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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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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2.24 14:57
최근연재일 :
2020.03.18 15:3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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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9,271

작성
20.02.2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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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각오

DUMMY

1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오늘의 결투를 치른 이자벨은 목욕을 마치고 케일과 함께 방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오늘도 눈이 즐거운 경기였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겉치레는 필요 없어요. 내가 어떻게 싸웠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언제나처럼 케일은 칭찬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이자벨의 기분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결투가 거듭될수록 점점 상대방도 강해졌고 그에 따라서 이기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어찌어찌 잘 넘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자벨의 자기평가였다.


“그러고 보니 당신도 검을 다룰 줄 알았죠.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남에게 뭔가를 잘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그 질문에는 대답해 드릴 수 없겠네요.”

“저번의 설명은 아주 듣기 좋았는데···”


저번 주에 케일에게서 마력에 대해 설명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평가라도 해줘요. 냉정하게.”


매달리듯 부탁하는 이자벨을 케일은 슥 내려다보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먼저 못을 박았다.


“악의는 없으니 상처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자벨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침을 꼴깍 삼쳤다.


“전체적으로 무기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합니다. 에스톡은 빠른 찌르기가 주 공격으로 스피드를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찌르는 순간에 강력한 힘을 방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봐온 이자벨님의 움직임은 너무 정직합니다.”


“정직하다고요?”


케일이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빈틈을 찌르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실 때가 있습니다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을 너무 정면에서만 받아치려고 합니다. 가끔은 적은 힘으로 흘려주거나 빠른 회피 후에 반격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칼날을 맞대는 것은 에스톡에게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그러나 이자벨님의 움직임은 장검 혹은 롱소드에 더 어울립니다.”

“정면에서만 받아치려고 한다···? 적은 힘으로 흘려주라는 건 뭔가요?”


이자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지와 검지를 턱에 대고 생각에 빠졌다.


“말로 설명드리기 쉽지 않습니다. 직접 대련을 해보면 설명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자벨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럼 대련해보면 되죠!”


갑작스러운 이자벨의 부탁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케일이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습니다. 닥터께서 부르셔서요. 오늘 닥터께 허락을 얻고 시간이 된다면 내일 직접 방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들어가세요.”

“편히 쉬십시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방에 도착해 이자벨은 케일을 배웅하고 방문을 열었다.


다음 날 케일은 약속대로 방에 찾아왔다. 이자벨이 잔뜩 들떠서 방문을 열었다.


“릴리님, 따라오시지요.”

“대련하러···?”

“뭐해, 이자벨? 오늘은 내 차례였던 거 같은데.”

“아, 아무것도 아니야! 잘 다녀와 릴리.”


착각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는 이자벨을 릴리는 이상하게 쳐다보며 문을 나섰다. 방문이 닫히고 깊은 한숨을 내쉰 이자벨은 다시 들리는 노크 소리에 깜짝 놀라 방문을 다시 열었다. 거기엔 케일이 서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아, 알겠어요!”


케일은 산뜻하게 웃어주며 살포시 방문을 닫았다. 이자벨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케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아까와 똑같은 노크소리가 들렸다. 케일이었다.


“릴리는요? 벌써 끝났어요?”

“오늘 결투 이후의 수습은 간호사에게 맡기고 왔습니다. 닥터께서 허가를 내려주셔서요.”

“그랬군요···”

“따라 오십시오. 대련할만한 곳을 찾아두었습니다.”


케일을 따라 방을 나갔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내부에 있는 정원이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중앙에는 석판으로 동그랗게 무대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넓이는 눈대중으로 봤을 때 지름 20m정도 되어보였다. 그리고 정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목검 두 자루가 놓여있었다. 케일이 먼저 준비해둔 것이었다.


“예쁜 정원이네요.”

“이 곳에 계신 다른 닥터께서 관리하시는 정원입니다. 몇 년 전부터 주 연구에서 손을 떼시고 방에 틀어박혀 다른 주제로 개별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그 분의 유일한 취미가 이 정원을 가꾸는 것이기에 장소는 빌렸지만 되도록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저도 이런 예쁜 정원을 훼손하고 싶지는 않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이 검을 드십시오.”


케일이 내민 목검을 잡았다. 이자벨이 뒤로 조금씩 물러서고 케일이 그에 맞춰 둘 사이의 거리를 조절했다. 적당하게 둘이 자리를 잡았을 때 케일이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저에게 먼저 공격해보십시오. 어제 설명드렸던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자벨이 오른손으로 검을 강하게 쥐었다. 케일도 그녀와 맞춰서 자세를 잡았다. 상체를 왼쪽으로 돌린 후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렸다. 배가 바라보는 방향과 눈이 바라보는 방향이 거의 직각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왼손을 등 뒤로 돌리고 시선이 가는 방향에 검 끝을 맞췄다. 그 자세를 정면에서 이자벨이 바라보니 공격할 장소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주저하는 이자벨에게 케일이 입을 열었다.


“이게 기본 자세입니다. 상대방에게 몸을 최대한 적게 보여줄 수 있고 찌르기에 적합한 자세. 지금 이자벨님의 자세는 시선과 몸통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세를 잡아서는 에스톡의 진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저처럼 자세를 잡아보십시오.”

이자벨은 케일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했다.

“그 자세에서 절 찌르려고 해 보십시오.”


케일의 지시에 이자벨은 스텝을 밟다가 오른발과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빠르게 찌르고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확실히 편해졌어요. 공격 후의 태세 정비에도 그렇게 큰 시간을 들이지 않을 수 있고.”

“이자벨님의 자세가 그렇게 되어버린 건 에스톡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검의 스승이 없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자세를 보고 따라는 것이 고작이었을테지요. 그러나 대다수가 롱소드와 장검을 사용하니 그 사람들의 자세를 보고 따라하셨을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찌르기를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이런 식으로 자세를 잡아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요.”


이자벨이 케일의 설명을 들으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서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공격해 보십시오. 이번엔 공격을 가드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자벨은 자세를 고쳐잡고 심호흡했다. 케일과 대치하고 있지만 여전히 찌를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꺾어 케일의 등을 노리고 찌르기를 날렸다. 그 공격을 케일은 어렵지 않게 흘려내듯 툭 쳐내고 역으로 찌르기를 날렸다. 그의 목검 끝이 이자벨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 이자벨이 진땀을 흘리며 침을 삼켰다.


“이런 식입니다. 칼날을 맞대며 힘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쳐내는 쪽이 더 좋습니다. 에스톡도 검에 따라 날이 있고 없고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베는 무기인 장검이나 롱소드와 찌르기 무기인 에스톡이 검날을 맞대는 힘겨루기에서 에스톡은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대신 쳐내기와 빠른 반격을 이용하는 겁니다. 방금처럼.”


이자벨은 케일의 설명을 진지한 표정으로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아나갔다.


“하지만 저는 이긴 적이 있는 걸요?”

“그건 단순히 상대방과의 완력 차이입니다. 만약 이자벨님의 에스톡에 날이 없었다면 칼이 부러졌을 수도 있어요. 또 그렇게 싸우기 때문에 자신보다 완력이 뛰어난 상대에게는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이건 이자벨님 본인이 더 잘 아실테지요.”


그의 말대로다. 이자벨은 반박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했다.


“왜 장검이나 롱소드를 쓰지 않으시는지 이해하기 힘든 싸움법입니다.”

“그건 처음에 가볍다는 이유로 레이피어를 들어서···”


케일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는지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케일은 어느 정도로 강한가요?”


이자벨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남을 가르칠만한 실력이 있다면 그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죄송하지만 그건 알려드릴 수가 없겠네요. 전력에 대한 정보는 모두 비밀입니다. 관계자가 아닌 이자벨님께는 절대로요.”


케일의 강한 어조에 이자벨은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대련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자.’

“마저 하던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에스톡은 익숙해지면 반격하기가 더 쉬운 무기입니다. 그러니 방금 제가 보여드린 쳐내기와 찌르기의 연계를 연습하시면 더 강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이후에 몇 번이나 대련을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케일의 승리였다. 이자벨의 공격은 케일에게 닿은 적이 없었고 케일은 언제나 치명상이 될만한 부위를 공격했다. 공격이 막히고 당할 때마다 이자벨은 몸으로 검을 다루는 법을 익혀나갔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이어진 대련은 케일이 닥터가 부르시는 시간이 되었다며 자리를 뜨자고 말할 때까지 이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감사했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이자벨과 케일은 성 내부로 들어갔다. 성장한 것 같다는 고양감에 빠진 이자벨은 반대편 성의 창문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방 앞에 멈춰선 이자벨이 케일에게 새 옷을 가져와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케일은 알겠다고 인사하고 뚜벅뚜벅 이자벨에게서 멀어졌다. 방문을 열자 릴리가 방금 목욕을 하고 나왔는지 젖은 머리카락으로 이자벨을 반겼다.


“뭐야, 어디갔다 왔어?”

“케일이랑 대련하고 왔어.”


릴리가 깜짝 놀라더니 갑자기 이자벨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야, 그런 게 있었으면 나도 데려가 줘~. 너 없이 하루 종일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고.”

“미안, 미안.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꼭 그렇게 할게. 으, 땀을 너무 많이 흘렸어. 나 목욕

좀 하고 나올게. 케일이 오면 문 열어 줘. 옷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이자벨은 화장실에 땀에 절은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물을 머리부터 시원하게 뒤집어썼다.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욕조에 몸을 담궈 하루동안의 쌓였던 피로를 날렸다.


이 이후로도 가끔씩 이자벨은 케일에게 대련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케일에게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던 찌르기가 가끔씩 그에게도 위협적인 공격이 될 때가 생겼다. 그리고 그 수련의 결과는 결투에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대련이 있을 때마다 릴리는 다른 실험이나 결투와 겹쳐 함께하지 못했다. 그럴때마다 이자벨은 진땀을 빼며 릴리에게 사과하고 그 날 배웠던 기술과 이론을 릴리와 공유했다. 그 덕분에 릴리의 실력도 한 층 더 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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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9 0 11쪽
8 살아남기 위한 각오 20.02.28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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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5 12 0 11쪽
4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4 0 12쪽
3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1 0 12쪽
2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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