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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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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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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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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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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청학서당(靑鶴書堂)

DUMMY

15화 – 청학서당(靑鶴書堂)




“이것이 네 주술에 적합한 술식이다.”


어느덧 검은자위가 돌아온 박 영감이 구결과 그림이 담긴 화선지를 내밀며 말했다.


“······!”


난 한자 구결과 먹선으로 그려진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문수호결의 술식을 배울 때, 각인의 영향으로 그 의미가 저절로 떠올랐을 때처럼.


보문나찰결의 술식을 보자, 이번에도 한자의 의미와 그림에 담긴 동작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졌으니까.


의업에 해당하는 나찰의 형상이 뇌리에서 한자 구결을 낭송하며 그림에 담긴 무예를 직접 시연한다.


쿵! 쿵! 쿵! 쿵!


직선적이면서 강맹(强猛)한 움직임은 강시공의 연장선이었고.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냉철한 푸른 눈은 보문수호결의 호법(護法)이었다.


그렇게 합장에서 합장으로 이어지는 무예가 반복될수록 점차 나찰의 형상이 사나워진다.


화르르르!


불꽃을 닮은 갑옷이 어느새 살기의 불꽃인 흑염(黑炎)으로 바뀌며 나찰의 팔과 다리가 닿는 일대를 모조리 불사르고 있었다.


흑철무장을 넘어선 흑염무장이었다.


충천하는 흑염이 하늘마저 불사르니.


검게 불타는 하늘 속에서 붉은빛의 흉성(凶星)만이 불길한 빛을 발한다.


‘저것이 내가 목표로 해야 할 강시공의 다음 단계, 천살(天殺)인가!’


묵혈과 흑철에 이은 천살강시공.


땅의 지살기가 아닌 하늘의 천살성(天殺星)으로부터 천살기를 받아들이는 단계였다.


본래라면 살기에 휩쓸려 살인귀로 전락하고 마는 마공(魔功)이었지만.


보문수호결의 호법이 더해지면서 천살기의 마성(魔性)은 사라지고 강대한 별의 힘을 다루는 신공(神功)으로 진화했다.


우우우웅!


흑염에 천살성의 별빛이 담기며 섬뜩한 강기(罡氣)로 거듭난다.


검은 불꽃에 오묘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콰콰콰콰콰콰!


“허업!”


뇌리의 풍경을 쓸어버리는 검푸른 흑염강기를 끝으로, 다시 정신이 현실로 되돌아왔다.


두근두근···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린다.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할 만큼 방금 본 나찰의 형상은 흉포(凶暴)했다.


그러나 이 두근거림이 단순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문나찰결을 대성하면 나도 저런 힘을 갖게 된다는 거지?’


초인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역시 두려움과 공존하고 있었으니까.


내 힘이 강해질수록 아버지의 정의를 관철할 가능성은 더 커질 터.


기대감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허허, 설마 술식을 보자마자 그 요체(要諦)를 깨달은 게냐? 주술을 배운 지 이틀이라던 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구나.”


박 영감이 내 미소를 보고 웃음을 흘렸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감사를 전했다.


“아, 감사해요. 할아버지. 그런데 주술의 대가는··· 괜찮으신가요?”


“괜찮다. 주문해례결은 다른 주술에 비해 소모되는 수명이 매우 적으니까. 줄어든 수명이래 봐야 며칠 정도일 게다. 아직 이 할아비는 멀쩡해.”


팔을 들어 보이며 정정함을 과시하는 모습.


하지만 똑같은 며칠이라도 살날이 많이 남은 젊은이의 수명과 죽음이 가까운 늙은이의 수명은 그 의미가 다른 법이다.


날 위해 흔쾌히 수명을 소모하여 주술을 펼쳐준 박 영감에게 호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흠흠. 하면 술식도 다 익힌 듯하니 이제 이것도 한번 읽어보거라.”


박 영감이 책장에 꽂혀 있던 서책을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마치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서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주술적 형식의 의미와 용례」


박 영감의 연구를 집대성한 서책이었다.


사라락.


가볍게 몇 장 훑어보니, 깨알 같은 글씨로 다양한 주술의 술식과 함께 그 술식에 쓰인 주문과 수인, 의례 등 수많은 주술적 형식을 분석한 내용이 보였다.


청학동이 과거 유교, 불교, 도교의 통합을 말하던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의 마을이었던 까닭인지.


기술된 주술의 종류는 여러 종교가 뒤섞인 잡탕이었다.


유교의 제사(祭祀), 예절(禮節).


불교의 진언(眞言), 수인(手印), 배례(拜禮).


도교의 태식(胎息), 수일(守一), 도인(導引), 방중술(房中術)에 이르기까지.


그 양이 너무나 방대한 터라 다 익히려면 하루 이틀로는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내 재능이 뛰어나도 그건 무리였다.


“저, 잠시만.”


본격적으로 박 영감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 잠시 서당 바깥으로 나왔다.


지금쯤 블랙은 잘 시간이니.


이미르 팀장에게 연락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연차로 빠질 수 있지만, 그 이상 시간이 걸리게 되면 보고가 필요할 테니까.


-뚜루루루루.


이미르 팀장도 학생 신분인 만큼 지금은 학교에 가 있을 테지만.


다행히 점심시간인지라 통화는 금방 연결되었다.


-왜?


“일단 조언해주신 대로 술식은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박 영감님이 제게 본인의 연구 성과를 가르치신다는데 배워도 됩니까?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당연히 배워야지. 마침 잘됐어. 어젯밤에 네가 서울 일대의 귀신들을 전부 끌어들여 처리한 덕분에 당분간 우리가 할 일도 없었거든.


“오. 그렇습니까?”


-그래. 저주사가 활동하는 다음 달 보름 전까지만 돌아오면 돼.


“알겠습니다.”


박 영감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대략 4주 정도인가.


꽤 빠듯하겠네.


-정혜에 이어 박 영감까지. 벌써 각인기 3대 기인(奇人) 중 둘에게 가르침을 받다니. 신입 너도 참 운이 좋네.


“각인기 3대 기인···?”


-아아, 한반도에는 각인 후기 주제에 백람기 수준으로 주술을 쓰는 이가 셋이나 있다고 유명하거든. 눈먼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서 그 모습을 완벽히 그려낸 격이니 기인이라 부르는 거지.


생각보다 정혜스님이나 박 영감이 유명한 모양이었다.


“세 명이라면 남은 한 명은 누굽니까?”


-너도 들어본 적은 있을걸. 반도의 유일한 진짜 무당. 명두(明斗) 어멈이라고. 천상(天上)의 태자(太子)와 계약해서 정화의 권능을 빌려 쓰는 무당인데.


“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정혜스님과 어머니에게 들었던 사람 아닌가.


그런데 천상이니 태자니 하는 걸 보면 정화 능력이 생각보다 대단한 힘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기회 되면 신혜랑 같이 찾아가 봐. 혹시 알아? 너한테도 주술을 가르쳐줄지. 만약 그렇게 되면 3대 기인 모두에게 사사 받는 건데 그렇게 되면 재밌을 것 같잖아?


“신혜가 갑자기 왜 나옵니까?”


-몰랐어? 신혜가 명두 어멈 후계자잖아. 그래서 주술수사과 예비 팀원이기도 하고.


아.


신혜가 주술에 대해 잘 아는 눈치였던 게 그저 남궁민 과장의 딸이라서만은 아니었던 건가.


-아, 이제 끊어야겠다. 잘 배우고, 다음 달에 보자고.


뚝.


점심시간이 끝났는지 칼같이 통화를 끊어버린 이미르였다.


아무튼, 팀장의 허락도 받았으니 이제 거칠 게 없었다.


다시 서당으로 돌아가 박 영감에게 주술적 형식에 관한 가르침을 받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3주가 흘렀다.



***



청학 서당의 안채.


두 사람이 문답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불교의 지권인(智拳印)과 도교의 수일(守一)을 함께 쓰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비로자나불의 지권인에서 검지를 든 왼손은 인간세계를, 검지를 감싼 오른손은 부처의 세계를 의미하니. 지권인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입니다.”


박 영감이 질문하면 내가 답하는 식의 문답.


막힘없이 나오는 답에 박 영감이 재촉하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또한 도교에서 수일은 달리 좌망(坐亡)이라 불리며 우주 근본원리인 도(道)와의 합일을 의미하는 명상법이니. 불교의 부처(佛)와 도교의 도(道)가 다르지 않아 지권인과 수일이 상보적인 관계인 까닭입니다.”


“옳다! 훌륭하구나. 겨우 3주 만에 내 가르침을 이렇게까지 습득할 줄이야. 너는 정말 하늘이 내린 천재야!”


“과찬입니다. 아직 할아버님에 비하면 부족한 실력인걸요.”


“어허. 과례는 비례라 하였으니 너무 겸손할 필요 없다.”


“아닙니다.”


저번에도 이렇게 말해놓고 천재라는 걸 인정했더니, 예절이 안 됐다면서 다시 공부하랬으면서.


내가 또 거기에 속을까.


“좋다. 예절 부분까지 완벽하니, 이젠 정말 더 가르칠 게 없겠구나.”


“······.”


혹시 이것도 시험일지도 몰라 말을 아꼈다.


“앞으로는 굳이 날 찾아올 것 없이 서재에 있는 책들로 혼자 공부하다가 따로 궁금한 게 생길 때만 찾아오도록 하거라.”


“예.”


박 영감이 소매에서 꺼낸 열쇠를 스윽 내밀었다.


“이게 서재 열쇠다. 네게 맡길 테니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면 된다.”


“감사합니다.”


열쇠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바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난 나는 박 영감이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주먹을 불끈 쥐며 팔을 치켜들었다.


‘드디어!’


박 영감의 가르침은 유용했지만, 너무 엄격했기에 답답한 마음이 컸다.


누가 훈장님 아니랄까 봐, 선비에 꼰대 속성을 다 갖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더 공부가 잘되긴 했지만.


이제는 자유였다.


“후후.”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린 나는 열쇠를 사용하러 곧장 서재로 향했다.


서재 건물 자체가 따로 구석에 세워진 까닭에 박 영감이 이곳까지 올 일은 거의 없었다.


철컥. 끼익-


자물쇠를 풀고 서재의 장지문을 여니, 먼지가 풀풀 날렸다.


“어우, 먼지.”


고서(古書)들로 가득한 서재는 방치된 지 꽤 오래된 듯 먼지가 가득했다.


이래서 책들은 멀쩡할지 걱정될 정도였다.


“흠.”


근처에 잡히는 책 몇 권을 꺼내 자리를 잡고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책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낡긴 했어도 충분히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딱히 새로운 건 없었다.


대부분 앞서 배운 주술적 형식들과 중복되는 내용이었으니까.


‘여기 있는 책들의 내용을 통합한 게 그 책이었을 테니까 당연한 일인가.’


흥미가 떨어진 상태로 기계적으로 책들을 뒤적이다 새로운 책을 발견했다.


박씨 가문의 호적이었다.


“오?”


외가 쪽 가족들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는 상태였기에 다시금 흥미가 솟았다.


사락- 사락-


뒤쪽에서부터 확인하자 어머니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년월일과 함께 이름이 적혀있어 헷갈릴 일이 없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부모님, 내게는 외조부모가 되시는 분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경우 사망 일자가 함께 적혀있어 생사를 알기 쉬웠다.


그렇게 하나둘씩 가족 관계도를 타고 올라가다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박정태?”


박 영감의 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의 자리에 박정태의 이름이 있었다.


1969년 6월 22일생.


사망 일자는 아직 적혀있지 않았지만, 저 박정태가 내가 아는 놈이란 건 확실했다.


저 날 태어난 박정태는 창귀가 된 춘식이 한 명뿐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박정태도 주술 재능이 꽤 뛰어났었지.


‘그놈도 박 씨 왕조 피를 이어서 그랬던 건가.’


놈이 나의 오촌 외당숙이란 사실이 신기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놈은 죄를 저질렀고, 그 벌을 받았을 뿐.


거기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박정태를 떠올려서 그런가, 문득 연암곡주가 준다던 선물이 떠올랐다.


“아, 깜빡 잊고 있었네.”


원래 보문나찰결의 이름을 깨달으면 와달라고 했었는데.


술식을 알아낸다고 여기에 온 후로 각종 주술적 형식에 대해 배우느라 바빠서 잊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지금 가야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재를 나온 후.


박 영감에게 인사하려다, 주무시는 듯하여 쪽지만 남기고 연암곡이 있는 아산으로 향했다.



***



몇 시간 후, 아산 연암산.


“왔군.”


혼자 연암곡주를 만나는 건 부담스러워 블랙을 부른 터라, 먼저 도착한 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선배.”


“그래. 연암곡주의 선물을 받으러 간다고 했지. 꽤 늦었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럼, 들어가지.”


우리는 저번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 비경 안으로 들어갔다.


고오오오!


비경의 살기가 보문나찰결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츠츠츠츠츠!


자연스레 발현된 흑철무장.


한데 그 형태가 이전과 달랐다.


블랙의 특공대 무장에서 나찰의 불꽃무늬 갑옷으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연암곡주와 가까워지며 살기가 짙어질수록 흑철은 점차 흑염으로 진화하는 느낌이었다.


화르르···


그렇게 불꽃처럼 일렁이는 갑옷의 변화에 집중하며 이동하길 잠시.


어느새 우리는 연암곡주의 앞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여전히 그를 똑바로 바라보기는 힘들어 블랙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이야, 오랜만이여. 보아하니 이름은 알아낸 것 같은디.”


“예. 보문나찰결이라고 합니다.”


“선물을 받을 자격은 되겠구먼.”


“선물이 뭐죠?”


연암곡주는 뜸을 들이며 말을 꺼냈다.


“선물은··· 니가 원하는 정보여. 저번에 춘식이를 재판하면서 내가 녀석의 기억을 봤을 거 아녀? 거기에 아주 중요한 정보가 있더라고.”


“어떤 정보죠?”


“부적을 만든 놈의 정체.”


“······!”


“춘식이 놈이 쓰던 부적은 다른 놈들처럼 콤퓨타로 뽑아낸 부적이 아니더만. 그 부적은 주인한테서 직접 훔친 기여.”


박정태가 부적의 주인을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부적의 주인이 누구죠?”


“박 영감. 그놈이 범인이여.”


작가의말

ㄴㅇ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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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문사(普門寺) +1 24.02.12 98 2 15쪽
10 흑철강시공(黑鐵僵尸功) +1 24.02.10 114 2 14쪽
9 재판(裁判) +1 24.02.09 109 2 15쪽
8 연암곡(燕巖谷) +1 24.02.08 129 3 14쪽
7 체포(逮捕) +1 24.02.07 133 3 14쪽
6 추격(追擊) +1 24.02.06 140 4 15쪽
5 추적(追跡) +2 24.02.05 159 4 13쪽
4 강시공(僵尸功) +1 24.02.05 177 5 13쪽
3 주술수사과(呪術搜査課) +1 24.02.05 226 5 13쪽
2 주술사(呪術師) +1 24.02.05 299 6 13쪽
1 살(煞) +2 24.02.05 406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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