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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블러디 로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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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2.24 14:57
최근연재일 :
2020.03.18 15:3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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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9,271

작성
20.03.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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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상실

DUMMY

벽에 부딪힌 릴리는 몸을 활처럼 꺾으며 흙바닥에 얼굴부터 떨어졌다. 그 충격 때문에 비수의 구속이 약해져 이자벨은 고통을 참으며 손의 자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쓰러진 릴리에게 달려가 몸을 돌리고 자신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렸다.


“정신차려 릴리!”


완전히 날아가버린 오른쪽 다리의 절단면에서는 피가 주륵주륵 흘렀다. 펀치를 맞은 복부의 모양도 일그러져 있었다.


“아...아···”


릴리가 할 말이 있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이자벨의 머리에 팔을 감았다. 이자벨은 릴리의 입 쪽으로 귀를 밀어붙였다.


“ㅡㅡㅡㅡ”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자벨의 귀는 릴리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점점 차가워져가는 릴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끌어안았다. 심장이 아파왔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릴리의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눈동자도 빛을 잃어간다. 다리를 잃고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안 돼. 릴리 죽지 마!!”


절규하는 이자벨을 바라보며 마크가 조롱하듯 비아냥거렸다.


“그러니까 빨리 항복하고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으면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텐데...”

“케일··· 꼭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어?!”

“이런 이런,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분노의 대상을 잘못 잡으면 안 되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돌봐줬던 상대라고 하더라도 내 명령에 따랐을 뿐! 이상적인 충성심이지. 그렇지 않나. 이자벨?!”


마크는 양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마치 대단한 것을 연설하는 것 마냥 잘난 표정을 지었다. 케일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이자벨을 지그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고 그래서 릴리를 구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주먹에서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쥐는 것 밖에 없다는 무력감이 이자벨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나 마크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평소에 반항적인 릴리에 대해 쌓인 게 많았는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바보 같은 여자애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쓸데 없이 반항심만 많았다. 그런 주제에 목숨은 질겨서 계속 살아남고 실험을 받을 때마다 나를 욕하거나 했었다. 그게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게다가 여기서 탈출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꿈을 꿨었던 모양인데, 부모에게 버림 받아 팔려온 여자애가 세상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였나 모르겠군. 어차피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몸이나 팔며 거리를 전전하다 끝났을 인생이었는데 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서 그 인생에도 의미가 생긴 걸 감사하게 여겨라.”

“으윽···”


이자벨은 참기 힘든 모욕적인 발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미 릴리의 동공은 풀려있었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저런 망언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들었다면 릴리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상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저 입을 양 손으로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결국 마크의 마지막 말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이자벨 넌 저 쓰레기와는 다르다!”

“닥쳐 마크.”


이자벨이 조심스럽게 릴리의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내가 죽더라도 저 망할 놈만큼은 죽이고 가겠다.


“뭐라고?”

“그 입. 닥치라고!!!!!”


이자벨이 단숨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평소 그녀의 각력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도약높이였다. 마크는 깜짝 놀라 이자벨을 올려다보았다. 빛을 받아 빛나는 플라티나 블론드는 모근부터 점점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에는 붉은 털이 자라나고 케일처럼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생겼다. 그러나 이자벨은 자신의 변화에 놀라지 않았다. 지금은 새로운 힘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뿐이었다. 변화한 그녀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찼다. 팔다리를 변화시킨 이자벨은 공중에서 그대로 마크에게 화살처럼 마크에게 쏘아졌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톱은 마크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의 살기를 감지한 케일이 순식간에 돌아와 이자벨의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비켜 케일. 못 죽이잖아.”

“그럴 순 없습니다. 전 닥터의 호위가 최우선 명령이기 때문이기에.”

“그 놈의 명령, 명령! 넌 명령만 듣고 사는 꼭두각시야?!”


공포로 일그러진 마크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케일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일까.


“소용 없다. 케일은 언제나 명령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훈련 받아왔기 때문에 네가 뭐라고 말하든 그가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럼, 너도 같이 쓰러뜨리면 그만 일뿐이야!”


이자벨이 반대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날카로워진 손톱으로 심장을 뽑아내기 위해 케일의 왼쪽 가슴을 노렸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쳐낸 후 손목을 놓고 발로 복부에 밀어차기를 박아넣었다. 뒤로 크게 날아간 이자벨은 등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케일은 이걸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지 이자벨이 일어났을 땐 이미 가속을 받은 채로 달려들고 있었다. 이자벨은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정면에서 받아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밀리지 않고 둘의 힘이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그만 진정해 주십시오.”

“저 개자식만 죽이면 그 다음에 내 눈을 뽑아가든 심장을 뽑아가든 신경 안 쓸테니까 비키기나 해!”

“크하하하!!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실험할 때마다 마력의 흡수가 빠르고 안정화 되어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처음 신체 변화를 했는데 아무리 케일이 진심으로 상대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힘에서 밀리지 않다니! 역시 이자벨 넌 저 쓰레기와는 달라!”


마크가 광기와 희열에 빠진 표정으로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기뻐하는 마크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 성대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케일이 앞에서 막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몸의 감각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마력이 아닌 다른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마력과 비슷한 듯한··· 이자벨은 빠르게 곁눈질로 주위를 살폈다.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야한다. 그러다 릴리가 있는 쪽에서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피였다. 그 때 이자벨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착상태에 빠진 케일과의 힘겨루기를 끝내기 위해 발차기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손톱으로 자신의 팔을 긁어냈다. 날카로운 손톱에 4줄기로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흘렀다. 이자벨은 확신했다.


“자해...인가요?”


돌연 스스로 상처를 내는 이자벨의 행동에 케일이 잠시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확신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죽을만큼 힘들었던 나날들이었지만, 아이러니하네. 네 실험 덕분에 널 죽일 수 있겠어. 가라!”


이자벨이 명령하자 바닥을 흐르던 그녀와 릴리의 피가 공중으로 떠올라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마크에게 육박했다. 그러나 그 광경에 마크는 두려워하기는 커녕 더욱 흥분된 목소리로 웃었다.


“말도 안 돼! 마술이라니! 신체 변화뿐만 아니라 마술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 역시 내 연구는 틀리지 않았다! 그 앤드류 자식보다 더 뛰어난 실험체를 내가 만들어냈다! 크하하하!!!”

“죽어, 마크!!!!!”


이자벨이 소리쳤다.


“이 정도일 줄은··· 어쩔 수 없군요.”


케일의 몸이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부분적으로 생겼던 사자의 특징이 완전히 몸을 덮기 시작하며 목에는 검은 색 갈기가 솟아났고 얼굴까지 사자와 비슷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마크에게 돌아가 날아오는 가시들을 모두 쳐냈다.


“말도 안 돼···”


그 수많은 가시들 중 단 하나도 마크의 숨을 끊지 못했다. 케일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이거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이자벨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방금 공격으로 마력을 거의 다 써버린 탓에 팔다리도, 머리카락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넌 죽이지 않는다.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나. 이자벨 넌 우리 제국에게 있어 최고의 병기가 될 것인데! 그 날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마크는 잔뜩 들뜬 채로 관객석을 떠났다. 변신을 푼 케일이 이자벨에게 다가왔다.


“제 능력을 전부 써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강해지셨군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위로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자벨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싸워놓고 이제와서 위로가 필요해보였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릴리가 죽은 것도, 내가 마크를 죽이지 못한 것도 다 너 때문이잖아! 근데 다 끝나고 나서 위로? 놀리는거야?”


이자벨이 케일의 멱살을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거의 남지 않은 마력을 짜내 다시 한 번 신체 변화를 사용하려고 했다. 그걸 눈치챈 케일이 이자벨의 명치를 가볍게 때리자 그녀가 힘 없이 축 늘어졌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 이상 마력을 쓰면 죽습니다. 그렇게 둘 순 없습니다. 방금 닥터께서 그렇게 명령하셨으니까요.”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케일의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또 그 놈의 명령···’


이자벨의 의식이 끊어졌다.


이자벨의 의식이 돌아온 건 꼬박 하루가 지난 뒤였다. 마크가 내어준 방에서 눈을 뜬 이자벨은 이 모든게 꿈이었나 하는 생각에 몸을 홱 일으켜 옆 침대를 보았다.


“릴리?!”


하지만 그곳에 릴리의 침대는 없었다. 침대뿐만이 아니라 릴리가 있었던 흔적이 방에서 모두 사라져 있었다. 휑하게 변해버린 옆자리를 보고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사살당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점점 눈가가 촉촉해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또르륵 흘러내렸다.


“...꿈이길 바랬는데···”


그대로 무릎을 끌어안고 이자벨은 멈출 수 없게 된 눈물을 혼자서 조용히 쏟아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눈물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불에 얼굴을 박았다. 그 덕분에 큰 울음소리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울다 지친 이자벨은 다시 하루를 꼬박 잠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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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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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4 0 12쪽
3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1 0 12쪽
2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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