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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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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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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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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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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0화. 댓글

DUMMY

“그런데 한 번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기자가 보이지 않을 때쯤.

문득 직원이 물었다.


“아, 팬분이세요?”

“네! 저번에 대학교에서 대형 이벤트 할 때부터 팔로우했어요!”

“꽤 오래되셨네요? 그럼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웃으면서 대꾸하자, 불안했던 얼굴에 환희가 차올랐다.


“꺄아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천선에게로 폭 달려들었다.

안긴 것도 모자라 발을 동동 뛸 정도였다.

물론, 시청자도 개인 방송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다.


-와 사심 채우기!

-진짜 부럽다

-오늘 계를 두 명이나 타네

-병원 어디에용????


이런 반응도 있었고,


-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

-역시 잘생기고 봐야 해

-야 병원 전화번호 뭐냐 민원 넣어야겠다

-보건세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이러한 반응도 있었다.

방송으로 모두 송출하는 탓이다.

꾸지람이나 가벼운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직원은 지금 그저 좋을 따름이지만.


“장천선 씨를 모시러 왔습니다.”


하지만 그 달콤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웬 거대한 남자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에 직원은 아쉬운 듯이 몇 발 물러섰다.


“경호원이신가요?”

“예. 인파가 몰릴 거라 예상하셨습니다.”

“그럴 만하죠. 역사적인 날이니까.”


맞는 이야기다.

결과가 어떻든, 수백 명의 목숨을 결정할 터였다.

이번은 그 첫 번째 발걸음이지.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들 첫 인터뷰를 따고 싶어서 난리죠?”


천선이 카메라 렌즈를 힐끗대면서 빙긋 웃었다.

최초의 인터뷰, 비공식적이지만 자신이 갈취할 터였다.

지금도 수많은 영어 댓글이 떠오르고 있겠지.

그 모두가 잠재적 고객이기도 했다.

매력에 홀려서, 관심을 투자할 고객 말이다.


발걸음은 가볍게 병실로 향했다.

경호원은 곧 문 앞에 서서 가볍게 두 번 노크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돋우며 상황을 보고했다.


“모셔왔습니다.”

“알겠습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다.

곧 병실 안의 풍경 역시 드러났다.

동죽은 딱딱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다.

동시에 유송 역시도 불편한 얼굴로 천선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다들 안색이 좋으시네요. 제가 괜히 왔나요?”


주위가 조용했다.

공기에 무언가가 낀 것만 같았다.

오직 한 사람만이 빙긋 웃으면서 셀카봉을 들어 올릴 뿐이다.


“말해보세요. 제가 정말 괜히 왔나요?”


천선이 발랄하게 말했다.

그런 이질감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가늘게 뜬 눈웃음도 렌즈를 힐끗 살폈다.


“모르고 오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 그런가요?”

“······.”

“얘기는 들었죠. 변신을 다시 하면 신체도 회복된다죠?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신 거고요.”


한 번 짚고 넘어가자는 듯이 언급했다.


“아프지도 않은데 입원하셨나요?”

“예. 혹시나 모를 부작용 때문에 이렇게 있습니다. 의사의 권고로.”


그건 은근한 선동이기도 했다.

분명 천선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대중은 다르게 생각하겠지.

몸도 멀쩡하면서 굳이 이렇게 유난을 떠냐고 말이지.


“어쨌거나 대단하시네요. 저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확실히 무섭긴 하지만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가요?”

“예. 주제 넘는 말이지만, 장천선 씨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죽 역시도 은근한 말을 흘렸다.

도플갱어로서 선행을 하라는 뜻으로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일반인으로서도 등록은 가능하겠지만.


“아뇨, 피를 뽑는 게 무섭다는 뜻이 아니에요. 이식받은 사람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무섭다는 얘기죠.”


하지만 천선은 다시 한 번 방향을 틀어, 도플갱어라는 존재가 가진 이질성을 찌르고야 말았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죽게 둘 바에는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네, 좋은 일이에요.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하고, 천동죽 씨에게도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됐잖아요?”


똑같은 존재.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도플갱어는 자기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저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지라···.”

“그래요? 제가 천동죽 씨 같았으면 굉장히 걱정됐을 것 같거든요. 내가 악마인 건 아닌지, 정말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

“아, 죄송해요. 그런 적 없었다니까 편하게 말했는데.”


여우 같은 얼굴이 냉기를 풍겼다.

누가 본다면, 뚜렷하게 멸시라고 느낄 터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큰 피해는 없겠지.

지금 카메라 렌즈는 동죽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이에 반해, 단정한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상체는 그저 단단히 멈췄다.

한 번 입이 벙끗댔고, 결국 다시 입술이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한 발 물러선 것과 다름없었다.


“갑자기 이렇게 나온다니, 너무한데요?”

“좋은 일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아니요. 자기 확신에 차 있다길래 한 질문이었는데,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시잖아요. 그저 고충을 물었을 뿐인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순수한 선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 기 싸움이 오갔다.

결코 담백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건 진흙탕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천동죽 씨는 정말 착한 사람이네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진심으로 바란다니.”


천선은 여기서 상큼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진흙탕을 씻어버릴 것만 같이 상쾌했다.

카메라 렌즈도 이를 뚜렷하게 바라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사회 규범으로는요.”

“감사합니다.”


언뜻 화해를 내민 것만 같다.

먼저, 어른스럽게.


“그런데 저는 그 당연함이, 영 불안하네요.”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으며 새롭게 논지를 텄다.

반대로, 동죽은 곧장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무슨 말입니까?”

“너무 자주 봐왔다는 말이죠. 갑자기 착한 사람이 나타나는 상황이요. 보통 이다음엔 후원 계좌를 열던데요?”

“저는 그런···!”


단정했던 얼굴이 분노를 표했다.

그럴 만한 이야기였다.

선의를 모독하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아,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분위기 이상해지잖아요.”

“······.”

“그냥 미리 말했을 뿐이에요.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말해야 하잖아요? 다들 그런 식으로 사기를 쳐왔으니까, 예방하는 차원에서요.”

“저는 절대 세상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분노에 이글거리며 답했다.

절대선에 서겠다, 그런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천선의 대척점으로서 말이다.


“알아요. 그러니 상관없는 일이겠죠.”


여우 같은 눈매는 이를 비웃으며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끝까지 선인이실 테니까요.”



***


서주가 컴퓨터 화면을 뚜렷이 살폈다.

그곳에는 수많은 메신저 창이 떠오른 채였다.

이 모든 걸 통제라도 하는 듯, 눈앞에 마이크에 목소리를 전했다.


“다들 화력 집중하고 있나요?”


이와 동시에 메신저 창에는 짧은 글자가 떠올랐다.


-네!

-넵!

-넹

-지금 열심히 쓰고 있어요


보고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내 손가락은 마우스로 향했다.

곧 방송 영상이 수많은 메신저 창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한 번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천선이다.

병원에서 직원과 마지막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서주는 이 화면을 보면서 지시사항을 내렸다.


“지금부터 조금씩 관심을 흘려야 해요. 댓글 열에 하나는 골수 이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세요.”


판단은 빨랐다.

실패했던 가수 지망생, 그렇기에 여론과 흐름을 알았다.

그래서 도플갱어도 이 미묘한 심리 싸움을 담당하게 했던 것이겠지.


-지금 어디 가는 거?

-골수 이식 아님? 아까 기자들이 그러던데?

-맞음 천동죽 보러 간댔어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린 얼굴만 보면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ㅇㅈㅇㅈ


의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의문을 받아들일 뿐이다.

상황은 뒤이어 따라왔고, 천선은 동죽과 만났다.

대화는 천천히 진행되었고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말해보세요. 제가 정말 괜히 왔나요?

-모르고 오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 그런가요?

-······.

-얘기는 들었죠. 변신을 다시 하면 신체도 회복된다죠?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신 거고요.


서주는 눈동자를 바삐 움직였다.

동시에 빠르게 다음을 전달했다.


“미리 준비해둔 여분 계정 있죠? 영어로 짧게 짧게 분위기 따라갈게요.”

-그냥 호응만 하면 되나요?

“반응만 잘해주세요. 흥미를 붙일 수 있게.”


그랬다.

역사적인 광경인 만큼, 외국인 비율이 높았다.

여기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흥분을 부추기는 이유 역시 간단할 터였다.

관심은 천선에게 득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겠지.

어차피 외모를 컨텐츠로 삼고 있으니, 언어는 장벽조차 아니었다.


-아뇨, 피를 뽑는 게 무섭다는 뜻이 아니에요. 이식받은 사람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무섭다는 얘기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죽게 둘 바에는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네, 좋은 일이에요.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하고, 천동죽 씨에게도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됐잖아요?


결정적인 순간이다.

서주 역시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채팅창에 물음표를 띄우세요.”


그 말과 동시에 스크롤은 빠르게 올라갔다.

다들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한 감정을 끊임없이 주입했다.


-??

-????

-뭐임?

-우리 이용당한 거?

-???

-와 소름;;;;

-진짜 너무하네

-야 미쳤다


조작된 댓글, 그리고 이에 진심으로 동조하는 반응이 넘쳐났다.

이 모든 흐름을 천선이 미리 지시했을 터였다.

즉, 시키는 대로 생각하는 중이다.

모두가 스스로 떠올린다고 착각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동죽이 말한 진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니요. 자기 확신에 차 있다길래 한 질문이었는데,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시잖아요. 그저 고충을 물었을 뿐인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순수한 선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동죽 씨는 정말 착한 사람이네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진심으로 바란다니.


진흙탕은 같이 뒹굴었지만, 먼저 나오는 사람은 천선이었다.

대중에게는 그게 중요할 터였다.


-어른스럽다!

-멋있다♡

-잘생겼어♡ 근데 성격도 좋아♡

-그냥 좋아용!!!!


이미 그렇게 조작하는 중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는 그 당연함이, 영 불안하네요.

-무슨 말입니까?

-너무 자주 봐왔다는 말이죠. 갑자기 착한 사람이 나타나는 상황이요. 보통 이다음엔 후원 계좌를 열던데요?

-저는 절대 세상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대화는 계속됐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중은 앞서 입장을 정했다.

게다가 물 밑에서는 계속 생각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그건 맞지’,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이기는 했음’. 이런 뉘앙스로 몇 마디씩 남겨주세요.”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타인에게 생각을 떠맡긴 채로 입장을 공고히 할 터였다.

스스로 내뱉는 말들이 여론을 이룬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서는.


-당신은 끝까지 선인이실 테니까요.


그러한 이들의 귀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만이 부유했다.


작가의말

동조심리가 참 무섭습니다.

다수이기에 결과는 참혹하지만, 죄책감과 책임감은 전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선량한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이 벌인 참사,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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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9화. 인터뷰 24.06.24 8 0 12쪽
118 118화. 만찬 24.06.19 5 0 12쪽
117 117화. 독재자와 테러리스트 24.06.15 6 0 13쪽
116 116화. 세 명 24.06.13 6 0 12쪽
115 115화. 화해? 24.06.10 9 0 12쪽
114 114화. 천청해 24.06.06 6 0 13쪽
113 113화. 재림예수 24.06.04 6 0 11쪽
112 112화. 반증 24.06.01 5 0 12쪽
111 111화. 선악은 항상 정방향으로 향하는가 24.05.30 5 0 13쪽
110 110화. 배신 24.05.27 6 0 12쪽
109 109화. 관계의 재시작 24.05.23 5 0 12쪽
108 108화. 돈 뿌리기 24.05.21 5 0 12쪽
107 107화. 김송과 24.05.18 8 0 12쪽
106 106화. 하늘 24.05.16 7 0 12쪽
105 105화. 시위 24.05.14 6 0 12쪽
104 104화. 하늘 24.05.10 7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5 0 13쪽
102 102화. 보호 받지 못한 아이 24.05.03 5 0 12쪽
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9 0 13쪽
100 100화. 균열 24.04.29 15 0 12쪽
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8 0 12쪽
98 98화. 또 다른 존재 24.04.25 8 0 12쪽
97 97화. 행운 24.04.23 11 0 12쪽
96 96화. 최후의 눈치 게임 24.04.22 8 0 12쪽
95 95화. 안 들려요 24.04.19 8 0 12쪽
94 94화. 가위바위보 24.04.18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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