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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블러디 로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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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2.24 14:57
최근연재일 :
2020.03.18 15: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74
추천수 :
0
글자수 :
109,271

작성
20.02.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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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살아남기 위한 각오

DUMMY

실험실에서 돌아온 이자벨은 릴리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방을 준다고?”

“응. 게다가 너랑 같이 있을 수 있게도 해주겠다고···”

“어지간히 그 미치광이 과학자 맘에 들었나보네. 그래서 이자벨, 넌 어쩌고 싶은데?”

“릴리만 괜찮다면 나는 마크 말대로 할 생각이야. 사실 이 감옥 생활도 지긋지긋하고.”

“하긴, 돌바닥에서 자면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긴 하지.”


릴리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어깨를 두드렸다.


“근데 정말 괜찮겠어? 방 줬다고 그 변태가 이상한 짓 하거나 그러는 거 아니야?”

“여기서 실험 받는 것보다 더 이상한 짓을 할까?”


릴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맞는 말이라며 이자벨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것도 그렇네! 그럼 내일부터는 따뜻한 잠자리를 기대해도 되는 건가?”


릴리의 허락도 떨어져 이자벨은 간수에게 부탁해 마크에게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전했다.


“현명한 선택이군. 그럼 간호사들에게 방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지. 내일 아침 사람을 보내겠다.”


마크의 말대로 다음날 아침에 한 남자가 이자벨과 릴리를 찾아왔다. 이자벨은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오늘은 전투복이 아니라 깔끔한 집사복을 입고 있었다.

복면도 쓰고 있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이군요.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꽤나 명줄이 긴 분이셨네요.”

그 남자는 이자벨이 마크를 찌르려고 했을 때 비수를 날렸던 그 흑발의 남자였다.


“뭐야, 아는 사이?”


릴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번에 말했던 그···”


이자벨이 설명하자 릴리는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제 소개를 안했군요. 닥터의 명령으로 오늘부터 두 분의 관리를 맡게 된 켈럽이라고 합니다. 부르기 힘드시면 케일이라고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살갑게 대하는 케일에게 이자벨은 어색함을 느꼈다. 케일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서 4개월동안 신세를 졌던 감옥과 작별을 고했다. 릴리는 새로운 방이 기대가 되는지 흥분했다고 얼굴에 다 써져있었다.


‘저렇게 기대했는데 방이 형편없으면 얼마나 화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네’


그러나 이자벨의 걱정은 기우로 그쳤다. 케일을 따라 도착한 방은 이자벨이 상상하고 있던 방보다 훨씬 더 좋은 방이었다. 길거리 생활 때는 꿈도 꿀 수 없었던 1인용 침대와 욕조 딸린 화장실, 추위를 쫓을 수 있는 벽난로에 햇볕이 비추는 창문까지. 비싸보이는 양초도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던 지하 감옥과는 다르게 생화가 꽃혀 있는 화분에서 퍼진 향기로운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워 더욱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와···”


생각보다 너무나 호화스런 방에 이자벨은 말문이 막혔다. 반면 릴리는 물 만난 고기마냥 침대로 뛰어가 몸을 날렸다.


“이자벨! 이거 완전 푹신푹신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릴리를 보고 이자벨은 방을 옮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두 분의 실험은 없다고 닥터께서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뭔가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케일은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밖으로 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와! 욕조도 있어!”


릴리는 방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자벨은 마음 한 켠에서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이 정도의 방을 선뜻 빌려주고 도대체 자신에게 뭘 요구할 생각인 것인지 감도 안 잡혔다. 마크의 성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갑자기 우리들을 생각한답시고 이런 방을 준비해 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 생각보다 그에겐 내가 중요한 실험체인가?’


여러 가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혼자 끙끙거리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릴리가 화장실에서 얼굴만 내민채로 이자벨을 불렀다.


“이자벨! 같이 목욕하자! 욕조에 물 받아 놨어!”

“어, 알았어. 갈게!”

‘에라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즐기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기뻐 날뛰는 릴리를 보고 걱정은 나중으로 미뤘다. 대신 이 곳에서 만난 절친과 함께 인생 첫 사치를 부려보기로 했다.


“아··· 기분 좋다···”

“그러게···”


가볍게 몸에 묻은 먼지와 때를 털어내고 내고 욕조에 받아둔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담궜다. 비치된 입욕제를 넣어서 그런지 달콤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릴리와 이자벨은 난생 처음 맛보는 감각에 몸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버리고 축 늘어져 여유를 만끽했다.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이자벨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과일을 발견했다. 사과나 배, 복숭아가 모양 좋게 잘려져 먹음직스러웠다. 그 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과를 한 조각 집어들어 그대로 입으로 옮겼다. 처음 맛보는 달달한 과즙과 아삭한 과육의 맛에 잠들어 있던 이자벨의 미각이 각성했다. 더 맛보고 싶다는 마음에 배와 복숭아도 한 조각 씩 크게 베어물었다. 씹을 때마다 잘 익은 단맛이 혀를 감쌌다. 어느새 쪼르르 옆에 달려온 릴리도 준비되어 있던 과일을 집어먹고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되게 맛있어! 뭐야, 이거!”


이 이후에도 하루종일 릴리가 흥분상태로 이거해보자 저거해보자 이자벨을 정신 없게 만들었다. 결국 릴리의 폭주는 이 날 밤이 되어 지쳐 침대에 누울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둘 다 체력을 완전히 써버려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정신은 없었지만 이자벨과 릴리에겐 이 곳에서 생긴 즐거운 유일한 기억이었다. 방을 바꾸게 된 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실험 주기가 조금 빨라졌다는 것이다. 원래 많아야 주 2회였던 실험이 이제는 오늘부터 2일마다 한 번 씩 있을 예정이라고 다음 날 케일이 직접 알려주었다.


“그래서 지금 바로 실험실로 와 주셔야 합니다. 닥터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어요.”


여전히 공손하게 대해주는 케일에게 어색함을 느끼며 이자벨이 릴리에게 인사하고 실험실로 향했다.


“왔군. 방은 어떤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겠군.”

“갑자기 너무 좋은 방을 줘서 뭘 요구할지 겁날 정도야.”


이자벨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마크는 신경쓰지 않고 피식 웃었다.


“뭘, 그런 감옥에 있으면 네 건강 상태나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 언제든 내가 불러낼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전투상황이 아닌 평상시에는 네 몸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수도 있으니 나에게 있어서도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방을 마음에 들어하는 게 나에게도 이득이라는 것이지.”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를 붙였다. 그래도 이자벨은 수상쩍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니 감사하게 이용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결투?”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케일에게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방을 빌려준 대가로 좀 더 많은 연구자료를 얻고 싶어서 말이야. 자주 부르게 될 테니 몸 상태에는 특히나 신경을 쓰는게 좋을 거다.”


그러고는 뒤에 서 있던 케일에게 손짓으로 무언가를 지시했다.


“따라오시지요. 오늘부터는 간호사 대신 제가 환복이나 안내를 맡습니다.”

탈의실로 이동한 이자벨은 케일에게 오늘 사용할 전투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여성용이라고 적혀 있는 들어가는데 케일이 함께 들어왔다. 세 명 정도가 들어오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방에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하나 들어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답답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뭐, 뭐하는 거에요?”

“환복을 맡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평소에도 전투복은 간호사에게 도움을 받아 입지 않으십니까?”


케일이 불순한 마음 없이 임무 수행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남자에게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이자벨이 케일을 밀어내고 가림막을 닫았다.


“그렇다고 남자가 같이 들어와서 갈아입혀주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거기서 기다려요!”

“알겠습니다.”


케일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밖으로 물러나 이자벨이 갈아입는 것을 기다렸다. 평소에는 간호사가 도와줘서 빨리 입었지만 역시 혼자 입으려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 갈아입은 이후에는 평소처럼 무기고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애용하게 된 에스톡와 예비용 단검 두 자루를 여느 때처럼 허리에 찼다. 에스톡은 레이피어와 비슷하지만 찌르기에 더욱 특화된 검이다. 한손검을 들어본 적도 있었지만 레이피어의 찌르는 공격이 이자벨과 잘 맞았기 때문에 결국 레이피어를 주 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버린 운동장 입구 앞에 섰다. 처음 이 곳에 섰을 때처럼 긴장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육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익숙해져갈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면죄부와 함께.


“그럼 무운을.”


케일이 고개를 숙이고 운동장의 문을 잠궜다. 오늘 상대는 체구가 좀 큰 남자였다. 자신보다 한 두 살 뒤로 보이는 남자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양손검처럼 보이는 검을 한 손으로 휘두를 정도로 완력이 뛰어났다. 이자벨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내쉬고 정신을 집중했다.

저 쪽은 완전히 자신을 여자라고 깔보는 듯한 눈치였다. 확실히 완력으로는 도저히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속도로!’

결투의 관례처럼 이자벨과 남자는 천천히 운동장의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몇번이나 결투를 치러 왔지만 입장하자 마자 달려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달려들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나가는게 정식 순서처럼 몸에 익어버렸다. 둘 사이의 간격이 적당히 좁아졌을 때 이자벨이 레이피어를 뽑고 선제 공격에 나섰다. 다리를 노린 빠른 찌르기였지만 남자는 양손검으로 먼지를 털어내듯 레이피어의 왼 쪽 옆날을 쳐냈다. 틈을 잡히지 않도록 충격에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겨 오른 쪽으로 돌았다,

‘무거워!’

완력의 차이를 보여주듯 전해져오는 충격에 오른팔이 저릿저릿했다. 섣부르게 공격하다가 검이 부러지거나 반격당하는 게 더 위험하겠다고 판단한 이자벨은 먼저 나서지 않고 공격을 받아치기로 결심했다. 선제공격 이후에 추가타를 날려오지 않자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는 양 남자 쪽에서 공격을 걸어왔다. 완력의 차이가 확실했기 때문에 검으로 튕겨내기보다는 최대한 회피해가며 틈을 노렸다. 그러나 공격을 피해 틈을 노리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이자벨이 왼손으로 단검 하나를 뽑아들고 남자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갑자기 날아든 단검에 남자가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그 때문에 자세가 무너진 남자의 팔을 노리고 찌르기에 무게를 실었다. 에스톡의 뾰족한 끝부분이 푸욱하고 남자의 오른쪽 팔뚝에 박혔다. 남자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이자벨을 떨어뜨리기 위해 곧바로 왼손 주먹으로 이자벨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커억..!”


제대로 얻어맞은 바람에 입에서 침과 폐 속의 공기가 역류했다. 충격과 함께 팔뚝에서 검이 쑥 빠져나오고 옆으로 밀려났다. 다행히 검은 놓치지 않았지만 이자벨이 태세를 정돈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남자는 추가타를 넣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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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 20.02.24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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