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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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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785
추천수 :
102
글자수 :
233,222

작성
24.02.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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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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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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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천주만화결(千呪萬化訣)

DUMMY

18화 – 천주만화결(千呪萬化訣)




“이게 백람기가 보는 시야···? 명가의 주술사들이 우리를 깔보던 게 이해되는구나. 태어날 때부터 이런 걸 보아왔으니, 범인(凡人)은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았겠지.”


박정태의 흔적을 추적할 때 이미르 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푸른 눈으로 허공의 무언가를 읽어내던 박 영감이 중얼거렸다.


이미르 팀장도 박 영감의 각인이 일으킨 변화를 보며 얻은 깨달음을 막 수습한 차인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설마 법보의 힘을 빌려 억지로 백람기에 오를 줄이야. 덕분에 나도 견정기에 오를 실마리를 얻었어. 고마워.”


“고맙다고 날 눈감아줄 것도 아니거늘. 말뿐인 감사는 사양하마.”


“무슨 자신감이지? 백람기가 되었다고 뭔가 달라진 것 같아?”


“많은 게 달라졌지.”


저벅.


박 영감이 여유로운 태도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허공에 있던 주문해례본도 그만큼 움직이며 해주의 범위가 우리 쪽에 가까워졌다.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된다. 아이야. 아까는 내가 공양한 귀신들의 살기를 이용해 주술을 펼쳤었지.”


저벅.


또 한 걸음.


“하지만 지금은 네가 그 살기를 모두 흩어놓지 않았더냐. 이제 어찌 주술을 펼칠 셈이냐. 네 수명으로?”


“아니. 당신이 백람기에 올랐으니, 이제 언령도 얼마든지 쓸 수 있거든. 정지(停止)!”


멈칫.


다시 한 걸음을 떼려던 박 영감의 몸이 부자연스럽게 멈춰 선다.


그뿐만 아니라 블랙과 나까지 굳어버린 상황.


“그래, 그걸 기다렸다.”


저벅.


한데 멈칫한 상태에서 박 영감이 씩 웃으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뭣, 벌써 해주를 끝냈다고?”


해주 자체는 예상했지만, 그것이 이렇게 빠를지는 몰랐는지 이미르 팀장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주문해례본은 술식을 해주하기 앞서 먼저 그 술식을 분석하니, 이런 일도 가능하지.”


잠깐 숨을 들이쉰 박 영감의 입이 달싹인다.


“정지(停止).”

“행동(行動)!”


심지어 이미르 팀장과 똑같은 언령을 펼치기까지.


다행히 미리 박 영감의 언령을 눈치챈 이미르 팀장이 상반되는 언령을 동시에 펼친 터라, 두 언령은 아무런 효과도 일으키지 못하고 상쇄될 뿐이었다.


“우리 가문의 [혼원창령결(混元唱令訣)]을 노린 거였나.”


“딱히 노린 건 아니네만. 쓸 수 있는 걸 굳이 안 쓸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박 영감은 자신이 한 말을 증명하듯 이미르 팀장의 언령뿐만이 아니라 다른 주술들도 연달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을 빼곡히 덮은 주술 각인의 변화 자체를 술식으로 삼은 변형 주술.


우우우웅.


“살(煞).”


기본적인 살을 기반으로 수많은 술식이 덧붙여진다.


“지연, 액막이···.”


본래라면 주력을 볼 수 있는 백람기나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아까 전 각인의 변화를 한 차례 엿본 덕분에 박 영감이 펼치려는 주술을 간파할 수 있었다.


‘지연(遲延) 술식으로 주술에 대가 지불을 뒤로 미루고, 나중에 찾아올 채무를 액(厄)으로 지정하여 액(厄)막이 술식을 더했어?’


액막이 술식은 액 자체를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로 떠미는 식이다.


보통 액을 부여한 술자가 그 대상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 술자가 박 영감 본인이니 박 영감과 가깝게 이어진 대상, 혈연(血緣)에게 액이 넘어갈 터.


‘어머니가 위험해!’


박씨 가문의 호적을 확인했을 때 살아있는 박 영감의 혈족 중 가장 가까운 건 어머니였다.


이대로 주술이 완성된다면 주술의 대가를 어머니에게로 넘어가는 상황.


“···반전.”


하지만 박 영감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는지, 한 가지 술식을 추가했다.


‘반전(反轉) 술식?’


액(厄)을 복(福)으로 반전시키는 술식이었다.


저런 식이면 아마 주술의 채무가 어머니의 주위를 맴돌다가 당신을 위험에 빠트리는 대상에게 채무를 전이시키는 식으로 작용할 터.


박 영감이 어머니에게 보였던 애정은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기까지가 주술의 대가를 처리하기 위한 술식이었다면.


“조형, 신속, 증강, 계약.”


그다음부터는 살 자체를 강화하는 술식이 덧붙여졌다.


‘조형(造型) 술식이 살을 이루는 살기에 악귀의 형상을 부여하고, 신속과 증강 술식이 악귀를 속력과 힘을 강화. 계약(契約) 술식이 악귀로 변한 살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군.’


스멀스멀.


박 영감의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가 악귀로 변해 그의 주위를 맴돈다.


“보문나찰.”


그런데 여기서 낯익은 술식이 악귀에게 하나 더 추가되었다.


‘보문나찰결이라고···?’


내 주술의 술식이었다.


고오오오오!


악귀가 지닌 살기는 백람기에 상응하는 만큼, 놈이 펼친 보문나찰결 역시 나보다 뛰어났다.


뇌리에 담긴 이상의 나찰과 비슷한 형태로 변화한 악귀가 이미르 팀장을 노려본다.


화르르르!


귀화(鬼火)의 푸른 불꽃을 칼날처럼 늘어트린 악귀나찰이 이미르 팀장을 향해 쏘아졌다.


쐐애애액!


하나, 박 영감이 악귀나찰을 준비하는 동안 이미르 팀장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서로가 펼친 주술을 상쇄하는 식으로 갔다간 각인에 저장된 주술을 모두 소모하고, 결국 수명까지 크게 소모하게 될 거라 판단한 그는 결정적인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상대가 준비한 주술을 분쇄하고, 주문해례본의 해주까지 꿰뚫을 최강의 주술을.


“혼원(混元).”


건국전의 하늘.


귀신들이 몰려오며 자연스레 생겨난 먹구름 속에서 창백한 빛이 번쩍였다.


“벽력(霹靂).”


콰르르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과 함께 건국전의 천장을 뚫고 낙뢰가 파고들었다.


파츠츠츠츠츠!


박 영감의 머리 위 주문해례본이 벼락을 막아보려 했으나.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벌었을 뿐, 완전히 막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번개에 그을려 힘을 잃고 바닥에 처박힌 주문해례본.


다시금 박 영감을 향해 떨어지는 번개.


주인의 위기를 느끼고 다급하게 되돌아가는 악귀나찰.


찰나를 쪼갠 아주 짧은 한순간.


파지지지지직!


아슬아슬하게 박 영감을 감싼 악귀나찰이 번개에 지져진다.


보문나찰결의 수호 술식으로도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악귀를 증발시키고 박 영감을 감전시킨다.


털썩.


그러나 쓰러진 건 이미르 팀장 쪽이었다.


“팀장님!”


방금의 벼락을 불러낸 건 그로서도 부담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피자, 이마가 뜨겁게 달아오른 게 느껴졌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정신 차려요!”


“···마무리를.”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박 영감을 가리키는 이미르 팀장.


벼락이 남긴 잔류에 움찔거리면서도 아직 박 영감은 쓰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주문해례본과 악귀나찰이 벼락의 위력을 대부분 해소해 준 덕분에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르륵.”


물론 아주 멀쩡하진 않아서 거품을 물고 겨우 정신을 붙잡은 상태 같긴 했지만.


퉁.


내가 움직이기 전에 블랙이 먼저 박 영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문해례본이 나가떨어지며 그를 막던 해주술도 치워진 상황.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파앗.


순식간에 박 영감의 코앞까지 다가선 블랙이 손바닥을 내지른다.


터엉.


한데 쇠도 우그러트릴 위력의 손바닥에 맞았는데도 박 영감은 휘청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보문수호결!’


어느샌가 박 영감의 각인은 보문수호결의 술식으로 변화한 상태였으니까.


다음 순간, 각인은 악귀나찰과 연결될 때 썼던 계약 술식으로 변화하더니.


“해(解).”


해주술이 펼쳐진다.


불길함을 느낀 블랙이 다급히 살기의 안개를 뿜어내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마치 주문해례본이 그랬듯 일정 범위를 모조리 대상으로 삼는 해주술이었기에.


화살처럼 단일 대상을 향해 쏘아내던 이전과는 달리 피할 수 없었다.


‘주문해례본과 자신을 연결한 건가!’


계약 술식의 각인으로 바꾼 이유가 저거였다.


스스로 움직일 동력을 잃은 주문해례본에 직접 계약의 끈을 연결하여 그 힘을 빌려오는 것.


“크아아아아!”


실시간으로 블랙의 생명을 유지하는 살기가 증발하고 있었다.


지난번 악귀의 공격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던 특공대 무장을 수복했던 유형화된 살기부터 블랙의 생명활동을 대신하는 체내의 살기까지.


조금만 더 해주술이 이어졌어도 블랙은 단순한 시체로 전락했을 터였다.


주문해례본과 달리 그 힘을 빌렸을 뿐인 박 영감은 해주술의 영역 유지 시간이 짧은 게 다행이었다.


풀썩- 텅그렁.


다만 그 잠깐만으로도 피해는 극심했고.


블랙이 쓰러지면서 겨우 걸쳐져 있던 헬멧이 벗겨졌다.


데구르르···


발치까지 굴러온 헬멧이 발을 건드린다.


하지만 난 거기에 신경 쓸 수 없었다.


다른 것들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오로지 드러난 블랙의 얼굴만이 선명하게 눈에 박힌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아빠?”


체격이 달랐기에 아버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살기가 빠져나가며 체구가 줄어든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블랙은 아버지의 시체에서 거듭난 강시라는 사실을.


“너··· 넌! 영희를 내게서 훔쳐 간···!”


블랙의 정체가 밝혀지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박 영감 역시 아버지를 알아보고 흥분하여 얼굴을 상기시켰다.


이마에 핏줄이 솟아난 모습이 몹시 화난 모양새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금 해주술을 펼쳐 완전히 숨을 끊으려는 박 영감의 모습에 머릿속 이성의 끈이 뚝 끊어진다.


아버지의 정의도 박영감이 가르친 예의도 모두 잊었다.


오직 아버지를 두 번 다시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안 돼.’


파아앗!


각인에 남은 여섯 개의 주술이 동시에 전부 발동되며 칠중(七重)의 보문나찰결이 펼쳐진다.


의식이 천살기의 검푸른 흑염으로 뒤덮이는 감각과 함께 현실감이 무뎌졌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몽롱한 정신 가운데.


파앗.


흑염무장을 구현한 나는 한순간에 아버지와 박 영감 사이로 이동했고.


콰악!


해주술을 발동하려는 박 영감의 하관을 움켜쥐었다.


화르르르-


입을 틀어막은 손아귀를 타고 흑염무장의 흑염이 번져나갔다.


지글지글.


고기를 굽는 듯한 냄새와 함께 박 영감의 각인을 지우려는 듯 불꽃이 집요하게 피부를 불사른다.


피부가 오그라들며 각인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작열통에 고통스러워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입이 막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박 영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거웠다.


‘응? 즐거워?’


뭔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지만, 이미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상태였다.


외려 머릿속에서는 더 잔인한 행위를 요구하는 속삭임이 있었다.


‘찢어버려, 속살을 헤집고, 온몸을 피로 적셔라. 살점을 물어뜯어.’


천살성의 속삭임이었다.


‘안 되는데··· 왜 안 되는 거였더라?’


몽롱해진 정신이 천살성의 속삭임에 몸을 맡기려는 순간.


턱.


무언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지 마라. 도현아.”


아버지였다.


쓰러진 상태에서도 힘겹게 손을 뻗어 나를 붙잡은 아버지.


평소의 탁한 블랙의 목소리가 아닌 생전과 똑같은 선명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몽롱했던 정신이 명료해지며 천살성의 속삭임이 멀어졌다.


‘······.’


끊어졌던 수호 술식의 호법이 다시금 작동하며 뇌리를 물들였던 천살기의 흑염을 밀어냈다.


동시에 현실에서도 박 영감을 불사르던 흑염이 사그라든다.


하지만 이미 그는 회생 불능의 상태였다.


아직 죽진 않았지만, 언제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극심한 고통에 환상을 보는 듯 박 영감의 눈은 초점이 맞지 않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주만화결, 완성··· 이제 돌아··· 영희···.”


어머니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축 늘어진 고개와 함께 그의 몸으로 몰려드는 지살기가 박 영감의 죽음을 알렸다.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는 자책감이 솟아올랐지만, 감상(感傷)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대로 놔둔다면 박 영감은 악귀로 거듭날 터.


백람기 주술사의 죽음에서 태어난 악귀는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르 팀장도 블랙도 움직일 수 없는 지금, 내가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가장 좋은 건 흑염으로 시체와 살기를 불사르는 거지만.’


칠중접으로 발동했던 보문나찰결의 중첩의 유효 시간은 어느새 끝나 버렸다.


흑염무장이 흑철무장으로 전락하며 흑염을 쓸 수 없게 된 상황.


일단 최대한 지살기의 응집을 막기 위해 박 영감의 시체에 손을 올렸다.


키이이잉!


살기를 나선으로 역회전시켜 척력을 일으키면서다.


하나 이 정도로는 박 영감의 각인이 만들어 내는 인력을 상쇄하기엔 무리였다.


‘척력으로 안 된다면 인력으로.’


키이이잉!


살기의 나선을 정회전하며 박 영감에게 몰려드는 지살기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


‘······!’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일어났다.


박 영감의 각인이 보문나찰결의 술식으로 변화하더니, 그와 접촉한 손을 타고 내 몸으로 옮겨온 것이다.


보문나찰결에 천주만화결의 변화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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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문사(普門寺) +1 24.02.12 102 2 15쪽
10 흑철강시공(黑鐵僵尸功) +1 24.02.10 118 2 14쪽
9 재판(裁判) +1 24.02.09 113 2 15쪽
8 연암곡(燕巖谷) +1 24.02.08 134 3 14쪽
7 체포(逮捕) +1 24.02.07 150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45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63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82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30 5 13쪽
2 주술사(呪術師) +1 24.02.05 311 6 13쪽
1 살(煞) +2 24.02.05 420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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