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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768
추천수 :
102
글자수 :
233,222

작성
24.02.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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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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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삼성궁(三聖宮)

DUMMY

17화 – 삼성궁(三聖宮)




삼성궁을 오르는 길은 돌탑과 돌담, 돌계단으로 가득했다.


돌담 사이에 커다란 돌이나 나무 지붕을 얹어 좁은 통로처럼 만들어 둔 곳도 있어, 그 통로를 지나고 나면 마치 요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돌들에는 여러 문양과 글씨들이 새겨져 있어 술식의 일부로 작용하고 있었다.


“본래는 별 의미가 없는 문양과 글씨에 주술적 처리를 가해 거대한 결계를 만들었어.”


이미르 팀장이 푸른 눈을 빛내며 경고했다.


“결계는 무슨 효과죠?”


“속도 금제. 일정 속도 이상으로 움직이면 표적이 되는 식이야. 우리가 최대한 늦게 도착하길 바라는 모양이네.”


“표적?”


“표적이 되면 아마 결계의 방어 술식이 우리를 노리기 시작할 거야. 근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타다다닷.


이미르 팀장이 금제를 신경 쓰지 않고 속도를 높였다.


결계가 있건 말건 강행 돌파하겠다는 기세였다.


그 태도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대의 의도를 따르는 건 하책이지.


저쪽에서 우리가 늦게 오길 바란다면 빨리 가주는 게 인지상정.


우리는 거침없이 마고성까지 달려 올라갔다.


속도 금제를 어기면서 결계의 표적이 되긴 했지만, 당장은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


하나 호수를 둘러싼 마고성에 들어선 순간.


쿵!


마고성 입구 옆에 서 있던 사슴 머리의 장군 조각상이 움직이더니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침입자. 죽인다.


스릉.


칼을 빼든 사슴 장군이 이미르 팀장에게 칼날을 겨눈다.


그에 이미르 팀장이 블랙에게 눈짓을 주자.


파앗- 쩌엉!


쏜살같이 도약한 블랙의 주먹이 사슴 장군의 가슴을 강타했다.


강철끼리 부딪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호수에 처박히는 사슴 장군.


풍덩!


“가자.”


방해꾼이 사라지자,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고성의 호수를 따라 이어진 둘레길을 반 정도 지나갈 무렵.


촤아악!


돌연 호수에서 물기둥이 솟구치더니 그 안에서 사슴 장군이 가장 뒤에 있던 나를 향해 쇄도했다.


-못 간다!


이미르 팀장은 블랙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게도 눈짓만 줄뿐 따로 손을 쓰지 않았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건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합장하며 가까워지는 사슴 장군을 마주한다.


차르르르릉!


찔러오는 칼날을 맨손, 아니 흑철무장으로 빗겨내며 다른 한 손으론 정권을 내질렀다.


아까 블랙에게 맞고 우그러진 가슴 쪽을 향해서다.


쩌어엉!


마치 되감기를 하듯 다시 호수로 처박히는 사슴 장군.


손맛이 묵직한 것이 꽤 흥분되었다.


치이이이-


이 잠깐의 합이 싸움의 승리로 취급되었는지 가슴에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벌써 열 번째 각인이 새겨진 것이다.



***



그 뒤로는 순조로웠다.


마고성을 지나 또 다른 호수에 도착하자, 호수 왼편의 건국전에 소용돌이치는 먹구름이 내려앉은 모습이 보였다.


‘저 먹구름··· 그냥 구름이 아니라 귀신이야.’


먹구름을 이루고 있는 살기가 느껴졌기에 착각할 수가 없었다.


한데 먹구름처럼 몰려든 귀신들은 건국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위만 맴돌 뿐이었다.


보문사의 삼보탱화진과 비슷한 결계가 건국전에도 존재하는 듯했다.


박 영감은 분명 저 안에 있을 터다.


-끼아아아아아!


문제는 건국전에 들어가지 못한 귀신들이 장벽처럼 길을 막고 있다는 건데.


“뚫고 지나갈 거야. 떨어지지 않게 잘 따라 와.”


이미르 팀장이 앞장서며 귀신의 장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이미르 팀장 전방의 살기를 밀어내는 게 느껴진다.


모세의 기적처럼 몰려있던 귀신들 사이가 쩍 갈라지며 길이 뻥 뚫리고.


그 사이로 우리가 파고들었다.


“우리도 자성으로 밀어내면서 이동한다.”


블랙과 나도 가만히 따라가기만 한 건 아니었다.


살기를 나선으로 역회전시켜 만든 척력으로 귀신들을 밀어내며 길을 유지했으니까.


그렇게 사방이 귀신들로 가득한 새까만 안개 속을 얼마나 달리길 잠시.


화악!


어느덧 우리는 건국전의 경계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글자와 함께 환인, 환웅, 단군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건국전 내부.


건국전의 가운데 걸린 단군의 초상화 앞에는 박 영감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벽과 바닥, 천장까지 무수한 부적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는데.


부적에 적힌 글자들이 박 영감을 향해 모이며 그의 몸에 스며드는 중이었다.


이미 한계까지 신체에 각인을 채운 상태에서 외물의 각인까지 받아들여 몸 전체를 주술에 적합한 신체로 진화시키는 의식.


백람기 승급 의식이었다.


“왔구나.”


피부를 타고 깨알 같은 글자들이 개미처럼 기어다니는 가운데 박 영감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글씨들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모두 멈췄다.


우리가 도착한 이상, 백람기 승급이 어렵다는 걸 깨닫고 승급 의식을 중단한 것이다.


그에 내가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 말했다.


“할아버님. 아니 박영수.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무슨 죄로 말이더냐?”


뻔뻔하게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발끈하여 소리쳤다.


“당신이 만들고 퍼트린 부적 때문에 수십 명이 죽었어!”


“부적이라니?”


“이미 박정태가 다 불었어. 당신이 살을 담은 부적을 만들었다고. 게다가 어차피 당신도 숨길 마음은 없는 것 같은데?”


난 건국전 내부에 가득한 부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정태가 썼던 부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적들.


“그래. 어차피 연암곡주가 정태의 기억을 읽었을 테니 숨기는 건 무의미하지.”


우리가 찾아온 정황을 정확히 파악한 박 영감의 말에 이미르 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쪽도 상황을 잘 아는 모양인데, 이제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겠지?”


“흘흘. 네가 명가에서 나온 백람기 술사구나. 조금만 더 시간이 있어 백람기에 들었다면 여유롭게 상대해 주었겠지만, 지금은 너희가 너무 빨리 와서 말이다.”


말하던 중 갑자기 수인을 맺은 박 영감이 진언을 외쳤다.


“해(解)!”


쏴아아아아!


직후, 귀신들을 막고 있던 건국전의 결계가 사라지며 바깥에 몰려있던 귀신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우리에게 위협이 되진 않았다.


바깥에서 귀신들을 뚫고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척력을 일으키자, 귀신들은 우리 근처에 접근하지 못했으니까.


“겨우 이런 잡귀들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이미르 팀장이 비아냥거리자, 박 영감이 예상했다는 듯 태연히 답했다.


“아니, 이 귀신들은 너희를 막기 위한 게 아니다. 내 수명을 대신하여 주술을 발동할 공양의식의 제물일 뿐이지.”


우웅!


박 영감의 수인이 다른 수인으로 바뀌며 건국전이 공명했다.


정확히는 건국전에 가득한 부적이 귀신들의 살기를 흡수하여 주술을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주술의 가장 기본적인 대가가 수명이지만, 꼭 수명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었다.


방법만 알면 다른 주물이나 제사를 통해 수명을 대신할 대가를 공양하면 수명 없이도 주술을 발동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제사는 유교에서 가장 발달했으니.


예절을 중시하는 훈장인 박 영감이 제사에 통달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박(縛)!”


속박 주술이 발동되며 몸이 굳었다.


물론 보문나찰결의 수호 술식 덕분에 몸이 굳은 건 찰나에 불과했지만.


“해(解)!”


그 틈을 노리고 알 수 없는 저주가 내게 쏘아졌다.


파스스스···


저주에 닿은 순간 맥 없이 꺼지는 보문나찰결.


주술이 풀리며 통제를 벗어난 살기가 날 죽이려 한다.


‘나찰이여!’


황급히 나찰을 염상(念想)하며 여분의 주인으로 보문나찰결을 다시 발동했다.


아슬아슬하게 살기가 다시 통제 아래 들어왔다.


“조심해! 박 영감의 주문해례결은 해주(解呪)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뒤늦게 이미르 팀장의 경고가 들려왔다.


쿵!


그러는 사이 힘으로 주박을 끊어낸 블랙이 박 영감을 향해 돌진했다.


스르륵.


그러나 블랙이 붙잡은 박 영감의 모습이 허깨비처럼 흩어진다.


“어딜 보는 게냐. 해(解)!”


목표를 잃고 당황한 블랙의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박 영감이 이번엔 블랙을 향해 해주술을 펼쳤다.


주술로 생명을 유지하는 활강시인 블랙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공격.


파아앗!


반사적으로 살기를 안개처럼 뿜어낸 블랙이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대신 원래 블랙이 있던 자리에는 속이 텅 빈 흑철무장이 남아 해주술을 대신 맞았다.


펑- 해주술에 맞은 흑철무장이 순식간에 형태를 잃고 흩어진다.


“위험하니까 물러나 있어.”


블랙이 물러난 자리로 이미르 팀장이 파고들었다.


“어디 나한테도 한번 해주술을 써보지 그래?”


“굳이 그럴 필요 있겠나? 내가 백람기가 되지 못했으니, 자네는 제대로 주술도 쓰지 못할 텐데. 신속(迅速), 증강(增强).”


더욱 빨라지고 강해진 박 영감이 여유롭게 이미르 팀장의 손길을 피하고 쳐낸다.


하지만 이미르 팀장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박 영감에게 접근했다.


우리를 신경 쓰지 못하도록 주의를 끌려는 모양이었다.


단순한 압박만으론 부족하다고 여긴 건지 격렬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입을 놀렸다.


“아는 게 꽤 많은 모양이네. 그래, 영감 말이 맞아. 명가의 주술사는 비경을 나올 때 하위의 주술사에게 주술을 쓰지 않는다는 맹세를 맺긴 하지.”


그런데 이미르 팀장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박 영감의 얼굴에 살짝 다급한 기색이 어린다.


“우리가 각인기 3대 기인이라 불러주니 우쭐한 모양인데. 그거 별거 아냐.”


증강된 박 영감의 힘에 가볍게 밀려나던 손도 더는 밀리지 않았다.


마치 이미르 팀장도 신속과 증강 주술을 펼친 것처럼 더 빠르고 강해진 것이다.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백람기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거든. 내가 못 쓰는 건 원래 타고난 언령(言令) 술식뿐이라. 주력을 운용해서 펼치는 다른 주술은 얼마든지 펼칠 수 있어.”


건국전 내부를 가득 채운 살기 사이로 공백이 생겨나며 살기의 공백으로 이뤄진 문자를 형성한다.


[백산(魄散)]

[간파(看破)]

[해주(解呪)]


살기를 흩어놓고, 박 영감의 위장을 간파하며, 그에게 적용된 주술들을 해주하는 주술이 연달아 발동된다.


시야를 가리던 살기가 사라지며 박 영감의 모습이 본래 있던 자리와 살짝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의 주인(呪印)을 위장하던 술식까지 풀려서 그런가.


박 영감의 얼굴과 전신에 새겨진 복잡한 문신들이 드러났다.


본래 똑같은 각인이 프랙탈 구조를 그리며 확장되는 일반적인 문신과 달리 각인 하나하나가 전부 다른 술식으로 복잡하게 얽히며 기괴한 구조를 이룬다.


최소 수십은 되어 보이는 각인의 숫자가 박 영감의 재능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이미르 팀장은 그걸 보며 외려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찰 뿐이었다.


“쯧. 애초에 백람기에 오를 수 없는 상태였네.”


“그게 무슨 말이냐?”


“괜히 우리가 하나의 주술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영감도 중간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않았어?”


잘못되었단 말이 박 영감의 역린을 건드린 건지, 그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난! 틀리지 않았다! 내 [천주만화결(千呪萬化訣)]은 틀리지 않았어!”


흥분하며 소리치던 박 영감이 품속에서 낡은 고서를 꺼내 들었다.


표지에 ‘주문해례본(呪文解例本)’이라 적힌 고서.


고서를 본 이미르 팀장의 눈이 커진다.


“법보(法寶)라고?! 말도 안 돼! 어떻게 각인기 주제에 망월기(望月期) 선사의 법보를!”


[주문(呪文)]


박 영감의 손에서 저절로 벗어나 허공에 떠오른 고서가 홀로 펼쳐지더니.


[해례(解例)]


주문해례결이 발동된다.


건국전에 남아 있던 부적들의 문자와 박 영감의 문신을 최소 단위의 주문으로 분해하고 재조합하여 하나의 질서로 통합 정리한다.


심상치 않은 변화에, 그것을 막으려 접근해 보았지만.


파스스스···


고서의 근처에 가자마자 보문나찰결이 해주된 탓에 곧바로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렇게 물러나는 잠깐 사이에도 각인에 저장된 주술을 셋이나 소모해야 할 정도였다.


이러면 블랙도 접근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


믿을 건 이미르 팀장뿐인데.


그는 박 영감의 각인이 변화하는 모습을 홀린 듯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과연. 원래 박 영감이 내세웠던 주문해례결은 법보의 주술이었던 거구나.”


각인이 조합될 때마다 전혀 다른 주술을 형성하는 모습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눈치였다.


사실 나도 보이는 게 없진 않았다.


박 영감의 연구를 배워서 그런가.


그의 각인이 일으키는 변화의 의미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각인이 품은 수백 개의 주술적 형식이 수천 개의 술식으로 거듭나는 과정.


보는 것만으로도 주술사로서의 역량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이렇게 깨달음이라도 엿보는 게 낫겠지.’


그리고 천주만화결의 오묘한 변화가 멈췄을 때.


박 영감의 눈동자는 이미르 팀장처럼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백람기에 올라서며 영안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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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문사(普門寺) +1 24.02.12 102 2 15쪽
10 흑철강시공(黑鐵僵尸功) +1 24.02.10 118 2 14쪽
9 재판(裁判) +1 24.02.09 113 2 15쪽
8 연암곡(燕巖谷) +1 24.02.08 134 3 14쪽
7 체포(逮捕) +1 24.02.07 147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45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63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81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28 5 13쪽
2 주술사(呪術師) +1 24.02.05 307 6 13쪽
1 살(煞) +2 24.02.05 418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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