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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블러디 로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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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2.24 14:57
최근연재일 :
2020.03.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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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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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로

DUMMY

왜 남자에게 틀린 방향을 가르쳐줬던 것일까. 이자벨은 홀로 도로를 걸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릴 적 우리들과 비슷해서 그랬으려나.’


어릴 적에는 안과 워렌과 함께 저런 식으로 물건을 훔치거나 했던 일도 많았다. 잡히면 된통 혼나고 발길질 당하고 가진 물건은 전부 다 뺏기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잡히지 않았을 때는 며칠동안은 배를 곯는 일은 없었다.


‘제도라고 해서 저런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구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딜가나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번화한 마을이라도 음침한 뒷골목에는 부랑배와 노숙자 그리고 고아들이 자리를 잡고 생활한다. 씁쓸함을 느끼며 터벅터벅 도로를 걸으니 어느새 황성 앞에 도착해있었다. 처음 들어갈 때처럼 가로막는 병사들에게 오필리아의 이름을 대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자 알겠다면서 길을 열어주었다.


“어디 나갔다가 오시는 모양이군요. 어떠셨습니까 제도는?”


성문을 통과하고 건물 입구를 통과하는데 그림자 속에서 이단이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


이자벨은 오필리아의 충고를 떠올리고 무시한 채 홀연히 자리를 뜨려고 했다.


“어이쿠, 무시인가요? 오필리아가 저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저는 신사니까요. 레이디가 싫어할만한 짓을 하는 취미는 없다구요?”


과장된 몸짓으로 어필하는 이단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얼굴 자체가 가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 같은 레이디는 꽤나 취향이라서요. 고독하고, 가련한 듯 보이지만, 그 속을 까보면···”

“읏···!”


이단은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콧등이 서로 맞닿을 거리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숨결을 자신의 얼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마치 진주처럼 아름다운 보석을 품고 있죠. 저는 그 가치를 알고 있답니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하시네요. 전 그저 마크에게 끌려온 사람일 뿐인데.”

“후훗, 자기 평가가 굉장히 낮은 레이디시군요. 이 곳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아직 모르시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일단 저를 따라오시죠. 황성에서 지내는 동안 묵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옅게 미소지으며 이단이 몸을 휙 돌렸다.


“오필리아가 오면 같이 갈게요.”

“아, 황성에서는 따로 지내시게 될 겁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가까운 객실로 준비해 놓았으니까요.”

“......”


걷기 시작하는 이단과는 대조적으로 이자벨은 여전히 가만히 서 있었다.


“왜 그러시죠? 밖에서 다리라도 다치셨나요?”

“아, 아니에요.”


오필리아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녀가 어디로 가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우선 이단이 그 때까지 기다려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보호자 신분으로 온 오필리아와 자신을 왜 떨어뜨려 놓는지 미심쩍은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딱히 뾰족한 수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이자벨은 이단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이단이 안내해준 방은 예전에 마크에게 제공받았던 방보다도 더 호화로운 방이었다. 배치된 가구들은 이자벨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져 사치의 끝을 달렸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너무나도 고급스러웠다. 역시 황성의 객실이라고 해야 할까.


“이 방은 제가 제공해드리는 겁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당신이 제공해주는 거라구요?”


이단은 생색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귀한 손님의 접대는 모두 제가 일임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을 내어드릴지, 어떤 음식을 대접할지까지 전부 제가 결정합니다. 이건 레이디에 대한 제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황성에서 머무시는 동안에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저를 부르시면 됩니다. 심심하실 땐 말벗도 해드린답니다. 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전 다른 볼일이 있어서.”


이단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속사포로 뱉어낸 후 깔끔하게 퇴장했다.


“...머릿 속을 폭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아.”


왜인지 모르게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오필리아가 그를 조심하라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자벨은 털썩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던지듯 침대에 누웠다. 아직 해가 저물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푹신한 침대에 눕자 마차로 오랫동안 이동해 온 여독과 피로가 저항할 수 없는 물살이 되어 그녀를 덮쳤다. 결국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이자벨은 그대로 잠들었다.


이자벨이 눈을 뜬 건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일어났네. 어제는 꽤 피곤했나봐. 내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고 있었으니까.”


오필리아는 식탁 위에 놓인 빵을 집어먹고 있다가 이자벨이 일어나자 남은 빵조각을 입에 털어넣었다.


“이단이 이 곳에서는 방을 따로 쓰게 한다고 하던데···”

“내가 절대 안 된다고 이단에게 따져서 나도 여기서 묵는 걸로 했어. 내가 말했지? 이단은 무조건 조심해야한다고. 너 혼자 방을 쓰면 이단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게 돼. 너가 잘 때 세뇌마술을 걸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게다가 너가 자신의 말을 순순히 들어준다고 깨달았을테니 앞으로 더욱 찝쩍대겠지.”


오필리아는 이자벨에게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할 거라면서 충고했다.


“그런데 어제는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갔던 거야?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던 건 오필리아면서 그렇게 혼자 두고 가서 꽤나 당황스러웠는데.”

“아, 그건 미안. 누구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아서 쫓아갔는데 잘못 본 거더라구. 그것보다 오늘은 진짜 투기장에 가보지 않을래? 어제 스티브 아저씨한테 들었던 사람들이라도 한 번 구경해보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누군지 알아?”

“어제 여러 투기장을 좀 돌아보면서 조사했지. 두 세곳 정도 돌아보면 가장 조심해야할 사람들은 대충 다 확인해볼 수 있을 거야.”


오필리아가 의기양양하게 품에서 뭔가를 적은 종이 쪽지를 꺼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펼쳤다. 아무래도 저 종이에 참가자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는 모양이었다. 이자벨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네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내 의견은 이 1주일간 네 능력을 집중적으로 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황성을 빠져나와 투기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오필리아가 입을 열었다.


“내 능력?”

“전투 기술은 케일한테도 그리고 실전을 통해서도 계속 몸에 익혀왔을 테고 그런 것들은 단시간에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야. 신체 변화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마술은 좀 다르지. 사용법을 익히고 센스만 좀 있다면 이 쪽은 단기간에도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있어.”

“언젠가 내 능력 정도면 일반 성인 남자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이자벨이 어리둥절해 하며 갸우뚱거렸다.


“어디까지나 ‘일반’ 성인 남자지. 투기장에서 활약하는 투사들 중에는 신체 변화나 마술을 쓸 줄 아는 사람들도 가끔가다 있어.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인기를 얻고 실력을 키워 이런 대회에도 참가하지. 즉, ‘일반’이 아니라는 거야. 게다가 투기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니 전투 기술에서도 너보다 훨씬 더 뛰어날 테고. 너를 그들과 비교했을 때 가지고 있는 유일한 어드벤티지는 능력이 두 개고, 범용성이 뛰어난 마술을 쓸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네 능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그 점도 추가해야겠네.”


오필리아가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걸으니 투기장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선수용 입구가 아닌 관객용 입구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늘은 공식 경기 일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회가 가까워진 참가자들은 투기장에 나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저기 있는 저 애꾸눈. 저 남자가 참가자야. 이름은 벅크. 어제 조사한 바로는 특별한 이능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아. 그러나 오로지 육체의 강인함과 노련한 기술로 상대를 제압한다고 하더라고.”

“강해?”

“당연히 강하겠지. 하지만 내가 조사한 사람들 중에서는 이능이 없는 만큼 위험도가 떨어지는 상대야.”


이자벨은 침을 꼴깍 삼켰다. 울룩불룩하게 근육이 붙은 벅크의 몸은 딱 봐도 위협적이었다.

그는 투기장 안에서 한 쪽 눈을 빛내며 덮쳐드는 수 많은 건장한 남자들을 무기도 없이 오로지 완력만으로 떨쳐내고 포효한다. 떨어져나간 남자들은 땅바닥을 구르고 나서도 다시 일어나서 벅크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저게 뭐하는 거야?”

“저런 훈련을 자주 한다고 하더라고. 저렇게 계속 자신을 극한 상태로 몰아붙여서 능력을 키우는 훈련법이래. 정말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저 남자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보면 효과는 있는 훈련법이겠지.”


결국 벅크보다 먼저 지쳐버린 다른 남자들이 흙바닥에 대자로 널부러졌다.


“좀 더 하자고! 이 쪽은 아직 팔팔하니까!”


그들을 내려다보며 마치 고릴라처럼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하자. 며칠 째 이 짓거리를 한 탓에 안 아픈 곳이 없어. 대회에 나갈 거라면 더 강한 상대와 1대1로 싸워보는 게 더 효율이 좋지 않아?”


몸을 일으킨 남자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목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다른 녀석들은 1대1은 절대 안해준다고. 전략의 누출을 막아야 한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야. 주먹으로 대화해보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즐거운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마 너 밖에 없을 거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벅크를 바라보며 주저 앉아 있는 남자가 질렸다는 듯 얼굴을 찌

푸렸다.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애들도 죽어나겠어.”


그의 말대로 널부러진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벅크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투기장을 빠져나갔다.


“성격 상으로는 문제 없음. 그냥 싸움을 좋아하는 바보야.”


오필리아가 쪽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왜 대회에 참가하는 거야?”

“강한 상대와 싸워 보고 싶대. 정말 바보지. 자, 여기에서는 이제 더 볼 일 없을 것 같은데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오필리아는 쪽지를 잘 접어 품에 넣고 아까 들어왔었던 관객용 입구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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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9 0 11쪽
8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9 0 11쪽
7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7 23 0 11쪽
6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6 10 0 11쪽
5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5 13 0 11쪽
4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4 0 12쪽
3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2 0 12쪽
2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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