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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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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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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글자수 :
23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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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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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주술사(呪術師)

DUMMY

2화 – 주술사(呪術師)



두근- 두근-


심장이 느리게 뛴다.


‘난 살아있는 건가?’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팔다리를 움직이려 해봐도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닫힌 눈꺼풀 너머로 일렁이는 빛과 귓가로 들려오는 소음만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외부의 자극인 상황.


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심장에 이미 살기(煞氣)가 자리 잡았어. 뒤늦게 염주의 수호술식이 발동한 덕분에 죽지는 않았지만··· 이래서야 반죽음 상태나 다름없구나.”


“흐윽··· 선배···.”


울먹이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신혜···인가.’


근처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안정되며 나는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 진짜 저주라니.’


홍대 거리에서 저주사를 만나고, 놈이 꺼낸 부적에 심장 마비가 온 것부터.


죽음에 이르기 직전, 염주가 일으킨 기이한 열기가 나를 살린 것까지.


쉽게 믿기지 않았지만, 몸으로 직접 겪고 나니 저주의 존재를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급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저주이기를 내심 바랐기 때문이리라.


‘역시···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죽었을 리가 없지.’


여태껏 저주사 사건을 파고들었던 건 그래서였다.


저주의 실존이 밝혀진 이상, 앞으로 할 일도 명확했다.


‘아버지를 죽인 놈을 내 손으로 붙잡는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저주에 대해 알아야겠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인 법.


마침, 곁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저주에 대해 잘 아는 눈치였다.


“···정혜스님, 선배가 깨어날 수 있을까요?”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신혜가 물었다.


정혜스님이라는 호칭에 절로 그쪽으로 신경이 집중되었다.


아는 이름이었다.


‘정혜(正慧)스님이라면···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의 스님일 텐데.’


아무래도 정혜스님 역시 저주사와 비슷한 힘을 쓰는 주술사인 모양.


지인 중에 주술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저주는 우리 삶에 가까이 있었다는 게 새삼 와닿았다.


“계획대로라면 네가 직접 수호술식을 발동하기로 했을 텐데, 왜 이렇게 되었지?”


“제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도현 선배가 혼자 놈에게 접근해서···.”


“그래서 살(煞)을 맞기 전에 써야 하는 수호술식의 발동이 늦어진 거구나. 그래도 아주 늦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네. 발동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도현이는 죽었을 거야.”


“······!”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계획이라는 건 내가 저주에 맞게 될 것을 신혜가 계획했다는 것인지.


계획이 존재했다면 거기에 누가 함께했는지와 같은 의문들이 말이다.


그러면 염주를 챙겨주신 어머니도 계획을 알고 있었던 건가?


문득 아침에 출근하기 전, 염주를 건네주며 꼭 차고 다니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혜스님께 받아온 귀한 물건이란다. 적어도 오늘은 꼭 차고 다니렴. 내일 아침이 되기 전까지는 한시도 풀어서는 안 돼.’


하지만 정혜스님의 말대로라면 지금 내 상황은 예정 외일 텐데.


내 상태는 괜찮은 건가?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정신만 깨어있는 지금 상태에선 그저 답답한 마음으로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신혜가 내가 궁금한 것을 대신 물어주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도현 선배는 다시 깨어날 수 있겠죠?”


“음, 지금 상태도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지만, 깨울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무슨 방법이죠?”


“보아하니, 염주의 수호술식을 발동한 건 네가 아니라 도현이 같은데, 그게 맞니?”


“맞아요.”


신혜의 긍정에 정혜스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구나.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게 무슨 뜻이죠?”


“지금 도현이의 심장에는 저주의 살기(煞氣)와 생명을 지키려는 [보문수호결(普門守護訣)]의 주인(呪印)이 각각 절반씩 자리 잡아 균형을 이룬 상태란다.”


“주인(呪印)이라면··· 도현 선배가 ‘각인기(刻印期)’에 들었다는 거군요!”


“그래. 첫 주술을 단번에 성공시키고도 모자라 그대로 주인(呪印)까지 새겼으니. 수호의 아들답게 주술 재능이 뛰어난 편이지.”


주인? 각인기?


뭔지는 잘 몰라도, 좋은 것 같았다.


그것 덕분에 내가 죽지 않았다는 모양이니까.


“하지만, 이 균형이 오래갈 수는 없을 거야. 지금 살기를 억누르는 수호술식은 염주를 매개로 발동된 터라 유지 시간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신혜가 한 말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수호술식의 매개를 염주가 아닌 심장에 새겨진 주인(呪印)으로 바꿔야지.”


“그건··· 방법이 아니잖아요! 스님 말씀은 도현 선배가 주인으로 다시 수호술식을 발동해야 한다는 건데··· 정신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주술을 펼쳐요!”


신혜가 원망을 담아 소리쳤다.


왜 쓸데없는 희망을 줬냐는 외침이었다.


“아니, 도현이를 믿거라. 몸은 움직이지 못해도 정신은 아직 깨어있어.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수호술식이 해제되며 죽었을 테니까.”


“네?”


얼빠진 소리를 내는 신혜를 두고, 정혜스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도현아. 듣고 있느냐. 듣고 있다면 내 말대로 하거라.”


정혜스님은 내가 이렇게 정신만 깨어있다는 걸 진작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집중해서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다.


“보문수호결의 발동에 필요한 천시(天時)와 지리(地理)는 보문사 안에 있으니 이미 충족되었고, 인화(人和)는 네게 새겨진 주인(呪印)이 대신할 테니. 남은 건 결국 네 의지(意志)뿐이다.”


의지라···.


“결인(結印)이니 주문(呪文)이니 하는 복잡한 형식 같은 건 모두 주인(呪印)에 담겨 있단다. 도현이 넌 오로지 주인(呪印)을 일깨울 의지만 굳건히 세우거라. 염주의 주술을 발동했을 때처럼.”


그러고 보면 저주에 맞아 쓰러졌을 때, 죽을 수 없다는 마음에 염주가 반응했었지.


살고자 하는 의지.


그것이 내 심장에 새겨진 [보문수호결]의 주인(呪印)을 일깨우는 방아쇠라고 정혜스님이 말하고 있었다.


“의지를 다져라. 그러면 주인(呪印)이 호응할 것이니.”


그때 떠올렸던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며 의지를 곤두세웠다.


아버지를 떠올리면서다.


‘난··· 죽을 수 없어!’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의를 대신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나까지 죽어버리면 아버지의 정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거다.


‘그딴 꼴을··· 두고 볼 것 같으냐!’


두근!


강렬한 의지에 반응한 듯 심장이 크게 뛰었다.


두근두근두근···.


느려졌던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진다.


“되었다! 주인(呪印)이 반응했어! 외물(外物)에 의지하여 펼치는 주술보다 스스로 펼치는 주술이 강력한 법이니. 이제 곧 도현이가 깨어날 게야.”


정혜스님의 말대로 조금씩 몸의 감각이 선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선배! 정신이 들어요?”


눈을 뜨자, 신혜가 걱정스레 날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목조로 이뤄진 천장과 향냄새, 불상의 은은한 조명이 이곳이 보문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혜스님이 있다는 사실로 이미 짐작하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확실해졌다.


신혜의 옆에선 정혜스님이 평소에 보지 못한 안경을 쓰신 채 내 심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가부좌를 튼 자세로 단상에 등을 기댄 상태였는데.


자연스레 정혜스님의 시선을 따라 가슴을 내려다보니.


“이건··· 문신?”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기괴한 문자와 문양이 문신처럼 새겨진 것이 보였다.


아마 이게 저들이 앞서 말한 주인(呪印)이란 거겠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정혜스님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가만히 앉아있거라.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니 말이다.”


“예?”


“균형이 주인(呪印) 쪽으로 넘어오긴 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야. 심장에 자리 잡은 살기(煞氣)는 억눌렀을 뿐이지, 사라진 게 아니니까. 그 악영향도 몸에 남아있겠지.”


듣고 보니, 몸이 평소보다 무거운 게 체감되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웠을 때처럼 피로가 가득한 육체.


단순히 심정지 후유증이라 여겼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혜스님의 경고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보문수호결]의 술식 효율이 높긴 하지만, 온종일 주술을 발동하고 있다간 며칠만 지나도 그 대가를 무시할 수 없을 거다.”


“대가라면···?”


“수명(壽命)이지.”


“아···.”


수명이란 말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결국 지금 상태는 목숨줄을 붙잡기 위해 미래의 생명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내 안색이 어두워지자, 정혜스님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살기(煞氣)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걱정거리를 주고 해결책을 알려주는 정혜스님이었다.


“방법은 두 가지란다. 하나는 제대로 된 무당에게 살풀이 굿을 받는 것. 이 경우 천상(天上)에서 불러온 정화(淨化)의 힘으로 살(煞)을 단번에 씻어낼 수 있지만, 네 심장의 주인(呪印)과 주술에 대한 기억까지 지워질 거야.”


주술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 말은 곧 저주사를 잡는 걸 포기하라는 뜻이었으니까.


“만약 이 방법을 원한다면, 신혜를 통해 진짜 무당과 만나도록 손을 써주마.”


“다른 방법은요?”


일단 두 번째 방법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다른 하나는 살기(煞氣)를 이용하는 [강시공(僵尸功)]을 익히는 것.”


강시(僵尸).


내가 아는 그 강시가 맞나?


움직이는 시체?


“이 경우, 널 좀먹는 살기를 연화(鍊化)하여 네 힘으로 삼을 수 있지만, 반대로 통제를 잃은 살기에 먹혀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겠지.”


“······.”


“물론 [보문수호결]의 주인(呪印)이 있으니, 그 위험성을 감수할 각오만 있다면 이 방법이 네 바람을 이루기엔 더 낫겠지만.”


“제 바람이라면?”


“네 아비를 죽인 저주사를 쫓고 있던 것 아니냐? 그래서 이렇게 살(煞)을 맞은 거고.”


“···예. 그랬죠.”


두 선택지를 요약하면 간단했다.


주술의 세계를 잊고 이전의 평범한 현실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주술의 세계에 제대로 입문하여 주술사가 될 것이냐.


“저는···.”


내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주술사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반드시, 저주사 놈을 제 손으로 잡을 겁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신혜와 함께 무거운 몸으로 경찰청에 출근했다.


‘주술사가 되려면, 그리고 저주사를 잡고 싶다면 신혜의 아버지를 찾아가거라. 그가 도현이 네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줄 거란다.’


정혜스님이 시킨 대로 신혜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경찰청 내에서 저주를 악용한 범죄를 담당하고 있으니.


저주사를 잡고 싶다면 우선 그의 팀에 들어가는 게 먼저였다.


“여기예요, 선배.”


[특수수사과]라고 적힌 문패가 달린 문 앞에서 신혜가 멈춰 섰다.


경찰 조직도에서도 보지 못한 부서명이라 잠깐 의아함이 들었지만.


주술과 관련된 부서라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것도 딱히 이상하진 않았다.


똑똑.


신혜가 노크한 후, 곧바로 문을 열었기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 안에는 건장한 중년 남성이 책상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총경 계급을 상징하는 네 개의 무궁화가 시선을 끌었다.


서류를 다 읽고 내려놓은 그가 나를 보며 인사했다.


“아, 반가워요. 김도현 경위. 남궁민입니다.”


나도 그의 인사에 화답하려 했지만,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불현듯 아버지의 장례식 때 찾아온 조문객 중 검은 정장을 입은 남궁민의 모습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눈앞의 남궁민과 기억 속의 남궁민이 겹쳐졌다.


“오랜만이군요. 남궁민 팀장님. 아니, 이제는 과장이라 불러야 할까요.”


아버지의 직속 상사가 바로 신혜의 아버지였다.


그 말은 곧, 아버지가 저주사를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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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체포(逮捕) +1 24.02.07 124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34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53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69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19 5 13쪽
» 주술사(呪術師) +1 24.02.05 288 6 13쪽
1 살(煞) +2 24.02.05 391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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