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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블러디 로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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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2.24 14:57
최근연재일 :
2020.03.18 15:3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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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9,271

작성
20.03.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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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실험의 목적

DUMMY

그 날 아침엔 케일이 방에 찾아왔다.


“닥터께서 두 분을 부르십니다.”


이자벨과 릴리는 케일을 따라 마크의 실험실로 향했다.


실험실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안에서 마크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젠장! 앤드류 그 자식만 없었으면···!”


직후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와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함께 울렸다.


“닥터, 괜찮으십니까?”

“아, 케일인가. 괜찮다. 빈 비커가 깨졌을 뿐이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두 분을 데려왔습니다.”


케일이 몸을 살짝 비틀어 이자벨과 릴리를 마크에게 보여줬다. 마크는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일은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실험실을 나갔고 마크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시약을 가지러 보관실에 들어갔다.


“깜짝 놀랐네. 저 자식이 저렇게 화내는 것도 처음 보는데.”


릴리가 별 일이라며 이자벨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자벨도 조금 놀란 듯 희귀한 물건을 보는 듯 시약보관실을 응시하며 끄덕였다.


“그러게.”

“근데 저건 뭐지?”

“편지··· 같은데?”


바닥에 파편을 흩뿌리고 깨진 비커를 들여다보던 릴리가 책상 위에서 인감이 찍힌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발견했다. 딱히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편지의 내용이 전부 보여져 있었다. 남의 편지를 훔쳐봐도 괜찮은건가 싶긴 하지만 마치 읽어보라는 듯 펼쳐져 있는 편지지의 글자를 눈은 자연스럽게 읽어내려갔다.


[마크,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 앤드류의 연구자료를 이용하면 빨리 완성할 수 있다고 기회를 달라고 한 건 네 녀석이지 않느냐. 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력 이식을 성공시켜야 한다. 실험체는 충분히 지원해 줬을 텐데. 더 이상의 유예는 없다. 짐을 실망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데미안 슈플랜터.]


“마력 이식?”


편지 내용을 모두 읽은 릴리가 되뇌었다.


“마력이란 게 이식이 가능한 거였어? 케일한테 들을 때는 그런 얘기 없었잖아.”

“바보야!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드려고 하니까 애들을 이런 수상쩍은 시설에 잡아와서 연구하는 거 아니겠어?”

“남의 책상 앞에서 뭐하고 있나. 따라와라. 오늘은 금방 끝난다.”


어느새 시약 보관실에서 나온 마크가 철로 된 접시 위에 주사기 두 개를 올리고 병상이 있는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들켰...나?”


이자벨이 조심스럽게 릴리를 바라보았다. 릴리도 어깨를 들썩였다.


“잘 모르겠는데··· 아무 말도 안하는 거 보면 상관 없는 거 아니야?”

“그런 거려나.”


실험은 마크가 말한대로 금방 끝났다. 시약을 투여받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가면서 이자벨은 해소되지 않는 찝찝함을 느꼈다.


편지를 발견한 날 이후로 실험 스케줄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결투하는 날은 결투만 진행하고 시약을 투여받는 날에는 주사만 맞고 끝났지만, 이제는 결투하고 나서도 시약을 투여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딱히 몸이 아프더거나 악영향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자벨, 이거 봐봐!”


릴리가 한껏 들뜬 채로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릴리가 결투하는 날이었다.


“뭔데?”

“난 문 앞에 서 있을테니까 반대쪽 벽에 딱 붙어 있어 봐.”


이자벨은 영문도 모른채 릴리가 시키는대로 반대쪽 벽으로 걸어갔다.


“준비됐어?”

“말한 대로 하긴 했는데 뭘 하려고?”

“잘 봐~”


릴리는 달리기 준비를 하듯 두 다리 사이를 앞뒤로 벌렸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앞으로 달려나왔다. 그러나 그 속도가 이상할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문에서 눈 앞까지 거리를 좁힌 릴리를 이자벨이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뭐··· 뭘 한거야?”

“히히. 마술이라고! 오늘 아침부터 몸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결투할 때 조금 빨리 움직여볼까 생각했더니 진짜 빨라진 거 있지! 이상했던 게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되서 그랬던 거였어. 처음엔 긴가민가 했지만 목욕탕에서 혼자 몇 번 더 해보고 확신했어.”

“잘 됐네! 그래도 사용할 땐 조심해. 케일이 가르쳐 줬던 거 까먹은 거 아니지?”


말로는 축하하고 있었지만 이자벨은 내심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마력의 위험성을 케일에게 듣고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걱정하지 마. 마구 난사해댈 생각은 없으니까. 근데 왜 너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걸까? 나랑 비슷하게 실험을 받으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거 아니야? 마술이 생기면 여기서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모르지. 발현에는 개인 차가 있다고 케일도 그랬으니까.”

“이것도 마력 이식 실험 덕분인가··· 어쨌든 쓸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난 건 바라던 일이야. 이걸 이제 완전히 내 걸로 만들어야지.”


릴리는 자신의 두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잔뜩 들뜬 릴리와 다르게 이자벨은 마음 편히 기뻐할 수 없었다. 릴리 자신의 재능이 개화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만약 실험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라면, 후에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마술이 생긴 이후 릴리는 결투에서 상처를 입고 오는 날이 없어졌다. 더 이상 그녀들에게 두려울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릴리에게 마법이 생기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릴리도 자신의 마술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최근에는 이자벨도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마술이나 신체 변화는 불가능했다. 적어도 마력의 운용법이라도 제대로 몸에 익혀두자는 마음에 방에서 마력의 조작을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이자벨님, 릴리님, 계신가요?”


케일이었다. 이자벨은 대답 대신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닥터께서 두 분을 부르십니다. 우선 탈의실로 가셔서 환복 후에 운동장으로 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둘 다요?”

“네.”

‘우리 둘 다 운동장으로 부른 적은 없었는데···?’


이자벨은 평소와 다른 마크의 명령에 수상쩍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릴리와 함께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향했다.


“다 갈아입으셨군요. 따라오시지요.”


그 후에는 평소처럼 무기고로 향했다.


“원하는 것을 잡으십시오.”


여기까지는 변함 없는 수순이었다. 이자벨은 에스톡과 단검을, 릴리는 한손검과 방패를 들었다. 케일은 닫혀 있는 운동장 입구로 둘을 안내하고 멈춰섰다.


“여기서 둘이 들어가나요? 이런 적은 없었는데?”

“새로운 결투인가?”

“안에 닥터가 계십니다. 닥터께 설명을 들으시죠.”


케일이 문을 열어젖혔다. 평소에는 연구자들로 가득한 관객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반대편 문이 열린 것도 아니었다. 대신 하얀 가운을 입은 마크가 운동장과 가장 가까운 관객석 쪽에 앉아있었다. 이자벨과 릴리가 도착한 것을 보고 마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리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둘 다 여기까지 훌륭하게 성장했군. 아주 바람직해.”


갑자기 마크가 둘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자벨은 또 시작이구나하고 질려했지만 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뭘 잘못 먹었는지 의심하는 눈초리로 마크를 째려보았다.


“너희들의 실험 결과는 우리 제국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요긴하게 써질 것이다. 영광스러운 일이지. 그렇지 않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장황하게 미사여구만 늘어놓지 말고 본론을 말해.”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다는 듯 릴리가 말을 끊었다. 마크는 한 번 목을 골랐다.


“즉, 너희 둘은 우리 제국의 첫 인간 병기로써 거의 완성 단계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인간··· 병기?”


이자벨이 듣기만 해도 흉흉한 단어를 곱씹었다.


“케일의 보고를 들어보니 마력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은데 너희에겐 숨겨도 어차피 곧 들킬 이야기지. 그렇다. 이 실험의 목표는 인위적인 마력 이식을 통해 모든 병사들을 마력능력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여지껏 투약 받았던 건···”

“눈치 챈 모양이군, 릴리. 내 연구로 만들어낸 인공 마력이라는 것이지. 다른 생명체로부터 마력을 추출해내 물질화시켜 다른 생명체에게 이식할 수 있도록 만들고 개량해 온 것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넣으면 몸이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니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신체를 개조해 온 것이다.”

“그래서, 인간 병기라는 건 뭐지? 그게 되면 제국군이 되어서 살인기계처럼 전장을 돌아다녀라 뭐 이런건가?”


릴리가 따지듯 물었다. 마크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거의 정확하군. 거기에 하나가 더 붙어야지. 어떤 명령이라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충성심!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주인을 무는 개를 어떻게 믿고 쓸 수가 있겠나.”

“하! 아무리 지금 네가 우리를 사람취급하는 척을 한다고 해도 사실은 가축과 별다를거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주제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란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어이가 없다는 듯 릴리가 코웃음 쳤다. 마크는 뭐가 그리 웃긴지 크게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뭐야, 왜 웃어!”

“나나 제국이나 너희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은 눈곱만큼도 바라지 않는다. 기껏해야 주워 온 강아지. 명령을 따르게 하는 충성심은 죽도록 패거나 먹이만 던져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 그 한 마디로도 충분하다. 그것 말고 더 중요한 건 얼마나 참혹해질 수 있는가. 자신의 감정을 죽일 수 있을지가 중요하게 되지.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게 될 병기가 사람을 죽이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가진다? 그렇게 되면 점점 병기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이게 더 치명적인 문제지. 마술로 팔다리는 고칠 수 있어도 뇌와 심장은 고칠 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알아들었나?”

“그래서 네가 말한 그 역량은 어떻게 판단할 건데? 여기에 민간인이라도 데려와서 대량 학살이라도 시키려고?”

“그 정도론 부족하지. 그래가지고서는 너희들이 맨날 검을 들고 이 운동장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아. 자신과 연이 없는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생각보다 쉽게 해할 수 있는게 인간이라는 생물이다.”


“설마···!”


마크의 말을 듣고 있던 이자벨이 어느 가능성에 도달했다. 이 곳에서 살아남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언젠가를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지만 절대로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랬던 가능성. 그리고 마크는 이자벨이 생각한 바로 그 가능성을 지금 입에 담았다.


“오늘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건 이자벨과 릴리, 너희 둘 중에 단 한 사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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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9 0 11쪽
8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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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5 12 0 11쪽
4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4 0 12쪽
3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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