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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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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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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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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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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화해?

DUMMY

***


녹호가 방에서 태블릿을 살폈다.

다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턱을 괴고 손가락만 휙휙 넘기고 있으니 말이다.


“뭐 보는 중이야?”


그때, 인영이 들어왔다.

도플갱어 역시 힐끗 고개를 돌렸다.


“왔네.”


기다란 몸이 휘청대듯이 화면을 살폈다.

분할되어 여러 홈페이지 검색창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데?”

“피녹호, 장천선, 김예현, 재림예수, 예림재수.”

“다들 알았네? 너 사이빈 거?”


인영이 키득댔다.

예현과 녹호가 동일인이라도, 속은 시원한 모양이다.

애증이 겹겹이 쌓인 결과였다.


“잘 됐지. 최악은 증오가 아니야. 무관심이지.”


오히려 잘 풀리는 중이라는 말.

하지만 이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증오보다 애정이 크기에 보이는 태도였다.


“그리고 천청해랑 천동죽도 같은 수준으로 떨어졌어.”

“그 둘도 이득 아냐?”

“나랑은 입장이 다르지. 나는 관심이기만 하면 활용할 수 있지만, 걔네는 무조건 명예여야 하거든.”


도플갱어는 싸움을 진흙탕으로 끌고 갔다.

그 자체만으로도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아왔다.

더군다나 수많은 수단으로 상대를 견제할 수 있었다.

청해와 동죽은 정직한 방법만을 쓰는 데에 반해서.


“하여간 음흉하긴.”


인영이 작게 키득댔다.

그러면서 손을 뻗어 녹호의 귓불을 꼬집었다.

말랑한 촉감이 좋은지, 열중해서 주무르기 시작했다.


“인영아, 너 규칙이 없어져서 아쉽지?”

“무슨 규칙?”

“이 방에 두 발로 걸어오면, 나갈 땐 네 발로 바로 나가야 한다고.”


꼬물거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잠깐 생각하는 기색이다.

그러다 손길은 은근히 다시 시작됐다.


“네가 불렀잖아. 그렇게 자기 방에 들이는 거 싫어하더니.”

“이제 싫어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도 벌을 주겠다고?”

“규칙이니까. 예외를 허용해주면 법이 왜 필요하겠어?”


두꺼운 손이 탄탄한 골반을 덮었다.

이내 힘을 주어 확 끌어당겼다.

인영은 얇은 끈처럼 그 손길에 이끌렸다.


“윽! 아, 일주일만 참지.”

“일주일?”

“애 생기면 안 되니까.”


단단한 허벅지 위에 드러누워서 중얼댔다.

그러면서 시선은 괜히 먼 산으로 향했다.

입술은 계속 비쭉대면서.


녹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커다란 손은 이내 얇은 등을 받친다.

얇은 움찔거림이 잠깐 존재감을 냈다가 사라진다.


“그럼 일어나.”

“···어?”


두꺼운 팔에 힘이 훅 들어갔다.

그러자 인영은 오뚜기처럼 똑바로 일어섰다.


“일주일이면, 뭐.”

“······.”

“왜? 싫다며?”


가느다란 몸은 딱딱하게 굳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위로 녹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여간 음흉하긴.”


인영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내 주먹을 움켜쥐더니, 두꺼운 팔을 빡 후려친다.


“업무 얘기나 해.”

“한 대만 더 때리고.”


다시 한 번 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빌딩 두 채에, 하나는 더 확장하는 중인 거 알지?”

“그럼.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장천선으로 홍보하고 교회 제휴 사업으로 돈 끌어왔잖아. 안전하게 흑자야.”

“할인율 살벌할 텐데?”

“박리다매가 되더라고.”


자리를 잡기 위한 할인율.

그마저도 어렵지 않게 충당할 수 있었다.

신분 세 가지가 만들어낸 공명 효과, 온갖 논란을 몰고 다니는 노이즈 마케팅 덕분이다.


“그럼 지방으로 진출해도 되겠네.”

“어디에?”

“도마다 최소 하나씩.”


녹호는 지금 상황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서울을 넘어, 지방 곳곳에 침투할 생각이다.


“서두를 생각이야.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

“하긴. 지금 레저 피노키오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방식은 똑같아. 교회에 사람 모으고, 그거 고객으로 그대로 올려보내는.”


초반 마중물이 있어야 사업이 부흥한다.

서비스가 검증되면, 그제야 일반 고객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교회 제휴는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이 방식은 레저 피노키오의 필승 전략 중 하나였다.


“흠. 좀 불안한데?”


인영은 이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왜? 오히려 투자 비용은 적을 텐데?”

“그렇겠지, 지방은 땅값이 싸니까. 근데 그만큼 고객이 적잖아.”

“괜찮아.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이지.”


단호한 말이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무언가 껄끄러운 모양이다.


“왜 이렇게 급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야?”

“의심이 필요한가?”

“여기랑 여건이 다르잖아. 조사가 필요하다는 거지.”

“······.”

“의욕이라도 생겼어? 그쪽에 악감정이라도 생겼다든가.”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꼭 누군가를 떠올린 듯했다.


“뭐, 보험이지.”


녹호는 그 모습에 가로채듯이 입을 열었다.


“일단 내 영향력이 커지면 어떻게든 살아지거든. 그땐 걸려도 나 혼자 죽는 게 아니니까.”

“그뿐?”

“뭐가 더 필요해?”


인영이 미미하게 표정을 굳혔다.

정확히 뭐라고 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이 얼굴 위에, 한 마디가 덧붙여졌다.


“조사도 계획해뒀지. 시간 비워둬.”

“갑자기?”

“그래.”

“교회가 먼저 자리 잡아야 하잖아?”


녹호는 그 말을 들으며 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꼭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들어가도 될까요?”


그때,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려있던 문으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목사님?”


인영의 이모, 서주였다.



***


한 남녀가 기차에서 내렸다.

녹호와 인영, 두 사람 다 별말 없었다.

그건 분명 뒤이어 내리는 사람 때문이겠지.


“목사··· 아니, 대표님?”


서주였다.

비서라도 되듯 손에는 짐을 잔뜩 쥔 채였다.


“왜 그래?”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부를까요? 직접 움직이시는데, 저 혼자 모시기엔 불편할 것 같아서요.”

“괜찮아. 잘 보이라고 이러는 거니까.”


녹호는 슬쩍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서성이던 사람이 움찔거린다.

꼭 훔쳐보다가 걸리기라도 한 듯하다.


“논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걸 활용할 능력이 있어서.”

“아, 네.”


인영과는 깊이 나눴던 이야기다.

지금은 짧게 끝났지만.


“일단 짐은 숙소에 맡겨야겠죠? 저 혼자 갔다 올까요?”

“아니야. 다 같이 가야지.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하자고.”

“아···.”

“아니면 불편하기라도 하나?”


녹호는 힐끗 서주를 살폈다.


“저는 괜찮아요. 제가 무슨 염치로 그러겠어요?”


반면, 서주는 인영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각이 있었다.

그게 당연하겠지.

이제 단순한 사이비 신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참고 살았는지 아는데, 오히려 미안하죠. 더군다나 그렇게 상처도 줬고요.”

“······.”

“솔직히, 사과할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게 맞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지내고 싶어 할 텐데요.”


진실을 알았고, 감정도 진정됐다.

본성이란, 그때야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어렵네요. 죄 지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인영은 피해자였다.

괴로운 일을 겪었고, 더는 떠올리기도 싫을 터였다.

그렇기에 서주는 조용히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이다.


“하.”


인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입을 닫은 채,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

그대로 화를 내고 뛰쳐나가도 될 터였다.

두 사람 다 이해해줄 테니까.


“화난 척도 못 하겠네.”

“인영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몸을 돌렸다.


“화가 안 나. 안 난다고.”

“용서해주는 거야?”

“용서는 무슨. 그냥 복수도 다 끝난 마당이잖아? 여기서 더 화가 날 게 뭐가 있어?”

“그건···.”

“안 좋게 끝나서 먼저 말 붙이기 뻘쭘했던 거야. 화가 났던 게 아니라.”


서주는 인영에게 못 할 짓을 했다.

인영도 서주를 포기해버렸다.

서로 감정을 퍼붓듯이 쏟아내고 절연했다.


그렇게 떨어지자, 두 사람은 차츰 괴로움에서 회복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여유도 생겨났다.

증오는 흔적조차 희미해졌다.

도대체 그 당시에는 왜 이리 힘들었는지 모를 만큼.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할 수 있을 만큼.


“어쨌든 난 별 감정 없어. 누가 내 끝맺음을 확실히 도와줘서 말이야.”

“아.”


얇은 눈꼬리는 슬쩍 녹호에게로 향했다.


“야, 피녹호. 너 이거 의도한 거냐?”

“글쎄. 내가 진짜 신은 아니잖아?”

“그럼?”

“그냥 이럴 거 같았어.”


도플갱어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형태도 없는 감정까지 계산하지는 못할 터였다.

다만, 말 그대로 눈에 보였겠지.

서로 굳이 더 증오하지는 않는다고.



***


호텔 방.

인영과 녹호가 테이블에 앉아 자료를 살폈다.

종이 위에 복잡하게 메모가 새겨졌다.


“야, 피녹호. 쉰다고 안 했어?”

“끝나고 들어가. 서주 불러오고.”

“응?”

“교회 쪽도 생각해야 하니까.”


도플갱어는 쉴 생각이 없었다.

육포 한 조각에도 체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식은 그와 거리가 먼 일이다.


“···쉬지 그래?”

“바빠. 서주나 불러 와.”

“······.”

“바쁘다니까? 한두 군데도 아니고.”


인영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호는 곧 자료를 달싹이며 정리했다.

곧 서주도 방으로 들어온다.


“대표님, 저 왔어요.”

“그래, 앉아.”

“네.”


도플갱어는 종이를 내밀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 인영이가 별말 없었어?”

“딱히요. 그냥 피곤해 보였어요.”


녹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현관으로 향했다.

발걸음에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거대한 손은 금세 문고리를 잡아 확 열어젖힌다.


“꺄아아아악···!”

“뭐 해?”


그 너머, 인영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두 눈은 당혹감이 잔뜩 서렸다.

설마 걸릴 줄은 몰랐다는 듯이.


“아니, 난···.”

“왜 염탐이야?”

“염탐은! 아무것도 아니거든!”

“진짜?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어?”


갸름한 얼굴에는 곧 이물감이 서렸다.

자존심 상하지만, 떠오르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뭐, 망상이지. 신경 쓰지 마.”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씩씩하게 자기 방으로 돌아갈 듯이.


“망상이 아니면?”

“···어?”

“서주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인영이 표정을 굳혔다.


“야, 농담은···.”

“······.”

“···진짜야?”


기다란 몸이 살짝 휘청였다.


작가의말

현대 하렘물의 딜레마.

잘못하면 억지가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부드럽게 넘어가려고 고민하다보니, 머리가 아픕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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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4화. 하늘 24.05.10 6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5 0 13쪽
102 102화. 보호 받지 못한 아이 24.05.03 5 0 12쪽
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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