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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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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01 05:48
연재수 :
1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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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07,048

작성
24.05.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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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6화. 하늘

DUMMY

녹호는 뻔뻔하게 요구했다.

명백한 도발이기도 했다.

시위대장은 당연하게도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 대신, 몸을 돌려 시위 참가자를 충동질했다.


“대표가 나왔으니 답을 들읍시다! 과연 작금의 상황에 책임감을 느끼는지!”

“옳소!”

“왜 당신은 소상공인을 괴롭히는가! 재벌로 태어나서 누리다가 가도 충분한 것을, 왜 굳이 서민들의 등골을 뽑아먹으려고 드는가!”


주변에서는 호응이 울려 퍼졌다.

수많은 사람의 지지, 그건 앞에선 사람에게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표 피녹호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죄를 인정하는가!”


가득하게 확대된 동공.

가슴은 크게 부풀었고 힘줄마저 툭툭 튀어나왔다.

저 정도라면 얼마나 세상이 밝아 보일까?

아마 머리가 찡하게 울릴 정도일 테지.


녹호는 그 얼굴을 같잖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린 채였다.

그렇게 지껄이는 말은···.


“지X하네.”


팡!


플래시가 터졌다.

옆을 보니 기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삿거리 하나가 나왔다는 뜻이다.


“와, 시위 현장이네요!”


동시에 웬 여자 목소리 역시 크게 울렸다.

휴대폰으로 방송을 촬영하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이야! 역시 서울은 컨텐츠가 좋아요! 서울 오세요!”

“방금 들으셨어요? 지X하고, 자빠졌네~.”

“여기 핫 플레이스네요! 벌써 몇 명이나 온 거야?”


개인 방송인.

그 인맥이 여기서 발했다.

도플갱어가 원할 때에 시선을 모을 수 있을 정도다.

두 가지 신분은 이렇게 상호작용했다.


“지X? 지X? 이 쓰레기 같은! 봐봐! 이게 바로 레저 피노키오의 실상입니다!”

“하.”

“여기 있는 민중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시위대장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다듬어지지 않은 고음.

선거철 선전행위처럼,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정작 당사자는 항상 모르는 듯하지만.


“소상공인을 핍박하고! 말살하고!”

“어, 그래. 계속해.”

“야···!”


결국, 소리를 질러댔다.


“어른이 말을 하면 말이야!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화가 날 만도 했다.

상대가 이리 노골적으로 무시를 해대니.


“결국 들이미는 게 나이야?”

“뭐? 이,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재벌이 끼어드냐고 욕했잖아? 그런데 타고난 요소로 우위를 점하려고 하나? 궁색하게?”


사나운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푸훕!”

“뭐야, 뭐야?”

“오, 힙한데?”


그건 주변에도 전달되었다.

흥미로운 건 물론, 맞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다.


“이! 이···!”


시위대장이 손가락질을 해댔다.

당장이라도 폭력을 쏘아대고 싶은 듯이.

그 전에 녹호가 계속 입을 열었다.


“내가 조금 개X끼긴 해. 돈 쑤셔 박아서 끼어들 만한 사업은 몇 없었거든.”


의외로 첫 마디는 인정이었다.


“하···. 하하! 그래, 악행을 인정하고 상생···”

“근데 내가 개X끼라고 너네가 사람 X낀 건 아니지.”


하지만 비릿한 미소는 훨씬 더 짙어졌다.

언뜻 잔혹함도 느껴진다.


“장사를 양아치처럼 하던데?”

“···뭐?”

“가격 문의는 DM으로 받고, 사람 봐가면서 금액을 받더라? 싯가야? 고객은 생선이고?”


미리 조사는 끝났다.

이미 머릿속에 시나리오를 짜뒀겠지.


“그런 횡포를 당하는 고객한테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게, 왜 죄가 되는 거지?”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녹호의 말에 동조하다는 뜻이다.

하긴, 소상공인 보호는 먼 이야기다.

대기업이 가성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니, 당장은 이쪽이 더 구미가 당기겠지.


“너네가 하면 가격 경쟁, 재벌이 하면 민생 말살이야? 나는 아주 태어나지도 말아야 했겠네?”

“우, 웃기지 마! 어디서 선동이야!”

“선동이라니? 우린 아직 SNS랑도 안 친한데.”


맞는 말이다.

아직 SNS 홍보부서를 개설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시위대장도 찰나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광기에 찬 웃음을 지었다.

바닥에 처박히기 전, 다시 살아날 길이 보인 모양이다.


“하하! 대표가 자기 회사 SNS도 안 보고 있다니!”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녹호와 달리, 감정만 폭발하고 있었다.

당장 분위기는 끌어오긴 했지만, 여유는 느껴지지 않았다.

계획 따위는 없겠지.


“보셨죠, 여러분! 레저 피노키오의 방만 경영!”

“흐음?”

“겉만 번지르르 하고 속은 썩어있는···”

“알아. 일주일 전에 웬 ‘블리’, ‘루브’ 달고 있는 것들이 악플 달더라? 게시글 하나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녹호는 그 얼굴 위에 비웃음을 퍼부었다.


“어제는 너네 헬스장으로 가서 홍보질 하고?”

“그건 우리 헬스장이 좋아서···”

“아, 거기 너. 안녕? 블리, 이 쌍X아?”

“···네?”


성큼성큼 시위대장을 지나치며, 한 여자에게로 향했다.

얼굴에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잔뜩 서려 있었다.


“잠깐, 어디 가는···”

“몸뚱이 자랑을 그렇게 하는데 내가 몰라볼 줄 알았어? 숨기려면 치골에 문신은 숨기고 찍든지.”

“야, 이 새X끼야···!”

“거기 너. 네일 샵에 지X했지? 다 알아. 증거도 확보해뒀어. 그리고 너는···”


아무 곳이나 쏘아대던 와중.

콱, 멱살이 붙잡혔다.

시위대장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녹호를 노려보았다.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분노, 당혹스러움, 화끈거림 등등.


“아, 그래. 둘 다 너랑 붙어먹는 사이였지? 수준이 맞나 봐?”


당장이라도 두들겨 패버리고 싶어 했다.

목에는 핏줄이 서고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주먹을 휘두르기 직전이었다.


“너···!”

“하. 참 무섭기도 해라.”


덩치가 큰 남자 둘.

이렇게 맞붙으니 공룡 두 마리가 마주하는 듯했다.

하나는 단단히 성이 나고, 하나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근데 힘은 있나 몰라? 그거 다 풍근이잖아? 약으로 키웠지?”

“······.”

“스긴 스냐?”


시위대장의 눈동자가 홱 돌아갔다.

숨이 멈추고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았다.

초점이 사라지고 어깨가 크게 돌아갔다.

녹호는 그 모습을 또렷이 보았다.

주변에서도 당혹성이 울린다.


“어?”


길어진 듯한 시간이 가속된다.

주먹이 빠르게 휘둘러졌다.

도플갱어는 뒤로 피하지 않았다.


콰아악!


그저 맞을 뿐이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말려! 빨리 말려요!”

“여기 싸움 났어요···!”


시위대장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이 개X끼가아아아···!”


당장 녹호를 깔아뭉개고 주먹을 휘둘렀다.

몸을 크게 들썩이며, 중력까지 실어서 내려쳤다.

화를 전혀 주체하지 못했다.

아예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잡아! 잡으라고!”

“사장님 참으세요!”

“오, 오빠! 멈춰! 나와보라고!”


당장 시위대가 그 등 뒤로 향했다.

그리고 힘껏 남자를 끌어당겼다.

이러다가 사람 하나 죽일 듯한 기세였기 때문이다.


“···하.”


비켜난 자리.

녹호가 누워서 헛웃음을 흘렸다.

팔뚝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덜렁거렸다.

옷깃에는 핏물이 튀고 얼굴도 찢어졌다.

어떻게든 큰 부상은 막아냈지만, 마냥 괜찮지는 않았다.


“보이냐?”


만신창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청명한 파란색.

참으로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래, 보이겠지. 당신 시선은 항상 나한테만 꽂혀있으니.”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진을 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방송을 송출했다.

각자 수많은 소리로 떠들어댔다.


“근데 기어이 지하까진 꿰뚫지 못해. 머리를 어지럽히는 슬픔은, 좀처럼 재미없으니까.”


그 사이로 작아진 하늘.

저 멀고도 높은 것에서 하얀 조각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녹호가 준비해왔던 안배였다.

당연하게도 모든 정황이 이쪽에 유리하게 쓰여 있겠지.


“어찌 되든 상관없으니까. 아니, 신경 쓰기도 싫으니까.”


더 악하게, 더 철저하게 살아갈수록 보상을 주는 세상.

도플갱어는 그런 하늘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만족해? 거슬리는 건 아예 사라졌으니, 이젠 만족하느냐고.”


이것이 당신이 그토록 찬양했던 정의냐고 말이다.



***


새하얀 공간.

녹호는 병실 침대에서 깁스를 만지작댔다.

양 갑갑한지,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그 옆으로 가느다란 몸이 비껴 앉는다.


“참 튼튼해? 뒤지도록 처맞던데?”


인영이 비아냥대듯이 조잘댔다.


“몸은 그렇게 굵직하면서 왜 맞고만 있어? 아, 탱커야?”

“맞아준 거지. 그편이 유리하니까.”

“개처발렸으면서 허세는.”


신경을 박박 긁어댈 요량이다.

아니,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됐고. 반응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녹호는 대뜸 상황을 물었다.


“···잘 풀렸어. 반응 좋더라.”


호재.

인영은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대꾸했다.

이내 휴대폰 화면을 켠 후, 녹호에게 보여주었다.


“기사 좋게 써줬네? 기자는 그쪽에서 매수했을 텐데.”

“여론이라는 게 있잖아. 그리고 거기서 부른 기자는 마이너고, 여긴 메이저 언론사고.”

“여론?”

“어. 그때 방송 켠 사람들, 생방송 올린 거 있어. 볼래?”


그 말대로 벌써 실시간 방송 영상이 올라왔다.

‘재벌가의 품격ㅋㅋㅋㅋㅋㅋ’이라는 제목으로.


“속 시원하다고 지지 많이 하더라고. 은근히 피해자가 많았나 봐.”


내수 시장.

그래서 대기업은 좀처럼 손대기 껄끄럽다.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업종을 박박 긁어모으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쪽이 이렇게 이미지를 깎아 먹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속 시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 형 매력있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이더 긁혔쥬?

-폭행했는데 폭행당했넼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럼 쌍방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기 바이럴 했냐? 어쩐지 이상하더라


녹호가 말했지.

자신도 ‘조금 개X끼’이긴 하다고.

그 말대로다.

한쪽이 악하다고, 다른 한쪽이 선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했다.

한쪽이 지나치게 싫다면, 무조건 다른 쪽을 편드는 기질이 있었다.

심지어 재평가라며, 억지에 가깝게 미화하기도 한다.

진실이 어떻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기는 편에 서고 싶었으니.


“이제 편하게 확장해도 되겠네. 존재를 인정받았으니까.”


상도덕에 관한 논란.

이번 사건을 통해 해소되다시피 했다.

그러니 앞으로 지점을 확장해나가도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유사 업종과 거리 정도만 신경 쓴다면 말이다.


“하. 참 잘 풀려? 못된 짓, 철저하게만 계획하면 아주 순풍을 받아. 하늘이 도우시나.”

“하늘? 그런 걸 믿어?”

“이성적으로는 없지. 근데 이렇게 지X이시면, 안 믿기도 힘들잖아?”


녹호가 사나운, 그리고 약간 씁쓸한 듯한 미소를 흘렸다.

하늘이라.

완전히 부정하기엔, 악의마저 느껴졌다.

태생부터 그가 불행해지도록 강요하고 있었으니까.


“잠시 어디 좀 갔다 올게.”


작가의말

정신적 1부는 여기서 끝납니다.

커다란 서사 구조 하나가 완성됐으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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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7화. 김송과 24.05.18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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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6화. 최후의 눈치 게임 24.04.22 7 0 12쪽
95 95화. 안 들려요 24.04.19 7 0 12쪽
94 94화. 가위바위보 24.04.18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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