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나른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블러디 로터스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나른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2.24 14:57
최근연재일 :
2020.03.18 15: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73
추천수 :
0
글자수 :
109,271

작성
20.02.24 17:23
조회
11
추천
0
글자
12쪽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DUMMY

제국군인들은 날이 밝는대로 전날 놓쳤던 이자벨 일행을 추적했다. 14살짜리 아이들이 총상을 입고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숲의 그다지 깊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을 발견한 군인들은 먼저 일어나 있던 아드리안과 워렌을 제압하고 밧줄을 묶었다. 마지막으로 아직 잠들어 있는 이자벨을 묶으려고 다가가는 순간 이자벨이 눈을 떴다.


“뭐야?!”


추운 곳에서 자고 일어난 직후라 목소리는 잠겨있었지만 적지 않게 놀랐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자벨은 자신의 손목을 붙잡으려는 군인에게 저항했다.


“그만, 그 이상 저항하면 이 둘의 목숨은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군인이 손을 뒤로 묶여 있는 워렌과 아드리안의 관자놀이에 권총의 총구를 들이밀었다. 분한 듯,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공포를 띄는 표정의 아드리안과 워렌을 보고 이자벨은 씁쓸하게 혀를 차고 저항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얌전히 양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셋의 포박을 마치고 군인들이 앉아 있는 이자벨을 일으켜 세웠지만 어제 입은 부상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오른 쪽 볼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흘렀다.


“이자벨!”

“쟤는 어제 다리를 다쳐서 혼자 못 걷는다고!”


아드리안은 손이 묶인 채로 자신을 붙잡고 있던 군인을 고통도 잊은 채 다친 어깨로 밀쳐내고 이자벨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묶인 손으로는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워렌은 겁도 없이 군인들에게 따지듯 강하게 밀어붙였다.


“너, 저 여자애를 들고 와라.”


아까 아드리안과 워렌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가져다 댄 사람이 다른 군인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 군인이 무릎을 굽히고 상태를 확인하던 아드리안을 들어올려 옆으로 치워내고 앞으로 엎어져 있는 이자벨을 안아서 들어올렸다. 상황이 달랐다면 꽤나 로맨틱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인의 팔에 안겨있는 이자벨은 풍겨오는 시큼한 땀냄새와 비릿한 피냄새에 혐오감과 불안함밖에 들지 않았다.


상황이 정리 되고 군인들에게 연행되며 마을로 돌아온 세 명은 그대로 마을의 광장에 끌려와 강제적으로 무릎을 꿇고 앉게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손을 묶이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자신들과 나이 또래가 비슷한 아이들 뿐이었다.


“이 마을은 이게 전부인가?”

“넵! 마을을 현재 수색 중입니다만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알겠다. 포로들은 들어라!”


한 눈에 봐도 군복에 달린 뱃지의 개수가 다른 군인이 나머지 군인들에게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알렉스. 슈플랜터 제국 특수기동대 대장이다. 무의미한 저항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너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잡혀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딱딱한 무표정을 바꾸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모른다. 우리는 황제폐하의 명령만을 따른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너희들을 잡아가는 것뿐. 그 이후의 일은 내가 알 이유도, 필요도 없다. 우선 이 포로들은 먼저 본국으로 보낸다. 이송해라!”

“넵!”


알렉스의 명령에 다른 군인들이 차렷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우르르 아이들을 둘러싸고 한 명 씩 일으켜 세웠다. 아드리안과 워렌은 곧바로 일어났지만 이자벨은 강해진 다리의 통증에 일어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당황하고 있는 군인에게 알렉스가 그 여자애는 안아들으라고 명령했다. 이자벨을 일으키려고 온 군인이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우람한 두 팔로 이자벨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이들을 이송하는 군인들은 서쪽 출입구를 향했다. 출입구에는 말 두마리가 한 쌍으로 끄는 군용마차 다섯 대가 있었다. 세 대는 포로 이송용. 나머지 두 대는 군인용이었다. 군인들은 포로용 마차에 아이들을 채워넣은 후에 포로를 감시할 군인들이 타고 나서 마부석에 앉은 사람에게 출발신호를 내렸다. 이자벨 일행은 마지막 포로용 마차에 타게 되었다. 앞의 두 대가 먼저 떠나고 마지막 마차에도 신호가 떨어졌다. 천천히 차체가 돌아가는게 느껴지면서 점점 속도가 붙었다. 마차 안은 적막함 그 자체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면서 나는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가끔가다 마부가 휘두르는 고삐 소리뿐이었다. 피곤에 지친 이자벨은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잠에서 깨는 이유는 대부분 고통 때문이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다리에 가해지는 충격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것이다.


‘어제 먹었던 약이 쓸모가 없었나 보네···’


이자벨은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게다가 눈을 뜨면 뒤에 달린 입구가 열려있어서 양 쪽 숲 사이의 도로로 군용마차가 달려오는게 보였다. 이미 포로지만 갑자기 그 마차에서 총알이 날아오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상상만이 이자벨의 머리 속에 그려졌다. 그렇게 자다 깨기를 몇번 반복하고 다시 눈을 감고 잠드려고 했던 이자벨은 이번엔 고통이 아닌 다른 이유로 눈을 떴다.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퍼진 것이다. 소리의 진원지는 마차의 뒤였다. 밖을 내다보니 포로용 마차를 쫒아오던 두 대의 군용 마차가 완전히 전복되어 있었다. 포로용 마차가 갑자기 멈춰섰다. 군용 마차의 폭발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은 곧바로 임전 태세를 취했고 포로 이송을 위해 함께 타고 있던 군인들도 마차에서 뛰어내려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방금 폭발 이후에 추가적인 교전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겁 없는 아이 하나가 품 속에 숨겨둔 뾰족한 돌조각으로 다른 아이의 도움을 받아서 밧줄을 끊어 냈다. 그리고 조용히 아이들에게 속삭였다.


“지금 도망칠 사람은 나한테 와. 밧줄을 풀어줄테니까. 저 군인들이 폭발에 정신 팔려 있는 지금이 도망칠 마지막 기회야!”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밧줄을 풀어달라며 그 아이에게 몰려들었다. 하나 둘 씩 묶여 있던 밧줄이 전부 풀렸다. 아직 군인들은 아이들이 밧줄을 풀어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신호를 줄테니까 그 때 한꺼번에 다같이 뛰는 거야.”


밧줄을 처음 풀어낸 아이가 지시했다.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타이밍을 엿봤다.


“이자벨, 달릴 수 있겠어?”


걱정스러워하는 워렌에게 이자벨이 가볍게 웃어보였다.


“참고 달려야지··· 지금은 그래야 할 때야.”


그 때였다. 후방에서 쾅하는 폭발음이 들렸고 제국군들의 주의가 모두 그 쪽으로 쏠렸다. 그와 동시에 마차 입구에는 제국군과는 다른 군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다가왔다. 한 명은 얼굴에 흉터가 가득해 사나운 인상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그에 반해 사람 좋은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인상이 선해보이는 남자가 미소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현 상황을 아이들에게 이해시켰다.


“우린 제국에 대항하는 반란군이란다. 포로로 잡힌 너희들을 구하기 위해 왔어. 밧줄은 전부 풀었구나. 대단해! 자, 빨리 도망가자. 우리도 적군을 모두 상대할 만큼의 전력은 지금 없어. 수상쩍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너희들을 구하기 위해서 온 거니까 지금은 믿고 따라줬으면 좋겠어.”


몇몇 아이들은 잠시 고민했지만 행동력 넘치는 아이들이 앞장서서 마차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력질주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차례차례 마차에서 뛰어내리고 선두 그룹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아드리안과 워렌의 차례가 되었다.


“얘는 다리를 다쳤어요.”


아드리안이 남자에게 그렇게 말하자 인상 선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 위로 올라가 이자벨을 안아올렸다.


“도망만 치면 치료도 받을 수 있으니까 좀만 참아주렴.”


남자는 이자벨이 겁먹지 않도록 최대한 다정한 말투로 속삭였다. 이자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한 듯 웃었다.


“자, 너희들도 뛰어!”


이자벨을 들어올린 남자는 그렇게 소리쳤다. 아드리안과 워렌은 흉터투성이 남자가 이끄는 대로 군용 마차 반대편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셋의 긴장을 조금 풀어주려고 하던 찰나였다. 안타깝게도 언제나 그렇듯 절망은 조금의 희망을 품었을 때 찾아온다.


“반란군들이 포로들을 데리고 도망친다!”


폭발의 충격에서 정신을 차린 제국군들이 도망치는 아이들과 반란군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포로용 마차에서 최후방, 그리고 도망치는 행렬에서도 최후방인 이자벨과 남자는 당연히 제국군들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안겨있는 상태에서 뒤를 바라본 이자벨은 자신과 남자에게 겨눠진 총구를 보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제발 맞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신께 빌었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기도는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몇 번 울렸는지 모를 발포음과 함께 발사된 총알들이 남자의 등을 뚫고 그 중 한 발이 정확하게 심장을 뚫었다. 심장을 직격당한 남자는 고통을 호소하며 이자벨을 안은 채로 앞으로 쓰러졌다. 군복은 솟구쳐 나오는 피를 모두 흡수하지 못하고 흘러넘치는 피는 눈밭을 축축히 적셔가기 시작했다. 최악인 것은 남자가 이자벨을 안은 채로 넘어졌기 때문에 이자벨이 그 아래에 깔렸다는 것이다. 남자의 무게가 이자벨의 복부를 압박한다.


“안! 워렌!”


이자벨이 힘껏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드리안과 워렌은 뒤를 돌아보았고 남자에게 깔린 이자벨을 발견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돌아가려는데 그들의 어깨를 흉터투성이 남자가 잡아세웠다.


“이미 늦었다. 포기해라.”


냉철한 선고였다. 그럼에도 돌아가려고 하는 두 사람에게 남자는 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포기해. 저 여자는 구할 수 없다. 너희들까지 저 여자를 따라 잡혀가게 둘 순 없어.”


어느새 남자에게 뒷목을 잡혀 질질 끌려가는 형태가 되어버린 아드리안과 워렌은 그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로변의 숲으로 그들과 함께 몸을 감추었다. 그 사이에 숨이 멎은 남자를 치우기 위해 발버둥치던 이자벨은 어느샌가 없어진 아드리안과 워렌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모습을 감춘 그들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이미 제국군과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안··· 워렌...”


그녀는 그들이 달려간 방향을 넋 나간 채로 바라보며 탄식하듯 작은 목소리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빠르게 다가온 제국군이 남자를 치워내고 이자벨을 다시 포박하려고 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아,”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이자벨은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저항했다. 하지만 14살 여자아이의 반항은 훈련된 군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반항을 계속 하자 결국 총기의 개머리판으로 후두부를 가격당했고 이자벨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블러디 로터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제도로 20.03.18 7 0 11쪽
21 제도로 20.03.16 8 0 11쪽
20 제도로 20.03.14 7 0 11쪽
19 제도로 20.03.11 10 0 10쪽
18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 20.03.09 9 0 12쪽
17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 20.03.07 10 0 11쪽
16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 20.03.06 8 0 11쪽
15 상실 20.03.05 7 0 12쪽
14 상실 20.03.04 11 0 11쪽
13 상실 20.03.03 12 0 12쪽
12 상실 20.03.02 9 0 11쪽
11 실험의 목적 20.03.01 10 0 11쪽
10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9 9 0 11쪽
9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9 0 11쪽
8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8 0 11쪽
7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7 23 0 11쪽
6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6 10 0 11쪽
5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5 13 0 11쪽
4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4 0 12쪽
»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2 0 12쪽
2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7 0 11쪽
1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51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