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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블러디 로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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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2.24 14:57
최근연재일 :
2020.03.18 15:3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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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9,271

작성
20.02.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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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각오

DUMMY

이자벨은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남자를 포착하고 몸통을 절단하기 위해 날아오는 양손검을 에스톡의 몸체로 받아내었다. 철과 철이 부딪히며 서로 긁어내는 기분나쁜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잠깐동안의 길항이 이어지다가 결국 힘에서 밀린 이자벨이 뒤로 멀리 날았다.

운동장에 등부터 제대로 떨어진 이자벨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비뼈 부분이 아픈 것이 방금 충격으로 부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이제 끝내주겠다는 듯 이자벨의 정면으로 돌격해왔다. 이자벨은 기회는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남은 한 자루의 단검을 무방비한 남자의 몸통을 향해 날렸다. 남자가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피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단검을 몸으로 받아내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자벨을 양단하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려쳤다. 그러나 그것이 큰 실수가 되었다. 속도가 주 무기인 이자벨은 가벼운 스텝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부러진 갈비뼈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꾹 참아냈다. 그리고 공격 직후에 생긴 남자의 무방비한 옆구리와 팔뚝에 빠르게 찌르기를 꽂아넣었다. 팔뚝은 얕게 찔렀지만 옆구리는 꽤 깊숙히 박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자벨이 승리를 확신한 그 순간이었다. 남자가 내려쳤던 검을 강력한 완력으로 들어올리고 이자벨을 향해 다시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힘이 잔뜩 들어간 팔의 근육이 팽창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검을 빼서 한 번 빠질 생각이었던 이자벨은 이 검격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께름칙한 미소를 띄는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이자벨은 생각했다.


‘아, 당했다.’


마지막으로 릴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속으로 친구에게 사과했다.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죽음을 눈 앞에 두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눈을 감았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남자의 검이 내리쳐 지면 죽는다. 그러나 남자의 검이 이자벨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대량의 피가 이자벨의 얼굴과 몸에 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을 뜨자 남자의 양 팔이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에 고깃덩이 같은 것들이 이리저리 퍼져 있는 것을 볼 때 남자의 양 팔이 폭발하듯 터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자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옆구리에서 검을 뽑아내 무방비하게 노출된 목을 에스톡의 날카로운 끝부분으로 꿰었다. 남자는 즉사했다. 매끄럽게 검을 뽑아내자 남자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그대로 지면과 격돌했다. 흙먼지가 일어났다. 잠겨있던 운동장 문이 열리고 시신을 호송하기 위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자벨은 들것에 실려나가는 팔 없는 남자를 바라보며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축하드립니다. 보고 있는 제가 다 즐거웠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운 좋아서 이긴 거에 지나지 않아요. 진짜로 죽을 뻔 했으니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케일의 축하를 들으며 이자벨은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케일의 눈매가 순간 가늘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나 보군요. 궁금한 것이 있다면 제게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갑자기 저 남자의 팔이 폭발했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인간의 몸이 갑자기 터진다니 말이 안되잖아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턱을 검지와 엄지로 잡은 채 골똘히 고민하는 이자벨. 케일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셨던 모양이군요. 그건 마력 때문이랍니다.”

“마력?”

“설명이 필요하신가요?”


이자벨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방에 돌아가서 마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치셨을테니 여기서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네요. 무기는 이리 주십시오.”


이자벨은 납득했다는 듯 에스톡을 케일에게 넘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목욕탕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방에서 씻을까?’


방에 화장실과 욕조가 있으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니다, 그냥 목욕탕이나 가자’


온 몸에 튄 피와 잔뜩 뒤집어 쓴 흙먼지를 생각해내고 이자벨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제 받아 깨끗한 욕조를 벌써부터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케일이 목욕탕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이자벨이 수건으로 앞을 가렸다.


“뭐하는 거에요?!”

“보시다시피 갈아입을 옷의 준비입니다만.”

“여긴 여탕이라구요? 다른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이자벨이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러나 케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명령받은 대로 두 분의 관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다른 간호사분들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나요? 여탕인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자벨의 붉어진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이 수치심 대신 얼굴을 장악했다. 이자벨은 케일이 준비해준 옷을 낚아채듯 집어들고 밖에 나가서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케일은 알겠다며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명령만 듣는 꼭두각시도 아니고··· 흑심은 없어보이기는 한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가시죠.”

목욕탕을 나가 기다리고 있던 케일과 합류해 방으로 돌아갔다. 아까의 해프닝 때문에 신경을 못쓰고 정신없이 갈아입기만 했어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인데 옷도 굉장히 재질이 좋아졌다. 원래 입던 원피스는 까슬까슬한 느낌이었는데 이 옷은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그래서 마력이란 건 뭐에요?”

“친구분이랑 같이 듣지 않으셔도 괜찮으신가요? 함께 들으시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자벨을 달래듯 케일이 릴리를 끌여들였다. 이자벨은 그럼 어쩔 수 없다면서 방까지 근질근질 거리는 입술을 꾹 닫았다.


“그럼 이제 궁금한 게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방에 함께 들어온 케일을 보고 무슨 일인지 감을 못잡고 당황하는 릴리에게 이자벨이 오늘 있었던 일과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릴리도 관심이 생기는 듯 흔쾌히 허락하고 유난히 마음에 들어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우선 마력에 대해서. 나랑 릴리는 둘 다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에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마력이란 생명력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고개를 갸웃하는 이자벨과 릴리에게 케일이 추가 설명을 시작했다.

“마력은 생명체라면 개인 차는 있지만 모두가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양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식물도 마력이 있습니다. 마력이 많을 수록 수명이 길다거나, 강한 육체를 가지거나 하게 되죠. 일정량 이상의 마력을 가진 자 중에서는 특수한 능력이 발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술을 사용한다던가, 신체를 변형해서 더 강해진다거나. 사람들은 그들을 마력능력자라고 부릅니다.”


릴리가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와중에 이자벨이 가장 궁금했던 점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럼 왜 아까 남자의 팔이 폭발하듯 터진 거죠?”

“터졌다고? 팔이?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미안, 깜빡하고 빼먹었네. 어쨌든 그래서 왜 그런거죠?”


이자벨이 대답을 재촉했다.


“마력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이자벨과 릴리의 눈동자가 똘망똘망해졌다. 케일은 한 호흡 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마력을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있어요. 갑자기 큰 힘을 내야 할때나 생명이 위험할 때 마력은 인체의 활동을 보조해주죠. 그래서 생명력이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던 마술이나 신체 변형은 그런 마력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사용하는 겁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인위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아까 보셨던 게 가장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신체의 폭발?”


이자벨이 확인을 요구하듯 말 끝을 올리며 물었다. 케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거대한 힘을 내려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마력이 그 행동을 보조해드린다고 말씀 드렸죠. 개인 차는 있지만 인간의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마력량의 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너무 큰 힘을 내고 싶은 나머지 자연스럽던 마력의 흐름을 잘못 조작해 더 많은 마력을 보내면, 그걸 견디지 못하고 신체가 터져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케일의 말에 따르면 아까 남자의 팔이 부풀었던 것처럼 보였던 것이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부풀어 올랐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자벨의 머리를 스쳤다. 이번엔 릴리가 케일에게 질문했다.


“그럼 마술이나 신체 변화는 어떻게 쓰는 건데?”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력량으로는 부족합니다. 선천적으로 마력이 많게 태어나거나 마술이나 신체 변화가 가능한 가문의 피가 흐를 것. 이것이 전제조건입니다. 이 이후에도 능력의 발현은 개인 차가 있고 더 잘 쓰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련이 필요합니다. 마력이 부족한데 마술이 신체 변화를 사용하려고 한다면 이 때는 몸이 터지는 걸로 끝나지 않고 잘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닥터께서 돌아오라고 하신 시간이 되었군요. 질문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들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케일이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를 이자벨이 불러세웠다.


“딱 하나면 돼요. 우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줘도 괜찮아요? 우리가 그 마력이란 걸 잘 사용해서 도망치게 되면 이런 걸 알려준 당신에게 불리해지는 거 아닌가요?”


케일은 고개만 뒤로 돌려 빛이 날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두 분이 지내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 받았습니다.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고민이 많아지면 당연히 불편함이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명령을 지키는 선에서 여러분들께 대답을 해드린 것뿐.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케일은 마지막으로 편히 쉬십시오라고 덧붙이고 방을 나섰다.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뭐라 그래야 하지··· 인간이 아닌 것 같다고 해야하나··· 인형 같다고 해야하나.”


케일이 나간 방문을 바라보며 릴리가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하는 듯한 답답함을 내비쳤다.


“그러게.”


이자벨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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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9 0 11쪽
8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8 0 11쪽
7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7 22 0 11쪽
6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6 10 0 11쪽
5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5 12 0 11쪽
4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4 0 12쪽
3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1 0 12쪽
2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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