 표정이 저도 모르게 구겨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어둠숲을 거닐면서 레드 오크의 군락지로 향하던 그들은 또 한 명의 플레이어를 맞닥뜨렸다. NPC인지 플레이어인지, 외견만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확률상 플레이어일 가능성이 높았다. 단순한 논리로, 험지에 있는 자들의 수는 플레이어가 더 많았으니까, 이다. 유저들은 타고난 신체로 뛰어난 전투직 클래스가 될 확률이 높았으며 모험과 사냥을 위해서 일부러 위험지들을 찾아 다니는 인간들이었다.


콘란드 대륙의 미험지들을 찾아 다니는 수 억 명의 괴짜들은 목숨이 위험한 고비에서 서로를 만날 확률이 높다.


그들은 오크 부락으로 향하던 도중, 감지술에 걸려든 한 명의 인기척을 발견했고 그 쪽으로 방향을 꺾어 다가갔다. 오래지 않아서 한 명의 흔적을 확인하고 또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제냐 역시 시야에 담기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 인상을 찌푸린 것이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름대로 강렬한 인상이었기에 잊기가 힘든 것도 있었다.


암살자. 그 때의 그 미친 여자였다.


페인은 제냐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앞서 나갔다. 행동이 빠른 편인 인간이었다. 일부러 저러는가, 싶기도 하다. 제냐는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일단 굳이 행동하지는 않았다.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흑사를 잡기 전 마주쳤던 암살자는 버젓이 살아서 어둠숲을 다시 거닐고 있었다. 그때처럼 갑작스럽게 태도가 돌변해서 덤벼들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파티원들이 있다.


제냐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페인을 보면서 문득 최악의 상상이 머릿속 한켠으로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에게 파티를 신청한 지금 이 세 명이 애초에 저 여자가 심어둔 한 편이고, 여기에서 사 대 일로 협공을 당하는 건 아닐까.


제냐는 그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바로 발동해야 할 스킬트리와 도주 경로를 머릿속에서 가늠했다. 어둠숲이었고, 시야가 제한적인 필드인데다 그에게 익숙한 숲 지형이었다. 몬스터들 역시 수준이 그리 낮지 않으며 금세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분포한 곳이다.


그는 레벨에 비해서는 늘 높은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편이었으며, 또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HP수치만 하더라도 42,009로 올랐다. 흑사를 잡고 스텟치가 올랐고, 몇 번의 레벨업을 경험하고 여러 칭호를 먹었다. 스킬도 몇 개인가가 레벨 업을 했고, 개중에서도 패시브 스킬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요소들이 상호 작용을 해서 실질적으로 HP나 MP가 성장하는 구간들이 있게 마련이었는데, 최근이 그것을 겪은 다음이었다. 이전에 정신나간 아랍 계열의 여자, 암살자를 만나기 전과 비교해서 스스로 상당히 스펙 업이 된 상태였다.


결국 지금 꾸준히 수련을 하고 스텟을 높이고 있는 건 다음에 언제 진행될 지 모르는 연계 퀘스트를 기다림이었다. 아직도 퀘스트 목록에는 ‘로멜리아 가의 숨겨진 보물’과 관련된 퀘스트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다음 상황으로 진행될 여지가 남았다는 것이고, 넓게 봤을 때 퀘스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순조롭게, 또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상당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전투력이 높아지고 있는 제냐이다. 만일 암살자가 그 때와 같은 정도의 강함이라면 협공을 당하더라도 도망치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어둠숲에서 기묘하게 인연이 얽혔다.


여자, 아르망디는 페인의 이야기에 쉽게 동조를 한 모양이다. 제냐의 눈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호의적으로 듣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페인과 함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직접 면대면으로 마주치기 전, 멀리일 때 아르망디 역시 제냐의 모습을 보고 알아챘다. 강렬한 기억이었던 건 피차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제냐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 팔이 없는 꼴이었다. 어느 도통한 치료술사에게라도 가서 치유를 받았는지, 두 팔이 멀쩡하다.


그때로부터 나름 시간이 지났으니까, 컨디션이 완치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고, 게임적으로는 지나치게 긴 시간이기는 했지만.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그 중간 지점 즈음에 있는 게임이었다.


큰 상처를 입으면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HP포션들은 HP의 하락을 막아주고, 개중에서도 최고급의 물품들, 희소하며 동시에 강력한 효력을 지닌 기적적인 물약들은 빈사 상태의 위기에서도 죽음을 막아준다.


그 상태에서 적절한 치유술 스킬을 갖고 있는 이에게 가서 조치를 받는 것이다. 유니크 이상의 치유술 중에서는 신체의 중대한 결손조차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기술들이 더러 있었다. 아마 사망 근처에 간 상태에서는,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 이상의 기술들은 아직 유저들이 익혔다고 들은 바가 없었다.


아르망디는 긴 흑발을 늘어뜨린 여성이었다. 머릿결이 고왔고, 등허리까지 늘어지는 생머리를 깔끔하게 커트했다. 차분한 눈빛과 인상의 아랍 계열의 인종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눈빛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제냐의 기준에서, 그런 인상이었다.


다른 이들도 똑같이 느낄 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그녀의 속내를 한 번 들여다봤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고.


“······.”


아르망디는 매우, 아주 어색한 눈빛으로 제냐를 처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비단 제냐만을 향한 인사는 아니었고, 페인과 함께하는 체인, 그리고 애니를 향해서 하는 인사였다. 제냐는 굳이 그녀의 정체를 까발리며 몰아내지는 않았다. 당장은 말이다.


그녀가 대단히 위협이 되는 강함을 가졌다거나, 혹은 당장 이상한 짓거리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넘어간다. 다만 플레이를 하는 도중 경계심은 조금 더 높여야 할 테였다.


그것 역시 좋은 훈련이 될 수 있으리라. 어쨌거나 험로에 들어가서 난전을 벌일수록, 더 많은 경험치를 주게 되는 시스템이었으니까. 시나리오 온라인은.


제냐는 아르망디가 이 파티 사냥에 끼는 일이 아슬아슬하게, 통제 혹은 회피가 가능한 위험이라고 판단했다. 정말로 게임 오버가 걱정되었다면 아마 여기서 일행들과 갈라섰을테지만.


체인과 애니는 새로운 동료의 합류를 반겼다. 그 속내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겉으로는 다들 천진한 아가씨들이었다. 애니가 조금 더 말이 없었고, 체인은 그나마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살갑게 구는 듯하다.


아르망디가 사정을 듣고 파티 사냥에 합류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아르망디 베샤민.”


이라고 제 입으로 말이다. 미형의 여인이었다. 아르망디는. 멀쩡하게 생긴 외형으로 이상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게 조금 섬칫하기는 하지만. 거기다가 단순히 암살자 클래스를 선택한 것만이 아니라 제냐에게 다가와서 평범하게 인사를 하다가 돌연 모습을 바꾸어 달려든 것이 충격적인 인상이었다.


제냐는 아르망디로부터는 조금 떨어져 걸었고, 그녀는 다른 두 여인의 가운데 서서 걸었다. 페인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다섯 명이 걸으면서 몇 마리의 몬스터들을 더 사냥했다. 보통 거대 노루나, 숲에 사는 호랑이 따위였다. 물론 어둠숲에 살고 있으니만큼, 일반적인 호랑이는 아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대가리에 사슴의 뿔이 달려 있었는데, 그 끝이 창처럼 날카롭고 상아색이라 기이한 형상이었다. 거기에 덩치가 황소보다 더 큰 듯했고, 발톱을 길게 빼어 갈고리처럼 사용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마치 거미처럼 말이다.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플레이어들을 위협하는 호랑이의 자태에 바짝 감각을 끌어올려 대응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는 단 1의 HP소모도 없이 모조리 잡기는 했지만, 제냐로서는. 그리고 일행이 서로간의 실력을 알기에도 좋은 연습 상대들이었다. 아르망디는 그 때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았다. 숏소드를 사용하고, 공격력을 높일 때는 붉은 검기같은 것을 끌어올려 근접전을 한다.


당시에는 2단 변화 같은 느낌이었는데, 몸풀기 용으로 같이 사냥을 할 땐 2단의 붉은 검기술 중 첫 번째 것만 쓰는 것 같았다.


거목의 중간 즈음에 딱 달라붙어 그들을 노려보던 괴물 호랑이에게 먼저 달려들어, 허공에서 붉은 검기로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은 유려했다. 파티의 다른 이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 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그들은 걸었다.


실제 시간으로 보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아르망디를 의식하면서 걷는 시간이라 길고 힘들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언제 돌아버릴 지 모르는 미치광이 암살자를 근처에 두는 건 상당히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어쨌건, 그들은 붉은 오크의 대부락에 도착했다.


제냐는 숲에 뜬금없이 분지 지형이 들어가 있다는 걸 알았다. 심처로 들어가면서 지면의 굴곡이 심해졌다. 산림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지형이 만들어질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뜬금없이 언덕 즈음 되는 높이의 오르막이 있었고, 그 아래는 지저로 더 깊이 들어가 있는 분지 지형과 계곡 지형이 있었다.


넓다란 분지 아래, 오크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보였다. 문명을 이루지는 않았으나 영장류의 몬스터들은 가끔 저런 모습들을 보여준다. 게임 상의 연출이었다. 인간을 위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인류의 터전을 빼앗을 것 같은 위압감이 들게 되니까. 대개는 지능이 낮았고, 발전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에너지와 육신만으로도 괴물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레드 오크 무리는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었다.


기력 감지술로 찬찬히 시간을 들여 살펴보니, 백 여 마리가 아니라 백 수십, 아마 백 오십은 넘는 숫자가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저게 다 사냥이 가능할까··· 싶기는 했지만 마침 지형이 좋았다. 오크 부락은 멍청하게도 포위된 뒤 포격당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자리했고, 놈들에게 철시와 같은 막강한 원거리 무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쪽이 유리했다.


페인 일행은 전략을 어설프게라도 짜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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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레드 오크 부락 23.09.22 29 3 20쪽
87 86. 주변인들 23.09.22 32 3 19쪽
86 85. 검은 비검飛劍 23.09.22 35 3 30쪽
85 84. 단테스 무기상점 23.09.22 29 3 19쪽
84 83. 별 것 아닌 아이템들 23.09.21 30 3 19쪽
83 82. 흑사의 죽음 23.09.20 29 3 21쪽
82 81. 뱀(3) 23.09.20 27 3 20쪽
81 80. 뱀(2) 23.09.19 29 3 27쪽
80 79. 뱀 23.09.18 26 3 26쪽
79 78. 달칵 23.09.07 30 2 35쪽
78 77. 뒤꽁무니 23.09.05 32 3 31쪽
77 76. 암살자 23.09.02 37 3 42쪽
76 75. 어둠숲 23.09.02 31 3 31쪽
75 74. 헤어짐 23.09.01 31 3 32쪽
74 73. 프린스 알사드Prince Alsard. +1 23.08.31 37 4 55쪽
73 72. 퀘스트의 끝, 즈음 23.08.29 31 3 36쪽
72 71. 술래잡기의 끝 +1 23.08.27 32 2 41쪽
71 70. 술래잡기 23.08.25 28 2 23쪽
70 69. "…단장!" 23.08.25 25 2 21쪽
69 68. "작작해야지 새끼야…." 23.08.25 25 2 17쪽
68 67. 합류 23.08.25 24 2 18쪽
67 66. 황무지의 동굴 23.08.25 23 2 21쪽
66 65. U씨의 경우 23.08.21 27 2 20쪽
65 64. 생각보다 23.08.21 24 2 27쪽
64 63. 두 발째 23.08.18 27 2 36쪽
63 62. 전투, 전쟁 23.08.18 26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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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0. 돌입 23.08.16 25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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