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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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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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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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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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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연암곡(燕巖谷)

DUMMY

8화 – 연암곡(燕巖谷)




휘이이잉!


비경 안쪽으로부터 음산한 바람이 분다.


나는 블랙을 따라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


살기를 보는 눈이 마치 야시경처럼 어둠을 꿰뚫어 본다.


비록 색조가 없는 흑백으로 이뤄진 잿빛의 풍경일 뿐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시야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눈이 좀 더 밝아지는 게 끝이 아니었나. 설마 이런 칠흑에서도 시야가 막히지 않을 줄이야.’


문양을 통과하여 넘어온 연암곡의 초입은 동굴이었다.


곳곳에 석순이 이빨처럼 자라난 모습이 마치 괴물의 입안처럼 느껴지는.


똑- 똑-


천장의 석순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동굴이라 그런지 더 크게 울리는 소리.


‘여기가 괴물의 입이라면 저건 침이라 해야 하나.’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비경 안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오싹한 기분이 커지고 있었다.


동굴 자체의 온도가 바깥보다 음산한 탓도 있지만, 정확히는 체내의 살기가 비경 내부의 환경과 만나 기승을 부린 까닭이다.


비경 안쪽은 바깥세상과 달리, 지살기(地煞氣)가 넘쳐나는 장소였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밀도 높은 살기가 실려 있을 정도로.


“이런 환경이니··· 이곳에 갇힌 이들이 전부 기한을 다 못 채우고 죽어 나가는 거였군요.”


이렇게 살기가 가득한 공간이라면 시시각각 수명이 깎여나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시공을 익히고 왔기에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적지 않은 수명이 닳았을 것이다.


“여기가 생자(生者)보다는 사자(死者)에게 더 어울리는 공간이긴 하지.”


그리 말하는 블랙은 바깥에서보다 훨씬 생동적으로 보였다.


비경 내부에 가득한 지살기가 강시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던 것.


그리고 그건 강시공을 익힌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피에 녹아든 살기가 더 활기차게 흐르며 전신에 미증유의 활력을 부여하고 있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마치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뛴다.


들끓는 힘을 쏟아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위에 가득한 지살기는 내 안의 살기를 강화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내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압박하기도 했으니까.


뭐랄까, 발정한 상태에서 강제로 정조대를 착용한 듯한 느낌?


정작 넘쳐나는 힘을 쏟아내질 못하니 미칠 것 같았다.


“크윽.”


게다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살기의 밀도도 커졌기에, 내가 느끼는 불쾌함은 갈수록 늘어만 갔다.


신음을 흘릴 정도까지 되자, 블랙이 격려했다.


“좀만 참아라. 지금은 좀 불편해도, 이 순간이 지나면 네 강시공의 수준은 훌쩍 높아져 있을 테니까.”


“···참아보죠.”


그렇게 불편한 기분으로 동굴을 얼마나 더 걸었을까.


마침내 동굴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


분명 비경에 들어올 때만 해도 어두운 저녁이었는데, 저 앞에서는 밝은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이윽고 동굴을 빠져나오자, 거대한 분지 형태의 골짜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연암곡.”


“발밑을 조심해라.”


연암곡의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와중, 블랙이 경고했다.


발밑을 바라보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동굴의 출구는 절벽의 중턱에 자리했던 것.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블랙이 먼저 박정태의 목덜미를 붙잡고 뛰어내렸다.


홱!


“···앗?!”


타다다다-


추락이 아니었다.


가파르게 경사진 절벽을 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쿵! 타···다···다···닥.


거세게 땅을 박차며 전방으로 쏘아진다.


아래로 향하던 관성력의 방향을 전방으로 단숨에 꺾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절벽에서 수십 미터는 떨어진 곳까지 달린 후에야, 낙하의 충격을 완전히 흘려내고 멈춰 선 블랙이 이쪽을 올려다본다.


어서 내려오라고 손짓하면서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꿀꺽- 침을 한 번 삼켰다.


최소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절벽 높이에 순간 아찔했지만.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블랙이 시킨 거겠지.’


비경의 지살기로 강화된 강시공을 믿고 절벽을 뛰어내렸다.


동시에 블랙이 했던 것처럼, 절벽을 달린다.


‘도약을 너무 크게 하면 절벽에서 튕겨 나갈 테니··· 스쳐 걷기로.’


스스스슷!


중력의 방향이 달라서 제대로 따라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살기가 연동되며 자세를 보정해 준 덕분에 절벽을 달리는 것까지는 문제없었다.


공기를 가르며 아래로 달리자,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지면.


여기서 타이밍을 놓치면 그대로 얼굴과 지면이 접촉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시공으로 강화된 건 감각 역시 마찬가지.


‘···지금!’


쿵···!


지면과 부딪치기 직전, 파쿠르 기술 중 ‘월런(wall run)’의 요령으로 무릎을 크게 들고 지면을 박찼다.


블랙처럼 관성력의 방향을 지면과 수평으로 꺾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이대로 멈추면 다리가 그대로 작살날 게 뻔했기에 곧바로 다시 스쳐 걷기로 보법을 바꿔 걸음을 이어 나갔다.


스스스슷.


걸음마다 충격을 조금씩 분산하며 나아가길 잠시.


블랙이 멈춘 곳보다 더 멀리 가서야 겨우 충격을 모조리 흘려내고 멈출 수 있었다.


“크으으···.”


다리와 발바닥이 불타는 듯한 통증에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마음 한편이 후련했다.


절벽을 달리는 동안에는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는 위기감 덕분인지, 지살기의 압박을 잊고 강화된 강시공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까.


동굴을 지나오면서 쌓였던 짜증이 한 방에 날아간 기분.


게다가 한번 압박을 이겨냈기 때문일까.


지살기가 더 짙은 연암곡의 안쪽에 들어왔음에도 그 압박감이 이전처럼 부담스럽지 않았다.


“잘했다. 이제 묵혈을 넘어 ‘흑철(黑鐵)’의 단계에 들어섰구나.”


그때, 강시공의 새로운 단계를 언급한 블랙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흑철?”


살기를 피에 녹이는 ‘묵혈’의 다음 단계인 모양이다.


그에 관해 자세히 물어보자, 블랙이 내 다리를 가리킨다.


다리 곳곳의 핏줄이 터진 건지, 다리 안쪽은 혈관의 경계를 넘어 다른 부분까지 완전히 살기로 가득 찬 상태였다.


바지 밑단을 걷어보니 피부가 마치 곤충의 키틴질 갑각처럼 매끈한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 혹시?’


흑철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하여 시험 삼아 다리를 가볍게 두드리자.


텅텅-


마치 쇳덩이를 두드린 듯한 단단함이 느껴졌다.


“만져봐서 알겠지만, 흑철강시공은 신체를 살기로 물들여 강철과 같은 내구와 강도를 얻는 단계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원래 이런 겁니까?”


점점 옅어지는 다리의 검은색.


다리 내부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다리를 가득 채웠던 살기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내 다리의 상처가 멀쩡해지자, 피부의 검은색도 자취를 감췄다.


“다시 묵혈강시공으로 돌아왔군. 방금의 흑철은 비경의 지살기와 상처의 살기가 합쳐지면서 얻은 일시적인 성과였나···. 어쩐지 다리만 변하는 게 좀 이상하더라.”


흑철강시공이 사라지는 과정을 잠자코 지켜보던 블랙이 중얼거렸다.


“아······.”


완전히 흑철강시공으로 진화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경의 환경에 낙하 피해가 겹치면서 생긴 일시적인 상승이었을 뿐.


내가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자, 블랙이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뭐, 일시적이라도 상위의 단계를 경험한 건 나쁘지 않으니. 너무 실망하진 마라.”


“알겠습니다.”


“그럼, 다리도 멀쩡해졌으니 바로 이동하지.”


“예,”


블랙이 다시 박정태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분지의 중앙 쪽에 보이는 마을을 향해서였다.



***



잠시 후, 연암곡 내부의 마을 입구.


그곳에 도착한 나는 잠시 조선시대로 왔다고 착각할 뻔했다.


마을 풍경이 사극에서나 볼 법한 한옥과 초가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게 있어 블랙에게 질문을 하나 했다.


“저건 뭘 기르는 겁니까?”


“수감자들이 먹을 식량이다.”


마을 한편에는 처음 보는 작물을 기르는 밭이 있었는데, 절대 식용처럼 보이진 않는 기괴한 형태의 작물들이었다.


“예? 저게 말입니까?”


게다가 살기를 보는 눈에는 작물들이 회색으로 물든 것까지 보였기에, 나는 저것들이 식량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약하지만 살기가 깃든 작물들은 생자에게 독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먹어도 되는 겁니까?”


“당장 죽지는 않으니까.”


아······.


굶어 죽느냐, 독을 먹느냐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확실히 후자가 더 낫긴 했다.


게다가 비경을 가득 채운 지살기에 비하면 저 작물들에 깃든 미약한 살기는 별로 문제처럼 느껴지지도 않았고.


저벅- 턱.


그렇게 식량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중 블랙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어느샌가 불쑥 나타난 인물이 블랙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헉!”


낡은 한복을 입은 것만 빼면 평범한 청년처럼 보이는 인물이었지만, 나는 그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살기를 보는 눈에는 그의 모습이 사람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고오오오오!


집채만 한 호랑이 형태를 이룬 칠흑의 살기가 청년의 모습 위로 겹쳐 보였다.


그걸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비경을 가득 채운 지살기의 근원이 바로 눈앞의 호랑이라는 사실을.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정도 살기를 품은 존재가 있을 수 있지?’


오싹!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존재감.


분명 블랙의 눈에도 그것이 느껴질 텐데, 그는 태연하게 호랑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연암곡주.”


“얼씨구? 이번엔 둘이나 데려온 기여? 한 놈은 뒤진 놈이고, 한 놈은 산 놈이네.”


나와 박정태를 차례로 흘겨보는 호랑이, 아니 연암곡주.


호랑이의 시선이 닿은 순간, 나는 마치 살을 맞은 것처럼 몸이 굳었고.


강시가 된 박정태는 이미 죽었음에도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덜덜 떨었다.


“아, 산 쪽은 수감자가 아니라, 제 후임입니다. 그러니 너무 겁주지 마시지요.”


블랙이 연암곡주의 시선에서 날 가리듯 끼어들며 말했다.


그제야 굳었던 몸이 풀리며 한숨이 나왔다.


물론 연암곡주의 인간 모습은 가려져도 살기로 이루어진 흑호 형상은 여전히 그 윤곽이 가려지지 않은 상황.


시선을 블랙의 뒤통수에만 고정하며 최대한 호랑이의 형상을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이, 호수 니랑 많이 닮았네.”


“제게 강시공을 배웠으니까요.”


닮았다는 건 살기의 형태가 닮았다는 건가?


아마 연암곡주도 살기를 보는 눈을 갖고 있을 테니 육체의 외양보다 살기의 형태로 상대를 인지하는 걸지도.


“음? 이이, 그런 기여? 아직 저 짝은 모르는가 비네.”


한데 연암곡주는 블랙의 반응에 의아함을 드러내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시고, 수감자 인수부터 처리합시다.”


블랙은 그 웃음이 불편한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려.”


그러자, 연암곡주가 웃음기를 싹 걷어내며 대답하더니.


“박정태.”


박정태의 이름을 부른다.


“박정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박정태.”


세 번까지.


“흐억!”


세 번째 이름이 불렸을 때, 멍하니 서 있던 박정태가 갑자기 헛숨을 토했다.


“뭐··· 뭐, 뭐야!”


강시가 되었을 때와 다르게 제정신을 차린 모습이다.


마치 되살아난 것 같은 모습.


하나 놈의 전신을 가득 채운 살기를 보면 그가 죽은 존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죄인 박정태는 그 입을 다물라.]


그때, 연암곡주의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


살기와 연동한 것인지 사방에서 울리는 음성에 박정태가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도 비경의 지살기로 인해 압박감이 느껴진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친숙한 사투리가 어느 정도 그의 압박감을 줄여주고 있었는데.


연암곡주가 엄정한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압박감이 오히려 이전보다 커지면서 온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본좌(本座) 연암곡주 박지원(朴趾源)이 저승의 ‘시왕(十王)’을 대신하여 죄인 박정태의 사후 약식 재판을 시작하겠다.]


화아아악!


연암곡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암곡의 지살기가 모조리 이곳으로 몰려오더니.


두-둥!


주위의 풍경이 삽시간에 뒤바뀐다.


다음 순간, 우리는 기왓장이 으리으리한 관청 내부에 있었다.


연암곡주가 제단처럼 높이 쌓인 단상 꼭대기의 좌석에 앉아 바닥에 꿇려진 박정태를 내려다보는 구도.


밀집된 지살기가 재판장의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거기서 나와 블랙은 한 발짝 떨어져서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방청객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박정태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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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문사(普門寺) +1 24.02.12 89 2 15쪽
10 흑철강시공(黑鐵僵尸功) +1 24.02.10 105 2 14쪽
9 재판(裁判) +1 24.02.09 104 2 15쪽
» 연암곡(燕巖谷) +1 24.02.08 121 3 14쪽
7 체포(逮捕) +1 24.02.07 122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32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52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68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15 5 13쪽
2 주술사(呪術師) +1 24.02.05 280 6 13쪽
1 살(煞) +2 24.02.05 383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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