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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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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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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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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86. 주변인들

DUMMY

*


“여기라는데.”

“음.”


알렌이 말하곤 혼자서 고갤 끄덕거렸다. 그 옆에 있는 숀과 페이트 역시 마찬가지로 고갤 끄덕였고.


그들은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평범한 용병처럼 보이는 복장의 사내들 셋이었다. 알렌, 숀, 페이트. 차례로 알렌이 두 번째, 숀이 가장 키가 작았고, 페이트가 덩치가 가장 컸다. 평균을 따지자면 일반적인 체격은 알렌이리라.


금발을 뒤로 넘긴 멀끔한 인상의 청년, 시원한 이목구비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알렌이 한 여관 숙소의 목조 건물 앞에서 출입구를 가리키며 말한 참이었다.


‘태양의 그늘’이라는 이름의 여관이다.

무언가 거창한 단어들을 쓰는 것 같지만 무슨 말인지 모를 이름이었다. 주인장의 네이밍 센스가 이상할 지도 모른다. 어쨌건, 약간 경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색채에 요란스런 그림을 간판으로 출입구 근처에 내다 놓은 여관 건물이다. 1층 출입구는 세 계단을 올라서 있었고, 그 양 옆으로 테라스 공간이 있다. 테라스의 위에는 지붕이 있어서 비를 피하거나 태양을 피할 수 있었고, 그 튀어나온 지붕의 앞면에 다시 산슈카 어로 여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음. 어쩔까. 여기서?”

“글쎄. 일단 동향을 파악하는 건 중요하지.”

“···갈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고.”


차례로 알렌, 숀, 페이트다.


알렌은 여관에서 묵자는 말이었고, 숀은 여관의 위치를 알았으니 이 근처 어디에라도 있자는 뜻이었다. 페이트는 그런 둘의 의견을 반영해서, 서로 갈라져도 좋다는 뜻이었고.


세 명 무리에서 굳이 리더를 뽑자면 알렌이었다. 그가 가장 고참이기도 했고 말이다. 세 명의 사내는 기사단에 속해 있는 동료들이었고, ‘검은 늑대 기사단’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사단의 일원들이었다.


산슈카 왕국에서 프린스 알사드, 알사드 공작을 모르는 자는 없을 테였다. 국민 중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휘하의 기사단들 중 붉은 늑대 기사단을 모르는 자들도 그리 많지는 않을 테였고.

푸른 늑대 기사단은 모르는 자들이 더러 있을 수 있었고, 검은 늑대 기사단은 기사단들의 이름을 파악하고 다니는 이들이나, 관련자들이 아니라면 그다지 유명한 편은 아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왕도 사르삿이었지만,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이방인들 중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본다면 ‘그게 뭐요. 푸른 늑대 기사단의 아류인가?’라고 할 자들이 많을 테다.


거기에, 검은 늑대단은 실제 전력에 비해 과소 평가된 집단이기도 했다. 푸른 늑대단에 비해 그다지 적지 않은 수와 수준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일들이 대개 은밀함을 필요로 하는 임무들이었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훨씬 약소한 집단으로 보이는 탓이다.


알렌, 숀, 페이트 역시 그런 와중이다. 은밀한 의뢰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산슈카의 대공이라는 작자가 누군가를 암살하기 위해 사람을 써서 뒤를 쫓는다는 걸 공공연하게 밝히고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검은 늑대단은 보통 영지에서 주둔하고 쉬는 순번의 단원들이 아니라면 이렇게, 기사단의 흔적도 공작가의 흔적도 모두 지운 채 떠돌이처럼 국내외를 여행하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었다.


프린스 알사드의 속내에 그래도 깨나 연관이 되어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은 늑대단은 말이다.


기본적으로 세르게이 알사드 공작은 머리가 좋고, 또 노회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수하들에게 시킬 때 그들이 그 전체 내용을 알지 못하도록 다루는 데 익숙한 자였다. 검은 늑대단이 하는 일은 주로 요인을 만나고, 그 요인과 공작과의 관계를 따져 죽이거나 설득하고, 혹은 도와주는 일을 반복한다.


나름대로 검은 늑대 기사단에서 살아남은 세 사람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의뢰로 인해서 말이다. 이번에 그들이 만나게 될 자는, ‘제냐 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국 태생의 용병이었다. 세시앙 인이었고, 무력적으로 여느 기사 못지 않은 전투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여느 기사 못지 않은’ 전투력이라면 아마 알렌과 숀, 페이트 세 사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이 중부 대륙 어느 나라를 가도 최고의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을만한 솜씨들이었으니까. 거기에 합이 잘 맞는 세 사람의 합공이라면 격상의 상대라 할지라도 능숙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또한 임무 자체는 전면에서 보고 싸우는 일이 아니라 암살이었기에, 그들이 다년 간의 의뢰 속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발휘한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럴 것이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생활을 시작하는 사르삿의 왕도 거리에는 여전한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세 사람이 여관 건물 앞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그것들이 주변의 소음에 묻힐 정도다.


덜컥.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가 여관의 현관 문을 열고 나왔다. 한 명의 사내였다. 세시앙 인이다. 피부가 누런 빛을 띄고 있었고, 일반적인 중부 대륙 태생의 이들보다는 이목구비가 다소 밋밋해 보이는 외견이다.

체격은 평균적인 그것에서 약간 큰 정도. 걸음걸이나 체형에서 느껴지는 다부짐과 밸런스가 딱 잡혀 있는 자세들은 그가 어떤 종류의 운동을 수련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전쟁이나 전투가 그들의 삶인 이 세계에서 운동의 수련이란 곧 무술가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겉으로는 짙은 갈색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안쪽으로는 가죽과 철판 따위를 혼합해 만든 스타일리쉬한 경갑옷이 보인다. 어딘지 크게 감흥 없어 보이는 표정에, 심드렁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흘긋 보았다.


흑발 흑안의 청년, 20대 정도. 알렌은 그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가 자연스럽게 돌려, 옆에 서 있는 숀을 보았다. 알렌보다는 10여 cm는 작은 인물이다. 갈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었고, 외향적인 성격이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장난기 섞인 웃음이나 표정을 자주 짓곤 하는 사내다.


나이는 30대였지만 외관 상으로는 그보다 어려 보인다, 숀은. 그리고 그 옆에 멀거니 서있는 페이트를 본다. 알렌보다 10여 cm는 큰 인물이다. 체격도 상당히 좋았고. 떡 벌어진 어깨에 알렌보다 조금 더 짙은 색의 금발을 더벅머리처럼 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 세 사람다 지방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백인이었고, 페이트는 선이 굵고 턱이 각졌으며 입을 자주 다물고 있는 사내답고 묵직한 인상이었다.


알렌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에서 묵지. 숀이랑 페이트는 근처 다른 곳을 알아보고. 계속 보자고.”

“아, 그래. 알겠네. 그리 멀리 가지는 않을 거 같아. 한 두 블럭 정도 더 가보고 결정하면 알려주지.”

“음, 그러자고.”


차례로 숀과 페이트가 대답했다. 주거니 받거니,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의 곁으로 세시앙 인이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크게 감정의 변화 없는 낯빛으로 그들을 옆으로 한 채 걷는다. 산슈카의 날씨는 사시사철 약간은 쌀쌀한 편이었고, 여름이 되면 조금 덥고 겨울이 되면 추위가 몰아닥치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외투가 필요한 날이 가장 많았다.


망토를 둘러쓰고 슥 하니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은 그만큼 평범한 여행자의 외견이었고, 그대로 무리 없이 인파 속에 스며들어 사라진다.


알렌은 그 남자가 한참이나 걸어간 듯하자 그가 사라진 방향을 다시금 흘끗 보았다. 가도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나다니는 마차나 온갖 모양의 희귀한 기승동물들이 눈길을 빼앗지만 그 가운데서도 검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알렌의 눈이다.


알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저 놈이지?”

“······.”


숀과 페이트, 모두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


[오늘은 잔업 때문에 못들어갈 것 같고, 내일 봅시다. 콜?]

[알겠습니다.]


개멋진나 최, 최태현으로부터 온 메세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면서 제냐는 게임에 접속해 거리를 걸었다. 전 날 여관의 방에서 로그아웃을 했고, 그대로 아침에 들어오면 그 방 안에서 시작하는 플레이다.


장비나 외형의 변화 없이 어젯밤 껐을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곧바로 걸어나와 가도로 향했다. 어느새 자주 보며 익숙해지기 시작한 여관 내부의 광경과 종업원들이었는데, 나오는 길에 못보던 얼굴들을 눈에 담았다.


못보던 얼굴, 자체야 이 거대한 왕도와 인파들 사이에서 매일 겪는 일이었지만 그들의 낌새가 남달랐다는 점이 제냐의 눈에 들어온 이유였다. 어딘지 정련된 검사와 같이, 분명 전투직 클래스의 상급자처럼 느껴지는 기세였다.


평범하게 서 있는 자세들만으로도 굉장히 안정적이었고, 나름의 진이라도 형성하는 것처럼 바깥을 적당히 주시하고 경계하는 게 모든 행동거지에 배어 있는 인간들이다.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람이라는 건 일상 속에 섞여 들려고 하더라도 어딘지 티가 나게 마련이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알아챌 수 있을만큼 대단한 티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제냐의 눈에는 마침 딱 보이고 말았다.


어딘가에서 온 군인인지, 기사인지. 혹은 플레이어 중에 괴짜같은 전투직 클래스 인물들인건지.


제냐는 볼을 긁적이면서 거리를 걸었다.


화창한 날이었다. 날씨는 딱 좋을 정도로 서늘하고 가끔 바람이 분다. 황무지 근처에 세워져 있는 중부 대륙, 산슈카의 여러 도시들이었으나 날씨 자체는 쾌적할 때가 많았다. 도시 외곽으로 가고 또 바람이 지나치게 많이 불때는 모래 먼지 섞인 것이 시야를 방해하며 심지어 입 안에 들어와 모래 알갱이가 씹힐 때조차 있었지만은.


그런 것도 다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즐겁지 않겠는가. 이대로 미국이나 혹은 중국 쪽으로 여행을 가서 대륙 횡단 여행이라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고. 방구석에서 이런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썩 나쁘지 않은 비용대비 만족일지 몰랐다.


제냐는 어제 받아두었던 단발성 퀘스트를 끝내기 위해 성도의 바깥으로 향했다.


*


어둠숲의 흑사가 사라졌던 일은 깨나 큰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어둠숲을 탐험하는 플레이어들의 평균보다 높은 전투력을 지녔던 괴물이었기에 말이다. 제냐가 흑사와 싸우느라 초토화되었던 지형은 아직까지도 빈 공터로 남아 있었다.


제냐는 어둠숲의 외곽으로 향한다.


왕도, 사르삿을 빠져나와 주욱 달리다 보면 어느새 어둠숲이었다. 그간 계속해서 숲과 도시간 왕복 이동을 하다 보니 이동계열의 스킬이 하나 생겼다. 보법을 선제 조건으로 하는 파생 스킬이었던 모양인데, ‘풍운공功’이라고 하는 이름이다.


바람과 구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듯, 몸을 가볍게 하며 먼 거리를 스테미나의 큰 소모 없이 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스킬이었다. 보법 계열의 스킬들 중 전투 시의 풋워크가 있었고, 이동 계열의 스킬들이 있었는데, 후자는 ‘경공’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류하고는 했다.


교전 상황에서 사용하는 풋워크들은 도리어 스테미나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공과 전투 보법들은 상호 작용이 가능했고 보완 또한 가능하기도 하다. 움직임에 있어서 스테미나 소비를 줄여주며 몸놀림을 가볍게 해주는 종류의 공부라면, 근거리에서 빠른 움직임이 중요할 때도 순간순간 그런 효용의 덕을 볼만한 상황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 계열의 스킬을 익혀서 다른 분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물론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에 달해야 하기는 하다.


풍운공은 레어 스킬이었고, 익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2단계로 스킬 레벨이 올라섰다. 확연하게 스킬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 비해서 달리는 일에 부담이 적게 느껴진다. 스테미나는 가시적인 수치는 아니었지만 몸의 부담으로 사용자에게 느껴지는 요소였는데, 확연히 숨이 차오른다거나 몸이 둔해진다거나, 하는 현상들이 적어진 것이다.


거기다 경공輕功이라는 이름답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동 속도 역시 훨씬 빨라졌다. 근거리에서만 비교를 해도 두 걸음에 뛸 거리를 한 걸음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점차 가속력이 붙고 장거리를 뛴다면 그보다 더 시간대비 거리 효율이 잘 나올 듯했다.


이제 막 스킬이 생겨나고 익히고 있는 시점에서의 일이었으니, 잦은 사용으로 스킬이 숙달되고 묘용을 깨닫고, 또 레벨이 올라가면 성능이 대폭 증가하리라 생각되었다.


풍운공의 연습도 겸하며 부지런히 이동했다.


어둠숲.


어느새 내부에 들어서 숲보행과 그림자 속 발걸음 따위의 스킬을 발휘하며 조용히 걷는 제냐였다. 시간은 여전히 한낮이었지만 어둠숲 내부는 언제나 침침한 분위기다.

가시적으로 안개가 낀 것도 아닌데 어쩐지 축축하고, 어두우며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 머리 위의 침엽수들의 가지와 잎이 촘촘하게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더라도 심한 어두움이었다.


지형 자체에 초상적인 특별함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둠숲’이라는 이름답게 말이다.


제냐가 숲을 헤매며 찾는 것은 퀘스트의 흔적이었다. 마침 그가 머물고 있는 태양의 그늘 여관의 주인장이 퀘스트의 의뢰자였다. 여관의 주인은 부부로, 개중 중년의 남편이 부탁한 일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데, 값이 비싼 약재가 필요하다며 말이다. 어둠숲에 서식하는 짐승의 신체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고, 시장에서 여러 유통 경로를 거쳐서 사자면 지나치게 비싸지니 직접 어둠숲에 갈 일이 있는 용병 따위에게 부탁을 하고자 한 것이다.


제냐로서는 그다지 나쁠 것 없는 일이었고, 퀘스트는 대단한 물질적 보상을 받지 않더라도 콘란드 대륙에 스며들기 위한 좋은 방법이었다. 언제나 플레이어들에게 말이다. 어차피 어둠숲은 사냥과 경험치 획득을 위해서 계속해서 가야할 곳이기도 했다.


어둠숲의 괴물 노루, 의 뿔을 잘라가야만 했다.


일반적인 노루에 비해서 공격적인 외형을 띄고 있는 놈으로, 노루면서 어지간한 황소보다 큰 덩치를 자랑했다. 혼자 다니지 않고 무리지어서 다니며, 일단 적이라고 인식되면 숲 길 사이를 빠르게 달려 그 뿔로 들이박는 식의 성격이다.


제냐는 기력 감지를 켠 뒤 이곳저곳을 수색하며 다녔다. 어둠숲의 전도를 아이템 상점에서 구매해 들고 다니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직접 길을 찾는 것이 더 정확하고 빠른 방법이다.

외곽 지역을 빙 둘러서 다니며 노루의 흔적을 찾는 와중에 플레이어들이나 인류 NPC들의 모습도 많이 발견했다. 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의미 없이 엮여봐야 그다지 좋을 게 없으므로, 마주치지 않도록 떨어져서 지나친다.


그리 오래지 않아서 숲노루의 발자국을 찾았다. 그것들의 배설물도 발자국을 따라 쫓다보니 발견할 수 있었고. 한 번 흔적을 찾고 나면 그 다음은 빠른 편이었다. 수색과 추적에는 나름대로 도가 터가고 있는 제냐였다.


숲 속을 천천히 걷다가, 저 멀리 노루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들의 틈 사이로 보이는 노루를 겨냥하면서, 인벤토리에서 작은 활 하나를 꺼내어 철시를 메긴다.


본격적인 장궁을 꺼내들 필요도 없었다. 노루 정도라면야. 작은 활이라고는 하지만 장궁, 자주 사용하는 복합궁에 비해서 작은 것이지 일반적인 사이즈였다. 탄성이 강한 종류의 합금속을 섞어 만든 단테스 무기상점제의 활이다. 그대로 파워샷을 당겼고, 기력을 넣어 궤적을 살피다 날린다.


노루는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라 네 마리가 각기 다른 방위로 서서 떨어진 열매 따위를 주워 먹고 있었는데, 개중 가장 가깝고 덩치가 큰 놈의 머리를 노려서 날렸다.


쉬잉, 하고 기력술이 남긴 철제의 화살이 빠르게 직선 비행한다. 예상했던 궤적 그대로의 비행이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노루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기에 이른다.


“끼이이이이!”


사슴은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순식간에 흩어졌다. 공격성이 강한 놈들이었지만, 단번에 가장 큰 놈이 당하자 순간적으로 위험하다고 파악했는지 모른다. 야생 동물들의 감각은 정확한 편이었다. 그대로 덤벼 들었으면 제냐에게 모두 뿔이 잘렸을 테니까.


구멍이 나며 손상된 두부에서 피 대신, 제냐의 눈으로 보기에는 빛의 입자가 흘러나왔다. 그 구멍 자체도 빛으로 감싸여 내부가 보이지는 않았다. 쿵! 하고 저 멀리에 있는 노루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걸음으로 백 여 보 정도는 되는 거리에 있던 놈들이다. 제냐는 은밀 기동을 포기하고 단숨에 소리를 내며 달려가 그 시체를 수습했다.


일반적으로 전리품이 아이템화 되는 걸 기다리기 전에, 채취용의 나이프 하나를 꺼내들어 거대한 노루의 대가리를 붙잡고 그 뿔을 분리해냈다. 서걱거리는 감각과 함께 계속 문질러대니 어렵지 않게 잘렸다. 어지간한 철, 금속과 같은 강도를 자랑하는 뿔이었지만, 잘 갈려 날이 선 나이프에 기력술로 예리함을 덧대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실질적인 나이프의 은빛 날이 닿기도 전에, 그 겉에 표면을 두르고 있는 푸른 기력의 칼날이 닿아 먼저 뿔을 부숴뜨렸다. 그 뒤를 철날이 다가가 더 두드리는 것이다.


어지간한 황소보다도 조금 더 큰 크기였다. 멀리서 보면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는데, 일반적인 노루보다 조금 어두운 톤의 피부색을 갖고 있었다. 오래도록 이 어둠숲에서 자생한 종류인지 주변 지형과 어울리는 색깔을 하고 있는 것이다.


뿔을 자르기 쉽도록 대가리를 들어 올리는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양쪽 뿔을 모두 서두르지 않고 잘라내어 가졌다. 마치 나뭇가지가 그러하듯 멋지게 자라나서, 들어보니 두 개를 덧대면 제냐의 상반신이 얼추 다 가려질 정도의 크기였다.


적갈색의 뿔을 잘라내어 인벤토리에 담았다. 이렇게 채취를 하지 않으면 전리품이 아이템 박스에 담겨져 나올 때 적당한 것으로 랜덤 생성된다. 특별한 부위를 얻고자 한다면 직접 손을 쓰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노루가 곧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박스가 남았는데, 어둠숲 괴물 노루의 뿔 외에도 추가적인 전리품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러 종의 아이템이 나올 경우에는, 채취를 하더라도 따로 아이템 박스가 생성될 때가 있었다.


제냐는 발끝으로 바닥에 남은 아이템 박스를 툭, 건드렸다. 숲노루의 뿔은 인벤토리에 간신히 들어갔다. 사냥을 오기 전에 한 번 넉넉히 정리를 해두기를 잘 했다.


전리품은 인벤토리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아이템 박스의 겉면이 스르르 사라지면서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큼지막한 유리병에 담긴 노루의 피와, 가죽 자루에 담긴 고기나 내장류처럼 보인다.


제냐는 적당히 인벤토리를 정리하면서, 철시가 담긴 전통을 꺼내어 어깨에 메며 전리품을 대신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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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5. 검은 비검飛劍 23.09.22 35 3 30쪽
85 84. 단테스 무기상점 23.09.22 28 3 19쪽
84 83. 별 것 아닌 아이템들 23.09.21 29 3 19쪽
83 82. 흑사의 죽음 23.09.20 29 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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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0. 뱀(2) 23.09.19 28 3 27쪽
80 79. 뱀 23.09.18 26 3 26쪽
79 78. 달칵 23.09.07 30 2 35쪽
78 77. 뒤꽁무니 23.09.05 32 3 31쪽
77 76. 암살자 23.09.02 37 3 42쪽
76 75. 어둠숲 23.09.02 31 3 31쪽
75 74. 헤어짐 23.09.01 31 3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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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 퀘스트의 끝, 즈음 23.08.29 31 3 36쪽
72 71. 술래잡기의 끝 +1 23.08.27 32 2 41쪽
71 70. 술래잡기 23.08.25 28 2 23쪽
70 69. "…단장!" 23.08.25 25 2 21쪽
69 68. "작작해야지 새끼야…." 23.08.25 25 2 17쪽
68 67. 합류 23.08.25 24 2 18쪽
67 66. 황무지의 동굴 23.08.25 23 2 21쪽
66 65. U씨의 경우 23.08.21 27 2 20쪽
65 64. 생각보다 23.08.21 24 2 27쪽
64 63. 두 발째 23.08.18 27 2 36쪽
63 62. 전투, 전쟁 23.08.18 26 2 19쪽
62 61. 일점돌격 23.08.17 25 2 29쪽
61 60. 돌입 23.08.16 25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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