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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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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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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8
추천수 :
102
글자수 :
233,222

작성
24.02.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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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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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배후(背後)

DUMMY

19화 – 배후(背後)




스르르르륵.


박 영감의 시체에서 그의 각인이 내게로 넘어오는 가운데.


뇌리로 낯선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박 영감의 기억이었다.


‘주술 각인은 백의 응집체이니, 그 안에 강렬한 인상이 남은 기억이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아.’


어머니에게 들었던 과거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장면 장면으로 지나간다.


촤르르륵.


어머니가 신병에 걸린 장면.


신병을 일으킨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퇴마 술식을 가르치는 장면.


결국 퇴마 술식으로 각인기에 오른 어머니가 신병에서 벗어나는 장면까지.


-이제 됐어.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달리 박 영감은 본래 거기서 더 이상 주술을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그 생각이 달라진 것은 당시 누군가가 그를 방문한 이후였다.


-호호. 설마 이런 곳에서 영근(靈根)을 발견할 줄이야. 운이 좋군요.


-누구냐!


박 영감의 기억에 남은 인상을 봐서는 분명 압도적인 경지의 주술사인데.


그자의 얼굴만 이상하게 흐릿한 상태라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오직 푸른 눈동자만이 명확하게 떠오를 뿐.


-지금은 잡귀 따위만 꼬였으니, 저 정도 퇴마술식으로도 괜찮겠지만, 영근을 타고난 이상 저 아이에게는 잡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노려질 수밖에 없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제가 특별히 선물을 드리죠. 이걸 이용하면 저 아이를 지킬 주술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박 영감에게 주문해례본을 건네는 정체 모를 주술사.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주술사가 사라진 후, 박 영감의 뇌리에는 오직 손녀를 지키기 위한 주술을, 천주만화결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만이 남았다.


그 뒤로는 어머니가 아는 것과 같았다.


어머니에게 더 많은 주술을 익히도록 강요했다가, 결국 어머니가 박 영감의 손에서 떠나가게 된 것.


어머니가 떠나가자, 박 영감은 더욱 더 천주만화결의 완성에 집착했다.


천주만화결만 완성되면 어머니가 돌아오리라 생각한 것이다.


박 영감이 선을 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살인 부적을 만들어 팔고, 그 효과를 시험해 보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우리가 아는 저주사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거기서 박 영감의 기억은 끝났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박 영감에게 주문해례본을 건넨 주술사, 뭔가 수상한데···.’


그 사람을 만난 전후로 박 영감의 정신 상태가 부자연스럽게 변화했다.


게다가 이미르 팀장의 말을 빌리면 주문해례본은 망월기 선사의 법보.


그런 보물을 단순한 호의로 넘겨줬다고 보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겪은 주술사들이 그렇게 착한 이들이 아니었다.


‘만약 박 영감조차 저자의 장기말에 불과했다면?’


아직 아버지의 복수를 끝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 블랙에게 생각이 닿았다.


“아버지!”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박 영감의 각인은 모두 내게 넘어온 상태였기에 몰려들던 지살기의 흐름도 멈춘 상황.


근처에 쓰러진 아버지의 상태를 살폈다.


본래 도도하게 흘러야 할 체내의 살기는 뚝뚝 끊긴 상태였고.


활강시의 극한에 가까웠던 살기의 양도 거의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강시를 강시로 존재하게 만드는 살기의 흐름이 망가지며 아버지는 죽어가고 있었다.


“···괜찮다. 어차피 난, 죽은 사람이지··· 않으냐.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것, 뿐이다.”


눈물이 번져 시야가 흐릿한 눈으로 힘겹게 말을 잇는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안 돼요···. 두 번이나 아버지를 잃을 수는 없다고요!”


“이번이 아니더라도···, 난 오래 살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웃기지 마! 포기하지 말라고! 아버지잖아!”


키이이잉!


강시공으로 블랙의 살기를 억지로 움직여 보려 했지만, 끊어진 흐름을 한군데 이으면 다른 곳이 서너 군데 끊어지는 상황이었다.


“미안···하다.”


“아버지-!”


결국 눈을 감은 아버지를 보며 절규했다.


“···시끄러워.”


그때 이미르 팀장이 목이 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직 호수 아저씨는 안 죽었으니까. 요란 떨지 마.”


“뭐라고?”


바닥을 기듯 아버지 쪽으로 다가온 이미르가 무언가를 읽어내더니 마저 설명했다.


“지금은 가사 상태에 빠진 것뿐이야. 이 상태로 일주일 이상 방치한다면 진짜 죽는 거지만 아직 살릴 방법은 있어.”


“그게 뭐죠?”


“강시로서의 격을 올리는 거지. 활강시의 다음 단계이자 강시의 마지막 단계인 ‘후(犼)’로 진화하게끔 지살기가 풍부한 곳으로 가야 해.”


“그럼, 연암곡으로···.”


연암곡을 언급하자 이미르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암곡 정도로는 부족해. 아니, 거기가 아니라 웬만한 비경은 전부 부족하지.”


“비경이 안 되면 어디로 가란 겁니까!”


“지저동천(地底洞天). 지족의 세계로 가야지.”


동천.


정혜스님에게 주술 상식을 배울 때 들은 적이 있었다.


홀로 동떨어진 비경과 달리 용맥을 통해 그물처럼 이어진 공간들을 동천이라 부르며.


그러한 동천들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이름이 지저동천이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멀리 갈 필요는 없어. 한반도에 있는 동천의 입구는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인 백두산과 지리산뿐인데. 남북이 분단된 지금 우리가 갈 수 있는 입구는 이곳 지리산뿐이니까.”


“잘됐네요.”


나는 군대에서 배운 도수운반법으로 아버지를 어깨에 둘러메고는 이미르 팀장을 바라보았다.


“입구는 어디죠?”


“천왕봉 근처에 통천문이 있을 거야. 거기에 입구가 있어.”


삼성궁 주차장에서 천왕봉까지 등산로를 따라가면 거리가 대략 19km.


이미르 팀장의 몸 상태로는 같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들어가는 방법은 비경이랑 똑같은 거죠?”


“맞아.”


“그럼 됐습니다. 팀장님은 여기 남아주세요.”


근처에 떨어져 있던 주문해례본을 가리키며 박 영감의 기억에서 본 내용을 이야기했다.


주문해례본을 건넨 주술사에 대해 들은 이미르 팀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아마 명가의 주술사일 거야. 우리 천족의 특기는 정신 계통 주술이니, 박 영감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겠지.”


“역시 그렇습니까. 그쪽에 관해서는 팀장님이 잘 알 테니 조사 부탁드립니다.”


주문해례본을 주워 이미르 팀장에게 맡기고, 곧장 통천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일주일.


동천에 들어간다고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기에 서둘러야 했다.



***



신입이 호수 아저씨를 업고 떠난 후, 건국전.


조금씩 몸을 움직여 벽에 등을 기댄 이미르는 주문해례본을 살펴보았다.


법보에는 제작자 특유의 흔적이 남는 법.


그 흔적을 잘 살피면 저주사 사건의 진짜 배후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역시. 명가의 손이 닿은 법보였나.”


천족의 비경에 거주하는 주술사 가문 중에는 신선의 혈통을 이어 명가라 불리는 세 개 가문의 가문이 있다.


언령술의 이(李)가.


몽환술의 백(白)가.


괴뢰술의 진(眞)가.


한데 주문해례본은 그중 한 가문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남아있었다.


‘재료를 해체하고 개조하는 술식을 분석 술식으로 바꿔놓은 거군···.’


진가의 괴뢰 술식에 주로 쓰이는 술식이 주문해례본의 토대가 되었던 것.


“진가라··· 이건 이용할 수 있겠어.”


같은 명가라 불리지만 세 가문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이미르가 속한 이가와 진가의 사이는 견원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대 명가 제일의 가문인 이가와 그를 따라잡으려는 진가의 경쟁 구도.


초기에는 두 가문도 선의의 경쟁을 펼친 듯했지만, 어느샌가 진가가 선을 넘기 시작하면서 이가도 진가만 보면 이를 갈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저주사 사건의 진짜 배후가 진가의 주술사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미르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진가 놈들이면 그럴 수 있지.’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고위 주술사가 현실에 개입하는 건 3대 명가의 상층부가 합의한 금지 사항이니.


이를 공론화한다면 진가를 압박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그 사실을 진가도 알고 있다는 건데···.’


박 영감이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진가의 암살자가 이쪽을 노려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진가라면 반드시 그럴 것이다.


어디까지 진가의 끄나풀이 퍼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박 영감의 죽음이 알려지는 걸 최대한 늦춰야 했다.


“끄응.”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박 영감의 시체를 확인했다.


툭. 파스스스···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시체는 수십 년 세월을 한순간에 맞은 것처럼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백(魄)이 모두 신입에게 흡수된 탓에, 텅 빈 육(肉)이 붕괴된 것이다.


박 영감이 입고 있던 옷자락조차 벼락과 흑염에 불타고 그을려 넝마나 다름없었다.


근처에 있던 빗자루로 그것들을 치우고 나니, 박 영감의 죽음은 이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뒤처리를 마무리하고, 삼성궁을 내려오며 남궁민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미안. 실패야.”


-뭐? 어떻게?


“놈이 백람기에 올랐더라고. 그리고 호수 아저씨가 크게 다쳐서 신입이랑 같이 동천으로 보냈어.”


-너는 괜찮은 거냐?


“나야 문제없지. 당분간은 놈의 추적에 집중하느라 못 돌아갈 거 같아서 연락했어.”


-그러냐.


“귀신들을 정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놈도 쫓기는 동안에는 새로운 부적을 유통하진 못할 테니 우리가 없어도 그쪽은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너나 조심해라. 네가 놓칠 정도면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으니.


“나야 알아서 잘하지.”


-그래. 믿고 있다.


삑.


“쿨럭.”


통화를 끊자마자 참고 있던 각혈을 쏟아냈다.


안 그래도 역량 이상의 주술을 쓰면서 주문회로에 무리가 간 상태였는데.


언령술사가 피해야 할 거짓말까지 늘어놓은 탓에 내상이 깊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시간은 어느 정도 벌었어.’


언령술사가 설마 거짓을 말했다고는 예상할 수 없을 테니.


당장 박 영감의 죽음이 알려지는 건 막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휘청.


쓰러지려는 몸을 주력으로 애써 지탱하며 걸음을 옮겼다.


비척걸음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청학동 마을에 도착한 이미르는 사람 물리기 주술이 펼쳐진 장소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을 잃은 청학서당이었다.


‘아.’


어느 정도 사람의 이목이 들지 않는 공간에 들어오자.


털썩.


긴장이 풀린 이미르는 겨우 몸을 뉘고 정신을 놓을 수 있었다.



***



이미르가 잠든 상태로 내상을 추스르는 사이.


블랙을 등에 업은 도현은 천왕봉에 거의 가까워진 상태였다.


타다다닷!


보문나찰결 덕분에 일반인이 전력 질주하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저 멀리 능선 너머로 하늘이 밝아오는 게 보였다.


“좀 더 빨리.”


가사 상태에 들어선 강시에게 햇빛이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기에 좀 더 속도를 올렸다.


파바바박!


천왕봉 근처의 통천문은 바위 사이에 만들어진 자연적인 통로였다.


그냥 지나간다면 천왕봉으로 이어질 뿐인 길이었지만.


주술사에게는 달랐다.


화아악.


연암곡에 들어갈 때의 블랙이 그랬듯, 살기의 안개를 뿜어 문을 찾았다.


연암곡의 문과 달리 동천의 문은 허공이 아닌 통천문의 바닥 쪽에 있었다.


동천의 입구를 구성하는 주문의 형태에 따라 밀려나는 살기의 여백으로 입구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고.


박 영감에게 배운 주술적 지식으로 그 구조의 의미를 해석했다.


“문을 은폐하는 주문을 살기로 무력화하면 문을 열 수 있다.”


연암곡의 입구를 열던 아버지가 한 말을 따라 하며 은폐 술식에 살기를 몰아넣었다.


그러자 문의 너머로 드러나는 새로운 풍경.


‘저기가 지저동천.’


곧 동이 틀 것이기에 그 풍경을 제대로 살필 새도 없이 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쑤우욱!


직후, 몸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중력이 뒤집히며 땅과 하늘의 구분이 모호해졌고.


이내 지살기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오싹!


연암곡주를 코앞에 뒀을 때보다 수십 배가 넘는 지살기.


망자들의 지옥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은 세계였다.


작가의말

스튜디오JHS 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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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문사(普門寺) +1 24.02.12 102 2 15쪽
10 흑철강시공(黑鐵僵尸功) +1 24.02.10 118 2 14쪽
9 재판(裁判) +1 24.02.09 113 2 15쪽
8 연암곡(燕巖谷) +1 24.02.08 134 3 14쪽
7 체포(逮捕) +1 24.02.07 151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45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65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83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31 5 13쪽
2 주술사(呪術師) +1 24.02.05 313 6 13쪽
1 살(煞) +2 24.02.05 422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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