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23 00:06
연재수 :
353 회
조회수 :
8,540
추천수 :
765
글자수 :
3,360,040

작성
23.08.18 18:28
조회
23
추천
2
글자
36쪽

63. 두 발째

DUMMY

마부스는 자신의 검 손잡이를 말아쥐었다. 그는 급한대로 로브만 대강 둘러쓰고 나온 참이었다. 평상복에 가죽으로 만들어진 흉갑 정도만 대충 걸쳐 입고 나왔다. 그의 곁에 드보라를 비롯해서 단원 아홉 명이 있었다.

뒤로는 작힘 성에서 정예함을 자랑하는 정병들의 무리가 백여 명은 넘게 있었고.


상대와의 전력 차를 계산해보아도 해볼 만한 일이었다.


그레이 하운드 열 명이면 어떤 기사단과도 일전을 벌여볼 수 있다. 치고 빠지는 전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마부스는 태양빛 아래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간다.


저벅거리며 그가 가죽 신의 밑창으로 잔디를 밟는다. 십인장이 움직이자 단원들도 슬그머니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가 굳이 빠르게 달려나가지 않더라도 달려오는 건 저쪽이었다. 금세 만날 것이다. 초인들의 걸음으로 백 여 미터 정도는 그리 긴 거리도 아니다.


가장 앞서서 달려오고 있는 거대한 갈색 곰은 뭔가, 싶었지만 어쨌든 다 막아서야 할 것이다.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듯.


“궁사대 준비 후 사격하라! 방진을 만들어 지켜라!”


그레이 하운드에도 몇 개의 진형술, 합격술이 있었다. 병사들은 최대한 원거리에서 사격을 하고 상대의 무모한 돌진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 되었다. 중요한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레이 하운드의 열 명은 일단은 앞서 나가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다가 유지기가 오면 방어형의 합격진을 짜고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달려드는 괴물 곰의 박치기를 한 번은 흘려야 할 것이다.


이중에서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마부스 그 자신이었고, 그는 늘 가지고 다니는 아티팩트 한 종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고자 했다.


작힘 가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면 그만한 보상을 가끔은 받게 된다. 항상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운트 작힘 백작은 가끔 후하게 휘하의 병사들을 대할 때가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듯, 충성스러운 자를 높이 드는 것이다.


마부스는 가문에 적을 둔 뒤 몇 번의 전투에서 앞서 나가 수많은 적들을 베었던 전공이 있다. 그리고 그가 받은 것은 회중 시계와 비슷한 외형을 가진 은빛의 아티팩트였고, 한 시도 떼어놓는 일 없이 가지고 다녔다.


적들의 침입을 전혀 예상치 못하다가 달려나온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갖고 있었고, 전시에 모든 능력을 발휘할 때 마부스는 아티팩트의 효과까지를 자신의 힘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몸에 달라붙게끔 쓰는 물건이다.


그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가며 걸었다. 기력의 기세가 더욱 끓어올랐다. 주홍빛의 검기가 그가 든 장검의 날로 슬쩍 어린다. 유형화된 기운은 그만큼 강력한 물리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기력술에 있어서 그래도 중수 레벨을 지나, 고수 급으로 갈만한 자질이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그의 몸 전신에 사람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힘이 머물렀다. 그는 폭발적인 강맹함을 자랑하는 기사이자 용사였다. 단발적인 힘의 운용에 능숙했고, 그건 마부스 류의 검술이자 무술이었으며 해당하는 스킬의 8급까지 찍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어떤 종류의 스킬이든 훌륭한Excellent(EX) 단계까지 다다랐다면 그 분야에 있어서 일류 이상이라고 해도 좋았다. 세상 누구를 만나던 말이다.


지속성에 있어서 조금 약한 면모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운용에 따라 얼마든지 감춰질 수 있는 약점이었다. 자신의 기세가 수그러들었을 때 충돌을 피하고 시간을 끌다가, 자신이 강맹할 때 부딪히면 되는 일이다. 모든 전투가 애초에 그런 것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철장검의 긴 날이 마치 불길로 이글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부스가 뛰었다. 그가 회중시계를 닮은 아티팩트를 허리춤 혁대에 엮은 뒤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의지력으로 MP를 이용해 발동시키는 물건이었고, 달려가며 물건을 사용했다.


주머니에 든 것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나왔지만 그가 뒤집어 쓴 로브 후드에 의해서 막혔다. 초록빛이 발광했고, 그것은 곧 MP의 격류를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그가 자신의 몸에 쏟아지듯 들어오는 MP를 받아들인다. 일반적인 MP는 아니었다. 그대로 그의 스테미나를 회복시켜주며, 자연적으로 갖고 있는 MP의 사용을 돕는다. 검날을 물들이는 검기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의 걸음이 빨라진다. 일시적으로 조금 더 많은 의지력을 갖고 MP를 사용하게 된 마부스였다. 그는 거대한 괴물 곰이라고 하더라도, 일격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드보라의 이야기에 ‘밀’이 한 번에 밀려났다고 한다. 밀은 강력한 기사였지만 십인장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모자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결국 기력술의 경지였고, 그는 그보다 나았다. 긴 검이 낭창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게 허공에서 궤적을 그린다. 미끄러진다. 그가 달리기 시작하자 금세 중앙에서 호아킨과 맞서게 되었다.


거대한 곰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단독으로 앞서 나왔고, 먼저 다가오는 기사, 마부스와 마주친다. 호아킨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앞 발을 휘두르는데 그 체중을 실어 상대를 날려버리려는 동작을 취했다.

앞 발의 날카롭게 세워진 발톱, 마치 단검을 연상시키는 그것들에 호아킨의 기력술이 나타났다. 반투명한 이지러짐이 그의 앞 발 근처를 장식한다. 그는 날렵하고 또 능숙하게 굴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멀리서부터 마부스에게 다가왔고,


순식간에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의 발길에 머무르며 그를 돕던 ‘날개 신발’의 위력이 최대로 터져나왔다. 마치 바람을 가르는 듯한 비웅의 발길질이 마부스의 검격이 완성되기 전 중간 지점에서 그를 때렸다. 캉! 하고 기력술로 갈고 닦이며 강력해진 검날이 곰의 발톱과 부딪혔다. 마부스는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세라면··· 조금 버거운가?


라는 생각이었다.


힘이 최대한 발휘되기 직전에 맞았다고 하더라도 기이할 정도로 가벼운 느낌이었다. 상대의 무게가 아니라, 밀려나는 자신의 검격의 무게가.


마치 떨어지는 꽃잎처럼 바람을 가르며, 곡선의 검격을 장검으로 휘두르던 중 내려치던 자세에서 검날이 곰의 발에 걸렸다. 채 다 휘둘러 아래로 긋지 못하고 잡혔고, 왼쪽 지점을 찍고 다시 하단 중앙부로 가야 했던 검날은 그대로 잡혀서 옆으로 밀려났다. ‘어어,’ 하고 마부스는 당황했고,


호아킨은 그대로 크게 내딛은 왼 발로 작힘 성의 정원 한 가운데를 찍어 누르며 체중을 옮겼다. 대지를 디디며 그대로 전해지는 곰의 체중과 체격의 위압감이 마부스를 밀었다. 어깨를 빼듯이, 몸을 내던지듯이 깊게 들어가 휘두르는 앞발 치기다. 마부스라는 사내는 로브 후드 아래서 당황스런 눈빛을 보인다.


호아킨은 평소의 레벨이나 강력함도 있었고, 단기 결전을 위해 여러 종류의 스킬을 격발시키듯 사용한 참이었다. 로웰 드버의 지원도 있었고 몇 종류 값비싼 아이템을 소모하기도 했다. 마부스가 아티팩트나 특유의 강맹함을 자랑하려 했지만, 호아킨도 그런 종류의 스킬을 쓰는 강격을 선호하는 전사였고 때마침 강력한 버프를 받았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마부스는 그대로 자신이 내리 긋던 검격을 다 마치지 못하고 팔꿈치나 겨드랑이가 좁혀져 검병을 쥔 손을 애처롭게 가운데로 들게 되었고, 그 우스운 꼴이 어떤 감상을 나타내기 전에 그대로 그 몸통까지 충격을 받았다.


호아킨은 한 방에 걸린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냈다. 그대로 곰의 대가리를 처박으며 오른 앞발을 왼쪽으로 크게 휘둘러서, 자신의 시야에서 왼쪽으로 크게 밀어냈다. 부웅, 하고 휘둘러지는 쇠망치보다 몇 배는 위압감이 드는 공격에 마부스는 그대로 날아갔다.


-쾅.


한 십 수 미터 뒤에서 마부스가 날아가 잔디 바닥에 한 번 충돌하고 마저 구르는 소리가 났다. 당장 눈 앞에서 보기에 멀지 않았지만 한 번 친 것으로 날았다기엔 지나치게 먼 곳이었다. 아득한 소리와 광경이다. 마부스의 정신만큼이나.


그는 단박에 거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눈 앞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기사라고 하더라도 마치 쓰레기처럼 여기저기 부딪혀 구르다보면 혼미할 수 밖에 없었다.


호아킨과 마주치는 자들은 자주 경험하는 일이었다.


곰은 순조롭게 한 명을 아웃시키고 울부짖었다. “크허헝.”


대기를 찢는 듯한 호기로운 울음에 기사들이 떨지는 않았다. 아니, 십인장이 단박에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조금 움찔하기는 했다. 그 뒤에 내지른 노호성에는 병사들의 어깨가 흔들렸다. 방진을 갖추고 화살을 쏘아내려던 자들도 조준이 조금 흐트러진다.


“쏴라!”


백인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말에 사격자들이 화살을 쏜다. 앞은 방패병들이 막고 있었다. 궁사들이 그 사이로 화살촉을 들이밀며 살을 쏘았다.

시위를 떠난 목제의 화살들이 날았다. 물론 화살촉은 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기력술도 없이 평범하게 당겨 날아가는 복합궁의 화살들로 초인들을 막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로웰 드버, 그를 정확히 맞춘다면 치명상을 줄 수는 있겠다.


모여 있는 능력자들 중 가장 수준이 낮은 자라 할 수 있는 질리언과 페이브조차 날아드는 화살을 그 정도 거리에서 검으로 방어할 수 있다.

기사들은 피해내거나, 화살을 쳐내거나, 여의치 않았던 자는 기력술을 사용해 적당히 맞아 튕겨보냈다. 화살은 강력한 충격량이었지만 기사들을 단박에 쓰러뜨릴 수는 없다. 그들이 입고 있는 갑주들도 마냥 무른 것들이 아니었고.


그와중에 릿샤가 가동하고 있는 스킬이 거의 후반에 이르렀다. 시간으로 치자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주변의 대기에 한기가 맴돌았다.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그 폭풍의 MP가 휘돌면서, 초상력을 느낄 수 있는 인간들은 내심 극심한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초상력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인간들이라 해도 저 멀리서 불어 닥치는 폭풍의 핵의 존재가 눈에 띈다. 무언가 심상찮다는 점만은 하나같이 동의했다. 날씨를 바꾸는 종류의 스킬은 전혀 아니었음에도 괜스레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릿샤는 MP에 MP를 더한다.


그 끝은 강고한 의지력으로 통제하는 길이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잘못 모여든 군사들은 결국 폭동을 일으킨다. 지휘관이 부재하는 병사들은 훈련을 받았던 정병들이라 할 지라도 갈 길을 잃고 제멋대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아비규환, 혼란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거기까지 가지 않기 위해서 릿샤 애드윈은 머리가 타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집중했다. 고작 게임을 위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신경줄이 끊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비유이다. 공부를 하고 학업을 할 때, 이토록 진지한 적이 그리 많았던가. 어쨌건 릿샤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머리를 쓰는 일이라면 어디를 가서도 그다지 뒤쳐져 본 적이 없고 모자랐던 적이 없다. 지금은 모자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릿샤 애드윈, 바르샤는 간절했다. 이 스킬이 완성까지 온전하기를 바랐다.


쿠오오, 하고 대기가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주변에서 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에너지가 기류를 만들었다. 릿샤는 앞서 달려나간 로멜리아 일행들과는 수십 미터 정도 거리가 떨어진 상태였다.

달려나간 동료들은 적군과 거의 부딪힐만한 지근 거리에 다다르고 있다. 기사들도, 십인장인 마부스가 떨어져 나갔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왔다.

성채에 진입하게 해서는 안된다. 목숨을 잃거나 한 방에 날아가더라도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어쨌건 그들의 소속은 작힘 가였고 그들의 정체성은 작힘 가의 그레이 하운드들이다. 충실한 사냥개들은 주인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주인이 조금 성정이 못돼쳐먹고 올바른 인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냥개는 일단은 주인을 위해 적을 물어 없앴다. 달려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방진을 구축하고, 유기적인 연결로 상대의 파상 공세를 막으려는 움직임이었다.


마치 학익진의 그것처럼, 길게 늘어서 달려 나가는 아홉 명의 기사들이 점차 날개를 접듯이 가운데로 모였다. 한 명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으면 최대한 받아 흘리면서 뒤로 빠진다. 양 옆에 있는 이들 중 여유가 남는 자가 직선적인 공격의 측면을 때린다. 철저하게 타이밍을 훈련한 방식이어서 순식간에 동작이 이루어진다.

기세가 죽은 상대를 뒤로 물러섰던 이나 혹은 다른 쪽의 옆 사람이 다가와서 목을 치는 식이다.

마치 하나의 생물이 한 개의 생명을 위해서 반응을 하는 것처럼 기력술을 운용한다. 기력 감지는 자신의 MP를 넓게 퍼뜨리는 일이었다.

검기처럼 공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것 또한 일종의 기력술이며 MP이다.


MP와 기력술을 굳이 분류하는 이유는, 개인의 강화술, 물질 계열의 무언가에 들러 붙게 만들어 사용하는 그 힘이 약간 변질되는 탓이다. 한 가지 계통으로 고착화시켜 써먹는 데 특화된 힘이었고, 다른 유용성을 가지기가 힘들어진다.

자연계의 SP를 관련이 없는 민간인, 개인이 다루는 MP를 군대에 받아들여 훈련을 시키고 깃발을 준 개인 사병이라고 했을 때 ‘기력’은 몇 가지 제한적인 전투와 전략 훈련에 특화된 특수부대와 비슷했다.


그들은 다른 일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기력술사들이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만한 유용성이 떨어지는 이유이다.

그러나 효율이 떨어지는대로 약간의 효과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전장에서 얼마든지 쓰이게 마련이다.


기력술의 응용으로 자신의 주변, 지근거리에 감각을 퍼뜨려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원거리를 감지하고 방대한 범위를 수색하기 위해서는 해당하는 스킬이 필요하지만 신체를 중심으로 십 여 미터 정도는 기력술의 응용이라고 봐도 좋았다.


미약하게 퍼진 기력은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퍼뜨리는 기력을 감지하며 교감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고, 오랜 시간 반복적인 훈련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은 먹이를 잡아채는 사냥꾼들처럼 방진을 형성하고, 기력술을 가동했다. 가장 앞서 있던 호아킨이 그들의 우리 안에 갇힌다. 다가오는 자들이 있더래도 얼마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말했듯 그들은 충격을 나눠 분담하는 유기적 방진을 형성했다.


서로의 기력이 얽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전음처럼 용량 높은 말소리를 전할 수는 없었지만, 그 기색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할만치 미리 정해둔 암호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빠르게 대응 가능하다.


하나의 감각을 공유하는 이들처럼 변한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의 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든다. 방진을 형성하더라도 실력이 특출난 자가 리드를 한다면 더욱 효과가 좋을 것이다. 이중에서는 드보라였다.

그녀는 상대의 경지를 파악하는 일에 능숙하다. 호아킨. 무식하게 강력한 인간이었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그저 곰으로 보일 뿐이었고 이름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기력술 사용자이며 변신술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녀가 먼저 호아킨을 노리고 검을 세운 뒤 달려들었다. 한손검은 빠르고 예리하다. 그 칼날이 흰 빛으로 빛난다. 그녀의 검기는 정확하고 정밀했다. 거대한 짐승의 몸에서 가장 힘이 빠진 곳, 혹은 가장 물러 보이는 가죽을 향해서 이리저리 휘는 찌르기를 하며 들어갔다. 호아킨이 그냥 당해줄 리는 없다.


그는 어느새 금방 포위되어버린 꼴을 보았고, 벗어나기 위해 내달렸다. 거구의 몸과 많은 질량을 가진 그는 적당히 밀어버리기만 해도 대개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의 선택 역시 같았다.

변신체에서 입는 상처가 인간형의 모습으로 그대로 이전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큰 체적을 갖고 있는 중대형과 대형 사이 즈음의 괴수이다. 똑같은 범위를 베이더라도 신체 전체 비율로 따져보았을 때 ‘작은 상처’로 인식된다면 HP의 손실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는 야수형으로 변했을 때 근력도, 생명력도 늘어나는 인간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변신술사 커뮤니티의 정보에 따르면, 고수 이상의 레벨이 되고 랭커Ranker 급에 닿았을 때 변신술사는 거대한 체구의 보스 몹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물론 유저들 입장에서 그 자체이고 약간의 열화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 종류의 변신술을 제대로 익히기 위한 시간과 비용 역시 필요한 점들이 있었고.

호아킨도 곰으로의 변화를 위해 그리즐리 베어를 수도 없이 잡으며 전리품을 모았다. 그리즐리 베어 슬레이어라는 칭호를 얻도록 곰을 잡아댔고, 그 터럭이나 심장 따위를 가져다 스킬의 개발을 위해 사용했다.


한 가지 변신술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신체의 특성을 다루는 연습도 필요하다. 곰이나 사자나 비슷해 보이지만 정말로 걷기 위해 움직여 보면 다른 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적으로 곰은 급할 때 두 발로 설 수도 있지만, 사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애초에 인간형으로 무술을 가장 깊이 익힌 호아킨으로서는 곰이 약간이나마 적응하기 편한 형태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스킬 셋들은 대개 물리 계열이었고, 거대한 체구와 근력을 이용한 전투법이었으므로 중대형 이상의 맹수들 위주로 변신술 리스트가 짜여져 있었다.


몇 가지 특수한 몹을 변신술로 흉내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완성시켜 나가는 술사들도 많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몬스터들이 있었고, 그건 각종 아이템과 스킬 트리를 이용해 변수를 만들어내는 조합과도 비슷한 선택지였다. 별로 쓸모 없어 보이던 것이 특정한 게임 내 생물의 특성과 맞물려 신비할 정도의 효율을 낼 수도 있는 법이다.


호아킨은 눈으로 보기에도 알만큼 단순한 길을 선택했고, 그것이 자신한테 잘 맞는다고 느꼈다.


드보라가 원형진에서 내부로 달려들며 호아킨의 엉덩이 옆 부근을 찔렀다. 호아킨은 앞으로 달리려다 뒤에서 다가오는 낌새를 느꼈지만, 무시했다. 한 두 방 정도 인간의 한손검에 찔린다고 전투 불능이 되는 일은 잘 없다. 동급의 기사라고 해도 그러했다. 그는 막대한 질량으로 밀어 붙이는 식의 전투가 특징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말이다.

도리어 속력을 빠르게 해서 앞에 있는 한 두 명의 기사를 노려 앞발 치기를 다시 시도했다. 눈 앞에 두 명이 뒤로 뛴다. 생각보다 빠른 반응이었다. 감각을 공유하면서 더 넓은 범위에 근거리 감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사들의 근거리 감지는 기력을 퍼뜨려 사용하는 것이었고, 몇 가지 전략에 특화된 특수병인 ‘기력’은 굉장히 예민하고 지휘관과 긴밀한 교류를 맺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어떤 종류의 MP보다도 사용자와의 연결이 견고할 것이다. 반응이 빠르다는 말도 되었다.


열 명이 펼친 감지 범위는 깨나 넓은 전장을 차지한다. 호아킨의 낌새가 시작되기도 전에 움직임과 방향을 읽고 기사들이 반박자 빠르게 대응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하나된 호흡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밀하게 짜맞추어진 군무를 한 치의 틀림없이 춰내는 것보다 조금 더 까다롭다.

군무는 무대 위에서 추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실전 상황에서 적을 눈 앞에 두고 반응하는 것이었으므로 말이다.


두 명이 빠지면서 호아킨의 허공을 휘두른 발에 검격을 날렸다. 캉,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이상하다. 앞발의 발톱 하나에 부닥친 검날이 내지른 소리였다. 다른 이의 검은 호아킨의 손등을 때렸다. 검날에 기력이 묻어 있었지만 베지 못하고 때리는데 그쳤다. 그가 공격할 때 그의 앞발은 검 대신이었으므로, 충분한 MP가 어려있다.

물리력을 대폭 강화시켜주는 기력은 그의 앞발을 강철과 비슷한 것으로 만든다.


호아킨의 공격과 체중 이동의 관성을 그다지 막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차례로 양 옆에 있는 이들이 달려들어 그의 어깨 부근을 노리며 질러 왔다. 다가오는 할버드 하나와 검이다. 호아킨은 몸을 뒤틀었다. 공중에서 회전을 시키듯이 한 번 돌았고, 그 무섭도록 유연하고 재빠른 움직임은 회전력을 갖고 다가오는 검날을 잡아 쳐냈다. 검 하나는 무력하게 튕겨져 나갔다. 할버드는 그의 앞발바닥에 작은 상처를 냈고, 그 이상의 효용이 없다. 그의 오른 발에 막혀 날아갔다.


할버드를 잡힌 뒤 날려진 기사는 갑옷과 투구를 걸친 채였다. 공중에서 한 바퀴 제비를 돌아 충격을 경감했다. 묘기라도 하듯한 움직임이 계속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초인들의 전투는 대개 그러하다. 호아킨은 여러 명의 투우사, 조련사들을 상대하는 맹수가 된 마냥 가운데서 귀찮은 싸움을 이어갔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동료들은 아니었다. 제냐는 일단 기사들은 내버려두고 빠르게 쓸어버릴 수 있는 병사들에게 화살 몇 대를 날렸다. 기력을 듬뿍 실어 날린 철시 하나가 그대로 방패를 뚫고 들고 있던 방패병의 가슴팍을 찔렀다. ‘커억’ 소리를 내면서 한 명이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옆에 있던 이들의 눈이 커졌다. 제냐의 활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그는 슬슬 MP를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을 뻗는다. 활대를 쥐지 않은 손이다. 늘 그렇듯 뻗어낸 앞손에 MP가 모여들며 투사체를 형성했다. 이번에 날릴 것은 썬더 볼트였다. 써먹기에 좋다. 여러 명에게 한 번에 감전 효과를 주는 것도 용이하고.


병사들을 단체로 무력화시킬 때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파이어 볼의 파괴력을 극한으로 높여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썬더 볼트가 조금 더 빠른 투사체다.


파지직 거리면서 릿샤가 준비하는 초상 스킬과 달리 순식간에 형성되었다. 그리 많은 MP가 투자되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수 백 단위. 그의 의지력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정도의 양을 품은 번개의 공이 방전한다. 푸른 전기를 제 몸 주변으로 뻗쳐나갔다. 정전기가 일어나는 것 같은 모양새였으나 그 공이 사람의 몸체만한 크기가 된다면 웃기 어려운 모습이 된다.


잠깐 숨을 멈추듯 시간을 주고, 그가 병사들을 향해 그것을 내어보냈다. 시위에 당겨진 뒤 밀려나가는 것도 아니었으나 MP로 이루어진 썬더 볼트는 재빠르게 날아갔다. 구형이 당겨져 좁은 타원형이 될 정도의 속도다. 화살보다 빠르게, 언뜻 빛살같다,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날아간 놈은 그대로 병사들에게 정통으로 맞았다.


작힘 성 본성. 작힘 백작이 머무르고 있는 회색 성채의 정문 앞이다. 도열한 병사들은 전기에 감전되며 비명으르 질렀고, 화살을 쏘아내려던 궁병들 역시 손을 벌벌벌 떨거나 심한 자들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래보아야 열 명 내외의 손실이다. 완벽하게 제압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제냐의 스킬은 아직 그렇게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보이지는 못한다.

무지막지한 파괴 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릿샤 애드윈일 것이다.


같이 동료로서 퀘스트를 수행하게 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몇 마디 말을 나누어 본 결과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이성적으로 구는 듯한 여성이었다. 묘한 승부욕이나 열정 따위가 있어서 가끔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기세나, 성격이나, 언행이나 뭐 그런 것들이 말이다.

초상술사로서 릿샤 애드윈은 지금 더할 나위없이 그런 면모를 보일 예정이었다.


그녀의 한기 서린 폭풍이 거의 완성되었다. 온갖 장신구와 푸른 물약으로부터 보충 받는 MP가 쑥쑥 빠져나간다. 확실하게 릿샤의 레벨 수준에서 보일 수 있는 파괴력은 아니었다. 이건 아마 정문까지 날려버릴 것이다.


본성은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석조 건물이었고, 적갈색의 큰 문이 그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었다. 몇 단의 계단을 오른 뒤 열 수 있는 거대한 현관이었고 안쪽에서 쇠빗장이 걸려 있어 쉽게 열리지 않는다. 문 자체는 목조였으나 두꺼운 원목을 몇 겹이나 겹쳐서 만들어낸 물건에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통째로 부숴서 열어버리는 것이 지금의 목적이다. 피할 놈은 피해라, 막을 놈은 막아라. 당신들이 알아서 해라, 는 식으로 만들어낸 폭풍의 한 자락이다. 이미 유니크 스킬이었던 폭풍의 한 자락에서 멀리 떨어진 스킬이다.

블리자드에 가깝다.


갑작스런 MP의 고갈로 정신력의 하락과 약간의 어질거림이 느껴진다. 깡으로 버텨야 했다.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방향을 쟀다. 정면에 서 있는 동료들은 슬슬 시간이 되었음을 느꼈다. 그녀가 스킬을 시전하고 일, 이 분 정도가 지나면 알아서 타이밍을 재다가 비키라고 한 참이었다.


아직 다른 곳에서 작힘 성의 지원군이 도달하지는 않았다. 전령들의 발이 늦는 모양인지, 기사들이 태만한 지는 알 수 없었다. 로멜리아 일행들로서는 기꺼운 일이었다.


정확히 수십 여 초가 지난 시점에서 릿샤의 스킬이 완벽히 구현되었다.


그녀는 고갈되는 MP가 차오르는 것보다 양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속적으로 떨어지다가 0이 되면 한 순간 초상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탈력감과 현기증에 휩싸일 지도 몰랐다. 술사들이 전투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순간이리라.


바르샤 애드윈, 릿샤의 의지력은 기어코 블리자드와 유사한 무언가를 만들었고, 동료들이 길을 텄다. 호아킨이 가운데 남았다. 그는 기사들과 함께 있어 묶여 있는 처지였다. 이대로 그를 게임 오버 시켜야만 할까.


안타까운 생각이었지만,


호아킨은 그 생각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정확한 타이밍을 누구보다 재고 있던 곰이 잽싸게 날았다.

기사들을 상대하지 않고 그대로 날개 신발이 가동되며 높이 날아올랐다. 뛰어 오르듯 움직이는 그를 막으려 여러 명이 동시에 위로 솓구쳐 올랐고, 각종 기력이 담긴 무기술로 호아킨의 몸체를 때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날아오려 하는 릿샤의 스킬에 맞는 것보다는 훨씬 버틸만한 일이었다.

곰의 거죽에 상처가 몇 개 생겼다.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위로 튀어오른다. 날개 신발이 그 몸체를 키운다. 네 발에 달린 초록빛의 작은 날개들이 기이한 빛과 소리를 내면서 한계 이상의 능력을 발휘했다. 부웅 뛰어올라 그대로 내려오지 않고 멀리까지 이동하는 호아킨을 잡을 재주가 기사들에게 없었다.


높이까지 같이 뛰어 몇 번의 검격을 성공시켰고 갈색 터럭 사이사이로 검상이 생겼다. 피가 흘렀고, 플레이어들의 눈에는 빛의 결정이나 입자랄만한 것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멀리서 보였다. 제냐와 최태현은 각자의 위치에 자리하며 전경을 지켜본다.


길이 열렸다. 릿샤의 대포가 날아갈 차례다. 그녀의 앞, 머리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생선된 하얗고 회색, 얼음 결정이 갈려 나가고 광폭한 기세를 떨치는 바람의 구형체가 가볍게 떨었다.

전조 현상을 마치고, 날았다.


콰앙!

하는 폭음이 들렸다. 로켓이 터져 나가는 것과 같았다. 그녀의 주위로 광풍이 불었다. 그 연출만으로도 스킬이 상당한 위력을 갖고 있으리라는 증거가 되었다.

공격력이 있는 바람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머무르던 이들의 입은 옷이나 머리칼이 미친듯이 나부꼈다. 몸이 뒤로 조금 밀리기도 했다.


고도로 압축된 폭풍의 결정이 전진한다.


주변의 바람이 요동치며 굉음이 울려퍼졌다. 거대한 대포가 쏘아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MP가 현상을 일으킬 뿐이다. 이 세계에서 고농도로 압축된 MP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마저 만들어낼 수 있었다.


폭풍의 한 자락은 끝까지 익히면 확실히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스킬이고, 지금 여러 종류의 스킬이 배합되어 동시 발현됨으로 릿샤의 스킬 수준보다 더 높은 위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그 날아오는 폭풍을 맞이하는 기사들이나 병사들의 표정이 검게 죽었다.

불안감이나 황망함, 대충 그런 인상들이었다. 주변 시야가 어두워 지는 것 같았다. 불투명한 바람이 주변의 대기를 집어 삼키는 듯했다. 먹구름이 점점 눈 앞으로 다가오는 마냥 폭풍이 날아든다.


구체는 중간 즈음 날다가 자신의 외형을 슬슬 포기하며 내부에 응축된 바람의 기운들을 여기저기로 뻗어내기 시작했고, 바르샤 애드윈의 최대 의지력으로도 그런 손실은 어쩔 수 없었다.

작힘 백작의 성의 정원 여기저기에 크레이터가 패였다.


호아킨이 전력으로 땅에 흉터를 만들고자 하면 날법한 길고 거친 구덩이들이 손쉽게 만들어졌고, 그건 스킬이 지나가는 흔적에 불과했다.


거대한 파충류가 그 배를 깔고 앞으로 나아가듯 폭풍의 한 자락이 완성적으로 다가섰다.


수줍게 작힘 성 본성의 현관을 노크하려는 듯 다가가는 폭풍이다.


기사들이 순식간에 휩쓸렸다. 파충류가 기듯한 모습을 땅바닥에 새기지만 속도는 그와는 전혀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눈 깜빡할 사이에 자신들의 앞을 집어 삼키듯 다가온 바람에 기사들이 피하지 못했다. 재빨리 움직임을 취했던 자들도 흐트러지는 폭풍 주변의 MP에 휩쓸렸다. 격류와 같은 초상력의 폭풍이 있었고, 기사들의 기력술이 망가졌다.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기력술은 도리어 평범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도 기사들의 행동을 느리게 했다. 그들이 기계는 아니었으나 장치에 전력 공급을 하다가 전류가 맛이 가버리는 일이나 비슷했다. 비상 전원, 혹은 외부 전원이라 할 수 있는 신체 자체의 힘이 있었지만 밸런스가 깨지면서 자세가 흐트러졌다.

잠깐의 지연만으로도 폭풍이 사람들을 감싸안았다.


폭풍의 포옹은 지나치게 거칠었고, 파괴적이다. 기사들의 보호구, 외갑이 갈려나가며 튕겨나갔다. 난방향으로 휘몰아치는 구체의 흐름 내부에서 이리저리 떠돌다가, 그저 관성 바깥으로 날아가는 돌멩이처럼 여기저기로 뱉어지는 것이다.


기사들이 무슨 공이나 물건처럼 날아갔고, 폭풍은 멈추지 않았다.


“커헉.”


릿샤는 강렬하게 숨을 토해냈다. 현기증이 밀려들어왔다.


이럴 때 술사는 특수한 요법을 취해야 한다. 한 번 다가오는 MP고갈 현상에 대응하도록 패시브 스킬 역시 몇 개 스택을 쌓아두었지만 극심한 현기증은 약간이나마 술사의 능력을 저하시킨다.

릿샤는 시야가 어질거리는 걸 느꼈고, 곧 스킬을 발동했다. 그녀가 취한 방법은 간단한 액티브 스킬이었다. 레어 급의 스킬 ‘MP Drain드레인’은 주변의 사물이나 생물로부터 강제적으로 MP를 빼앗는 기술이었다.


강력한 스킬이었지만 파훼가 쉬웠고, 어지간히 고레벨의 유저가 높은 스킬 레벨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전에서 쓰기 까다로웠다. 타인의 훈련된 정병을 가로챈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사용법이 하나 있기는 했는데, 동료간에 MP를 전달하는 용도로는 또 쓸만한 기술이었다.


마침 주변에 로웰 드버가 있다.


릿샤는 그를 상대로 MP 드레인을 사용했고, 로웰은 그 흐름에 자신의 MP를 순응시켰다. 로웰의 의지력에 따라 그의 에너지가 릿샤에게로 이동했다. 병사들이 차출되어 다른 군대에 소속되는 것과 비슷했다. 로웰이 돕는다면 훨씬 더 수월하고 안정적으로 많은 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손실량도 그리 크지 않게끔.


거기다 로웰은 막대한 MP를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천재적인 술사였고, 기사회생의 아티팩트마저 하나 가지고 있었다. 하루, 혹은 반나절. 한 번의 전투에서 그는 전체 MP를 전부 탕진하는 기술을 두 번 쓸 수 있었다. 그 자체로 거대한 MP 탱크라고 해도 좋았다.


릿샤는 MP 드레인을 시전하면서 그의 군사들을 자신의 편제로 만들었다. 정렬되는 MP들은 약간의 지연 시간을 거친 뒤 그녀의 에너지가 되어서 MP 게이지를 채웠다. 눈에 보이는 인터페이스는 아니었지만 현기증이 빠르게 가시면서 상태가 호전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약 류로 한 번 이런 고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통의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마셔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거기다가 물약은 평범하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양 이상을 마시기 힘들었으므로, 위장을 늘리고 수분 섭취를 돕는 류의 특수 스킬을 익힌 인간이 아니라면 무제한적으로 게임 내에서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고농축, 고효율의 고급 포션을 찾게 마련이었고 고수로 갈수록 물약 값 또한 만만찮은 단위가 되고 만다.


로웰은 다이어 울프의 위에서 눈을 반쯤 감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자신의 MP를 도열하여 보내듯 천천히 운용했다.


정돈된 채로 다가오는 로웰의 MP는 릿샤로서도 다루기 편한 것이었고, MP의 이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거기서 릿샤 애드윈은 한 번 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앞에 희미한 바람의 구형체가 생겨난다.


한 번 더, 폭풍의 한 자락이다.


이번에는 아낌 없이 사용하여 정말로 거진 전설급 스킬에 가까운 것을 만들 셈이다.


이 정도는 해주어야 작힘 성이 초토화되리라.


지금 보낸 저것만으로도 현관을 뚫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지만, 원래 충격이라는 건 부수려는 물체의 자체적인 방호력이 있으므로 연타로 줄 때 더 큰 의미가 있는 법이다.

약해진 작힘 성의 본성 건물을 두드리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었고, 그 내부에 작힘 백작이 어떤 수작이나 마음가짐으로 대비를 하고 있더래도 그들이 취하기에 편할 테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지원군이 몰려들면 그들을 상대하는 데 스킬을 써먹어야 할 지도 몰랐다.

솔직히 열 명의 기사와 백여 명의 병사를 날리는 일은 성공했지만, 나머지 그레이 하운드 기사단 전체가 모인다면 그들의 MP와 HP의 합계를 상회하는 공격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일시적으로 강력한 충격을 주며 전장에 소강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만 하더라도 큰 일이었다.


그리고 그 지연 시간동안 로멜리아 일행이 해야 할 일은 빠르게 도망치는 것이리라.


릿샤가 순간적으로 MP를 모두 쏟아내고 힘을 잃고 나면 로웰 드버가 맡기로 했다. 그 역시 MP 드레인으로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 처지였으나 릿샤와 달리 아직 포션 류를 한계치까지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기사회생의 아티팩트로 2회 분량의 MP를 전달해주곤 급격히 플레이어들로부터 받은 물약을 들이키며 다음을 준비할 것이다.

다이어 울프는 충분히 발이 빠른 몹이었다. 릿샤와 로웰 두 명을 싣고도 빠르게 전장에서 이탈할 수 있으리라. 원래 이렇게 싸우는 게 술사들의 전투법은 아니었다.


본래는 이런 MP 고갈에 주의하면서, 회복분을 생각하며 안정적으로 스킬들을 투사한다. 지속적인 전장에서 자기 방호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짐덩이가 되는 것 뿐이었으므로, 술사들은 안배가 중요하다.


기력술사들, 다른 물리 계열의 전투직들은 한 발에 쏟아낼 수 있는 폭발력에 한계가 있는 대신 그런 고갈을 유도하기도 어렵다.

광전사나 같은 계열의 특수 스킬과 클래스를 갖고서 폭발적으로 싸우는 종류가 아니라면, HP가 남아있는 한 언제든지 전투를 속행할 수 있고 또 도망갈 힘 정도는 남겨둘 수 있었다.

애초에 술사들도 이렇게 단박에 쏟아내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자들이 얼마 없다. 그건 바르샤 애드윈, 릿샤가 그러했듯 강대한 의지력을 가진 술사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로웰 드버는 NPC로서 특질을 가진 인물이기에 가능했고, 릿샤는 현실에서 주로 정신력과 집중력이라는 분야를 고찰하며 살아온 인간이기에 가능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오랜 기간 경험과 플레이 스타일로 스킬 트리라도 쌓아 올려서 보조를 받지 않으면 어려운 일일 테다.


호아킨은 멀찌감치, 허공으로 날아오른 뒤 옆으로 이동해 내려앉으면서 릿샤가 쏘아보낸 폭풍이 사람들을 유린하고 그 너머의 건물까지 작살내려 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멀리 이동한 뒤 그의 시야에 잡히는 게 있었다. 작힘 성 내부는 넓은 공간이었다. 몇 개의 본격적인 성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공터 또한 아주 넓다. 천 단위가 넘는 사병 병력들이 마음껏 훈련을 할 수 있을만치 거대했으며, 그건 또 세슈칸의 위용을 자랑하는 일이기도 했다.


예전 이 성을 지었던 로멜리아 가의 위세에 대한 반증이 되기도 할 테다.

jd-designs-WtmaXZE5P4Y-unsplash.jpg


작가의말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뭐 읽어주시는 분이 있겠죠?

없어도 쓰는 게 작가임을 인증하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4 83. 별 것 아닌 아이템들 23.09.21 25 3 19쪽
83 82. 흑사의 죽음 23.09.20 24 3 21쪽
82 81. 뱀(3) 23.09.20 22 3 20쪽
81 80. 뱀(2) 23.09.19 25 3 27쪽
80 79. 뱀 23.09.18 23 3 26쪽
79 78. 달칵 23.09.07 28 2 35쪽
78 77. 뒤꽁무니 23.09.05 30 3 31쪽
77 76. 암살자 23.09.02 35 3 42쪽
76 75. 어둠숲 23.09.02 29 3 31쪽
75 74. 헤어짐 23.09.01 29 3 32쪽
74 73. 프린스 알사드Prince Alsard. +1 23.08.31 35 4 55쪽
73 72. 퀘스트의 끝, 즈음 23.08.29 29 3 36쪽
72 71. 술래잡기의 끝 +1 23.08.27 27 2 41쪽
71 70. 술래잡기 23.08.25 25 2 23쪽
70 69. "…단장!" 23.08.25 23 2 21쪽
69 68. "작작해야지 새끼야…." 23.08.25 22 2 17쪽
68 67. 합류 23.08.25 22 2 18쪽
67 66. 황무지의 동굴 23.08.25 20 2 21쪽
66 65. U씨의 경우 23.08.21 24 2 20쪽
65 64. 생각보다 23.08.21 22 2 27쪽
» 63. 두 발째 23.08.18 24 2 36쪽
63 62. 전투, 전쟁 23.08.18 23 2 19쪽
62 61. 일점돌격 23.08.17 24 2 29쪽
61 60. 돌입 23.08.16 23 2 16쪽
60 59. 태양의 숨결, 폭풍의 한 자락 23.08.16 52 2 24쪽
59 58. 릿샤Rissha의 방 23.08.16 20 3 17쪽
58 57. 사연 23.08.13 29 3 24쪽
57 56. 누군가의 죽음 23.08.13 24 3 13쪽
56 55. 어느 법관의 정의正義 23.08.13 23 3 27쪽
55 54. 돌아가는 길 23.08.13 22 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