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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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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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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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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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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범인(犯人)

DUMMY

16화 – 범인(犯人)




“그럴 리가···.”


저주사의 배후가 박 영감이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3주간의 배움이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박 영감에게 정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블랙은 다른 이유로 이의를 제기했다.


“박 영감은 이미 몇 번이나 이미르 팀장의 눈으로 확인했는데, 그가 정말 범인이란 말입니까? 그자의 몸에는 부적에 각인한 살과 관련된 주인(呪印)이 없었습니다.”


들어보니 블랙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각인 후기 때 외물에 주술을 각인하려면 우선 그 주술이 신체에 각인된 상태여야만 한다.


당연히 저주사의 배후에겐 지금껏 유통된 부적에 각인했던 주술들이 각인되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박 영감의 주술 각인은 분석 술식뿐이지.‘


박 영감이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차오르려다 이어지는 연암곡주의 답에 맥없이 꺾였다.


“그건 이미르가 잘못 본 거 같은디? 살에 여러 부가효과를 덕지덕지 붙인 놈이 주인(呪印)을 위장(僞裝)하는 술식은 못 쓸 게 또 뭐여.”


박 영감이 이룩한 선각후통의 정수를 배웠기에 그가 말한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


게다가 박 영감에게는 전례도 있었다.


‘어머니···.’


만약 여러 주술을 한 몸에 담으려던 그 시도가 어머니 하나로 끝난 게 아니었다면?


감정은 박 영감이 범인이란 걸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성은 그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벌을.’


아버지의 정의를 떠올리며 혼란한 마음을 애써 억눌었다.


3주간 생겨났던 감정을 구석으로 밀어 넣고 원칙에만 집중했다.


극악한 살인마라도 누군가에겐 착한 아버지일 수 있는 법.


내게 잘 대해줬다고 살인 저주를 퍼트린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그 처벌에도 사감이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연암곡주의 말을 받아들이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한데 어째서 그 사실을 이제야 말해주신 겁니까?”


박정태의 재판이 끝나고 바로 말해줬으면 내가 박 영감과 정을 쌓을 일도 없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따지는 듯한 말이 나왔다.


“그때 말했으면 니들 중 누군가는 확실히 뒤졌을 기여.”


“예? 그걸 연암곡주님이 어떻게 압니까?”


“감이지.”


감이란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블랙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새삼 고위 주술사가 될수록 예지에 가까운 감각을 갖게 된다던 주술 상식이 떠올랐다.


주술 세계에서 감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다릅니까?”


“각인 중기로도 살짝 애매하긴 한디, 니 하기에 따라 흉(凶)을 벗어날 가능성은 생겼구먼.”


각인 중기에 오르지 않았다면 반드시 누구 하난 죽었다는 말인가?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암곡주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는 답을 주지 않았다.


“니한테 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여. 남은 건 알아서 혀.”


“하지만···!”


좀 더 그를 설득하려 하자 블랙이 내 팔을 붙잡았다.


그를 바라보니 그만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상위 존재가 현세의 일에 너무 많이 개입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었으니 이만 나가자. 범인을 알았으니 잡으러 가야지 않겠냐.”


“그러···죠.”


블랙의 설득에 연암곡주에 매달리는 건 포기했다.


다만 비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직 남아 있었다.


화르르르르!


연암곡주의 바로 앞에 선 지금, 주위의 지살기는 최대치에 이르렀으니.


보문나찰결의 한 축인 천살강시공을 일깨울 기회였다.


이미 흑철무장의 형상만큼은 거의 흑염에 가까워진 상태.


약간의 계기만 있다면 완전한 흑염을 얻는 것도 금방이었다.


비경 밖에 나가면 다시 수준이 하락할지라도 한번 상위 경지를 체험하는 건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각인을 통해 주술을 중첩하면 바깥에서도 일시적으로 보문나찰결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거야.’


후으으읍.


지권인을 맺고, 수일에 들며 연암곡의 지살기와 동조를 시도했다.


호흡은 ‘태식’으로 마치 태중의 아기처럼 주위에 가득한 살기를 호흡한다.


‘크윽.’


서로 분리되어 있던 보문나찰결의 살기와 외부의 지살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순환하며 싸늘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


본래 지살기는 생자가 감당할 수 없는 사자(死者)의 기운.


하나 극에 이른 수신(守身)이 잠시 동안은 지살기를 품을 수 있도록 육체를 보호했기에 아직은 버틸만했다.


이 틈에 보문나찰결의 살기를 지살기가 아닌 그나마 생자가 품을 수 있는 천살기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살성이 필요했다.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 하나 보이지 않은 비경의 하늘이 보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천살성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


뇌리에 품은 나찰의 머리 위에 뜬 천살성을 떠올리자.


비경의 지살기에 녹아들던 보문나찰결의 살기가 천살기로 승화하며 다시 양분(兩分)되고.


두 종류의 살기는 서로를 잡아먹으며 태극을 그린다.


우우웅!


천(天)과 지(地)의 살기가 어우러지며 모양새만 흑염이던 흑철무장이 완전한 흑염무장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화르르르르!


아직 천살성의 별빛을 담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흑염무장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했다.



***



잠시 후.


연암곡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곧바로 이미르 팀장에게 연락했다.


저주사의 배후가 박 영감이란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하. 박 영감 그 노인네가 저주사의 배후였단 말이지. 감히 날 속여?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린 이미르 팀장이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 청학동으로 갈 테니까, 너희도 그쪽에서 바로 거기로 가 있어.


“알겠다.”


-먼저 움직이지 말고,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나까지 속였다는 건 놈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거니까.


“우리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섣불리 움직였다가 놓치면 안 되니 신중해야지.”


-알고 있으면 됐고.


뚝.


블랙이 이미르 팀장과 통화하는 사이.


나는 줄어든 보문나찰결의 살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시 흑철무장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거라도 유지되는 게 다행이네.’


원래 비경 밖에서는 흑철무장을 유지할 수 없었던 걸 생각하면 이것도 큰 성장이었다.


여기서 주술을 중첩하면 흑염무장을 구현하는 것도 문제는 없을 듯했다.


‘그런데 이걸로 괜찮은 걸까?’


보문나찰결의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나왔는데도 아직 안심되질 않았다.


누군가 죽게 될 거라던 연암곡주의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아마 죽을 가능성이 가장 큰 건 나겠지.’


주술수사과의 세 명 중 내 수준이 가장 떨어지니까.


내 주술 경지를 정확히 가늠하자면 각인 중기 중에서도 초반부에 불과했다.


각인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신체 용량의 한계치까지 각인을 늘려야 하는데.


난 아직 여섯의 각인을 새겼을 뿐이다.


지난 3주 동안 일주일에 하나꼴로 각인을 하나씩 늘려왔지만.


아직 각인 한계치의 절반도 차지 않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보통 각인 한계치는 사람마다 다른데, 재능이 클수록 한계치도 높았다.


그렇기에 천재일수록 각인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각인을 늘리는 게 또 보통 작업이 아니란 말이지.’


처음 한두 개 정도는 어렵지 않게 늘릴 수 있지만.


각인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기존의 각인들과 연결점을 맞춰야 하는 탓에 나중의 각인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중까지 계산하여 각인을 진행한다고 일주일씩 시간을 쓴 거였는데.


당장 주술전을 벌이게 될 판이니,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귀신이 필요합니다.”


통화를 마친 블랙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보문나찰결의 술식은 싸움을 통해 완성되니.


청학서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귀신들과 싸우며 각인을 늘릴 생각이었다.


블랙은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최대한 준비를 해 가는 게 좋겠지. 흑철의 자성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블랙이 내게 팔을 뻗더니 그 팔을 휘감는 나선 형태로 살기를 회전시켰다.


키잉- 우웅! 키잉- 우웅!


그 회전 방향이 시계방향이냐 반시계 방향이냐에 따라 인력과 척력이 번갈아 나타났다.


전자기 유도 현상이 떠오르는 현상.


살기가 마치 전기처럼 작용하여 자기를 일으키는 모습이라 받아들이기 쉬웠다.


“보아하니 회전속도가 빨라질수록 자성도 커지는 모양이네요.”


나도 시험 삼아 흑철무장을 축으로 살기를 나선으로 고속 회전시켰더니.


우우우웅!


자기장이 퍼지면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나둘 인력이 연결되는 느낌이 추가되었다.


블랙은 내가 일으킨 자성에 끌려오지 않도록 스스로 척력을 발해 나의 인력을 상쇄한 상태였으니.


지금 연결된 느낌은 아마 근처의 유령들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끼아아아아아!


멀리서부터 귀곡성이 들려오며 희끄무레한 유령들이 쏜살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유령들을 보며 합장했고.


파바바박!


유령이 간격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팔을 뻗어 놈들의 살기를 분쇄한 후 다시 합장하기를 반복했다.


합장을 풀고 다시 합장할 때마다 유령이 하나씩 소멸한다.


그러한 작업이 기차를,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이어졌고.


청학동에 도착할 무렵, 나는 새롭게 세 개의 각인을 추가할 수 있었다.



***



늦은 밤, 청학동.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에는 반달이 걸친 상태였다.


음기가 상승세를 타긴 했지만, 최고조인 보름날까지는 아직 일주일 정도 남은 상황.


서로가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은 아니지만, 그것이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 팀장님은 안 오신 모양이군요.”


“음.”


먼저 도착한 건 우리 쪽이었다.


이미르 팀장은 자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지만, 그러자니 좀이 쑤셨다.


아버지의 원수가 저기에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묻고 싶었다.


어째서 아버지가,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박 영감이 원망스럽다가도 내게 잘해주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이미 연암곡에서 마음을 정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청학서당을 눈앞에 두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걸까.


“정 부담스럽다면 뒤로 빠져 있어도 된다. 넌 아직 신입이다.”


블랙이 나를 붙잡고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여기서 빠질 수는 없었다.


감각을 집중하여 청학서당 안쪽을 염탐했다.


그 모습에 블랙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응?”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인기척이 너무 없지 않습니까?”


자고 있다고 생각해도 호흡 소리는 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청학서당 안쪽은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없어. 비었다.”


블랙이 벌떡 일어나 서당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뒤늦게 나도 따라 들어가자, 텅 빈 안채가 우리를 반겼다.


그곳에는 내가 남긴 쪽지 말고 새로운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삼성궁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청학동 근처에 자리한 삼성궁.


그곳으로 우리를 부르는 쪽지였다.


“설마 자기 정체가 들킨 걸 알아차린 걸까요?”


그때, 블랙이 쪽지 옆에 펼쳐져 있던 서책을 발견하고 말했다.


“박정태가 부적을 훔쳐 간 걸 박 영감이 몰랐을까?”


서책은 내가 서재에서 확인했던 호적이었다.


다만 한가지 달라진 점은 박정태의 이름에 사망 일자가 새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모종의 방법으로 박정태의 죽음을 인지했다면, 녀석이 연암곡주에게 넘어갔다는 걸 추측할 수 있지.”


“박 영감은 이미 자기가 들킨 걸 알고 있었겠군요.”


“아마 확신하지는 못했을 거다. 하지만 네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니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했겠지.”


“삼성궁은 함정이겠군요.”


블랙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함정이라고 해서 안 갈 수는 없었다.


저주사 사건의 범인이 밝혀진 이상, 체포하는 게 우리 임무였으니까.


“가죠.”


우리는 이미르 팀장에게 목적지가 삼성궁으로 바뀌었다고 연락하고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이미르 팀장도 거의 다 와 가던 중이라 우리가 삼성궁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르 팀장과 합류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좌아아앙!


마치 내가 각인 중기에 올랐을 때와 비슷한 음(陰)의 파동이 삼성궁 쪽에서 퍼져 나온 것은.


파동을 느낀 이미르 팀장이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놈이 백람기에 오르려나 보네. 서두르자.”


스스스슷!


무수한 귀물(鬼物)들이 파동에 이끌려 모여드는 가운데.


우리도 발걸음을 서두르며 삼성궁을 올랐다.


삼성궁의 하늘에는 불길함을 예고하듯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삼성궁을 오르는 우리의 걸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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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문사(普門寺) +1 24.02.12 101 2 15쪽
10 흑철강시공(黑鐵僵尸功) +1 24.02.10 116 2 14쪽
9 재판(裁判) +1 24.02.09 111 2 15쪽
8 연암곡(燕巖谷) +1 24.02.08 131 3 14쪽
7 체포(逮捕) +1 24.02.07 139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44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62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79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27 5 13쪽
2 주술사(呪術師) +1 24.02.05 300 6 13쪽
1 살(煞) +2 24.02.05 408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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