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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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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9
추천수 :
101
글자수 :
23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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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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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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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살(煞)

DUMMY

1화 - 살(煞)




아버지는 경찰이셨다.


부패와 무능의 대명사로 그려지는 그저 그런 경찰이 아니라.


특진을 거듭하여 순경 출신으로 최연소 경위에 오르셨던 진짜배기 경찰.


키는 180을 훌쩍 넘고, 넓은 어깨와 등판에 두꺼운 팔뚝까지.


근육질의 열혈 형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게 바로 나의 아버지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런 아버지를 동경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 커서 아빠처럼 정의로운 경찰이 될래요!'


'하하. 우리 아들, 벌써 정의란 단어도 알고, 대단하네?'


'헤헤, 아빠 아들이잖아요.'


'하지만 도현아, 정의를 관철하려면 힘을 길러야 한단다. 힘없는 정의는 쉽게 꺾이기 마련이거든.'


'알아요! 그래서 저도 아빠처럼 세지려고 오늘도 팔굽혀펴기 10개나 했다구요!'


'장하네. 그렇게 계속하면 금방 아빠처럼 강해질 수 있겠어.'


이제 와 깨달은 거지만, 그리 말하던 아버지의 웃음은 어딘가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언가를 마주한 사람처럼.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하며 집에 들어오는 날이 적어졌다.


아버지를 보는 시간이 드물어진 것이 약간 서운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외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속 아버지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무적(無敵)이고, 괴력(怪力)이며, 불사(不死)인 영웅.


할리우드의 히어로 영화에서 나올 법한 초인의 이미지를 아버지와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이,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도록 요구했다.


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예의를 지키고, 불의에서 눈 돌리지 말라고 말이다.


딱히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했다.


‘난··· 영웅의 아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우상화는 오래도록 이어질 수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사인(死因)은 급성 심정지, 급사(急死)였다.


도주하는 용의자를 추격하던 중 찾아온 심장마비에 쓰러지셨다고 아버지의 동료가 말했다.


‘말도 안 돼요! 그렇게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심정지라뇨?!’


‘······.’


‘아빠, 일어나요··· 제발···.’


처음엔 현실을 부정했지만,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의 주검을 확인하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결국 죽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어머니는 종교에 빠져들었다.


질 나쁜 사이비 종교 같은 건 아니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루도 빠짐없이 절에 다니며 나의 안녕을 비는 기도를 하셨을 뿐.


가정에 경제 활동을 하는 어른이 없어진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죽음이 순직 처리되어 나온 유족보상금 덕분에 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종종 어머니가 절에서 배운 조각으로 만든 기념품을 팔아 들어오는 추가적인 수입도 있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여유를 공부와 체력 단련에 쏟았다.


‘난, 아버지처럼 경찰이 될 거야.’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당신께서 못다 한 정의(正義)를 대신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과 지력 양면으로 힘이 필요했다.


하여 태권도, 유도, 검도를 배우고 각각 2단 이상의 단증을 땄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종합격투기에 시스테마, 크라브마가 같은 실전 무술까지 기초는 섭렵했다.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고 경찰대에 합격하여 수사권을 가진 형사를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 이후 7년.


나는 아버지와 같은 경찰이 되었다.



***



“도현 선배, 점심 먹으러 가요.”


“미안, 먼저 가 있어, 난 뭐 좀 찾아볼 게 있어서.”


“또 그 사건 찾아보려고요? 그렇게 말하고 또 열람실에서 시간 보내다 점심 거를 거 다 알거든요.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안 먹는다고 하시든가.”


“허허······.”


얼마 전 직속 후배로 들어온 남궁신혜가 와다다 쏟아내는 잔소리를 머쓱하게 웃으며 받아넘겼다.


그녀가 말하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에휴. 됐어요. 이렇게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열람실 문에 몸을 기댄 채 이쪽을 바라보던 신혜가 옆으로 가까이 오더니, 털썩 주저앉으며 주위에 펼쳐둔 기록을 하나 주워 들었다.


“그래서 뭘 찾고 계시는 건데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냐, 넌 점심 먹으러 가야지.”


“됐어요. 선배 혼자 굶게 하느니 둘이 할 거 빨리 끝내고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게 낫죠.”


신혜는 그리 말하고는 기록된 자료에 집중했다.


“이거, 역시 그거네요? [저주사(咀呪士)] 사건.”


“맞아.”


신혜가 이번엔 다른 기록을 건드리며 말했다.


“근데 이건 사건 기록이 아니라 의료기록이네요? 심정지 환자 이송 기록?”


“[저주사] 사건 같은 게 분명 더 있을 거 같아서 찾아보고 있어.”


“그게 무슨···?”


“[저주사] 사건은 용의자를 쫓던 경찰이 연달아 원인불명의 심정지로 사망했으니 따로 기록이 남았지만, 만약 피해자가 일반인이었다면 단순한 심정지 사고로 처리되었을 테니까.”


신혜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설마 선배도 그런 미신 믿는 거예요? 용의자가 저주로 경찰들한테 심정지를 일으킨 거라고?”


“심정지로 죽은 게 하나였다면 나도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놈을 쫓다가 죽은 경찰만 넷이야.”


게다가 그렇게 죽은 경찰 중 하나는 아버지였고.


그래서 내가 이 사건에 집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부검 기록에는 딱히 외상이나 약물 같은 건 안 나왔잖아요. 그래서 저주라는 소문이 퍼지긴 했지만, 진짜 저주일 리도 없고. 그냥 우연이 겹친 거겠죠.”


“나도 저주 같은 미신 따위 믿지 않아, 아마 독이겠지. 부검에서 검출되지 않지만, 심정지를 유발하는 신종독극물 같은.”


“아하, 저주가 아니라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모종의 수단이 존재한다, 이거죠?”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하지만 신혜의 표정은 설명을 듣기 전보다 더 심각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진짜 그런 게 있으면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놈을 쫓다가 선배나 저까지 죽으면 어떡해요.”


“너는 걱정하지 마. 쫓더라도 접근하는 건 나 혼자 할 테니까.”


“선배는 죽어도 된다는 말이에요? 아니면 진짜 죽고 싶어서 미쳤어요?!”


“안 미쳤어. 멀쩡해, 놈을 쫓는다고 꼭 죽는다는 법도 없고. 일단 앞선 희생자에게 외상이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마 호흡기를 통해 작용하는 독일 테니까······.”


“도현 선배!”


“귀 아프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다 들리거든.”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는 뜻으로 고개를 사건 기록 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길래 그쪽을 보니.


“···전 진짜 선배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요. 선배 때문에 일부러 이쪽으로 전속 신청했는데 선배가 죽어버리면 전 뭐가 되는데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울먹이는 신혜가 눈에 들어왔다.


“야, 우냐?”


“안 울거든요!”


장난스레 묻자 발끈하며 소리치는 신혜.


울음기가 좀 가신 모습에 내심 안도했다.


여자가 우는 모습엔 좀 약하단 말이지.


“아무튼, 당장 녀석을 발견한 것도 아니고. 벌써 놈을 쫓으라, 마라 하는 것도 우습지. 네 말대로 순직한 네 사람이 심정지로 죽은 게 진짜 우연일 수도 있고.”


“······.”


“일단 자료부터 분석해 보자고.”


한쪽에 서울의 지도를 펼치고, 급성 심정지 사망자가 발생했던 장소를 하나씩 표시해 나갔다.


“오? 이거··· 찾은 것 같은데?”


그렇게 절반쯤 표시를 할 때쯤, 무언가 규칙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주사]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들을 포함하는 몇몇 지역에서 급성 심정지 사망자가 주기적으로, 그리고 다발적으로 발생한 장소들이 두드러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기에 심장마비 사망자가 몰렸을 확률도 없진 않았으니까.


일단 남은 장소들까지 마저 표시를 마쳤다.


“흠···.”


지도 위에 표시들이 집중된 지역들을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확실히 답이 나오지는 않는 답답한 상황.


신혜는 다른 방향에서 답을 찾으려는지 지도가 아니라 다른 기록을 살펴보고 있었다.


열람실 내부가 고요해진 가운데.


“어?!”


돌연 신혜가 탄성을 내뱉었다.


“뭔가 찾았어?”


“날짜에요. 급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분명 무슨 규칙 같은 게 있을 거 같아서, 심정지 사망자가 발생한 날들을 계산해 봤는데···.”


“어, 그래서?”


뭔가 찾은 것 같은 느낌에 재촉하자, 신혜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매달 음력 보름날 새벽마다 같은 곳에서 주기적으로 심정지 사망자가 발생했어요. 그것도 7년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빠짐 없이.”


“만약 그게 사고가 아닌 살인이라면··· 7년이니까 최소 84명을 죽였다는 말이네. 그놈은.”


까드득.


웬만한 연쇄살인범이 죽인 피해자 숫자보다 훨씬 큰 숫자에, 절로 이가 갈렸다.


“아무튼, 그곳이 어딘데.”


“한 곳은 아니에요. 그랬으면 저희가 아니었어도 이미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이 있었겠죠.”


신혜가 가까이 다가와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종로, 동대문, 명동, 홍대 쇼핑 거리, 압구정 로데오 거리.


표시가 집중된 다섯 구역을 차례로 가리킨 신혜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다섯 곳에서 번갈아 가면서 피해자가 발생하는 식이라 눈치채기 어려운 거였어요.”


“그럼, 이 순서대로라면 다음 희생자가 발생할 장소는···.”


우리의 손가락이 같은 곳을 가리켰다.


“여기.”

“홍대 쇼핑 거리네요.”


그리고.


“이번 달 음력 보름이 언제지?”


“···오늘이에요.”


때마침 오늘이 이번 달 음력 보름이었다.



***



자정이 지난 밤하늘에 창백한 보름달이 드리운 가운데.


LED 등으로 장식된 화려한 네온사인과 밝은 가로등으로 불야성을 이룬 홍대 입구의 밤거리.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거리를 오가고.


골목마다 자리한 술집에서는 왁자지껄한 고성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빛이 밝으면 그늘도 커지는 법.


밝은 거리와 달리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어두운 골목.


그곳에 몸을 숨긴 채, 흐리멍덩한 눈으로 밝은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들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생각 없는 무의미한 눈빛 같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냥감을 찾는 사냥꾼의 눈빛처럼 보이기도 했다.


“흐흐흐.”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린 사내가 골목의 어둠에서 빠져나와 목표로 삼은 여성을 쫓기 시작한다.


터벅, 터벅.


터벅터벅터벅터벅···


점차 빨라지는 발걸음.


좁혀지는 거리.


사내의 마수가 목표물에게 드리우는 순간.


턱.


사내의 손을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저주사] 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근처에 잠복했던 내가 용의자와 비슷한 용모파기를 한 사내를 발견하고 나선 것이었다.


“경찰입니다. 잠시 몇 가지 조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동행을 거부하시거나, 동행 과정 혹은 장소에서 언제든 자유로이 퇴거하실 수 있습니다.”


임의 동행의 적법성 요건을 성립시키기 위해 몇 가지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사내는 딱히 주의 깊게 듣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사냥이 방해받은 사실에 짜증을 느낀 듯 인상을 찌푸리며 제 팔을 붙잡은 내 손을 홱 뿌리쳤다.


“아, 시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여기서 짭새가 끼어드네.”


사내의 욕설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다시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잠시 신분증 좀 확인하겠습니다.”


“알았어. 마. 좀 기다려 봐.”


반말을 내뱉고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든 사내.


한데 그가 품에서 꺼낸 건 지갑이나 신분증이 아니었다.


누런 종이에 붉은 글씨가 적힌···


‘부적?’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부적이었다.


“죽어.”


부적을 쥔 사내가 낮게 읊조리자,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과 함께.


쿵···!


갑자기 심장을 꽉 죄는 듯한 흉통이 찾아왔다.


‘심··· 정지? 정말 저주였다고?’


뇌로 향하는 산소가 부족해지며 눈앞이 흐릿해진다.


다리에 힘이 빠지며 몸이 바닥에 엎어진다.


털썩.


쓰러진 나를 내버려 두고 유유히 멀어지는 사내의 모습이 흐려지는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한발 늦게 쓰러진 내게로 다가온 신혜.


- 선배! 정신 차려요!


흐릿하게 번진 신혜의 얼굴과 멀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끝으로.


눈앞이 완전히 까맣게 물드는 순간.


‘이대로 죽는다고···? 내가? 아니! 난 죽을 수 없어!’


화아아아악-


불현듯 손목에 찬 염주에서 흘러든 화끈한 열기가 팔을 타고 가슴까지 올라오더니.


두근!


멈췄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꼭 차고 가라던 염주가 저주를 몰아낸 모양새였다.


작가의말

2024.02.05 연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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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흑철강시공(黑鐵僵尸功) +1 24.02.10 105 2 14쪽
9 재판(裁判) +1 24.02.09 104 2 15쪽
8 연암곡(燕巖谷) +1 24.02.08 121 3 14쪽
7 체포(逮捕) +1 24.02.07 122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32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52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68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15 5 13쪽
2 주술사(呪術師) +1 24.02.05 280 6 13쪽
» 살(煞) +2 24.02.05 384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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