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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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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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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1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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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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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귀인의 정체

DUMMY

***


녹호가 눈을 떴다.

눈동자는 유난히도 차분한 기색을 띠었다.


“유송아.”

“예.”

“분식집 가서 앨범 가져와. 최대한 박박 긁어서.”


거대한 몸이 벌떡 일어났다.

그다음 신속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두꺼운 철문, 어두운 복도와 계단을 지나서 자기 방으로.


“······.”


입을 꾹 닫고 차고까지 들어섰다.

썬팅이 유난히 짙은 차량에 타고서 시동을 걸었다.

녹호는··· 아니, 예현은 반쯤 질주하다시피 어두운 밤을 내달렸다.

교회에 도착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중후한 발걸음이 주차장에 발을 내디뎠다.

이내 정문을 열고 밝은 내부로 들어섰다.

휑하고 깨끗한 풍경은 어딘가 기괴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한 명, 서주는 미소를 지으며 도플갱어를 맞이했다.


“목사님,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평소처럼 공손하기만 했다.

숨이 거친 사람은 오로지 예현뿐이다.


“그래, 서주야.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불렀단다.”

“어떤 일인가요?”

“귀인···. 저번에 말해왔던 귀인에 대해서란다.”


도플갱어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 실마리는 귀인과 관련된 모양이다.


“계속 말해왔지? 귀인 덕분에 교회 운영이 편해졌다고.”

“네, 맞아요.”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단다. 관련된 자료를 가져오렴.”


귀인.

그 단어 밑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예현은 꼭 겁박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서주는 겁먹지 않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역으로 질문이 돌아왔다.

이변이라면 이변이었다.

무조건 복종하던 사람이 갑자기 괜찮겠냐고 묻다니.


“···알고 있었니?”

“네. 어렴풋이요.”


예현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를 들여다보듯, 너 역시 나를 들여다보았구나.”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건만, 두 사람은 서로 한 가지씩 꿰뚫어 보았다.

마주 보는 눈동자엔, 각자 다른 광기가 서려 있었다.

침묵이 일기를 잠깐, 서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돈세탁, 제 선에서 책임을 끝내야 하잖아요.”

“······.”

“목사님께서 관여한 순간부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지금 걸리면야, 제 독단이라고 하면서 넘길 수 있지만요.”

“알고 있단다.”

“네. 물론,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목사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니까요.”


돈세탁, 그리고 꼬리 자르기.

목사는 서주에게 그런 일을 맡겨왔다.

직접 지시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저지르도록.


“당장 필요하실 자료 찾아올게요.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예현은 안쪽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얀 머리카락은 이후 짧게 좌우로 흔들렸다.

이내 중후한 몸은 자리로 향했다.

서주 역시 곧 서류를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가져왔어요.”

“그래.”

“미리 정리해둬서 다행이네요. 최대한 제 선에서 끝내려고 써둔 건데.”


명함 외에도 문서가 높이 쌓인 상태다.

따로 조사해왔던 탓이겠지.

그중 서주는 가장 먼저 서류첩 두 권을 건넸다.


“장부예요. 하나는 대외용이고, 다른 하나는 대외비예요.”

“이중장부구나.”

“네.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따로 안 쓰면 헷갈리더라고요.”


대외용과 대외비.

그게 무슨 뜻일지는 뻔했다.


“정치인이랑 기업인분들이 이체해주시면, 일정 비율만큼 현금으로 돌려드렸어요. 어렵지 않은 일이잖아요? 십일조를 지폐로 하시는 분이 많으니까요.”

“대외용 장부엔 현금 출처를 지웠겠구나.”

“네. 공식적으로는 받은 게 없어요. 그 대신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기록했죠. 신도분에게 달란트를 지급해드려야 하니까요.”

“그래, 레저 피노키오에서 보아왔던 손해를 여기서 회복해왔을 테지.”

“맞아요. 교회 유아부를 운영해야 하니까요. 관리비랑 부목사님들 봉급 문제도 있고요.”


돈세탁.

방향은 크게 두 가지겠지.

양지에서 음지로 가거나, 음지에서 양지로 가거나.


예현 교회는 전자의 범죄를 저질렀다.

기록된 금액을 기록되지 않은 현금으로 바꿔주었다.

여기서 수수료를 챙겼고, 쏠쏠한 이득을 봐왔겠지.


“하지만 불법이란다. 이 명함의 주인들은 떳떳하지 못한 곳에 현금을 써왔겠지. 불법 정치자금이든 도박판이든.”


이득을 얻은 대가는 오로지 사회가 감당한다.

조용히 돈이 오갈 곳은 많았다.

동시에 그 모든 일은 불법이기도 했다.

세금을 회피하고 법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을 알고도 감당한다는 소리니? 그저 얼떨결이 아니라?”

“네. 처음부터 큰일이다 싶었어요.”

“무섭지 않았니? 잘못하면 징역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잖니.”


세금과 관련된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를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법 조항은 애매하고, 엮으면 엮이는 대로 형량이 늘릴 수 있다.


“무섭다기보다는···, 기뻤어요.”


하지만 서주는 겁에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얗게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러워할 뿐이었다.


“목사님께 너무나 폐만 끼쳐왔잖아요. 관심 좀 가져달라고 아우성치고, 계약 잘못해서 망쳐버리고.”

“탓하지 않는단다.”

“알아요. 하지만 괴로웠어요. 좀 더 잘하고 싶었는데. 좀 더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제가 책임져서, 목사님께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됐잖아요?”


사람은 손익에 따라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이 더 편한 경우도 많았다.

무언가를 베풀었다면, 최소한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는 소리니까.


“목사님께서 별말 안 하셨을 때도, 지금 이렇게 찾아오신 것도 기쁘기만 해요.”

“내가 너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네. 역시 모든 걸 알고 게시네요.”


희생정신이란, 분명한 선의다.

상식적으로는 그랬다.

문제는 그 수혜자가 도플갱어라는 사실이었다.

순수한 마음은 이로써 세상에는 큰 해악으로 작용했다.

선의는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없는 사람’. 혹시 그 말을 기억하니?”


예현은 나직이 화두를 꺼냈다.


“아···, 네. 예전에 어떤 사람한테 들은 말이에요.”

“알고 있단다. 그게 누군지.”

“딱히 좋은 기억은 아니에요. 레저 피노키오 대표는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요.”


녹호일 때 건넸던 얘기다.

실패했지 않느냐고.

사회는 너를 없는 존재로 취급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꼭 겉모습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니었어요. 진짜 무서웠던 이유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저를 꿰뚫는 것만 같아서였죠.”


서주는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몇 번 만나지는 않았지만, 녹호와 관련된 기억은 너무나도 강렬했던 탓이다.


“그런 너를 위해,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어떤···.”

“서주야, 너는 나에게 굉장히 도움이 되고 있단다.”


그렇기에 지금 이 말이 더 와닿겠지.

절망을 일깨워주는 사람, 그 대척점에 해당하는 이가 눈앞에 있으니.


“세상은 잊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단다. 너는 어떻게든 제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그게 얼마나 귀한지 말이야.”


서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필요하다’, ‘귀하다’.

너무나도 간단한 말이지만, 너무나도 듣기 힘든 말이었다.


“바깥은···, 지상은 이를 받아주지 않았지? 선뜻 호의를 베푸니, 값싸다고 착각할 뿐이지.”

“맞아요. 저는 자리만 내어주면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었는데···.”


맑은 두 눈에서 바닷물이 흘러넘쳤다.

흐느낌도 없이, 주르륵 새어 나왔다.


“약속하마. 나만큼은 그 가치를 잊지 않겠노라고.”

“정말···, 요?”

“그래. 나는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란다.”


예현은 눈앞에서 우는 여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낡은 손으로 등을 토닥였다.



***


녹호가 방에서 서류를 살폈다.

서주에게 받은 문서였다.

돈세탁과 얽히고설킨 관계라.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건만, 끈끈하다면 끈끈한 관계라고 볼 수 있었다.


“녹호 씨.”

“아, 유송아.”


그때, 종종걸음이 바삐 들어왔다.

평소와 다르게 문이 열려 있었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앨범 가져왔지?”

“그게···, 못 찾았습니다.”

“뭐?”

“결혼하고서 앨범을 채워나가긴 했을 겁니다. 다만, 친아버지께서 배신하고 그걸 가지고 있을 이유는···.”

“그래도 사진 몇 장은 있을 텐데?”

“예, 따로 가져오긴 했습니다.”


유송은 작은 봉투를 건넸다.


“천선 씨가 어릴 때 사진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도플갱어는 그 말에 입을 닫았다.

사진을 꺼내 조용히 살폈다.

들은 대로, 갓난아기 사진만 가득했다.


친어머니의 사랑이 깊이 느껴진다.

자기 사진은 찍은 적도 없었다.

심지어 가족사진은 버렸을지라도, 제 자식의 흔적만큼은 고이 남겨두었다.

혹여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이러니까 내가 이를 빠득대면서 세상을 망치려고 하는 거야. 순수하게 좋은 것들이 꼭 나한테만 오면 알레르기를 일으켜대니까.”


자식을 향한 사랑.

하지만 지금은 이 때문에 계획이 잘 풀리지 않는 듯했다.


“엄마한테 가서 휴대폰 받아 와. 최대한 오래된 사진···. 아니, 그냥 고등학교 어디 나왔는지 물어봐. 그다음 해당 앨범 가져오고.”

“오래된 사진, 그리고 학창 시절 앨범 말입니까?”

“그래.”

“도대체 그건 왜···. 변신 능력은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잘 알고 있네.”


친어머니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허비하고 있는가?

유송은 이해가 가지 않을 터였다.

분명 변신 능력과 관계된 일이겠지만, 타인을 회복시킬 순 없을 텐데.

굳이 회복한 방법이 있다면···.


“···녹호 씨, 그런데 왜 의료 관계자와 관련된 서류만 따로 빼서 보고 계십니까?”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언가 눈치를 챈 듯했다.


“도움받을 일이 있어서.”

“혹시 그 도움이라는 게, 어머님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빼내야 한다든지, 수술대를 마련해야 한다든지 하는 일입니까?”


도플갱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라는 의미였다.


“천선 씨.”


암에 걸리기 전, 어머니가 가장 건강한 때로 변할 생각이었다.

이식에 가장 적합한 장기를 내어주기 위해서.


“멈추십시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내장 뜯어낸 다음에 바로 변신하면 되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이미 폐까지 전이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없어.”

“잠깐···. 설마 마취도 안 하고 수술을 받겠다는 말입니까? 배를 가르고, 장기를 떼어내고?”


미친 짓이다.

마취도 안 하고 수술대에 오르겠다니.

그랬다간 쇼크로 죽어버리고 말 터였다.


“게다가 도플갱어라는 사실이 퍼지고 말 겁니다! 관계자가 퍼뜨리면, 모든 죄가 드러나고 맙니다!”


살인, 시체 유기, 방화, 사기, 사이비 종교 운영 등등.

죄가 아득히도 쌓인 상태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집행까진 안 되겠지만, 평생 교도소에서 지내게 되겠지.

도플갱어의 능력으로 영원히 죽지도 못한 채로.


“천선 씨, 다시 한 번 재고를···”

“그 입 다물어.”


녹호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그 두 눈은 옅은 핏기가 맺혀 있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너는 내 소유물이야. 잊었어?”

“하지만 이런 결정은 위험합니다.”

“닥치고 사진이나 구해와. 뒤지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천선 씨···.”


상처 입은 맹수처럼 나직이 으르렁댔다.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이빨을 드러낼 듯이.


작가의말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네요.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 폭행당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조항인데요.


교육청은 교권과 학생권이 대립한다고 말하네요.

아이한테 주어진 최소한의 방패가 빼앗겼고요.

머지않아 교사 중 한 명이 학생에게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뜨겠죠.

어떤 사회든 범죄자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땐 교육청이 교사에게 주어진 방패를 빼앗겠네요.

학생권을 핑계로요.


뉴스 댓글에서 말하더라고요.

교권 살리자고 학생권 죽이는 게, 무슨 구시대적인 발상이냐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교육청은 그 정도로 멍청한 집단이 아니니까요.



어린이날이 다가오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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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화. 보호 받지 못한 아이 24.05.03 5 0 12쪽
»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9 0 13쪽
100 100화. 균열 24.04.29 13 0 12쪽
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6 0 12쪽
98 98화. 또 다른 존재 24.04.25 7 0 12쪽
97 97화. 행운 24.04.23 8 0 12쪽
96 96화. 최후의 눈치 게임 24.04.22 7 0 12쪽
95 95화. 안 들려요 24.04.19 7 0 12쪽
94 94화. 가위바위보 24.04.18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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