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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느릴 님의 서재입니다.

주술수선전(呪術修仙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별거느릴
작품등록일 :
2024.02.05 09:35
최근연재일 :
2024.02.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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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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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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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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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술식(術式)

DUMMY

13화 – 술식(術式)




잠시 시간을 되돌려.


내가 각인 중기에 올라서던 그 순간.


나는 심장에서 뭉친 살기가 파동의 형태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우웅!


‘살기가 위축되는 보문사 내부에서 이 정도의 살기라고?’


만약 이곳이 보문사의 삼보탱화진 안쪽이 아니었다면, 근처에 있던 이들이 살을 맞고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살기였다.


게다가 살기의 파동은 마치 레이더처럼 작용하여, 내게 살기를 품은 무수한 존재들을 알려왔다.


이전에 연암곡을 빠져나오기 위해 절벽을 오르다 블랙의 자성에 끌려갔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통해서다.


자성을 품은 살기끼리 호응하여 서로를 끌어당기는 느낌.


문제는 그런 느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보문사 호지문 쪽에 있는 건 블랙일 텐데··· 나머지는 다 뭐야?’


하늘을 날아오는 것처럼 이쪽을 향해 직선으로 곧장 가까워지는 무수한 살기의 응집체들.


본능적으로 저들이 좋은 의도로 내게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이곳에 다가오는 존재 중에는 명백히 블랙이 품은 살기보다 거대한 살기를 품은 존재도 있었다.


연암곡주 정도는 아니지만, 연암곡에서 살기가 활성화된 블랙이나 창귀 춘식이보다도 더 강한 존재.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내가 슬쩍 몸을 일으켜 바깥을 확인하려는 찰나.


“가만히! 자세를 유지하거라!”


정혜스님의 호통이 떨어졌다.


“각인 중기에 올라선 지금이 네 보문나찰결의 정확한 술식을 파악한 유일한 기회다. 집중하고 주술 각인에서 흘러드는 지식을 빠짐없이 받아들이거라.”


확실히.


살기의 파동을 통해 느낀 위협적인 존재들 때문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도 뇌리 한편에서는 내가 알지 못했던 지식이 어렴풋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강시공도 보문수호결도 아닌 보문나찰결에 적합한 술식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 지식에 집중하란 말이지.’


새로운 술식이라고는 해도 보문수호결의 술식에 기반했기에 공통되는 부분이 많았다.


한두 시간 정도 집중한다면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관세음보살은 33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데 그중에는 나찰 역시 포함되니.’


보문나찰결은 나찰의 형상으로 현신한 관세음보살을 이상으로 삼는다.


머릿속에 내가 지향해야 할 나찰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미르 팀장의 눈과 비슷한 푸른 눈.


블랙의 몸처럼 살기로 물든 새까만 몸.


피처럼 붉은 머리칼과 불꽃을 닮은 갑옷까지.


선명하게 그려진 나찰의 형상이 뇌리에서 입을 열었다.


-수호(守護)는 단순히 막기만 하는 게 아니다.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적을 멸하는 것이 진정한 수호인 법!


공격적인 방어.


그것이 곧 보문나찰결의 핵심이자 의업(意業)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신업과 구업에 해당하는 자세나 동작, 주문 등 새롭게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남은 상태였는데.


나는 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블랙!’


아까 전 퍼져나간 파동의 영향인지 보문사 바깥까지 확장된 감각이 블랙의 위기를 인지한 까닭이었다.


걱정하는 마음에 몸이 들썩이자, 다시금 정혜스님이 나를 제지했다.


“바깥의 상황은 신경 쓰지 말거라. 지금은 네 술식에만 집중해!”


"······."


“자기보다 강한 악귀와 싸우고 있는 호수를 생각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다. 호수가 저러는 건 전부 네가 술식을 깨우치는 데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니까.”


블랙의 위기를 무시하고 술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하라는 설득.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와 가까운 인물이 나 때문에 위험에 처했는데 그걸 무시하라고?


‘그건 명백히 아버지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야.’


그럴 바엔 정확한 술식을 포기하고 말지.


어차피 중요한 건 의지니까, 의업만으로도 주술을 쓰는 데는 문제 없다.


그저 구업과 신업이 일치됐을 때보다 효율이 좀 떨어질 뿐.


마음을 정하고 벌떡 몸을 일으킨 나는 곧장 호지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보문나찰결의 이상(理想)을 떠올리면서다.


치이이이-


심장의 주인(呪印) 옆으로 똑같은 형태의 주인(呪印)이 각인되는 화끈한 감각을 느끼며 발을 놀렸다.


“도현이 너···!”


뒤쪽에서 정혜스님이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로 나를 붙잡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아스라이 흩어질 뿐, 나를 멈출 수 없었다.



***



그리고 다시 현재.


나는 호지문의 경계에 발을 걸친 채 굳어버린 상태였다.


멈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삼보탱화진에 불나방처럼 부딪치던 유령들도.


물웅덩이에 반쯤 잠긴 채 기회를 엿보던 수살귀들도.


블랙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으스러트리려던 악귀도 모두 멈춘 상태였으니까.


이미르 팀장의 멈추라는 말 한마디가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저벅저벅.


모두가 멈춘 가운데, 이미르 팀장의 발소리만이 나지막하게 울렸다.


“호수 아저씨, 이거 내가 아저씨 한번 살려준 거 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악귀의 등 뒤까지 접근한 이미르 팀장이 그리 말하더니.


스윽.


손가락을 내밀어 악귀의 등에 글자 같은 걸 쓰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에 닿은 부분의 살기가 위축된 덕분에 보이지 않아도 살기를 느끼는 감각으로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있었다.


연암곡 입구의 주문을 살기의 여백으로 파악했던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백(魄)··· 산(散)?’


흔히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을 들어봤기에 무슨 뜻인지는 잘 알았다.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에 흩어진다는 사자성어.


그중 뒤의 두 글자였다.


단 두 글자였지만 그 효과는 엄청났다.


파스스스스···


글자가 완성되자, 악귀의 형상이 재처럼 흩어진 것이다.


백(魄)은 주력(呪力)이고, 악귀의 몸을 이룬 살기(煞氣)는 주력의 일종이니.


백을 흩는 주문에 악귀가 소멸한 모양이다.


“후.”


이미르 팀장이 가볍게 내뱉은 숨결에 남아있던 악귀의 마지막 흔적마저 흩어진다.


말로 내뱉지 않고, 굳이 글자로 쓴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만약 멈추라던 말처럼 백산도 입에 담았다면, 악귀뿐 아니라 블랙이나 내가 품은 살기도 흩어질 수 있을 테니까.


짝!


악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미르 팀장이 손뼉을 한번 쳤다.


그것을 신호로 사위를 강제로 멈췄던 힘이 사라지며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아!

-쓰아아아아!


당연히 유령이나 수살귀들 역시 자유를 되찾고, 자성을 따라 곧장 나를 향해 쏘아졌지만.


이 자리에 모인 주술수사과의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고오오오오!


지금 나는 기존에 발동되던 보문나찰결에 새로 얻은 두 번째 주인(呪印)의 주술을 더해 이중으로 보문나찰결을 발동한 상태였으니까.


똑같은 주술이 중첩됨으로써 보문나찰결은 일시적으로 한 단계씩 더 높은 단계에 올라섰다.


강시공의 흑철은 연암곡에서처럼 흑철무장을 구현하는 수준으로.


보문수호결의 수신은 호법의 단계로 올라섰다는 말이다.


쏴아아아아-


살기로 이루어진 유령과 수살귀가 자성에 이끌려 나와 부딪친다.


수십 번의 살을 연달아 맞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살기는 보문나찰결을 뚫지 못하고 자연스레 내 살기로 연화되었다.


치이이이-


덕분에 또 한 번 폭증한 살기가 심장으로 몰리며 세 번째 주인(呪印)을 각인할 수 있었다.


“이걸로 이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됐네. 신입 덕분에 자잘한 귀신들을 정리할 수고를 덜었어.”


이미르 팀장이 귀신들이 모조리 사라진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다 블랙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호수 아저씨는 꼴이 말이 아니네.”


“괜찮다.”


악귀가 소멸하면서 체내에 파고든 악귀의 살이 힘을 잃은 덕분에 그의 몸은 빠르게 재생되는 중이었다.


게다가 악귀가 흩어지면서 놈이 품었던 살기 역시 근처에 흩뿌려진 상황.


주인 없는 살기는 강시인 블랙에게 힘이 될 뿐이다.


휘이이이잉!


마치 연암곡 안에서처럼 블랙의 살기가 활성화되며 그를 중심으로 살기가 휘몰아친다.


뼈가 보일 만큼 쩍 벌어졌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고.


갈기갈기 찢겼던 특공대 무장 역시 헤진 부분에 살기가 채워지며 수복된다.


‘······?’


내 흑철무장과는 뭔가 달랐다.


사실, 내 흑철무장은 살기로 이루어진 터라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조차도 살기를 느끼는 감각으로 인지할 뿐,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블랙의 무장은 달랐다.


살기를 느끼는 감각을 뺀 맨눈으로도 흑철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악귀의 몸도 그랬다.


살기로 이루어졌음에도 마치 실체를 가진 것처럼 보였었지.


‘고도로 응축된 살기는 실체를 갖는다는 건가.’


덕분에 새것처럼 말끔해진 블랙의 특공대 무장.


“몸은 괜찮으십니까?”


나는 멀쩡해진 블랙에게 다가가 그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그런데 넌 왜 여기 있는 거냐?”


한데 블랙이 싸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정혜스님이 말씀하셨을 텐데? 네가 가진 주술의 정확한 술식을 알 기회는 이번뿐이라고.”


“전 선배님이 위험하신 것 같아서···.”


“내가 위험해도 무시했어야지! 어차피 네가 나오지 않았어도 이미르 팀장이 왔는데, 그 기회를 날려?”


블랙이 소리쳤다.


기껏 걱정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이러니, 나도 욱하는 성질이 올라왔다.


“그건 결과론일 뿐입니다. 동료의 희생으로 얻은 기회? 필요 없습니다.”


“뭐?”


“전 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와도 선배님을 도우러 올 겁니다. 아버지한테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


돌아가신 아버지를 언급하며 블랙도 말문이 막혔다.


그도 아버지에 관해 아는 눈치였다.


하긴 같은 주술수사과였으니, 아는 게 당연하겠지.


“하아, 내가 잠시 흥분했군. 미안하다.”


한숨을 내쉰 블랙이 진정하고 사과한다.


“아닙니다. 저도 무례했습니다.”


나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과를 받아들였다.


옆에서는 이미르 팀장이 히죽거리며 우리의 말싸움을 보고 있었다.


“재밌네. 둘 다.”


“뭐가 재밌다는 겁니까?”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듯한 말에 불퉁한 태도로 물었다.


한데 이어지는 이미르 팀장의 답에 눈이 크게 뜨일 수밖에 없었다.


“너희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딱히 술식을 알 기회가 이번뿐인 건 아니거든.”


“예?”


“보문사에 정혜가 있다면 청학서당에는 박 영감이 있지.”


“아···!”


박 영감이란 이름에 무언가 깨달은 듯 블랙이 탄성을 흘렸다.


이미르 팀장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박 영감의 분석 술식이라면 충분히 네 술식을 알아낼 수 있을걸.”


“분석 술식 말입니까.”


날려버린 기회를 다시 찾아올 방법이 있다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그런데 그것도 주술이라면 대가가 필요할 텐데요?”


보통 주술의 대가가 수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상대가 쉽게 이쪽의 부탁을 들어줄 것 같진 않았다.


“너랑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쪽에서도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까?”


“예? 제가 아는 분 중에 박 영감이라는 분은 없는데요?”


“아, 너는 아직 모르나 보네?”


“거기까지만 말해라.”


블랙이 다급히 이미르 팀장의 말을 끊었지만.


이미르 팀장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인제 와서 뭘 감추려 그래. 박 영감을 찾아가려면 신입도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남의 가족사를 멋대로 털어놓는 건 예의가 아니다. 정 알려야 한다면 영희 씨가 직접 말해야 하는 일이야.”


가족사란 말과 영희란 이름을 듣자, 박 영감이 누군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어머니의 성함이 박영희였으니까.


같은 박 씨인 걸 보면 아마 박 영감이란 분은 외가 쪽 인물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은 외가와 교류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외가 쪽 가족은 아예 없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미르 팀장과 블랙의 대화에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도현이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아침노을을 등진 어머니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계셨다.


어느새 보문사로 새벽 기도를 나오는 시간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시선이 내 곁에 있는 블랙과 이미르 팀장을 향한다.


한데 이미르 팀장 쪽은 잠깐 스쳐 간 시선이 블랙에게 닿더니 한참을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귀신을 본 듯 떨리는 눈동자.


그런 반응에 의아함을 느끼는 가운데, 어머니가 불쑥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여보?”


당신께서 아버지를 부르던 호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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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삼성궁(三聖宮) 24.02.19 7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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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청학서당(靑鶴書堂) 24.02.16 78 4 14쪽
14 혈연(血緣) +1 24.02.15 8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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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보문나찰결(普門羅刹訣) +1 24.02.13 84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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