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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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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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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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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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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7화. 김송과

DUMMY

거대한 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래. 가까운 병원으로 간다니까, 굳이 여기로 오자고 했지?”

“봐야 할 얼굴이 있어서.”

“같이 가줘?”

“아니, 개인적인 용무라.”

“칫, 비밀이야?”


녹호가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홀로 밖으로 나갔다.

넓은 보폭은 금세 복도를 거닐었다.

병실 환자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이, 익숙하게 찾아가는 장소는 아닌 듯했다.


“여긴가?”


한 병동.

다인실이라, 사람이 많았다.

녹호는 항상 1인 병실과 관련되다 보니, 낯선 느낌도 들었다.

평범한 병원 풍경은 볼 일이 없어서.


구석 침대에서 한 청년이 게임기를 만지작댔다.

갓 성인이 된, 어린 티가 얼굴에 드러났다.

언뜻 낯익은 느낌도 든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무슨 게임 해?”


녹호가 건들대면서 관심을 표했다.

그건 꼭 90년대 동네 형 같은 느낌이다.

건들대서 무서운데, 은근히 잘 챙겨주는.


“그냥 RPG···.”

“죽을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네?”

“네? 절 아세요?”

“‘김송과’. 맞지?”


병약해 보이는 남자다.

몸이 얇고 머리가 아무렇게나 자랐다.

곱상한 얼굴 때문에 얼핏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피부가 창백하기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아, 네.”

“대충 몸 상태 읊어 봐. 상황 파악 좀 하게.”

“진짜 누구시길래 이러는데요?”

“대꾸 안 해? 중환자로 확정할까?”


은은한 협박이 들려왔다.

송과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사자 같이 생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마지못해 입을 벌렸다.


“혈우병이 있어요. 그래서 상처가 나도 피가 안 굳어요.”

“그뿐?”

“네. 근데 저는 심한 편이라서요. 손에 생채기 하나만 나도 응급실을 갈까 말까 하거든요. 피가 안 멎어서.”


상처는 벌어진 피부가 맞물려야 아물 수 있다.

피가 굳지 않는다는 건. 그래서 더 치명적이다.

혈액이 상처를 붙잡아주지 못한다.

여기서 끝이면 다행이지, 끊임없이 새어 나오기까지 한다.

작은 틈을 점차 크게 벌리면서.


“항상 조심해야 해요. 알바 하다가 몇 번을 잘렸는지 몰라요.”

“병원비가 더 나왔겠네?”

“맞는 말이라 화도 못 내겠네요. 맞아요, 매번 시급도 못 받고 쫓겨났거든요.”


대부분 허드렛일일 테고, 잔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응급실로 가야 한다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그나저나, 누나가 보낸 사람이에요?”


송과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쯤 되면 누군지 모르기도 힘들었다.


“유송이한테 무슨 말을 들었지?” “그냥 성격 나쁜 고용주라고요. 어쩌면 찾아올 수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 연락은?”

“해외 출장 중이잖아요? 국제 전화도 잘 안 되는 곳이라던데요?”


거짓말이라.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녹호에게 생존을 부탁했지.

그런데 동생이 원망을 품도록 할 수는 없었다.


“운전할 줄은 알아?”

“네, 배웠어요. 차는 없지만요.”

“됐네. 내일부터 출근하면 되겠어.”

“네?”

“일하라고. 네 누나 대신해서.


녹호가 간단히 말했다.

설마 했지만, 그냥 돌봐주진 않는다.

아니, 그나마 고용하겠다니 다행일까?

일말의 책임감 정도는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 음···. 알겠어요. 받는 돈 생각하면 그래도 모자라니까요.”


혈액은 인공으로 생성할 수 없으니, 그저 헌혈에만 의존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불안정하고 비싼 일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쓸데없는 일 있으면 정리하고, 병원 일정 통지···”

“야! 피녹호!”


그때, 인영이 꽥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뭐야? 어떻게 찾아왔어?”

“저기 병실에서부터 죄다 소리 질러서···”

“민폐네.”

“아니, 좀!”


병실 사람 모두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드문드문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씨이, 누가 너 저격했단 말이야.”


결국, 목소리를 낮췄다.


“저격? 총 맞을 짓은 안 했는데.”

“진짜? 양심에 손을 얹고?”

“칼 맞을 짓은 많이 했지. 외국인을 괴롭힌 적은 없거든.”


녹호가 여상스레 대꾸했다.


“그런데 누구야? 그 간도 큰 놈이.”


딱히 걱정은 없는 듯했다.

대부분 대처가 가능하니 보일 만한 반응이다.

모든 일을 철저하게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영은 표정이 조금 묘했다.


“천동죽. 그 인간이 너 보고 도플갱어래.”


그 말에 녹호가 얼굴이 굳어졌다.



***


녹호의 방.

사나운 얼굴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깔끔하게 생긴 남자가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저는 도플갱어입니다.


한 마디가 나왔다.

이로 인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제 존재는 상식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는 X끼가···.”

-하지만 이 능력이 가지는 위험성을 알기에, 이 앞에 섰습니다. 다행히 성과 역시 있었습니다. 제보와 조사를 통해, 용의 신분 몇 가지를 추려냈습니다.


천동죽.

또 다른 도플갱어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신분은 피녹호. 현재 레저 피노키오라는 사업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부친은 해외 주식계의 큰손. 억 단위의 재산을 축적한 상황입니다.


인영이 말했던 대로, 가장 핵심이 되는 신분이 들켰다.

경위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추측은 가능했다.

꼬리가 밟히고 그게 이어졌다면.


-두 번째 신분은 장천선. 인터넷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남자친구 컨셉으로 인기를 모으다가, 최근 대형 이벤트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교육청 방화사건의 범인, 장모 씨의 아들로 추정됩니다.


현묘는 도플갱어를 알아챘다.

그래서 천선분식까지 찾아왔지.

이쪽과 접선했다면, 금세 꼬리를 밟을 수 있었을 터였다.

영상을 추적해서 이 저택까지 알아냈을까?

녹호는 그렇게 걸렸고?


-세 번째 신분은 김예현. 현재 목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레저 피노키오와 협약을 통해, 신도에게 엄청난 서비스를 퍼붓는 교회입니다. 그 덕에 최근 신도는 엄청난 증가세를 나타내는 중입니다.

“하, 여기까지 알았나?”

-도플갱어는 이미 돈, 인기, 맹목을 모두 얻었습니다. 그 모두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판이한 영역에서,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금 멈추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현까지 드러났다.

꼬리를 넘어, 몸통과 머리마저 알아채 버렸다.

안심하고 있었건만.


“예현이 드러날 리 없을 텐데.”


녹호가 영상을 앞으로 당겼다.


“요즘엔 아예 발길을 끊기까지 했는데, 알아챌 방법이 있었나?”


음성은 다시 원하는 지점부터 시작되었다.


-···지만 이 능력이 가지는 위험성을 알기에, 이 앞에 섰습니다. 다행히 성과 역시 있었습니다. 제보와 조사를 통해, 용의 신분 몇 가지를 추려냈습니다.

“······.”

-···히 성과 역시 있었습니다. 제보와 조사를 통해, 용의 신분 몇 가지를 추려냈습니다.


사나운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제보와 조사를 통해


화면이 멈췄다.

동죽은 정면을 바라보는 채로 굳었다.

그건 꼭 액정 너머의 녹호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화면 밖의 도플갱어 역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


그랬다.

선이 악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악 역시 선을 들여다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인지했다.

꼭 운명이라도 되는 듯이.



***


썬팅 짙은 차량.

그와 별개로, 도색은 굉장히 화려했다.

튀지 못해 환장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고도 만족을 못 했는지, 한참 도로를 돌아다닌다.


“얼마나 돌아야 해요?”


운전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송과.

눈치를 보면서 핸들을 돌린다.


“경어체.”


대꾸하는 목소리는 어딘가 무심했다.


“네?”

“경어체로 하라고.”

“아···. 그럴게요. 아니, 그러겠습니다.”


녹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항상 미행이 있을지 살펴봐. 날 노리는 인간이 있을 테니까.”

“미행 말입니까?”

“그래. 계속 졸졸 따라오는 차량이 있는지.”

“지금은 안전···”

“지금도 보이네. 같은 곳을 이렇게 빙빙 도는데, 계속 눈에 띄는 놈이 하나 보이잖아?”


녹호는 창문을 주욱 열었다.

그다음 먹다 남은 커피 컵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형님?”


투욱 떨어지는 손끝.

커피 컵이 후웅 날아가서 뒤쪽 차 유리에 부딪혔다.


“윽!”


송과가 인상을 찌푸렸다.

갈색 액체가 뒤따라오던 차 유리를 어지럽히고 말았다.

컵에 맞은 차량은 불안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도로에는 짤막한 브레이크 자국을 드문드문 남기면서.


“내가 인기가 많아. 앞으로는 더 관심이 넘쳐날 테고.”

“신고당하는 거 아니에요?”

“신고? 하라면 하라지. 그 잘난 면상 좀 보게.”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건 미행을 확신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럼 이제 그냥 목적지로 가면 돼요?”

“경어체.”

“아, 가면 됩니까?”

“그래.”


커피로 더러워진 차량은 눈치를 보며 사라졌다.

미행을 들켰다.

괜히 부스럼을 만들기보다는, 없던 일인 척하는 편이 좋겠지.


송과는 정해진 목적지로 향했다.

녹호도 그 사이 여러 가지 준비물을 챙겼다.

단단한 가방을 바닥에서 들어 올려 옆자리에 두었다.

그다음 안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첩을 꺼냈다.


“송과야.”

“예.”


커다란 입이 육포를 씹었다.

가느다란 입술은, 사람을 부르고서도 뒷말을 잇지 않았다.


“왜 부르시고 아무 말도···, 어?”

“이것도 저예요.”

“아니, 지금···.”


순간 차량이 크게 흔들렸다.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은 얼까지 빠지고 말았다.

변신을 눈앞에서 목도한 탓이다.


“운전 조심하시고요.”


그 말에 얼른 정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백미러를 힐끔대면서.


“아. 방금 일은 말하고 다니시면 안 돼요. 눈치가 있다면, 당연히 알겠지만.”

“예···.”

“흘려듣지 마시고 머리에 새겨들으세요. 잘못하면 곱게 못 죽거든요.”

“예?”

“자연사하셔야죠. 대한민국 평균 수명 깎아 먹지 말고요.”


여우 같은 얼굴이 공손하게 경고했다.

사실이기도 할 터였다.

까딱 잘못했다간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땐 도플갱어도 가만히 참지 않을 테지.


“···절대 명심하겠습니다.”

“네, 목적지에 잘 도착했네요. 남는 시간 동안 차 안에 계세요.”


주차장에 도착한 차량.

천선이 문을 열고 내렸다.

손에는 단단한 서류 가방을 쥔 채였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화려한 불빛이 이를 반겨주었다.


“꺄아아아악···!”

“잘생겼어요···!”

“와, 벌써 이렇게 모여들었네요. 관심이 좋아요? 그쵸?”


시야에 엄청난 인파가 가득했다.

오죽하면 다른 차량도 통행이 불편해질 정도다.

귓가엔 귀청이 떨어질 듯한 대답이 들려온다.


“네에···!”


그래, 팬.

이벤트를 기점으로 인기는 눈에 확 띌 정도로 집중됐다.

더군다나 동죽이 시선을 끈 뒤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대한민국 최고 옴므파탈이에요. 다들 소식 들으셨죠?”

“하하하하하하···!”


또 하나의 도플갱어라고 인증이 박혔다.

다들 진실인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천선은 이 상황을 이용하려고 했다.

이목이 끌린다는 사실은 위기이자 기회이기에.

동시에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이러는 편이 더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이겠지.


작가의말

완결은 250화쯤 날 듯합니다.

몰라요, 언젠간 끝나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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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110화. 배신 24.05.27 6 0 12쪽
109 109화. 관계의 재시작 24.05.23 5 0 12쪽
108 108화. 돈 뿌리기 24.05.21 5 0 12쪽
» 107화. 김송과 24.05.18 7 0 12쪽
106 106화. 하늘 24.05.16 7 0 12쪽
105 105화. 시위 24.05.14 6 0 12쪽
104 104화. 하늘 24.05.10 6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5 0 13쪽
102 102화. 보호 받지 못한 아이 24.05.03 5 0 12쪽
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9 0 13쪽
100 100화. 균열 24.04.29 14 0 12쪽
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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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6화. 최후의 눈치 게임 24.04.22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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